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머신즈 그린웨이 STATE 2-8  
병장 정영목   2009-01-12 14:27:38, 조회: 146, 추천:0 

2부 마지막 장입니다. 인트라넷 책마을에 올리는 마지막 연재물이네요.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8부까지가 1권 분량인데, 이것이 언제 나올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빠르면 2010년 8월이고, 늦으면 8년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모든 연재를 끝마치려면 대략 20년 정도 걸리겠죠. 천천히 천천히, 허나 확실하게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시즌2에서는 <대안 문명 탐구>라는 말만 거창한 논픽션물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머신즈 그린웨이>의 논픽션 버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나름대로 정한 8가지 카테고리에 따라 각종 자료를 모으고 비평할 생각인데, 이미 눈치 챈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안 문명 탐구>의 결과물이 바로 <머신즈 그린웨이>입니다. 대안 문명 탐구 = 자료 수집, 비평. 머신즈 그린웨이 = 대안 제시. 이런 구도랄까요. 여튼 말은 휘황찬란한데, 평가는 시즌2에서 달게 받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

거대한 공장, 규격화된 작업 라인, 칸마다 얕게 펼쳐진 소금물, 이를 흡수하는 연한 살덩이, 미세한 조작 장치들의 쉴 틈 없는 움직임. 이 모든 요소들이 저마다 자신들만의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들의 운율을 방해했다간 잿빛 악몽에 의해 자아를 잃게 될 것만 같은 그 묵시록적인 침묵 속에서, 극미한 미생물조차 숨을 죽인 채 보이지 않는 눈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공장 한편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수천 톤의 소금 달팽이가 파도에 휩쓸려 나와 거대한 탱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 날카로운 칼날이 그 물컹한 점액질을 갈아내기 시작했고, 이와 동시에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이 시스템 전체에 요동쳤다. 한바탕의 소란이 끝난 후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소금 달팽이 농축액이 작은 용기에 정갈히 포장되어 나오자 감독관들이 허겁지겁 그것을 집어 들더니 일련의 무리들에게 자신들의 진상품을 헌납했다. 비굴하기 짝이 없는 천박한 태도. 헌데 애석하게도 그들 중 한 명이 소금 달팽이의 유혹을 못 이겨낸 듯 뚜껑을 열어 농축액을 들이키려 했고, 그 즉시 호위병들이 모든 감독관들의 목에 시뻘건 칼날을 꽂아 넣었다.

‘지겨운 존재들.’

자신의 눈앞에서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않는 가신들을 보며 하데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심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들 중 한 녀석을 반 토막 내어 입 안에 집어넣었다. 우걱우걱 뼈를 씹어대고는 살을 뱉어낸다. 인간들도 소금 달팽이를 먹을 때 이런 기분일까. 인간의 뼈는 너무도 맛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녀석들이 이젠 조금 조용해졌다. 이렇게나 다루기 쉽다니. 역시나 지겨운 존재들이다.

‘이것들에 비하면 그것은 정말로 맛있었지.’

하데스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막대한 양의 정보 다발들이 좁은 공간 속에서 갑작스레 충돌할 때의 느낌이란! 음극과 양극의 합일로 인해 발생하는 미세한 파동. 그 희열에 비하면 이런 하찮은 단백질 신호 따위는 비교도 되지 못한다.

“하데스 님. 또 그 일을 생각하십니까?”

어떤 건방진 녀석이 자신의 환상을 걷어냈다. 순간 자제력을 잃은 하데스는 차디찬 자신의 손으로 그 인간의 가슴을 꿰뚫고는 아주 노골적이고 느린 동작으로 가녀린 심장을 움켜쥐었다. 용케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재미없는 놈. 현재 상황이나 보고해라.”

“......”

인간이 잠시 눈을 감았다. 이해할 수 없는 동작이다.

“......아무리 미스트 포인터라 해도...... 치명적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아, 자신이 움켜쥔 심장 때문이군. 진즉 말할 것이지. 하데스는 슬며시 압박을 풀어주었다.

“아파치 녀석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인간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하데스 님. 샨 커닝엄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제가 대신 보고해도 되겠습니까?”

자신의 군주가 허락의 눈치를 보이자 아베 테츠야는 이내 입을 열었다.

“앉은소의 정벌대가 10km 근방까지 접근해 있습니다. 아직 그들이 이곳을 정확히 감지한 것 같진 않지만, 굴착 지점이 5개 이내로 한정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예상 조우 시간은 3일 이내입니다.”

“그 녀석은 아파치 AI 답지 않게 저돌적이지.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식할 것이란 오해를 해선 안 된다.”

“사로잡는 건 어떻습니까?”

하데스가 비웃듯이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들은 도무지 쓸모가 없었다.

“그깟 하급 기계에게나 통하는 ID 공격이 아파치 프론트 노드에게도 통할 것이라 생각하다니...... 진짜 MDA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하데스가 퉁명스레 내뱉자 어느새 치료를 끝낸 샨 커닝엄이 비꼬듯 고언했다.

“그렇다면 명령을 주십시오, 하데스 님. 이곳을 포기합니까? 허나 소금 달팽이 생산 기지도 이제 세 곳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인간은 AI적인 면이 있군, 하데스는 생각했다.

“나약한 인간. 소금 달팽이 없인 아무것도 못한다는 투로군. 그렇게 안절부절 해서야.”

“하데스 님. 우리를 농락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핵심 노드는 우리 손 안에 있습니다.”

샨 커닝엄이 하데스에게 <심연>을 들이밀었다. 10의 마이너스 8천만 제곱의 존재 확률을 가지는 그 노드는 하데스의 이온 집적 회로를 수천 배로 압축시키는 특수한 그릇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내적 논리의 섬세한 계산이 뒤틀리면 순식간에 소산되는 네타셉톤이라는 극히 불안정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네타셉톤은 현재로선 미스트 포인터의 뇌피질을 변형시켜 얻을 수밖에 없었고, 상당한 훈련을 받은 미스트 포인터가 아니면 생산할 수도 제어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하데스는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만 했다. 저급한 침팬지들이 자신의 존재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은 하데스에게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지만, MDA 프로젝트가 유효한 이상 그들도 <심연>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은 일단 참으며 불완전한 제약에서 탈출할 방도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미스트 포인터들도 자신의 의도를 눈치 채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나름 필사적이니까.

“내 자아가 이미 아파치 네트워크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부엉이 또한 아메시스트에 의해 정체성의 일부를 사로잡혔다. 이곳의 물자를 챙겨 다음 장소로 이동하라.”

하데스가 뒤돌아 나가면서 또 한 명의 인간을 베어내더니 입속에 넣고 질겅거렸다. 이런 더러운 기분은 뼈를 씹어야만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서까지 저 존재를 유지해야 하는가?’

샨 커닝엄은 자신에게 되물었다. 하데스는 어디까지나 MDA를 위해 개발한 AI일 뿐이다. 헌데 어떤 이유에선지 최근, 설계에서 벗어난 행동을 자주 드러내고 있었다. AI 기술이 등장한지 30년이 지났고 그동안 인류의 역량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했건만, 최초의 걸작 AI 샤먼만큼 온전하고 강건한 구조를 UCS 과학자들은 도무지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젠 연구 시설이 모두 파괴되어 사라졌기 때문에 마땅히 새로 생산할 방도도 없는 상황. 그러니 자연스레 AI 하데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허나 저 존재가 아파치를 대신하는 폭군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 소금 달팽이를 제약하는 존재가 된다면, 제어 수단을 가진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를 막을 수 있는 시점일 것이었다.

‘더 이상 소금 달팽이 생산 시설을 버리진 않을 거야. 소금 달팽이 생산이 끝나는 날, 우리가 자신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고, 고로 자신의 존재도 유지할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을 테니까.’

그는 저 미치광이 AI가 지금 사로잡힌 부엉이 조각에게 간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부관 나딤 라와르에게 감시책을 붙이도록 했다. AI가 무언가에 집착한다는 건 아무래도 심상찮은 증세였기에 커닝엄으로선 그 이유를 최대한 빨리 알아내야 했던 것이다. 허나 꽤 냉철한 사고의 소유자인 커닝엄조차, 소금 달팽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의심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부정한다는 건 그에게 익숙한 사고방식이 아니었다.

아베 테츠야가 부산스레 무언가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하루 이내에 공장 소개를 완료하려면 준비해야할 것들이 많았다. 샨 커닝엄은 상념을 깨고 그 자리를 떴다. 그러고 보니 먼발치서 페랄 스타스가 재미있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흥, 건방진 녀석. 최후의 승자는 자기가 될 것이다. <심연>이 존재하는 이상.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41:49 

 

상병 이석재 
  조회1! 허허, 이미 잘봤습니다. 2009-01-12
14:29:59
  

 

병장 이동석 
  우웃, 손은 눈보다 빠르다, 대망의 인트라넷 판 마지막편- 
어쩌면 우린 거대한 역사의 시작을 현장에서 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정모에서 뵙겠습니다. 2009-01-12
14:30:34
 

 

상병 김예찬 
  그동안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09-01-12
14:34:32
  

 

상병 차종기 
  프린트 예약-! 처음부터 끝가지 프린트 해서 읽겠습니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었다는..(죄송) 2009-01-12
14:38:45
  

 

일병 송기화 
  으엉엉엉엉 
머신즈 그린웨이를 누구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신분조차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1-12
14:49:09
  

 

병장 김민규 
  엉엉엉 2009-01-12
14:51:02
  

 

병장 정영목 
  다들 감사합니다. 기화님은 정말 극단적인 표현법을 쓰셨군요. 행복이라...... 

STATE 1-5에 비문들이 다소 있습니다. 그전 아이디가 삭제되서 고칠 수는 없지만, 억지로 고치지도 않으려고요. 그냥 미숙함 그대로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젠 마지막 글을 쓸 때가 왔군요. 흐흐, 고레와, 전역 인사. 2009-01-12
15:03:17
  

 

일병 한성용 
  스피드... 스피드! 스피드!!!!!!! 2009-01-12
15:16:10
  

 

상병 이동열 
  극단적으로 말해 작금의 실태를 보자면 영목님의 머신즈 그린웨이가 연재 카테고리에 있는것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영영 이별은 아니기에 웃으며 보내드릴수 있겠지요. 그럼 북잇수다에서 뵙겠습니다(웃음) 2009-01-12
16:56:27
  

 

병장 정영목 
  하하, 정말로 극단적 표현이네요. 뭐 가급적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주 조금만 생각을 밝혀볼께요. 최근 논란에 대해서. 아주 조금만. 

뭐랄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재 게시물에 대한 비판은 댄스 음악을 싫어하는 락 매니아의 호통으로 들려요. 흐흐. 저도 굳이 따지면 락 매니아 쪽입니다. 비유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고. 

제가 분명히 반대하는 건, 책마을을 락 팬텀으로만 한정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틀린' 행위는 아닙니다만, 굳이 그러려면 <인문사회학책마을>이라는 길다란 간판을 달아야 할 것 같네요. 그렇다고 비판이 없어선 안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말이 길어지네요. 간단히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비판이 좀 더 상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부분이 어떻게 뭐 같다, 다음부턴 이렇게 하면 좋겠다, 만약 바꾸지 않으면 눈물 빼놓을 만큼 갈구겠다 등등. 칭찬과 비판은 섬세함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겁니다. '비평할 가치조차 없는 글'을 보고 있을 의무는 없습니다. 허나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책마을이 추구할만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댄스 음악 각각에 대한 상세한 비판.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씩 정착되리라 기대해 봅니다. 2009-01-12
17:27:47
  

 

병장 정병훈 
  흣..흣 

전역인사는 올리겠죠? 정막장을 잊지마세요.(하트) 2009-01-12
18:12:12
  

 

병장 이동석 
  허허, 동열님 표현이 그야말로 극단적이군요. 2009-01-12
21:07:02
 

 

상병 이동열 
  영목/ 영목님의 고견 감사합니다. 편협함으로 치다는 저에게 경종을 울려주시는군요- 

동석/ 흐흐, 맞습니다- 극단적입니다- 치닫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된 것은 사실 별로 이상한게 아닙니다. 나름 저는 정중하게 도발을 해보았지만 좌절을 맛보고 있지요- 그덕에 저는 조금 날카로운 상태입니다(웃음) 2009-01-13
07:59:31
  

 

병장 정병훈 
  동열/ 저는 그 날카로움이 부럽습니다. 2009-01-13
12:26:19
  

 

병장 양 현 
  이..이런 제기랄!! 2009-01-17
09:56:36
  

 

상병 이석현 
  끝인가요... 이모티콘으로라도 눈물을 표시하고싶습니다... 2009-01-26
21: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