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패션에 관한 잡담 시즌 투 - 5  
상병 김무준   2009-01-24 22:42:16, 조회: 171, 추천:0 

패션의 순환은 참 겉잡기 힘들군요. 불과 한 달 전쯤의 트렌드였던 옴므 파탈(나쁜 남자)의 이미지가 점점 더 발전하더니, 이제는 가죽 재킷을 앞세운 와일드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제 남자들은 트렌드 세터와 패션 리더가 되기 위해 여자들 뺨치게 생긴 예쁜 얼굴과 늘씬한 몸매, 백옥 같은 피부와 함께 제임스 딘과 같이 반항적인 이미지와 거친 남성의 향기까지 가져야만 하는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곱상하게 생긴 외모로 풍운아적 기질을 뿌려야 한다니요. 시대는 상반된 두 가지의 이미지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시대의 요구에 머리를 감싸 쥡니다. 아아. 어쩌란 말이냐 멋진 남자가 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연말 유행하던 가죽류 제품이 트렌드가 되면서 디아프바인을 비롯한 다수의 브랜드에서 락커와 라이더의 향취가 느껴지는 재킷이 출현합니다. 과거와는 발전된 모습으로, 까만색과 갈색계통의 크게 두 가지로 나뉘던 가죽 제품이 녹색이나 파란색 등 다양한 색감으로 남성복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재킷 일색이던 가죽은 점차 발전하더니 트렌치코트로도 만들어 집니다. 어쩌면 가죽으로 된 수트까지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가죽과 동시에 야성적인 느낌을 주는 옷은 청바지죠. 노동의 이미지에서 젊음, 열정 등으로 이미지가 변한 청바지는 가장 일상적인 옷이 되었죠. 하지만 거친 자유의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청바지는 락커들과 라이더들, 제임스 딘으로 대표되는 터프한 남성들이 즐겨 입기 시작하면서 가죽과 함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이건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죠. 가죽 재킷에 물 빠지고 뜯긴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헝클어트린 후 선글라스 하나만 써 주면 그럴듯한 야생남이 됩니다. 와일드는 어떤 룩보다도 소화하기가 참 쉽죠. 순하게 생긴 사람이라도 수염을 기르고 선글라스를 쓰면 뭔가 있어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는 스타일이죠.

와일드는 반항적인 느낌을 주는 스타일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겉모습을 보고 타인을 판단합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복장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우리는 이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상황에 따라, 장소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복장을 달리합니다. 와일드는 남자다움을 물씬 풍기는 복장이지만 도가 지나치면 폭주족이나 펑크족 같은 느낌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시대는 점점 더 힘든 것을 요구합니다. 멋진 남자가 되어라. 더 멋진 남자가 되어라.

야성미는 어쩌면 남성의 가장 원초적인 미(美)일지도 모릅니다. 수렵활동을 시작하던 무렵부터 강한 남성은 인기가 있었겠죠. 육식동물이라면 대부분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강한 모습을 뽐내게 되었습니다. 문화와 과학은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데 패션은 자꾸만 원초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성은 점점 더 섹시해져야 한다고 말하며, 남성은 더 멋지게 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여자들의 스커트 길이가 짧아진다 했던가요. 이게 다 경제가 어려워서 일까요. 해답은 누구도 제시하지 못할 겁니다. 패션은 굉장히 복합적인 문화의 결과물이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판단입니다. 우리는 트렌드를 좇아 더욱 야성적인 남성미를 뽐내기 위해 변해야 할까요? 아니면, 스스로의 가치에 따라 행동해야 할까요. 시대는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럼 변화를 수용해 나가야 할까요? 시대에 맞추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진화해야 할까요? 이 물음에 명쾌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없겠죠.

답은 자신의 가슴 속에 있을 테니까요. 

22.83.38.70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12:51 

 

병장 이한준 
22.51.11.72   궁에 있으면서 밖에서는 이름도 몰랐던 패션 잡지들을 여러 권 접하게 되었습니다. 에스콰이어, GQ, 아레나. 시크니 모던이니 아방가르드니, 저로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패션계 용어들에 당혹스러워 하면서 사진만 열심히 봤던 기억이 있네요. 
가끔 기사들을 보면 이번 계절의 트렌드는 이거다! 라는 것이 가끔 보였는데,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정말 트렌드인가? 트렌드가 무슨 국수면발도 아니고 어떻게 계절마다 다르게 줄줄이 튀어나오는 거지? 뭐 이런 의문들 말이죠. 
결국 그런 잡지를 열몇권을 보았지만 제가 옷을 입는 것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트렌드라곤 해도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면 의미도 없겠구요. 

제 가슴 속에 있는 답은, '시대에 흐름에 맞추어 갈 필요는 없다. 일시적인 흐름에 휩쓸리는 것은 유행지난 옷을 옷장에 처박아두어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을 확률을 높일 뿐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입니다. 

단순히 제가 촌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긴, 여름에도 검은색 일색이란 건 예나 지금이나 패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택하는 선택지일 테니까요. 시크니 뭐니 그런 건 빼구요. 2009-01-24
22:52:54
 

 

병장 이한준 
22.51.11.72   아차. 글 잘 보았습니다. 김무준님의 글은 느껴지는 바, 얻어지는 바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다음 글 기다리겠습니다. 2009-01-24
22:54:22
 

 

병장 이동석 
40.6.1.206   우왓, 벌써 행동 들어갔다. 무준씨는 어떻게 이리 에너지틱할수가 있죠? 2009-01-25
02:57:10
 

 

상병 김현준 
22.10.1.69   유익한 글 잘 봤습니다. 2009-01-25
08:53:03
 

 

상병 이주영 
22.50.2.191   유익한 글 잘 봤습니다 2009-01-25
09:45:28
 

 

상병 김무준 
22.83.38.90   사람이 극도로 심심해지면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2009-01-25
13:06:19
 

 

병장 방수현 
18.49.9.198   환상소설이 넘쳐나는 이 시점에 정말 담백한 글이네요. 

이 것을 기점으로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하하하하하하하하 2009-01-25
14:27:13
 

 

일병 이지아 
22.80.5.167   진짜 담배한 글이네요. 이번에 밖에 나가서 오랜만에 옷 때문에 고민 했는데 
예전에는 그렇게 머리 아프던 것이 오랜만에 하니까 재미있더군요 

하지만 변하지 않은것은 옷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휴~ 2009-01-25
18:08:57
 

 

상병 황승선 
34.4.1.78   옷을 잘입고 싶어도 이상한 제 취향과 없는 돈, 개념이 없어서 매일 뭐입지!!! 한답니다 2009-01-27
04:1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