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패션에 관한 잡담 - 번외(下)  
상병 김무준   2008-11-30 17:08:31, 조회: 276, 추천:0 

넷 - 너 자신을 알라

2008/10/12 글쟁이의 <Style이란.> 참조하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성인입니다. 성인이라 함은 만20세 이상의 남녀를 뜻합니다. 그럼 다들 20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말이군요.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세 번째 변화하는 동안 외모, 개성, 취향, 가치관 등 우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평가가 생겨났습니다. 그 평가의 색깔과 형태가 우리가 말하는 이미지겠죠.

고유의 이미지 즉 나만의 색깔을 갖기 위해 나를 가꿉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에서 맨 처음으로 작용하는 것은? 시각적 이미지겠죠. 멋쟁이들은 겉모습의 중요함을 알고 있기에 더욱 자신을 꾸미는데 신경 씁니다. 면접에서, 데이트에서 아니 잠깐 나들이를 갈 때 까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바라봅니다. 상의와 하의의 조합은 어떤지. 머리는 잘 정리되었는지. 가방을 맬 것인지 말 것인지. 여기에 맞는 신발은 무얼 신을지. 얼굴에 선크림을 바를지 비비크림을 바를지. 기분 나쁜 냄새는 나지 않는지. 문을 열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리죠. 여자들의 이야기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이제 옷을 사는 이유와 옷을 사야하는 이유 그리고 그 소비의 합리적인 선택까지 알았습니다. 그럼 좀 더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대문을 비롯한 스트릿매장, 백화점이나 편집매장을 가도 직원들은 있습니다. 콧대 높은 브랜드의 콧대 높은 직원들은 고객이 지갑을 고르든 핸드백을 고르든 별 관심이 없을지라도, 일반적인 매장의 직원들은 고객에게 이런 저런 선택을 권유합니다. 요즘 한창 잘나가는 디자인과 색감을 들이댑니다.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고객의 선택에 예스만을 고집합니다.

그렇게 옷을 들고 와서 거울 앞에 서면 이제야 현실을 깨닫습니다. 아, 이건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구나. 옷은 그대로 옷장에 처박히고 피 같은 돈은 공중분해 됩니다. 멋이란 녀석은 은하철도를 타고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향합니다. 입자니 쪽팔리겠고 처박아 두려니 돈이 아깝지만 남 주기는 더 아깝습니다. 이런 젠장. 욕을 내뱉어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죠.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글쟁이는 손가락을 놀립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합니다. 그럼, 무얼 알아야 하느냐고요? 우선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알아야합니다. 스무 해 넘게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우리만의 가치를 어느 정도 확립했습니다. 그건 날카로움이나 포근함 같은 이미지일지도 모릅니다. 사회에 대한 반항일 수도 있고, 기존의 가치에 대한 물음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타인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우선 알아야합니다.

이미지라는 건 내 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서 재생성 되는 겁니다. 그럼 효과적으로 자신의 뜻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겠죠. 그 전에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가를 정해야합니다. 확고한 스타일로 가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글쟁이는 평소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습니다. 흰색이나, 검은색, 회색 같은 밝음과 어두움만이 존재하는 옷들이죠. 까만 옷을 입으면 깔끔하게 보일수도, 근엄해 보일수도 있습니다. 음. 클럽 앞 문지기 형님들이 까만 수트를 입는 것도 그런 이유이겠죠.

글쟁이는 까만 옷을 입습니다. ‘나에게 다가오지 마세요.’나 ‘나는 보기에도 재미없는 사람입니다.’같은 메시지입니다. ‘나를 알 필요는 없어요.’라는 자기 방어의 목적일지도 모르죠. 글쟁이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기 어려워 애초부터 새로운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거죠. 평소 어두침침한 성격이기에 그 성격이 옷으로 드러나는 지도요.

내가 타인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이며,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를 이미지로 표현해야합니다. 효과적인 인간관계와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각적인 도구가 필요합니다. 나를 표현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옷을 갖춰 입는 겁니다. 우리는 왜 옷을 잘 입어야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면 방법을 찾아 실천해야겠죠.

이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했으니 어떤 옷을 입어야할까요. 선뜻 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11월자 Esquire에서는 <스타일 변신을 꿈꾸는 당신을 위한 조언>이란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글쓴이인 애나 로는 ‘롤 모델을 만들라’고 조언합니다. TV나 영화, 잡지를 보면 끝내주는 패셔니스타들이 넘쳐납니다. 그 중에 한두 명은 이렇게 옷을 입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죠. 그런 이들을 롤 모델로 삼고, 그들의 스타일을 따라가면 됩니다.

애나 로는 ‘롤 모델을 만드는 것은 자존심 문제와 별개다’라고 말했습니다. 롤 모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스타일리스트가 그의 패션을 만들어주었든, 그 자신이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었든 그는 성공적인 옷 입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를 선생님으로 ‘학습’하면 되는 겁니다. 주변에 멋이라는 걸 가르쳐 줄만한 사람이 없으니 롤 모델의 어깨너머라도 배우면 되니까요.

우리가 타인에게 이미지와 내 자신을 전달하기 위해 옷을 입는 것처럼, 롤 모델 역시 같은 이유로 옷을 갖춰 입습니다. 그 사람의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는 건 내가 그의 어떤 이미지를 공유하고 싶다는 일종의 동경입니다. 복합적인 사고를 거쳐 자신에게 전달된 이미지를 해석해보면, 그가 옷으로 이야기하는 어떤 것이 내가 말하려하는 이야기와 상당히 맞아 떨어집니다. 글쟁이가 사회에 거침없는 라임을 쏟아내는 이를 좋아하는 것 처럼요.

하지만 그의 스타일을 무작정 따라 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를 따라 뉴에라를 쓰거나, 수트를 입거나 할 필요는 없습니다. 롤 모델의 옷 입기는 위에서 설명한 단계를 거쳐 이미지를 이미 완성한 결과니까요.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의 스타일을 따르되, 나에게 맞게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이게 공부죠.

이제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롤 모델을 정했다면, 자신의 신체적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야합니다. 뚱뚱한 사람이 타이트한 옷을 입으면 심히 부담스럽죠. 키 작은 사람이 빅 사이즈의 티를 입으면 다리가 짧아 보입니다. 마른 사람이 세로줄무늬의 옷을 걸치면 더 말라보이고 얼굴이 각이 진 사람이 네모난 뿔테를 쓰면 더 딱딱하게 느껴집니다. 이는 시각적 형태와 그 형태가 주는 이미지와 관련이 깊습니다. 멋 부리는 일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반복학습을 통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신체적 장점과 단점을 구분하고 그를 부각시키고 잡아줄 수 있는 옷을 선택해야합니다. 이게 어렵다면 잡지나 책을 사거나 인터넷을 뒤져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정보는 우리 옆에 넘쳐날 정도로 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거죠. 그리고 이제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합시다.

제일 쉬운 방법은 타인을 관찰하면서 장점과 단점을 구분하는 겁니다. 약속시간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거나,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일에서 나아가면 됩니다. 사람구경이죠.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스쳐가고 그 사람들만큼 다양한 스타일이 있습니다. 꼭 스타일을 갖추기 위해 잡지를 뒤적이고 연예인들을 쳐다볼 필요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멋쟁이들로 넘쳐나는 스타일의 나라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저 사람은 옷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 하는가. 그들의 옷과 대화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지도 점점 알게 되죠. 이 단계들을 거치면서 점점 옷 입기를 학습하게 되고, 자신의 스타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배워갑니다. 그리고 어떤 옷을 어떻게 살 것인지도 알게 되겠죠.






글을 마무리하며

이야기를 궁시렁 궁시렁 늘어놓은 글쟁이도 가끔 실패합니다. 유레카를 외치며 가져온 옷이 도저히 소화 불가능 할 때도 있습니다. 옷장에는 입지 않는 옷이 쌓이고, 돈은 팔랑팔랑 나비가 되어 날아갑니다. 멋이라는 녀석을 잡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그래도 점점 실패할 확률은 줄어듭니다. 실패확률이 줄어드는 만큼 글쟁이의 스타일도 굳건해집니다. 묶여있는 몸이라 선택의 폭은 굉장히 좁은 편이지만, 이 제한된 상황 속에서 멋 내기를 배워가죠. 내년 여름 쯤 되면 명동이나 홍대를 뽈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겠죠. 이건 뭐냐? 라는 생각이 드는 생물체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면 글쟁이일지도 모르겠네요.

한 달에 걸쳐 글을 썼습니다만 마무리는 아쉽군요. 하려는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다는 것도 있고. 뭐, 10쪽이 넘는 장문의 글을 쓰면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는지도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하지만 글쟁이의 이야기를 읽은 분들은 이제 매장에 가도 예전보다 성공적인 쇼핑을 할… 수 있을까요? 흐음. 그렇다면 다행이겠죠.

못 다한 이야기는 시즌 투에서 계속됩니다. 글쟁이의 잡담은 손가락이 부러지지 않는 한 계속되겠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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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11:43 

 

병장 이동석 
40.6.1.206   아, 무준님의 손가락에 무운-을 빌겠습니다. 잘 읽었어요. 2008-11-30
18:13:28
 

 

병장 김민규 
22.34.42.100   아니, 무운-을 빈다니요. 전 무사고 1,000,000일을 빌어야겠군요. 2008-11-30
18:43:26
 

 

병장 정병훈 
16.35.11.87   자. 손가락 보험 들어줍시다. 2008-11-30
19:06:25
 

 

병장 이동석 
40.6.1.206   설마 제가 無운을 빌었겠어요. 흐흐. 그냥 관용어-적으로 쓰지 않나요? 武운? 2008-11-30
19:08:38
 

 

병장 김민규 
22.34.42.42   굳이 말하자면 하찮은 말꼬리- 정도 되겠습니다. 흐흐 2008-11-30
21:20:42
 

 

상병 이석현 
22.53.2.88   그렇다면 제가 유운을 빌죠 흐흐 2008-11-30
21:21:04
 

 

상병 김정환 
22.34.11.100   손가락 보험용 리플을 하나 남겨드리겠슴니다 ~잘읽었습니다. 
(사실 제대로 전부읽진못햇다는...)(웃음) 2008-11-30
23:36:38
 

 

일병 김태훈 
8.151.1.45   무준님 글은 읽을 수록 빠져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2008-12-01
09:4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