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머신즈 그린웨이 STATE 2-4  
병장 정영목   2008-11-24 13:54:35, 조회: 175, 추천:3 

앞으로 3주 간의 분량은 쉬겠습니다. 곧 일주일 간의 슈가가 있기도 하고 당내 독서왕 선발대회가 있어서 독서후기를 3편 정도 써볼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12월 18일 이후에나 다음 연재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나저나 북잇수다에 bookin.springnote.com이란 링크를 걸어뒀습니다. 스프링노트라고, 오픈마루라는 한국업체가 서비스하는 위키호스팅인데 상당히 직관적입니다. 전 사실 위키닷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편이성을 생각한다면 스프링노트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내글내생각'이 '우리글우리생각'으로 변하는 것이 가장 특징적입니다. 공동 작업 노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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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은신처도 당했군.”

에란테가 쓴 목소리를 내뱉었다. 단순히 운이 없다는 차원을 넘어 모든 게 끝났다는 투였다.

“임시 은신처가 발각되었다는 건, 내부 배신자가 있다는 거겠지요. 비밀 루트도 위험합니다.”

마틴도 지친 기색이었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채 은신처까지 왔는데 그곳마저 당했음을 알게 됐으니 낙심할 만도 했다.

“이제 어떡합니까?”

에란테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글쎄.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으면 대책 좀 세워 놓을 걸 그랬나? 역시 미스트 행성으로  탈출해야겠지?”

마틴은 고개는 끄덕였으나 왠지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언젠가는 그래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군의 볼텍스는 이미 모두 제압되었고 미스트 행성도 초토화 수준이니까요. 아파치의 것은 접근도 불가능할뿐더러 위치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총을 겨누는 소리가 들렸다. 에란테와 마틴의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거기, 손들고 뒤로 돌도록.”

마틴이 순간 제압의 뜻을 내비치자 에란테가 미묘한 신호 파장으로 이를 제지했다. 그들은 천천히 상대의 요구대로 행동했다.

“이거 누구신가, 에란테 대위 아닌가?”

익숙한 얼굴이 아파치 군 사이에서 나타났다. 아스끼오 말리 중위였다. 그가 임시 은신처를 밀고했음을 에란테와 마틴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순간 에란테의 마음속에서 배신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그것을 눈치 챈 마틴이 그녀를 제지하기 위해 한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아파치 전투 로봇들이 그에게 총구를 집중시켰다.

“잠깐!”

말리가 소리쳤다.

“저들은 이용 가치가 높은 이들이오. 생포해야 합니다.”

“우리가 쉽게 입을 열 것 같나?”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말리가 재빠른 손놀림으로 마비 총을 발사했다. 허나 에란테는 가볍게 그 탄환을 피한 후 그의 정신 파동을 일시적으로 붕괴시켰다. 그는 잠들 듯 맥없이 쓰러졌다. 그녀는 재빠른 동작으로 자세를 돌려 가까이 있는 전투 로봇에게 전자기 공격을 가했다. 허나 예상치 못한 중화막이 그녀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

“처음 뵙겠습니다. 에란테 씨.”

“……. 아메시스트로군요.”

“존 크룩이라고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아메시스트의 일원이죠.”

크룩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에란테도 조심스레 화답했다. 공격 의사는 없는 것 같았다.

“용건은?”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걸 본 후, 항복하시든 복귀하시든 결정하셨으면 합니다.”

크룩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적이 뜬금없이 이런 제안을 하는 게 부자연스러운 일이란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생명은 미지의 것에 불안함을 느끼지요. 그것이 진화적으로 도움이 된 경우도 있고…….”

진화라니……. 에란테가 그의 말을 되씹었다.

“우선 이 도시를 나갑시다. 우리 군이 복구 작업을 해야 하니까요.”

이에 마틴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자 에란테가 그를 흘겨보고는 크룩에게 항변했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습니까?”

크룩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질문이군요. 인간은 너무도 간단하게 자신의 선택권을 망각해 버리곤 하죠.”

그때 수송 차량이 도착했다.

“질문은 좋지만, 시기가 좋지 않군요. 일단 타시지요. 가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에란테와 마틴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다 동의한다는 눈빛이었다.

“손해 볼 거 없잖아? 어차피 이제 갈 데도 없고.”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둘은 또 한 번 웃었다. 아까와는 미묘하게 다른 웃음이었다.

그들이 수송 차량으로 향하자 전투 로봇들이 에스코트를 시작했다. 감시를 위한 이들이리라. 물론 그들이 아니더라도 이 자리를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에란테, 마틴 둘 모두, 크룩의 강력한 힘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허나 이런 미묘한 분위기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이완되었다. 크룩이 이런저런 가벼운 주제로 이야기를 돋우자 마틴도 어느새 크룩과 사적인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밀하게 행동했다. 적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 마틴도 그렇지만 저 크룩이란 사람도 꽉 막힌 이는 아닌 듯 했다. 아니, 그의 내면적 힘이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거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었다. 일정 수준의 소금 달팽이를 섭취하면서 그것에 중독되지 않는다는 건 실로 상당한 수양을 요하는 일이니까.

에란테는 무심결에 창밖을 바라봤다. 웬일인지 주위의 풍경이 아주 선명했다. 그곳엔 포격 당한 건물과 파괴된 로봇들, 동료들, 그리고 유난히도 푸른 하늘이 보였다. 누군가는 저 푸른 하늘을 보면서 희망을 꿈꿨겠지……라고 에란테는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마음도 그와 같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달리기를 두어 시간 후, 그들은 어느 작은 집에 도착했다. 크룩이 전투 로봇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자 그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를 떴다. 가볍게 손짓하는 그들의 인사가 마틴의 뇌리에 남았다.

“이곳은……?”

에란테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제 집입니다. 유럽 지방에 올 때마다 지내는 곳인데, 손수 제작하느라 고생 좀 했었지요. 자……. 그건 그렇고, 우선 이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크룩이 다소 소박해 보이는 작은 상자를 열었다. 새하얀 바탕에 보랏빛 기운이 감도는 물체가 보였다. 소금 달팽이였다.

“이미 아시겠지만, 아파치산 소금 달팽이는 모두 하나하나 정성드레 키운 녀석들입니다. 천천히 음미해주시면 감사하겠군요.”

에란테가 크룩을 응시하며 말했다.

“미스트 포인터에게 소금 달팽이란 곧 전투력입니다. 괜찮겠습니까?”

크룩이 웃으며 다시금 권유했다.

“이건 선물입니다. 금단 현상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아는 이들만의 대화죠.”

사실 미스트 포인터는 소금 달팽이 한두 마리로는 적정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는 미스트 포인터와 아메시스트의 차이이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미스트 포인터가 아메시스트보다 강한 건 사실이지만 단위당 방출 가능한 힘은 아메시스트가 압도적이었다. 소금 달팽이의 에너지 효율성은 아무래도 아파치 쪽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에란테와 마틴은 그의 말대로 소금 달팽이를 천천히 음미했다. 허나 그렇게 먹으니 뭔가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살아있는 것을 생으로 먹는 느낌이란. 소금 달팽이는 생물학적으로 단순한 개체지만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만족감보다는 불쾌함이 더 컸다. 하지만 이는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먹은 소금 달팽이가 대체 몇 마리인지!

“다르군요. 느낌이.”

이에 크룩이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그 느낌이 중요합니다. 감정 이입. 아메시스트 훈련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그 수단이 없으면 우리네 목표도 이루기 어렵지요.”

크룩이 그들을 집안으로 인도하고는 소파에 자리를 권하며 말을 이었다.

“UCS는 소금 달팽이를 농축액으로 만들어 섭취하지 않습니까? 허나 그런 방법으로는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습니다. 물질을 들이키는 것과 생명을 취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니까요.”

에란테가 고개를 끄덕이며 집안을 둘러봤다. 소박하지만 그렇다고 투박하진 않은 아파치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집이었다. 나무와 위상 섬유의 조합이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듯 했다.

“알로미오야차. 거기 숨어있지 말고 나와.”

크룩이 건넛방 쪽으로 손짓했다. 잠시 후, 거대한 곤충 한 마리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그들 앞에 나타났다. 마틴은 깜짝 놀라 서둘러 전투 자세를 취했지만 크룩이 괜찮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미스트 네이티브. 인류에 의해 멸족당할 뻔한 미스트 행성의 지적 생물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두 미스트 포인터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40:41 

 

일병 송기화 
  크허헝(음?) 
도대체 이런 치밀한 글은 얼마나 생각을 해야 쓸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이런 타이밍에 -다음에 계속-이라니요. 

3주를 어떻게 기다리죠? 2008-11-24
14:03:26
  

 

병장 정영목 
  그동안 팬픽이나 팬아트를 그리시면 됩니다. (하하) 2008-11-24
14:54:24
  

 

병장 이동석 
  아, 제가 팬픽을 써놓겠습니다. 그리고 스프링 노트 써보니 확실히 직관적-이라는 표현이 적확한듯 합니다. 허허. 2008-11-24
15:46:59
 

 

병장 박윤수 
  정말 이 글 보면서 생각하는거지만, 
이 글 그대로 출판하셔도 
이제껏 명작이라 꼽히던 판타지들은 가볍게 넘어서실거라 생각해요. 
아직 완결을 보지못해 마무리 없는 평가긴 합니다마는, 
하얀늑대들..이상의 구성력... 우와..대단하세요 정말. 2008-11-24
18:41:43
  

 

병장 정병훈 
  전 시간내서 한번에 쭉 읽어보려고 아껴 두고 있답니다. 어느정도 모이면 프린트 해서 읽어봐야지- 히히히 

추신. 
영목님. 전 이미 영목님의 싸이를 순회 했답니다. 흐흐흐 남자더군요... 
휴- 
언제 등산이나 한번 갑시다. 2008-11-24
20:07:16
  

 

병장 정영목 
  이곳에서는 총 64부 중 2부까지 밖에 안나옵니다. 그 다음 이야기 또한 차후 5년 이내에 공개될지 아니될지도 의문입니다. 그러니 그냥 현재를 즐기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하핫.. 

그리고 제 42는 전체 공개라는 극단적 조치를 통해 이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했지만, 현실은 방문자 수 10을 못넘기는 비운의 홈피입니다. 해서 월단위로 올라오는 댓글에 일희일비하고 있습니다. 

등산. 좋죠. 제 사진 중에 있던 <꿈과 희망의 쉼터>는 아차산입니다. 거기서 밤을 새본 적이 있는데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책마을 사람들과의 정모도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2008-11-24
20:26:07
  

 

병장 이동석 
  좋지요. 술도 좋지만, 뭐 이를테면 에베레스트 서바이벌 정모나 갈라파고스 섬 선착순 정모같은것도 재밌을듯합니다. 와우에 참여하는 인원들은 현피정모도 한번씩 하시고? (하하) 

전 일단 책마을 북스-같은 야구단을 창설하는것도 재미있을듯하고, 영목님 출판 사인회 정모- 이런것도 기대되는군요. 흐흐. 

그리고 무엇보다 시즌2에서는 어느정도 성비를 유지하고 싶은데(물론 자연스러운 한도내에서), 워낙에 굶주린분들이 많아서 그런 커뮤니티마다 늘 있는 그렇고 그런 분란과 치정사가 난리를 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그러겠느냐고요? 제가 그럴것 같아요. 흑. 2008-11-24
20:36:12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영목님 스프링 노트 북킨-인가요 북즐-인가요. 그게 그거-일까요? 크크. 2008-11-24
20:38:09
 

 

병장 정병훈 
  제가 엄청난 분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마져 드는군요. 아직 2부라니, 뭐 첫 글에서 포부를 밝혔듯, 엄청난 글이 되리라는건 느꼈습니다. 흐흐흐 한권 사드리죠. 
책수집이 취미니까요- 싸인은 무료죠? 

동석님의 댓글에 한번 더 풉- 하고 갑니다. 센스쟁이. 2008-11-24
20:40:34
  

 

병장 정병훈 
  한가지 슬픈현실은, 오늘 올라온 글중에 꽤 시간이 됬는데도, 조회수가 41밖에 안되는군요. 위에 가입인사와 비슷한 수준의 조회수입니다. 
말이되나요? 말도안돼. 정말. 

할말이 없습니다. 왠지 이런 분위기 2008-11-24
20:42:02
  

 

병장 김민규 
  조회수가 글을 나타내주는 그 어떤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알면서도, 서글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그런 의미에서 추천이라도 한 방 때리고 갑니다. 쩝. 

오랜 시간동안 공들여 깍았던 글이 묻히는 느낌은 정말. 2008-11-24
20:50:39
  

 

병장 이동석 
  처음부터 지켜보지 않았다면, 쫓아오는게 힘든 연재글인걸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까지 조회수가 떨어진건 요새 조회수가 전체적으로 급감한 분위기의 영향인것 같습니다. 

요새는 글을 읽는 사람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도 들어요. 댓글수도 급격히 줄었고요. 2008-11-24
21:01:03
 

 

병장 이동석 
  그러나 이 요새-운운이 엄밀한 현실인식이라기 보다 어느새 책마을 꼰대가 되버린 저의 요즘것들-운운이 아닌가하여 조금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방안을 모색해야할텐데요. 2008-11-24
21:02:52
 

 

병장 정병훈 
  그래요. 연재글이니까, 그럴수도 있겠죠. 라고 넘겨 버리면 되는군요. 흐흐흐 
그래도 아쉬운걸 아쉽다 말 못하고, 여자친구 없는걸 없다 말 못하면.(응?)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 말 못해 속병 나서 죽고 싶진 않군요. 2008-11-25
08:02:07
  

 

일병 주상환 
  언제봐도 재미있는 머신즈 그린웨이(웃음) 

역시 게임화 시키고 싶은 욕심이 마구마구 솟아오르는군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08-11-25
09: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