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패션에 관한 잡담 - 5  
상병 김무준   2008-10-15 22:06:24, 조회: 423, 추천:1 

뭐? 스카프?


-스카프 사 모으는 취미는 없습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절기상으로는 음력 7월 7일이던 8월 7일에 입추가 왔죠. 9월 14일은 추석이기도 했고요. 하늘은 높아만 지고 푸르게 변해갑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그런지 글쟁이의 식탐도 날로 늘어갑니다. 휴가 앞두고 살을 빼야하는데 하면서도, 계속 먹어대다 다시 쪄버렸습니다. 피부도 한번 저질러 버렸습니다. 그동안 태우지 않으려고 별 발버둥을 다 쳤습니다. 후임들이 명절이랍시고 축구 한게임 뛰자고 졸라서 뛰고 왔더니 홀랑 타버렸습니다. 이래저래 슬픈 가을입니다.

오늘은 스카프 이야기나 해볼까 합니다. 휴가 나가서 대체 뭘 입을까 고민하다, 이제껏 입어왔던 옷들을 떠올렸습니다. 가을하니까 지난 휴가 때 사뒀던 스카프가 생각났습니다. 늘 집에 있는 옷으로 다양한 옷차림을 마련하기위해 매치를 할 수 있도록 옷을 사는 편입니다. 지난겨울 휴가에도 마찬가지였죠. 셔츠에 주로 타이를 하지만 유독 그날따라 스카프가 해보고 싶더군요. 내친김에 쇼핑 하면서 검은색과 회색이 체스판처럼 매치돼있는 스카프를 샀습니다. 머플러 대신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겨울바람에 스카프 자락을 날리고 돌아다녔습니다. 흑백 체크 뿔테안경이랑 까지 쓰고 다니니 가뜩이나 보수적인 부산사람들 시선집중이었습니다.

패션계에는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패션계에 종사하는 남자 중에 괜찮다 싶은 남자는 90%이상이 게이다.’ 버버리의 Christopher Bailey를 비롯해서 우리가 아는 디자이너의 상당수는 게이죠.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동성애에 관대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유명한 누가 ‘동성애자’다 ‘양성애자’다 하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상당히 개방적인 우리 세대역시 제 3자에게는 관대해도 친구나 애인이 동성애나 양성애를 하고 있다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제 친척들도 제가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겠다니 조금 부정적이더군요. 

유교적인 가치관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여자들이 주로 하는 일을 남자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대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남자가 가사를 본다거나,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한다는 것은 ‘기사’감이었죠. 패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모키 메이크업을 한다거나, 저처럼 스카프를 한다면 주변에서 그리 고이 봐주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몇 달 전 잡지에는 스모키 메이크업에 대해 <대한민국 남자들이 스킨케어를 넘어서 메이크업의 단계까지 올라설 것인가?>라고 의문을 던졌습니다. 연예인도 아닌 평범한 남자가 화장을 한다하면,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마음속으로 외칩니다. ‘이건 o미?’

글쟁이 주변에는 예능 쪽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친구들은 그날그날 옷 입은데 대해 토를 달고는 하죠. 스카프를 했을 때는 약간 의외의 말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욕을 한바가지 먹을 줄 알았던 제게 친구들은 ‘점점 너만의 스타일이 나오는 것 같다.’ 라든가, ‘군바리 치고는 꽤 감각 있는데? 트렌드도 알고.’ 라는 칭찬(어쩌면 욕일지도 모를)을 해줬습니다. 개방적인 사람들이라 그랬을까요. 으쓱해져서 그 스카프를 며칠간 애용했는데 싫은 소리를 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아, 지하철에서 한 꼬맹이가 저를 빤히 쳐다봤습니다. 미소를 짓고는 수줍게 입을 가리며 한마디 던지더군요. “풉!”

군에 입대한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휴가를 나갈 때 마다 달라진 세상의 모습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별로 변한 게 없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매번 많이 변했다고 느끼죠. 세상도 사람도 나도 다 많이 변했다고요. 사회가 많이 관대해졌습니다. 군인들이 스킨케어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괜찮은 화장품 브랜드를 소개받아도 전혀 놀랍지 않고, 남자가 스카프를 해도 주책이라고 놀리지 않습니다.

글쟁이는 아주 정상적인 이성관을 가진 대한민국 남자입니다. (그래서 군대에 왔지만)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습니다. 남성복이 여성복만큼 다양하지가 못하다는 것이죠. 남성복에서는 색감, 형태, 재질 같은 것이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팔려야’하니까요. 밀라노의 패션이 광채를 잃어 가느니 합니다만 그 배경에는 변하지 않는 시장 탓도 있겠죠. 아무리 미우치아 프라다가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고, 대중매체에서 메트로 섹슈얼 따위를 찬양한들 가치관이란 게 쉽사리 바뀔 리가 없습니다. (마르니나 구찌는 용서가 되지만 아무리 패션공부를 하는 저라도 프라다는 ‘아직’ 용서가 되질 않습니다. 그 정신만은 높이 사지만) 때문에 여성향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많은 스타일들이 시도되지도 않은 채 사라집니다. 이름난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들이 남자인 까닭을 누가 말했습니다. 여자라면 하지 못할 참신한 시도를 남자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입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요. 반대로 해석하면 그들이 남자이기 때문에 남성복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지 못하나 봅니다.

여성복 중에서 간혹 이건 내가 입어도 괜찮겠는데 싶은 물건이 있습니다. 그런 옷을 만나는 날 백이면 백. 저는 돌아섭니다. 아무리 사회가 변했다 한들 여성복 매장에 들어가서 여자 점원에게 ‘이거 제가 입을만한 치수 있나요.’라고 물을 배짱은 없습니다. 낯을 좀 가리는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튼 남자 점원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들어갈 생각도 못합니다. 뭐랄까요. 비뇨기과에 여자간호사가 있기 때문에 웬만해선 들리지 않는 거랑 비슷 하려나요. 스카프를 하고 돌아다닐 수는 있어도, 붉디붉은 셔츠를 입을 수는 있어도, 여자 옷이 아무리 마음에 든다한들 당당하게 매장에 들어가 그 옷을 사 입을 수는 없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서 프라다의 겹친 칼라나 등으로 잠그는 셔츠 따위를 입는 게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면야 또 모를까. 제 몸에 맞는 여성복이 있을 리도 없겠죠.

이번에 휴가 나가면 머플러나 스카프를 후드처럼 쓰고 다녀볼까 합니다. 생각하는 만큼 룩이 나온다면 해보겠지만 아마 진짜 그렇게 다니지는 않을 겁니다. 후디를 그렇게 입는다면 몰라도 스카프를 그렇게 하는 건 아가씨들의 스타일링 법이니까요. 기껏해야 저번에 사둔 셔츠나 입고 다니겠죠. 그 셔츠도 앞부분을 제외한 팔과 등은 ‘망사’ 수준이라 무언가를 걸치겠지만. (휴가 때 한번 입어봤는데 주변 아가씨들의 시선이 너무 므흣해 곤란하더군요.)

화장품 매장에 혼자 들어가 물건을 사는 것도 부끄러운 저에게 여성복 매장에서 옷을 산다는 건 꿈만 같은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휴가 때는 꼭 혼자 화장품 매장에 들려봐야겠습니다. 군대에서 단련된 강철낯짝이 통하려나 모르겠네요. 혹시라도 콩닥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여성복 매장에 들어서야할 시대가 온다면, 화장품 매장정도는 당당히 들어갈 수 있어야 할 테니까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7:22 

 

병장 김태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전역 후 패션업계에 종사할 사람입니다. 

저 또한 2~3개에 여성복을 가지고 있고 즐겨입습니다. 
(몸이 외소하고 슬림한편이라...어깨가 좁은...어좁이라고 하죠.) 

김무준 상병님 말처럼, 여성복이 정말 이쁜 옷들이 많습니다. 
입대 전이나 입대 후나 휴가 나가 지하상가를 지나칠때마다 
여성복을 파는 곳들에서 " 호오.. " 할 정도로 감탄사가 나오며 
제 걸음을 멈추게 하는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뭐 직원분께서 나오시더니 " 여자친구 옷 사실려구요? 들어와봐요 " 
(육군 병장 솔로의 아프디 아픈 곳을 찌르는 직원분이죠) 

결론은 남성복은 여성복보다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과 여성복이 더 이쁘다라는!! 

전역 후에 군대에서 단련한 강철낯짝으로 피부과를 가서 피부관리 받을생각입니다. 
화장품 매장도. 혼자! 도전! 불가능은 없다! 2008-10-16
01:13:05
  

 

병장 이동석 
  이건 <패션 no.5>가 아닐까 하는군요. 

어쨌거나 저도 사상적으로는 고정된 성 관념에서 자유롭지만, (혹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화장품 가게만 가면 저도 모르게 낯이 뜨거워지더군요. 여자친구 선물 사러 가는데도 말이죠. 화상때문에 피부과 들락거리는데도 피부관리 하러 온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괜히 어색했던걸 보면 이건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예전엔 이발소가 아닌 미장원을 가는것도 어색했어요. 요새는 자연스럽게 미장원을 가지만요. 

슬림한 친구들은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졸지에 주위 여자들에게 사놓고 안 맞는 여자옷을 선물하는 난데없는 매너남이 되었지만)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해 여성복을 구입하더군요. 그 친구들이 여성복 매장을 드나들 시대가 오면, 옷이나 색에는 성별을 부여하지 않으리라 믿어요. 그때쯤이면 아저씨가 된 저는 그걸 보며 세상 말세라고 지껄이는거지요. 2008-10-16
06:26:59
 

 

병장 전승원 
  남자도 스카프를 하는 때가 온거죠. 저 역시 스카프 구입을 생각해 봤으나, 어려움이 많습니다 .요즘 스카프는 7080년대마냥 평범한 스타일이 결코 아니란 것입니다. 약간의 망사-스타일이라던가, 조금은 빈티지하게 여기저기 틋어진 스타일 같은게 확실히 구매욕구를 쫙쫙 당기긴 하나. 


특이한 스타일의 옷에 대해서는 언제나. 

" 그런건 니가 직접 빨아라. 손으로 " 

라고 말하시는 어머님이 계셔서. 아무래도 조금은 일반적인 형태로 구입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형태에서는 양보하지만, 글쎄요. 다른건 양보 못 하겠군요. 2008-10-16
09:27:17
  

 

병장 황인준 
  친구 중에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친구가 있는 데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그런데 그녀석 사는 걸 보니 정말 편하게 살더군요. 
아무래도 남을 의식 하지 않다보니, 거리낄것 없이 사니까 걸리는 게 없더라고요. 
뭐, 전 그렇게 살 자신은 없습니다만 그 녀석을 보니 그렇게도 살아보고 싶더군요. 2008-10-16
09:27:55
  

 

병장 이동석 
  그런 의미에서 전 집에가면, 머리를 베가본드의 코지로 스타일로 길러볼까 하는, 
(말이 스타일이지 그냥 봉두난발이죠.) 

절 낭인으로 보지나 않을까 걱정되긴 하는데, 언제 또 길러보겠어요. 흐흐. 2008-10-16
09:46:30
 

 

상병 김무준 
  전 드레드나 레게로... 하얗게 탈색시켜서 하고 돌아다닐 생각인데, 머릿결이 버텨질런지 모르겠네요. 나름 남들 시선 의식 안하고 사는 편이기는 합니다. 거침없이 살자는 것도 인생의 모토인지라. 미쳐야겠죠. 미친 듯이 일을 하려면 우선 나부터 미쳐야 하니까. 2008-10-16
10:20:54
  

 

병장 이동석 
  무준님, 그런데 이거 연재 5번째입니다. 흠흠. 2008-10-16
11:35:19
 

 

상병 김무준 
  수정했습니다. 2008-10-16
11:38:10
  

 

병장 이동석 
  전 샛노란 드레드 해봤는데(원래 의도는 흰색이었는데 더 이상은 무리래서 누렁이 털색깔이 되버렸죠), 곧 개털이 되더군요. 검은색 머리가 그렇게 빨리 올라오는지 몰랐어요. 그리고 지지고 볶아서인지 우연의 일치인진 몰라도 탈모가 약간 있었구요. 

그건 그렇고 
밖에서 주영준씨 사진 보는데, 압도적인 헤어더군요. 오대수와 전인권과 존 레논과 아프로펌이 겹치면서, 아줌마 파마가... 그런 머리는 조금 떨릴것 같아요. 흐흐. 2008-10-16
11:56:55
 

 

일병 구진근 
  흠.. 전 아이보리나 흰색으로 하고싶은데.. 하얀쪽으로 가려면 돈이 많이 들겠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한것이 있는데... 대학다닐때 애들이 제 첫인상을 
코스프레 하는 인간처럼 생겼다고 하는데 무슨 뜻 일까요? 2008-10-16
12:42:23
  

 

상병 전지민 
  입시준비할때 "엄마, 나 의상학과 써볼까" 라고 얘기했다가 
진짜 쫓겨날 뻔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패션에는 조금 보수적인, 아니. 약간은 마초적인 편이라- 
'기집애나 입는 옷' 같은건 좀 싫어하게 된달까요. 

어쨌든, 잘 읽고 있습니다! 2008-10-16
17:18:50
  

 

병장 위대한 
  전세계에서 스키니진을 입는 남자는 우리나라 뿐이라죠?ㅎㅎ 

저도 여자옷 별벌가지고 있습니다 키가 작고 외소한 체격때문인데 

살때는 엄청 창피해서 여자친구한테 부탁한적도 있답니다; 

이런것에 기가 죽으면 안될텐데.. 아니 기가 죽는게 정상적인 남자인가요? ㅎ 2009-01-22
05: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