[연재] 패션에 관한 잡담 - 6
상병 김무준 2008-10-16 16:27:38, 조회: 456, 추천:1
오늘은 잡담 보다는 번외편입니다.
Tie Your Tie
-남자를 위한 가장 부드럽고 나긋하며 정당한 훈육, 넥타이.
약속 시간인 두 시에 정확하게 나타났건만, 면접을 보기로 한 그 남자인 줄 몰랐다. 창간 이래로 금단추가 달린 블레이저에 태슬 로퍼, 실크 양말 차림인 지원자는 처음이었으니까. 편집장이 꼼꼼히 서류를 보는 동안, 함께 읽는 시늉을 하면서 그의 옷차림을 살폈다. 보기 드문 스타일이어서 그렇지 전체 조화는 나쁘지 않았다. 칼라가 약간 좁은 셔츠는 푸릇하니 깨끗했고 팬츠 길이와 재킷 폭도 적당했다. 눈에 띈 건 쪽빛 타이였는데 타이를 맨 방식이 뭐랄까, 아주 특별했다. 매듭 부분이 밋밋한 대신 사선으로 교차되어 있었는데 타이가 단색이어서 자세히 보지 않고는 알아 챌 수 없는 세부였다. 편집장은 그에게 첫 질문을 했다. "남자가 넥타이를 꼭 매야 하는 세 가지 상황을 얘기해 보세요." 그는 약간 빨개진 진지한 얼굴로 "장모님을 뵙는 날입니다. 오렌지색 동물 무늬 타이를 맵니다. 오렌지색은 마음이 따뜻해 보여요. 동물 무늬는 귀엽게 보이고 싶은 사위의 애교에요." 를 시작으로 인상적인 세 가지 상황을 만들어 냈다. 대답은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외국에서 나고 자란 탓에 작문 실력이 모호해서(말은 잘 했지만) 결국 그는 싱가포르로 돌아갔다. 그날 그가 크로스노트 방식으로 타이를 맸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유럽에서는 익숙한 타이의 모양새고, 그러니까 그건 창작 매듭 법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 남자들 대부분이 가장 기본적인 타이 매듭인 포 인 핸드를 쓰는 탓에 윈저노트나 더블노트도 아닌 크로스노트는 생경하기가 수영복을 입은 북극곰 같았다. 하지만 딱 그만큼 신선하기도 했다. 넥타이를 매는 건 면도를 하는 것, 학교 다닐 때 제도기를 갖는 것과 함께 남자만 누릴 수 있는 ‘성장의 상징’이다. 그런데도 매일 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남자들은 타이를 수갑쯤으로 여긴 나머지 틈만 나면 그걸 풀어헤칠 궁리를 한다. 이를테면 노래방이나 술집, 상사에게 혼난 직후의 복도에서. 정치인은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호방한 성격임을 알리는 수단으로(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타이를 매지 않고 의회에 출석하고, 공무원들은 주말 복장이랍시고 타이 만 빼고 수트를 입는다. 물론, 고동색 선반에 놓인 예쁘기가 나비 날개 같은 실크 타이를 보거나 직물의 소박하고도 정직한 짜임이 그대로 보이는 모직물 타이를 볼 때마다 그걸 갖고 싶어 한숨이 나는 남자도 있지만. <화양연화> 의 양조위와 <아메리칸 지골로> 의 리처드 기어, <화려한 일족> 의 기무라 타쿠야 그리고 <GQ>의 이충걸이라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타이 1백선을 소장품만으로 꾸밀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러고도 또 갖고 싶은 아름다운 타이 1백 개를 그 자리에서 당장 발표할 게 틀림없다. 클래식의 옹호자들은 절대적 규범처럼 타이와 셔츠와 공식을 왼다. “셔츠 칼라가 넓을 땐 타이의 매듭을 크고 굵게, 칼라가 좁을 땐 타이 매듭도 날씬하게. 윈저노트를 두툼한 타이로 매면 뚱뚱해 보여서 안 되고 실크 타이를 너무 좁게 매면 가벼워 보여서 안 되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려간 사선은 미국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간 사선은 영국에서.” 다 맞는 말이고 실제로 그렇게 매는 게 보기에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재미가 있을까.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여름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몇몇 기업이 노타이 운동을 시작했다는 뉴스를 봤다. 타이를 안 맨다고 뭐가 얼마나 시원하고, 그래서 에너지를 얼마만큼 줄인단 건지도 알 수 없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건 ‘노타이’란 말이었다. 노타이란 게 도대체 뭘까. 노신사 같은 걸까? 아니면 하이타이?
- <GQ> 에디터/강지영
뱀발. 이력서가 필요한데 이력서 쓰는 법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어서요. 아시는 분 있으시면 쪽지로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뱀발 둘. 가끔 이렇게 번외로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괜찮은 글이 많거든요 잡지에도.
22.83.38.99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9:54
병장 정병훈
16.35.11.87 잡지에서 발췌하신 글인가요?
이런 글 저도 써보고 싶은데 워낙 상식의 폭이 쫍아서 하하핫.
그건 그렇고 같은 정장에 타이만 바꿔도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할수 있다는게 정말 신기할
따름입니다. 겉으로 보이는건 전체의 2%도 안되는놈이 전체의 분위기를 움직일수 있다라
타이를 매는법이 한가지인 줄 알았는데 새로운 정보네요.
하지만 정장을 입을 일이 별로 없는 저로선 그 한가지 방법이나 충실하게 익혀둬야겠습니다. 잘봤어요! 2008-10-16
17:13:05
병장 이동석
40.6.1.206 '크로스 노트'라 어떻게 매는건지 궁금해지는군요. 허허.
제가 지큐에 입사하려면, 패션감각부터 키워야겠군요. 2008-10-16
19:12:38
일병 구진근
7.7.1.95 저는 이상하게 슬림한 넥타이나 슬림하면서 먼가 포인트를 줄 수 있을만한 넥타이를 좋아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넥타이 중에 체인 넥타이라고 있는데 마니악 하게 이리저리
양X치를 연상시키는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심플한 맛이 살아(?)있는 것도 있고 반대로 올블랙에 문양만 들어있는것도 있는데 그러한 것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따로 보면 이쁜데 같이하고 보면 먼가 모자란듯이 보이는것이 있던데 그 해답이 이 글에 쓰여있는것 같군요.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2008-10-16
20:39:25
병장 이재민
54.1.57.164 개인적으로는 이 글 읽고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글 말미에 '노타이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피력되어 있는데, 타이를 매는 것 또한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또 실제로 타이 안매면 얼마나 시원한데요 2008-10-17
08:11:32
상병 김무준
22.83.38.99 저고리 앞섬을 매지 않으면 굉장히 시원하지만, 예절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겠죠. 아니면 광인이거나. 클래식이란 그런거니까요. 뭐, 앞섬을 묶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진 개량한복이라면 모르겠지만요. 2008-10-17
09:39:41
상병 김무준
22.83.38.99 더군다나 기업이라는 곳에서 '한복'을 수트와 같이 암묵적으로 입어야 한다면, 그 상황에서 단체로 저고리 앞섬을 풀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기업이 어떻게 비칠까요? 2008-10-17
09:41:05
상병 양순호
18.17.54.125 이력서는 그냥 양식만 보면 되요. 인터넷이 안되시나요?
그럼 이런저런 이력서 양식 몇개 찾아다봐 드릴까요. (곰곰)
저도 뭐 그냥 널리 퍼져있는 이력서 양식 가져다가.
아니면은 취직할 쪽 회사에 이력서 양식이 있는가에 대해
문의해보고 걸 받아서 써본지라요. 2008-10-19
08:49:39
상병 양순호
18.17.54.125 앗차. 그리고 오타가 있어요. [작문 실려이] 작문 실력이 ~
GQ를 보면서도 간간히 오타가 있는걸 보고 살짝 미소짓곤 했는데
여기서도 미소짓게 되네요. 히히. 2008-10-19
08:5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