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머신즈 그린웨이 STATE 2-5  
병장 정영목   2008-12-22 15:35:52, 조회: 114, 추천:1 

어제 올렸어야 하는데, 이래저래 늦었습니다. 하핫. 그럼 시작합니다.



∴

‘이곳인가?’

굳게 닫힌 문 주위로 아메시스트 보초 수십 명이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꽤 뛰어난 자들이겠지. 허나 인간은 인간.’

도네호가와는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는 당당히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보초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도네호가와가 자신의 나노 로봇을 이용해 그들의 정신을 옭아매었기 때문이다. 잠금 장치를 해체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들은 그저 앞만 응시할 뿐이었다.

해킹 작업이 완료되자 도네호가와는 문을 열고 유유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위상 공간 속으로 몇 발자국 가볍게 내딛더니 잠시 후 문이 잠겼다는 보고를 확인하고는 이내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아메시스트 정신패턴저장소(APPA: Amethysts' Psychical Pattern Archive). 이곳은 일종의 도서관으로서 위상 섬유 기술의 결정체와도 같은 곳이었다. 방직 방법과 상태 조합에 따라 다양한 성질을 띠는 위상 섬유는 오닉스 위상만 조심한다면 재료 혁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용도가 다양했는데, 이 방은 그 위상 섬유를 UR의 5배 크기만큼 엮어 10의 14억 제곱 바이트에 이르는 막대한 용량을 자아낼 수 있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지……. 뇌파 스캐닝 방식이 아직 비효율적이라 이런 무식한 저장 장치가 필요한 것이지만.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냐.’

도네호가와는 주위의 위상 섬유 몇 가닥을 추려내어 두세 번 꼰 다음 그것을 자신이 가져온 위상 섬유와 접지했다. 수초 후 미세한 흔들림과 함께 방안이 온통 백색으로 변했다.

‘숨겨둔 부분이 분명 있을 거야. 아파치 네트워크로는 접속할 수 없는 노드가.’

그녀는 보안 메커니즘을 조금씩 무력화 시키면서 위상 섬유의 배열을 수정해 나갔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업이었지만 도네호가와 자신이 고안한 시스템이었기에 뜻밖의 실수는 없었다. 마침내 물리적으로 은폐되어 있던 데이터 흐름이 감지되자,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의식이 있노라. 그 신비한 힘은 패턴을 가르고 운율에 따라 시공을 결정한다. 그대들이 이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구원받고자 한다면 소아를 버리고 대아에 따르라. 찬란한 심원의 꿈속에 그대들의 의식을 합일하여 결코 흔들리지 않을 영원한 안식을 찾으라……>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무슨 때 지난 고대 종교의 망령인가.

‘구원이라……. 인간들이 추구할 만한 주제긴 하지. 허나 아메시스트들은 이 정도 기본적인 문제는 이미 초월했을 줄 알았는데.’

도네호가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동안 이미 그녀의 정보 처리기는 이 데이터와 유의미하게 연결된 자의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일만 개에 이르는 결과값이 나왔다.

‘장 페릴린, 마리 소르본, 베르나 비스마이어……. 아메시스트 고위 인사들도 꽤 포함되어 있군.’

검색 목록에 아파치 AI는 없었다. 물론 이는 확률적 통계이므로 좀 더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정보 다발이 필요했다. 도네호가와는 데이터 전송량을 늘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정보 유닛에 집중했다. 그때, 그녀가 도리안 알고리듬(Dorian Algorithm: 헤르실리아가 고안한 암호화 이론 중의 하나)을 이용해 다음 작업을 계속하려는 찰나, 무심코 들려온 한 단어가 그녀의 뇌리를 강타했다.

<……하데스 님의 뜻에 따라 우리는……>

도네호가와의 모든 시냅스들이 강렬한 지적 자극에 의해 저마다 미묘한 탄성을 터뜨렸다.

<……에라로레는 물레방아의 축복, 영혼의 근원……다시 태어난 알루아마르……새로운 우주적 감수성이 도래하……>

예상보다 이르게, 데이터 접근이 조금씩 방해받기 시작했다. 아메시스트 프록시들이 뭔가를 감지한 것이리라. 잠시 후면 아파치 네트워크에서 지원 연산이 가세할 것이었기에 그녀는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별 수 없지. 백도어를 심어두는 수밖에.’

도네호가와는 모든 흔적을 소멸시키고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은 어느새 화려한 빛이 감도는 위상 공간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우선 내정관 베르나 비스마이어를 떠봐야겠군.’

그녀 특유의 쾌활함은 이미 심각함으로 변해있었다. 하데스의 영향력이 아메시스트 지도부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도네호가와는 APPA를 빠져나와 모든 비밀 작전 유닛을 해제한 다음, 공식 채널을 통해 베르나와의 연결을 시도했다. 잠시 후 게르만 계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이 홀로그램 영상으로 투영되었다.

“아, 도네호가와 님. 시드니에 와 계시다는 건 이미 보고 받았습니다.”

기분 탓인지, 미묘한 적대감이 어려 있었다.

“네, 크룩 씨의 배필 문제 때문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나저나 치료제 보급 상황은 어떻습니까?”

“검은주전자 님이 보내주신 샘플을 토대로 이미 대량 생산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이틀 후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치료제를 보급할 수 있을 겁니다.”

보급 과정도 감시해야겠군, 도네호가와는 생각했다.

“좋습니다. 아직도 폭발을 일으키는 인간들이 있다고 하니 서둘러주세요. 그건 그렇고, 최근 아파치 시스템에 대한 ID 공격이 빈번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죠? 미스트 행성 표면은 이미 초토화 되었는데도 말이에요.”

“아직 UCS는 지하에 방대한 거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이 아닐까요?”

‘자신의 의견이 궁색하다는 것쯤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겠지.’

도네호가와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글쎄요. 미스트 행성 지하에서 지구의 아파치 시스템을 향해, 그것도 B급 이상의 내부 유닛에 항시적인 공격을 가한다? UCS가 그만큼 강력한 통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베르나는 짐짓 당황했지만, 곧 냉정을 되찾고 담담히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미스트 포인터의 능력은 하루가 다르게 증강되고 있습니다. 내일 당장 AMIPM(AntiMatter InterPlanetary Missile: 행성 간 반물질 미사일)이 등장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입니다.”

“호오. AMIPM이라.”

베르나는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 사실 얼떨결에 해본 말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반박이 꽤 마음에 들었다. 물론 반물질 기술이 완성된다 한들 UCS가 AMIPM을 지구에 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들이 원하는 바닷물, 그리고 지구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으니까. 이는 NIPM(Nuclear InterPlanetary Missile: 행성 간 핵 미사일)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와 같은 것이었다.

허나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네호가와, 베르나 모두 알고 있었다.

‘인류는 소금 달팽이 생산에 해가 되는 행동은 감히 하지 못해. 그렇지만 하데스라면 얘기가 다르지. 그 존재는 AMIPM이든 NIPM이든 필요한 순간에 그것을 사용할 것이야. 뭐, 두 경우 모두 아파치 청사진에 있는 내용이니 조급해 할 필요는 없어. 대비책도 있고. 우선 이들부터 해결하자.’

“아메시스트 프록시 센터에 제가 간다고 전해주세요.”

살며시 고개를 들려던 베르나가 황급히 눈빛을 감추며 말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뵙지요.”

‘바쁘시겠지. 철저히 준비하라구.’

도네호가와는 베르나와의 연결을 종료하고는 자신의 다형상 생성기를 이용해 올빼미 형태로 날아올랐다. 때마침 2차 검색 결과가 나왔다. 존 크룩, 데이터 알파와의 연관성 8.492829%. 그래, 그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단 말이지. 그녀는 살며시 웃음 지으며 그간의 행적을 샤먼에게 보고했다. 이로써 아메시스트의 반란은 막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41:05 

 

병장 이동석 
  앗, 오랜만이어요. 

영목님 의견을 무시한건 아니고, 연재-와 칼럼-을 묶는건 작품-이랄수 있는 모든 말머리를 세분화 하는걸로 일단 대체하고, 칼럼, 필진도 얼개를 쓰고 책임감 있는 집필을 이어나갈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개방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랍니다. 뭐 일단 그것과 책마을 촌지-를 엮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직은 바쁘기도 하고 정리도 안되는군요. 조만간에 공지올려서 공론화 시키겠습니다. 

는건 그냥 여담이고, 선리플 후감상-입니다. 이제 봐야지. 히히. 2008-12-22
15:56:55
 

 

병장 정영목 
  아뇨, 따로 하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연재-칼럼 게시판이라고 하면 사실 필진 선정의 의미가 좀 애매한 감이 있었거든요. 2008-12-22
16:03:59
  

 

병장 양 현 
  으아악! 

일단, 일단 나 전방향해 5초간 큰소리좀.... 2008-12-22
17:21:22
  

 

병장 김태형 
  도리안.. 이라고 하니까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생각나는군요.. 
묘하게 읽지도 않은 책을 마치 읽은 것 마냥 내용이 생각나는건 누군가가 책 내용을 다 까발렸던 고딩때의 추억일까요.. 


영목님의 그린웨이는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아핫, 감사해요! 2008-12-23
01:04:38
  

 

병장 이동석 
  아메시스트 정신패턴저장소(APPA: Amethysts' Psychical Pattern Archive). 이곳은 일종의 도서관으로서 위상 섬유 기술의 결정체와도 같은 곳이었다. 방직 방법과 상태 조합에 따라 다양한 성질을 띠는 위상 섬유는 오닉스 위상만 조심한다면 재료 혁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용도가 다양했는데, 이 방은 그 위상 섬유를 UR의 5배 크기만큼 엮어 10의 14억 제곱 바이트에 이르는 막대한 용량을 자아낼 수 있었다. 



오오, 이걸 감당하려면 지금 인간의 뇌-로는 부족하겠죠? 그런데 그냥 질문이에요. 오닉스 위상만 조심한다면-이라고 했는데, 오닉스 위상은 뭔가요? 2008-12-23
13:17:46
 

 

병장 이동석 
  오닉스(onyx) 
ꃃ〖광업〗 =줄마노 

onyx [ɑ́niks, óun- / ɔ́n-] n. 
U 〖광물〗 얼룩마노(瑪瑙); 〖해부학〗 손[발]톱. 

onyx [ɑ́niks, óun- / ɔ́n-] a. 
칠흑의, 암흑의. 

사전 뒤져보니 더 모를소리만... 2008-12-23
13:18:37
 

 

병장 정영목 
  인력이 매우 강한 위상 섬유를 일컫습니다. 이음매 용도로 자주 쓰이곤 하는데, 너무 고밀도로 모이면 일종의 블랙홀 효과를 띠게 됩니다. 물론 현 시점에서 성공한 경우는 없고, 후반부에 큰 사고를 일으키게 됩니다. 

아직 위상 섬유에 대한 설정은 허술한 상태입니다. 대괘와 소괘의 아이디어를 빌려올 생각인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2008-12-23
13:40:29
  

 

병장 이동석 
  오옷, 감사합니다. 제가 요새 우원사고에 얽메어있는지, 사소한것에 계속 천착-을 합니다. 왜 이러지, 2008-12-23
13:55:10
 

 

병장 정영목 
  흐흐. 아무래도 저녁드실때가 온 것 같네요. 질문이야 제가 오히려 고마운 일이죠. 2008-12-23
1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