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패션에 관한 잡담 - 4
상병 김무준 2008-10-14 15:53:44, 조회: 489, 추천:1
신문을 보다가
9월 12일자 국방일보 트렌드 기사로 테크토닉이 올라왔습니다. 클럽댄스, UCC 등으로 눈길을 끌던 테크토닉이 이제는 음악, TV, 광고와 패션까지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테크토닉을 즐기는 클러버들 사이에서 뱅글과 원색의 선글라스, 하이탑은 Must have Item이 되었습니다. 기자가 말한 것처럼 이리저리 찔러대는 테크토닉이 디스코를 떠올리게도 하는군요.
클래식 스타일 이야기를 하면서 교복 이야기를 잠깐 꺼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생 일 때만 해도 (그래봐야 몇 년 전이겠지만) 교복 줄여 입기라든가, 두발 단속을 피해 모히칸(일명 닭머리), 뱅헤어(레고머리죠)를 시도하곤 했습니다. 간혹 특이한 녀석들은 항아리바지(?)라는 발목만 좁고 종아리는 넓힌 몸빼 바지를 좋다고 입어대곤 했습니다. 힙합 스타일이랍시고 뉴에라에 금팔찌에 통바지를 입은 녀석도 있었고요.
부대에서 시내가 가까운지라 훈련을 나가면 가끔 차를 타고 시내를 스쳐가게 됩니다. 요즘 학생들 정말 깜짝 놀라게 만들더군요. 두발자유화라도 된 건지 머리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교복바지는 슬림 핏을 넘어 스키니에 가까웠습니다. 셔츠는 밑단을 잘라 허리가 간당간당하고, 타이는 슬림 타이에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하이탑을 신은채 귀까지 뚫었더군요.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녀석에게 속으로 ‘너도 군대 올 거다 이놈아.’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어떻게 보면 양아치처럼 보일 수도 있었는데, 묘하게 잘 갖춰 입었더군요. 꼭 처음부터 교복이 그렇게 나온 듯이.
Fashion. 행위, 활동 등을 뜻하는 Factio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태리어로는 Modo, 불어로는 Mode라 말하기도 합니다. 영어의 Fashion은 유행, 풍습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넓은 의미로는 영어의 Vogue (유행, 성행), 좁은 의미로는 (양식, 형식, 유행)을 뜻합니다. 패션이라는 단어는 모든 단어가 그렇듯 해석하기에 따라 옷의 유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의, 문학, 음악, 건축 등의 모든 문화를 일컫는 말입니다. 패션디자인학 서적에는 [일정한 사회에서 상당한 기간내에 많은 사람들이 자극에 대해서 일으키는 반응. 사회적 동조현상의 한 형태. 어떤 특정한 기간과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용되는 행동양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지겨울 수도 있겠지만 살짝 학문적으로 파고들겠습니다. 패션은 도입기(Introduction), 성장기(Growth stage), 성숙기(Maturing), 쇠퇴기(Decline stage)를 거쳐 생성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트렌드 리더는 성장기의 패션을 수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패션의 흐름을 따라가는 13.5%의 사람들이 Fashion Leader라 불리면서 성숙기 패션을 따르는 68%의 사람들 Fashion follower를 주도합니다. 지금의 테크토닉은 패션의 성숙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 같군요. 이제 곧 다시 새로운 패션이 출발하기 시작하죠. 도입기 패션을 주도하는 2.5%의 극소수 사람들 Fashion Innovater들이 새로운 패션을 가져오고 소개합니다.
유재석 닮았다는 그 친구가 속해있는 그룹이 Innovater 그룹이었습니다. 그 그룹은 디자이너와 의류업체로부터 제시되는 제품을 사회적, 경제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호평을 받기도 혹평을 받기도 하죠. 제 개인적으로는 류승범이 이 위치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폴스미스의 남자 모델 같은 머리를 하고 다니던데, 저보고는 따라하라고 해도 못하겠군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혁신(Innovater)그룹은 그들 자체적으로 패션을 창조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위에서 ‘디자이나와 의류업체로부터 제시되는 제품’을 리스크를 감수하며 공급받는다 말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초일류 디자이너들이 그들입니다. 존 갈리아노, 크리스 반 아쉐, 미우치아 프라다, 돌체 그리고 가바나 등등. 매년 S/S F/W 시즌 등에서 쇼를 선보이며 세계 패션시장을 쥐락펴락하죠. 그럼 대체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새로운 패션을 창조할까요? 천재이기 때문일까요? 그럴 지도 모릅니다. 에디 슬리먼 같은 디자이너는 정말 천재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대단하죠. 그렇지만 모든 디자이너가 천재는 아닐 겁니다. 그들은 패션이라는 것의 특성을 알고, 주기에 맞추어 패션을 창조합니다. 패션은 일정 기간을 두고 순환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심리학이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거죠.
그럼, 사람들이 반복적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 패션의 유행을 따르는 이유는 왜일까요. 패션전파이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제일 기본적인 것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하향전파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신분상승 등의 욕구 때문에 하위계층(일반인)이 상위계층(여기서는 연예인이라고 해두죠)의 스타일을모방하고, 상류계층은 차별화를 위해 다른 스타일을 선택하는 이론을 말합니다. 20C 초까지 주로 적용되었던 이론이지만 요즘의 패션계에 적용 시켜보아도 괜찮겠네요.
지금의 패션은 너무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새로운 패션이란 것을 소화해내기란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자신에 맞게 잘 소화해내면 정말 스타일 있어 보이죠. 시기에 맞춰 트렌드를 잘 잡아내는 게 스타일 있어 보이는 제일 쉬운 방법입니다. 그럼 유행을 따라가면 스타일 가이가 될까요? 그럼 개나 소나 다 스타일 가이 해먹고 패션 잡지는 민간인으로 도배가 되겠군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행을 쫓으면 자신이 Style 있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입는 이의 생각과 표현이 담기지 않은 옷은 복장이 아닌 천 쪼가리 밖에 될 수 없죠. 네. 착각일 뿐입니다. 영감님은 ‘멋 내기에 있어 제일 무서운 것은 자아도취’ 라고 말했습니다. 패션 아이콘과 같은 옷을 입으면서 자신을 동일시해갑니다.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마치 내가 진짜 ‘빅뱅’이 되고, ‘배정남’이 된 양 생각하게 되죠.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게 있습니다. 옷 잘 입는다는 말은 유행을 잘 따른다는 말이 아니라, 유행을 앞서 나간다는 말입니다. 트렌드 리더, 패션 리더는 앞서서 유행을 캐치하고 이끌어가기에 리더라 부릅니다. 언제부터 유행 따라가는 사람이 옷 잘 입는다는 소리를 들었나요? 이상한 일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Style 이라는 말의 의미가 엉뚱하게 해석되었습니다.
제일 큰 책임은 대중매체에 있을 겁니다. TV와 방송사는 연예인이 신이라도 된 양 떠받들기 바쁩니다. 모 잡지에 나왔던 패션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패션이 언제부터 연예인을 그렇게 높이 받들었던가. -중략- 케이블 방송이 활성화되면서 연예인과 연관 있는 이들이 같이 이름을 알리고, 능력과 상관없이 많은 수익을 올린다.] 패션은 그렇게 어느 순간 돈이 되어버렸습니다. 옷을 파는 데는 유행만큼 좋은 것이 없고, 유행을 만드는 데는 TV와 영화 속 화려한 연예인들이 제격입니다. 강요하지 않아도 그들을 닮고 싶어 하는 집단이 따르기 시작하고, 패션의 특성 덕분에 순식간에 급물살을 타고서 새로운 유행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몇몇 자본가들의 뜻대로 돈대로 유행이 창조됩니다. 안타깝지만, 제 눈에 보이는 현실이 그렇고 다른 이들이 보는 현실도 마찬가지군요.
유행을 따르는 이들에게 죄가 있냐고요? 아니요. 저는 지금 누가 잘했나 누가 잘못했나를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소모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신문에 테크토닉 기사가 나온 김에 잠깐 손가락을 놀려 봤습니다. 어디까지나 유행을 쫓는 사람들 덕에 패션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혁신그룹은 추종자그룹과의 차별을 위해 다시 새로운 패션을 선택하고, 리더들에 의해 선택되어 패션이 됩니다. 그 유행이 지속되면 클래식으로 인정받죠. 지금의 클래식 스타일도 처음 시작은 패션의 유행이었을 겁니다. 저는 유행이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흐름과 상관없이 몇몇에 의해 상업적으로 인위적으로 ‘덜컥’ 만들어진 유행은 정말 싫습니다.
여과 없이 맹목적으로 유행을 쫓아간다면, 지갑이 아니라 우리 머리가 비어가기 시작하겠죠. 거대 매니지먼트사와 스타급 코디네이터와 스타일리스트를 통해 다분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패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것을 따르기 보다는, 실패하고 비웃을지 몰라도 제 생각과 표현에 맞는 옷을 고르고 입겠습니다. 그게 제 스타일입니다. 멋 내기는 유행을 쫓아선 얻을 수 없다는 걸 이제 어렴풋이 알고 있으니까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7:08
일병 구진근
어쩌다 보니 올리시자 말자 바로 보게 되었네요..
흠... 매번 생각하지만 유행에 쫓는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놈이 제대하고 타투 할꺼라고 설치냐!)
크흠, 어찌되었든 저도 요즘 유행하는것들(?) 처럼 알록달록 화려한 것들보다는 차라리 차분하고 분위기 있는 옷들이나 아니면 그냥 제 마음에 드는 옷들을 찾아다니며 입곤합니다만 그 누구도 촌스럽다거나 찌질하다는 소리는 안했습니다.(안하는건지 외면하는건지...)
어찌되었든 유행이라.... 적어도 몇년.. 아니 그다음해를 볼 줄 아는 시력부터 기르는 연습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2008-10-14
16:02:11
상병 김무준
몇 년 후를 초감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주어진 능력인지 알 수 없기에 저는 그들을 '천재'라고 칭하겠습니다. 무튼, 어느 그룹에 속해 있더라도 일단 옷이 자신을 표현한다는 명제를 잊으면 안 되겠죠.
위 글이 9월 중순쯤에 쓰여진 글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페미큘린인지 페니큘린인지 하는 패션 문화가 새로이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신체적 성을 집어던지고 자신만의 성을 찾자라는 취지였던것 같은데, 제 소견으로는 제법 큰 트렌드가 될 듯 싶습니다. 2008-10-14
16:12:01
병장 정병훈
호호호 주룩주룩 내리는 소나기처럼 무준님의 글이 수두룩 하군요.
요 글래 올린 글들이 모두 패션과 스타일에 관한 글인거 같습니다. 자기 소신이 뚜렷하고 책도 많이 보셨는지 전문용어도 술술술...
본문중에...
[옷 잘 입는다는 말은 유행을 잘 따른다는 말이 아니라, 유행을 앞서 나간다는 말입니다.]
라는 말이 있군요.
저희 아버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십니다.
"병훈아. 멋쟁이는 말야 여름엔 겨울옷을 입고, 겨울엔 여름옷을 입는거야..."
항~상 말씀하시죠. 하하하
뭐 계절을 앞서 나가라고 하는 말씀이라고 봐도 되고 유행을 앞서 가라는 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멋쟁이 아버지.
유행 - 돈 - 대중매체 이 삼박자가 어울리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는건 이미 들어난 사실이죠. 2008-10-14
16:22:50
상병 김무준
이러다가 흥미를 잃으면 한동안 사라질겁니다. 안그래도 게시판이 제 글로 도배가 되는 건 아닌가 해서 조마조마합니다. 다행히 반응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지라 그냥 타자 위를 굴러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쏟아진 업무에 눌려버렸습니다. 꽥.
당분간 글 못쓸지도 몰라요. 2008-10-14
16:31:10
병장 정병훈
크크크...
흥미를 잃지 않게 칭찬을 북돋아 줘야겠군요... 이러나저러나 동석님도 한참 바쁜가 봅니다. 저 혼자 메크로 돌리고 앉아 있네요. 2008-10-14
16:47:57
병장 정이연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2008-10-14
17:28:27
병장 이동석
휴우, 저에게 일년에 한번 온다는 바쁜날이 이상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짬 타령하는건 아니지만, 작년에 작대기 두개 달고 있을때보다 더 일이 많아요. 크크. 2008-10-14
18:51:03
병장 이동석
어디서 붙여넣기 한 글도 아니고, 이렇게 흥미로운 글만 골라 올려주시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흐흐. 흥미를 잃지 않게 계속 괴롭혀드려야겠군요. 2008-10-14
19:11:17
상병 박정현
군에와서 패션에 관심이 생겼는데.....(쌩뚱...)
요즘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웃음) 2008-10-14
21:06:24
병장 황인준
접하기 쉬운 분야의 글들이 아닌지라 열심히 읽고 있답니다.
그러니 한동안 사라지겠다는 둥의 두려운 말씀은 접어두시기를 바랄게요(웃음).
유행을 따라 입는 건 어쩌면 그것이 쉬워서는 아닐런지요.
자신이 만들어 입는 것보다 남을 따라서 입는 게 더 쉽잖아요.
거기에 안전성도 있고. 이를테면 낯선 곳에 가서 전혀 모르는 가게에서 먹는 음식보다는,
김x천x 같은 곳에서 먹는 음식에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맛을 기대하는 것과 같이요. 2008-10-15
08:4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