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패션에 관한 잡담 - 1
상병 김무준 2008-10-10 09:01:32, 조회: 756, 추천:1
밑에 하지연님의 글을 읽고, 생각보다 패션에 관심있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에 글을 올려봅니다.
원래 105정통단 패션동아리 게시판에 글을 쓰고 있었으나 최근 게시판이 닫히면서 써놓았던 글들이 모두 날아가버렸습니다. 댓글도 함께... 정통단에 가끔 들리시던 분들이라면 몇 번 읽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드에서 썩어가고 있는 글을 보면서 이걸 어디다 써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뭐, 포트폴리오 준비에 포함 시킬까를 심각히 고민하다 최근에는 출판사나 잡지사에 투고나 해볼까 하는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져 살고 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고로, 퇴고는 없습니다.)
책마을 사람들의 입맛에 맞을 지는 모르겠으나, 원래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니 일단은 시작해 보겠습니다. 패션잡지를 읽으시는 분들도 제법 되더군요. 근무 서면서 타임 킬링용으로는 환상소설보다는 나을거라는 '건방진' 생각을 해봅니다.
(뱀발. 그렇다고 제가 환상소설을 쓰레기로 취급하는 막되먹은 인간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셔츠에 대한 짧은 생각
-여기서의 셔츠는 와이셔츠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의상과 복장에 대한 공부가 일천한 제가 클래식을 이야기하는게 좀 우습기는 하지만... 그냥 생각을 끄적여 봅니다.
셔츠라 함은 보통 우리는 클래식 셔츠, 것도 순백의 주름없는 담백한 맛의 셔츠를 떠올립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복'이라는 틀에서 우리는 어쩌면 처음으로 클래식을 접하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슴 허리따위의 길이를 재고서 몸에 맞는.. -부모님들은 성장과 절약이라는 이름 하에 두치수 정도는 큰 교복을 맞춰주시지만요.- 수트 한벌을 갖게 되죠. 뭐 진정한 의미의 수트는 교복따위가 아닌 맞춤복이다! 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보통 그렇게 6년동안 학생이라는 이름 하에 화이트 셔츠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셔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머니께서 손수 다려주신 깃이 빳빳한 셔츠죠.
그 왜 하지마라 하지마라 하면 더 하고 싶듯이, 교복을 입고 있을 때의 우리는 질풍노도의 시기 답게 탈출을 감행합니다. 교복 바지의 통과 재킷의 허리를 줄인다던가, (가능하면 슬림해 보이도록) 넥타이를 느슨히 풀고 윗목 단추를 한두개 쯤 풀어준다던가, (나 묶어두려 하지 마십쇼.) 셔츠를 바지 밖으로 끄집어 내고 재킷의 단추는 모두 풀어두는 등의 (난 이딴 속박에 억눌리고 싶지 않다구요.) 행위는 애교였죠. 자유라는 이름의 방황과 반항속에 그 혼란스런 내면을 표현할 매개체는 당연 복장이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장롱에 대여섯벌씩 수트를 장만하고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바로잡고 아침일찍 시간에 쫓기듯 급하게 구두를 신고 전쟁터로 나서곤 했습니다. 다들 그런 아버지의 수트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요? '촌스럽게 저런걸 왜 입어...?' 언론에 의해 대창조되고 주입된 우리의 문화코드는 트렌드로 무장한 패셔니스타였으니까요. 클래식으로 무장한 아버지의 정갈함은 '따위'로 밖에 취급하지 않았죠.
그러다. 나이를 먹고,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고, 군대를 가고,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시기에 접해들었습니다. '면접때 수트 한벌 정도는 필요한데.', '경조사에 입고갈 블랙 수트 외에도 가끔은 입어줄 수트는 뭐가 있을까?' 같은 고민에 접어들지만 우리가 배워온 것은 교복을 통한 클래식의 추상적인 이미지와 아버지의 촌스럽게만 느껴지는 장롱속 수트 뿐이지요. 무슨이야기를 하려드는 거냐구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잡설이니까요.
며칠전 셔츠에 관한 글을 올렸습니다. 체크셔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가을이면 으레 버버리 체크 같은 검고 붉은 (혹은 갈색의) 체크 셔츠를 입거나. 아가일 체크로 된 니트를 셔츠 위에 덧입곤 하죠. <절대로 요즘 폴 스미스나 버버리에 빠져버려 체크 패턴의 셔츠를 사려드는건 아닙니다. 절대로요.> 단 한분만이 댓글을 달아주셨더군요. '체크셔츠는 좀 아니지 않나요.'
이 글이 결코 그분의 취향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위에 쓰고 있는 글은 아닙니다. 단 한마디의 말로 그분이 복장에 대한 이해와 체크셔츠에 대한 호불호를 제가 알 수는 없으니까요. 뭐 다시 각설하고 약간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흠 아직까지 셔츠라 함은 화이트, 그레이, 블랙이나 파스텔톤의 셔츠를 떠올리는 걸까나?' 왜 어릴때는 체크패턴에 대한 거부감도 없지는 않았잖아요. 저만그런가요? 버버리 코트(여기서의 버버리는 상표이름이 아님을 아시리라 확신합니다)는 무척이나 촌스럽다고 느껴졌었는데.
클래식이 어떻든, 수트에 차려입어야할 셔츠는 또 어떻든... 클래식이라는 것 자체가 완벽에 가까워 손 댈 곳이 없는 궁극의 복장이든 간에 셔츠를 '셔츠'라는 독립된 도구로. 다시말해 클래식 복장의 구성원으로써의 셔츠가 아니라 포인트의 의미로 셔츠를 입는 저에게는 조금은 씁쓸한 답변이었습니다.
작년 휴가 때, 가을이었죠. 부산대 앞 스트릿 매장 (이름하여 길옷...?)을 돌아다니다... 한 매장에서 유니크한 셔츠를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올 여름쯤 찾아가니 지금은 사라져버려 버팔로인가 하는 밥집이 들어서 있더군요. 어쨌거나 그 셔츠는, 목 부분이 터틀넥으로 되어있는 와이셔츠 였습니다. 니트로된 자켓을 찾고 있던 저에게는 또다른 충격이었죠. 세상에 이런 셔츠가 있을 수 있다니.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소재하며... 길옷치고는 (그리고 셔츠 한벌이라기엔 과분한) 비싼 값을 주고 니트 재킷과 함께 모셔왔습니다. 대체 목부분을 제대로 접을 수가 없어 대~충 입고는 했지만.
검은색 카디건에 소매를 훌훌 걷어올리고 체크무늬 안경테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니 시선집중이더군요. (왠 군바리 시키가 저따구로 옷입고 다니냐는 눈총이었던듯.) 어쨋거나 남들이 지나가다 절 한번 더 쳐다본 이유는 셔츠가 '터틀넥' 이었기 때문이겠죠. 후에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도 터틀넥 와이셔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여담이지만 그날 그 매장에서도 그 와이셔츠는 샘플용으로 가져온 단 한벌뿐이었죠.
새삼스레 셔츠에 대한 생각을 해봅니다. 저에게 있어 셔츠는 '고정관념과 획일화'를 깰 수 있는 창과 같습니다. 사춘기때부터 남아버린 사회에 대한 작은 반항이랄까나요. 안경과 함께 없어서는 안될 옷이 바로 셔츠입니다. 그런 셔츠를 꼭 화이트 혹은 블랙으로만... 조금 욕심을 부려봐야 파스텔톤까지- 경계선을 정해두고 입고 계시나요? 그냥 궁금해서 한번 물어본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05:58
병장 고은호
와하~ 좋은데요!!
저도 기대 만빵 하고 있겠습니다. (웃음) 2008-10-10
10:25:55
상병 김호균
클래식은 클래식나름대로의 멋이 있지만, 그 틀을 깨는 파격도 멋지죠...
어떤 복장이든 소화하기 나름이라 '잘 입는다'라는게 어렵다는 생각종종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부탁드립니다(웃음) 2008-10-10
10:26:57
병장 이동석
아니 이런 후로훼셔널한 글이. 조선일보 패션기사보다 낫군요. (흐흐)
전 일년에 옷 한벌 살까 말까하지만, 패션엔 관심이 많아요. 흐흐, 쟁여놓은 글들 많이 보여주세요. 2008-10-10
10:31:27
병장 강문석
이거 본 기억이 나네요. 아.. 그 게시판이 정말 규모도 크고 흥미로운 정보도 많았는데. 하나하나 발디딜 곳이 사라져가는.. 쩝. 재밌게 읽었습니다. 2008-10-10
10:31:47
상병 김무준
조잘 거릴 곳이 사라진다는 게 참 슬픕니다. 안그래도 좁게 사는 마당에... 2008-10-10
10:36:18
병장 이재민
저는 사박사박거리는 하얀 셔츠의 질감이 좋아요- 2008-10-10
11:02:20
병장 이성진
105동, 다른건 모르겠고
자기가 입을옷 쭉 나열해놓고
어떠냐고 물어보는건 좀 재밌더군요 2008-10-10
11:30:53
일병 구진근
같은 부산사시는군요.. 전 안에 티셔츠를입고 와이셔츠를 겉에 걸치고 다녔었어요...
반팔티(클래식한..사진 페인팅 티셔츠?)에 간단한 목걸이하고 청바지를 입고....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가 편하고 만족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제가 이상한건가요?
패션이란 자신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촌스럽게 보일수도 있고 또는 멋진 개성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2008-10-10
12:35:04
상병 김무준
저도 그래서 남들 시선은 의식해도 입고 싶은 옷 꿋꿋하게 입고 다닙니다. 2008-10-10
13:06:47
상병 김신흥
105에서 김무준님 글 즐겁게 읽곤 했는데 책마을에서 다시 뵙게되니 참 반갑군요.
어두운 옷을 좋아한다고 하셨던가. 담배를 좋아하셨던가, 소록소록 기억이 나네요. 2008-10-10
14:02:24
병장 이동석
옷입기 '철학' 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많이 배우게 많이 알려주세요. 흐흐. 2008-10-10
19:29:15
병장 위대한
집에 파스텔 톤 셔츠만 한 4~5벌 있던거같은데..
그렇군요 전 정말 고정관념(??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을련지.)에 찌들어 있었던것 같군요 2009-01-22
04:3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