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패션에 관한 잡담 - 2  
상병 김무준   2008-10-10 17:24:48, 조회: 565, 추천:1 

브레스트에 관한 약간의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게... 우선 우리가 흔히 입는 양복은 싱글 브레스트, 또는 싱글 브레스티드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면 꼭 싱글 브레스트라고 설명되어있지 않아도 아, 단추 줄이 한 줄이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싱글이냐 더블이냐는 단추의 세로 줄 수로 정해진다고 보면 될 듯. 거기에 단추 수에 따라서 원버튼, 투버튼, 쓰리버튼이라고 붙습니다. 더블 브레스트 수트는 좀 더 품격있고 단단한 이미지를 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격식에 얽매여 딱딱해 보이기도 하는 옷입니다.

블랙 스트라이프라고 하면 옷의 바탕색은 검은색이고 거기에 광택이 있는 세로 줄무늬가 더 들어가던가, 아니면 명도가 좀 더 낮은 세로 줄무늬가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꼭 비유를 해보자면 가로줄 노트를 세로로 세워 놓았을 때의 이미지로 떠올리시면 됩니다.

더 궁금하신 게 있으면 댓글로 물어봐 주시면 친절히(고객이 만족 못 할 만큼) 답변드리겠습니다.


재킷에 관한 추억

-영화의 내용은 살짝 다를 수도 있습니다. 본지 꽤 됐거든요.
학생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종종 19세 이상 관람가의 영화를 보러가곤 했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승범이 형님의 팬인지라 영화가 나오면 꼭 찾아보곤 했었죠. 마침 사생결단이란 걸쭉한 느와르 영화가 개봉했었습니다. 연상의 여자 친구와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사실 여자 친구는 집이 영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생결단을 보려했죠.) 역시나 나이를 속인다는 약간의 두근거림과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아. 정말 나쁜 놈이더군요. 영화 속 승범이 형님은.

포스터에는 황정민씨와 함께 승범이 형님이 시가를 태우며 블랙 스트라이프 더블 브레스트 쓰리버튼 수트인가... 를 아마 입고 있었을 겁니다. 문자 그대로 간지 포스가 좔좔 흐르는 그런 수트였습니다. 아직까지도 더블 브레스트는 차마 시도를 못해봅니다. 어쨌거나 그 수트와 함께 기억에 콱 박힌 재킷이 하나 있었습니다.

영도 판자촌이었는지 어디 인지 모를 곳에 주인공의 삼촌 집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배신해 죽게 된 형님의 애인에게 사랑을 느끼는 과정이었던가요, 마약에 찌든 그녀를 치료하는 과정이었던지 역시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추운 겨울 그 판자촌에 눈이 내립니다. (아마도!) 승범이 형님은 그 판자촌 언덕을 올라가며 투덜댑니다. 그 장면에서 입고 있던 재킷은 두꺼운 니트로 된 흰색 후드 재킷이었습니다. 일부로 가위로 옷 군데군데를 찢어놓은 빈티지한 니트 재킷이었습니다. 가위로 구멍을 오려낸 느낌이 아니라 손가락 한마디만큼 잘라 옷이 늘어나며 생긴 그런 구멍이 재킷에 패턴처럼 나있더군요. 

보통 남자들이 입는 재킷이라고 하면 블레이저나 수트 재킷, 윈드브레이커를 생각하시겠죠. 남자들은 니트 재킷 같은 건 거의 입지 않으니까요. 구하기 힘든 옷, 특이한 옷을 좋아하는 제게는 꼭 찾아봐야 할 옷이었죠. 꼭 설명을 하자면 재킷스타일의 스웨터, 그러니까... 후드가 달린 싱글 브레스트 재킷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점퍼로 볼 수도 있겠는데... 점퍼보다는 재킷 같았다는.)

재킷이었을 겁니다. 카디건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두꺼웠거든요. 그리고 기억 상으로는 뜨개질로 만든 패턴도 있었던 것 같고요. 오래 입어 구멍이 슝슝 난 것 같지만 하나도 때가 타지 않은 순백의 후드 재킷. 가끔 옷 구경을 하다보면 ‘아 이놈이다!’ 싶은 녀석들이 있습니다. 네. 그런 녀석을 영화 속에서 발견해 버린 겁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여자 친구의 손을 붙잡고 재킷을 찾아 남포동 삼만 리를 떠났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죠.

그해 가을과 겨울동안 죽어라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승범이 형님의 재킷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니트로 된 스웨터나 점퍼는 많아도 재킷은 보기 힘들었죠. 마음에 드는 녀석을 찾아도 여자 옷이라 대한민국 표준체형이 입기에는 힘들더군요.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올해 초 첫 겨울휴가를 나섰습니다. 입을 옷이 하나도 없어 친구 놈을 잡아끌고 쇼핑에 나섰습니다.

‘이번엔 기필코 제대로 된 니트 재킷을 사고 말리라!’ 외치며 부산대, 서면, 남포동을 하루 종일 돌아다녔습니다. 부산대에서 아주 비슷한 녀석을 찾았습니다. 글에서 이야기했던 셔츠와 그 재킷입니다. 분명 매니저님께서는 블랙이라 말씀하셨거늘 형광등 아래서 보면 팔이나 재킷 끝자락이 군청색으로 보이는 특이한 놈이었죠. 워낙에 명도차가 거의 없다보니 색감이 없는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할 그런 색이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구멍은 없었던 데다 색상역시 단색이었으나 마음에 들었던지라, 판매를 하지 않는 디스플레이용을 매니저를 어르고 달래 얻어냈습니다. 후드가 달린 싱글브레스트 쓰리버튼 재킷이었습니다. 소재가 니트이기 때문인지 좀 더 허리를 고정할 수 있도록 니트로 된 굵은 벨트도 있어 슬림한 핏을 낼 수 있었습니다. 휴가 내내 입고 다녔드랬습니다. 무튼 그렇게 추억 속 재킷과 어렴풋이 닮은 녀석을 모셔와 올 겨울만을 기다리며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눈에 봐둔 아이템을 구할 수 없을 때. 정말 미칠 것 같죠. 발품을 팔아도 팔아도 나타나지 않을 때는 더 그렇죠. 첫눈에 반한 여인을 놓치고서 그 동네를 온종일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 그러할까요. 이상형이나 다름없는 추억 속 그녀를 두고 현실과 타협하는 그런 기분으로 데려왔습니다만 그 빛깔 덕분인지 무척이나 맘에 드는 녀석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관리가 제대로 되질 않아 탈색돼있던 것 같았지만... 

열심히 발품을 판 보상이었을까요? 그날 밤 저는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한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옷은 놓쳤으니 이번엔 제대로 잡아보자며 아가씨에게 다가가 번호를 따냈습니다. 그 재킷을 입고서요. (의상학도인 아가씨였는데 어째 저째 군인이란 걸 알아내더군요. 역시 군인은 군인이었나...) 우연한 만남이 인연이었던지 다음날 부대로 돌아오는 길에 동서울까지 가는 버스도 함께 타게 되었었죠. 

셔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나서 끄적거려 봅니다. 뭐 그런 추억이 얽혀있는 재킷입니다. 터틀넥 와이셔츠도 재킷 때문에 발품 팔다 업어온 녀석이죠. 옷을 볼 때마다 괜히 아가씨와의 추억이 생각나는,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옷입니다. (사실 옷에 대한 추억이라기보다는 아가씨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옷이 더 맞겠군요.) 장롱 속에서 밖에 나갈 날만 콩닥콩닥 세고 있을 녀석을 얼른 달래줘야 할 텐데... 겨울은 아직 머네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6:30 

 

일병 구진근 
  왜 전 아가씨에게 번호를 따내는 방법에 더 관심이...쿨럭.. 2008-10-10
17:37:59
  

 

병장 이동석 
  새로운 주제가 책마을에 강림했군요. 허허. 

그런데 이를테면 브레스트 자켓같은 막상 뭔기 감이 잘 안잡히는 용어에 대한 주석좀 부탁드려요. 물론, 전문적인 용어라는건 아닙니다만, 막상 저 같은 문외한에게는 좀 막연해서요. 

잘 읽었습니다. 2008-10-10
19:01:02
 

 

상병 김무준 
  설명 달았습니다. 

아가씨에게 번호를 따내는 방법이라... 어떤 여자든 진심을 다해 솔직하게 다가간다면 90% 이상은 그냥 번호를 주죠. 단,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다짜고짜 전화번호부터 묻지는 않는다- 라는 룰이 있습니다. 2008-10-11
08:12:32
  

 

상병 한진규 
  와우, 한수 배워야겠습니다. 
저도 옷을 무척이나 좋하하는 데 이런 류의 글이 생기다니... 

재밋게 읽었습니다. 

재킷과 슈트는 제가 가장 많이 입는 옷가지인데 
슬슬 그 산뜻한 옷을 입을 수 있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으슬으슬 추워지는군요. 물론 지금 제게도 단 한벌뿐인 멋진 제킷?이 있지만요.(웃음) 2008-10-11
10:17:59
  

 

병장 이동석 
  오옷,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2008-10-11
19:52:47
 

 

6급 하지연 
  으음.. 저도 올 봄에 프라다의 오간자 스커트에 환장을 해서 백화점이란 백화점은 다 
뒤지고 다녔습니다. 물론 프라다의 오간자를 사면 되지만 너무 비쌌다 이겁니다. 
결국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스커트를 찾기는 했는데 탈의실에서 그 스커트를 입고 
나온 순간 그 불타던 구매욕구가 마치 썰물처럼 확 사라지는 겁니다. 
결국 내가 원했던건 그 이미지 였는데 저랑 안 맞았던 거죠. 
화보와 저의 차이점이겠죠? 2008-10-13
08:58:28
  

 

상병 김무준 
  화보와 하지연님의 차이라기 보다는... 프라다의 이미지 자체를 소비하고 싶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프라다의 이미지는 프라다를 소비하면서 내 안에서 완성될테니까요. 2008-10-13
09:4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