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머신즈 그린웨이 STATE 2-6  
병장 정영목   2008-12-29 07:35:39, 조회: 98, 추천:1 

"그대들은 오만하고 심약하다......"

알로미오야차가 자신의 긴 돌기를 두 미스트 포인터에게 들이대고는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크룩이 눈꼬리를 올리며 그를 나무랐다.

"알로미오. 이건 너도 원하는 것이잖아. 미스트 포인터에게 그걸 보여줘야 한다면서."

"그랬지. 허나 난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 흑백색의 미스트 네이티브는 끝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은 채 그들에게 지속적인 위협을 가했다. 에란테가 크룩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자 크룩이 어깨를 으쓱하며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 당신들을 함정에 빠뜨린 게 아닙니다. 알로미오야차는 현재 과도한 언어 학습으로 인해 적정 스트레스 수치를 훌쩍 넘겨버린 상태입니다. 그대들을 만나기 위해 정규 프로그램의 10배나 되는 속도를 소화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러고 보니 미스트 네이티브는 언어 능력이 없었지.'

에란테는 아파치의 탐페레 협약을 상기하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물론 이는 정당한 반응이었다. 미스트 네이티브는 소금 달팽이로 인한 고양 효과를 소멸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재래식 수단을 보유하지 못한 미스트 포인터는 그들 앞에서 한낮 생쥐와 다를 바 없었다.

"......난 너희들이 밉다. 너희들의 붉은 빛이 우릴 모두 죽였어......"

이에 마틴이 발끈했다.

"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 그대들이 먼저 소금 달팽이 생산 시설을 공격하지 않았는가?"

"희멀건 젤리를 말하는 것 같군...... 오늘 너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바로 그 진실이다......"

알로미오야차가 크룩에게 뭔가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크룩이 스크린을 가동시켰고 잠시 후 우주 속에 홀로 내던져진 듯한, 쓸쓸해 보이는 행성 하나가 홀로그램 영상으로 투영되었다. 전형적인 암석 행성의 모습이었다.

"이곳은 미스트 행성에서 8광년 떨어진 'XELIO228F'라는 곳입니다. 보시다시피 아주 을씨년스럽죠. 직경 404,395km, 중력 5.02 정도로 추측됩니다. 그 외 여러 조건들이 생물권에서 아주 약간 벗어난 수준인데, 이런 수치보다 중요한 건 바로 이 사진입니다."

에란테는 숨을 죽였다.

"건축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미스트 네이티브의 건축물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8광년이나 떨어진 암석 행성에 미스트 네이티브의 흔적이 있다니 말이죠. 인류가 미스트 네이티브와 조우했을 때 가장 의아해 했던 것도 바로 이겁니다. 그들에겐 그들의 언어 능력과 어울리지 않은 수준 높은 지표가 많았어요. 그 중 건축 기술은 단연 일품. AI 도네호가와는 이를 이상하게 여겼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미스트 행성을 기점으로 수많은 정찰 위성을 날려 보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사진입니다."

"우리에겐 전설이 있다......"

알로미오야차가 크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힘들더라도 자기가 해보겠다는 투였다.

"그 기억은 말한다...... 그녀가 우리에게로 왔다, 우리는 그녀의 선물을 받았고, 우리도 그녀의 선물이 되었다, 그녀가 떠나자 그들도 떠났다, 우리는 남았다, 그는 말했다......"

더듬거리는데다 그 뜻마저 아리송했지만 에란테는 왠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았다라. 아마 살아남았다는 거겠지.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알로미오야차가 두려운 듯 벌벌 떨었다. 크룩이 그런 그를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세월 동안, 언어라는 수단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전설을 이어나갔습니다. 우선 미스트 네이티브에게 이런 무의식이 각인되었다는 것 자체부터가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 기억이 무척이나 심대한 사건이라는 암시이기도 하고, 기억이 유전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말이죠.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한 건......"

크룩이 대뜸 소금 달팽이를 알로미오야차에게 들이댔다. 순간 그의 눈에 핏기가 돌더니 자신의 거대한 돌기를 휘둘러 그것을 공격하려 했다. 크룩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그 돌기를 피해내고는 미리 준비한 그물 장치로 그를 제압했다.

"윽...... 크으......"

그는 몇 번 몸부림치더니 이내 포기한 듯 금세 온순하게 굴었다.

"피곤하다...... 난 그냥 쉴 테니 네가 설명을 계속해라......"

알로미오야차가 그물 속에서 잠을 청하듯이 몸을 웅크렸다. 크룩이 웃으며 그의 속박을 풀어주었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녀석입니다. 부족의 미래에 가장 관심이 많은 미스트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어요. 소금 달팽이만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별 문제 없이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왜 그토록 소금 달팽이를 죽이려고 하는 거죠?"

"글쎄요. 바로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밝혀내야 할 과제이기도 한데, 아마도 미스트 네이티브의 '쇠퇴'와 관련이 있을 성 싶군요. XELIO228F에서 발견된 그 건축물이 어떤 용도이든, 그건 미스트 네이티브가 한때 광속 여행을 할 정도로 뛰어난 존재였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뭐, 우리처럼 볼텍스를 열었을지도 모르지요. 여하튼 그들의 전설이 말하는 '그녀', '그', '선물'이라는 용어와 소금 달팽이가 무관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스트 네이티브들이 소금 달팽이에게 덤벼들 때는 마치 종교적 광신과도 같았어요."

좋은 표현이군, 크룩은 생각했다.

"소금 달팽이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이유라. 환경 파괴 문제일 수도 있겠군요. 우리 인류가 겪기도 한......"

에란테가 고개를 숙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발언이 낯간지러웠던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자신은 그 주범들의 군 장교가 아니었던가. 마틴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는지 콧잔등을 긁적일 뿐이었다.

"크룩 씨가 우리에게 원하는 건 뭐죠?"

'사실 에란테 당신입니다만.'

크룩은 자신의 표정을 숨기기 위해 슬며시 자세를 바꾸었다. 하지만 그러는 바람에 그만 알로미오야차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그가 미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자 크룩은 짐짓 당황했지만 다 그런 것 아니겠냐는 태도로 슬쩍 받아넘기고는 에란테의 말에 답했다.

"아파치의 로봇들이 저 행성에서 조사를 벌여야 하는데, 근래 들어 아파치 시스템의 전체 계산 능력이 상당히 저하되고 있습니다. 시스템에 가해지는 수많은 ID 공격 때문인데, 미스트 행성에 폭격을 가한 이후 오히려 더 심화됐어요. 물론 이는 마비 조치 때문에 수많은 특별 프록시들이 아직 온전한 상태이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그는 아직 모르고 있군.'

에란테는 UCS의 아메시스트 분열 계획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에드워드 중령의 상급 조직에서 그것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따르면 현재 아메시스트 특별 프록시들이 시스템 공격을 못 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조장한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에게 이 사실을 얘기해 줘야 할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일단 시간을 기다려보자. 그녀는 마틴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마틴 또한 그녀에게 동의의 눈빛을 보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41:17 

 

일병 이석재 
  '소금 달팽이'는...글쎄요, 미래세계에서 자원이 부족한 배경상에 거의 유일한 필수자원으로 나오는 듯 싶군요. 이거 설정책이 좀 필요할지도..쩝쩝. 그래도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2008-12-29
20:46:55
  

 

병장 정영목 
  흐흐. 소금 달팽이의 미래는 밝히기 좀 곤란해요. 더 큰 소재와도 연관되어 있어서... 아마 마음에 드실 겁니다. 

석재님의 말씀은 '위상 섬유'에 적용될 것 같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2008-12-30
07:50:47
  

 

일병 송기화 
  아악... 미스트네이티브의 모습이 상상이 안됩니다.... 
커다란 사마귀밖에 떠오르는 게 없어요. 말하는 사마귀... 
(그나저나 왜 사마귀인거지....) 
재밌게 읽었습니다. 역시 최고에요. 2008-12-31
13:38:01
  

 

병장 정영목 
  호오. 역시. 사마귀 기본 모양에 벌의 색감, (엄청) 길고 끝에 거대한 돌기가 있는 꼬리. 
현재 설정은 그렇습니다. 단 손은 갈고리 모양이 아닙니다. 스타의 히드라랑 너무 비슷해 질 것 같아서요. 

왠지 사마귀일 것 같다는 느낌이 있긴 있나봐요. 2009-01-02
10:06:41
  

 

병장 이동석 
  다시 읽고 있습니다. 감동의 콧물이 콸콸콸- 2009-01-03
21: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