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머신즈 그린웨이 STATE 2-2  
병장 정영목   2008-11-11 16:01:17, 조회: 130, 추천:0 

근래에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글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다 읽고 댓글을 남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땀)

뭐 그렇습니다. 전 이래저래 뒤숭숭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조금 늦었습니다. 다음에도 조금 늦을 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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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44년 6월. 아테네.

“아파치 군이 몰려온다!”

정찰병의 다급한 목소리가 시내를 가로질렀다.

“도망칠 이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사뭇 진지한 목소리가 어두운 건물 안을 휘감았다. 그러자 그 음성만큼 비장한 수십 개의 눈동자가 한 여성에게로 집중되었다.

“우리의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전, 우리가 이 아테네에 언젠간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저들의 압도적인 힘에 맞서 우리의 옛 땅에 우리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허나 아쉽게도, 아직은 여기까지인 듯합니다. 어쩔 수 있나요? 이젠 우리의 마지막 역할을 다할 때입니다.”

에란테가 ‘우리’라는 단어를 여섯 번이나 사용해가며 부대원들을 독려했다. 미묘한 침묵이 방안의 모든 이들을 짓눌렀다.

UCS 군의 알렉시아 에란테 대위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부하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다들 초췌한 몰골이었다. 일반 보병들은 팔다리 한쪽을 잃은 경우가 태반이었고, 미스트 포인터를 포함한 대부분의 특수 부대원들도 각종 전투 물자를 거의 소모해 버린 상태였다. 에란테 자신의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잘못됐기에…… 하긴, 이 전쟁은 애초에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었어. 잠시나마 지중해 연안을 점령한 것만 해도 대단한 선전이지. 대체 왜 UCS 이사회는 아파치와의 전면전을 결정한 걸까?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고 결국 얻은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에란테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라면 다른 이가 어찌되든 개의치 않는 게 바로 우리네 문명이지……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너무 심해.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때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진동했다. 아파치 군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아군의 응사는 없었다. 플라즈마 포는 고사하고 개틀링포 탄약도 변변찮은 실정이었다. 미스트 포인터들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중화막을 최대로 발생시켰다.

“이번 전투의 목표는 승리가 아닙니다! 아군이 자의식 붕괴기를 지하로 빼돌릴 때까지 최대한 버티는 것입니다!”

에란테가 한 번이라도 더 전투 목표를 전달하려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곧 지독한 포격 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강력한 방해 전파로 인해 무선 통신은 이미 무력화 된지 오래였다. 유선 통신이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도 에란테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다들 아는 듯했다. 어쨌거나 마지막까지 남기로 한 이들이 아닌가. 나름의 팀워크가 아직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겨운 포격이 한동안 계속되었고 모두들 숨죽여 견뎌 내고만 있었다. 이윽고 아파치 군 돌격 부대가 시내로 진입하자 무차별 포격이 잠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곧 치열한 시가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UCS 군은 방어전의 이점을 활용하여 최대한 저항하고자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조금씩 시내 안쪽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아파치 군이 조금 이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승리한 정복자인 양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은폐도 하는 듯 마는 듯 했다. 그냥 내던져 보는 부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아파치 군은 점차 시내 안쪽으로 진격했고, 그럴수록 그들의 행동도 도를 더해 갔다. 시가전이 시작된 지 30여분 후, 그들이 광장에 다다른 순간부터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마치 최종 승리를 쟁취했다는 듯, 이곳저곳에서 뛰쳐나오더니 이내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마침내 에란테가 신호탄을 올렸다.

“발사!”

에란테의 명령이 전달되자 광장 주위의 온갖 건물에서 총탄이 발포되기 시작했다. 미스트 포인터의 초능력 공격도 이어졌다. 이에 방금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하던 아파치 군 돌격 부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더기로 픽픽 쓰러져 나갔다. 다른 이를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이들도 있었고, 그저 주저앉아 멍하게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른바 쏘면 맞는다는 바로 그 상황이었다. 이렇게 한참의 아비규환이 진행된 후에야 한둘씩 탈출에 성공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매복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허나 탄약이 넉넉지 않았다. 적에게 넘어갈지도 모를 많은 양의 무기를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병참선이 끊긴 탓이 더 컸다. 만약 저들이 철수하기 전에 탄약이 다 떨어진다면 반격의 빌미를 잡힐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모두의 마음은 점차 조급해 져 갔다. 그러나 아파치 군은 이미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공격의 고삐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들은 반격다운 반격 한 번 안한 채, 그저 도망치기에만 바빴다.

그들이 거의 다 철수했을 즈음엔, UCS 군의 대부분은 탄약이 없어서 도시 바깥쪽을 그저 멀뚱히 지켜보고만 있는 상황이었다. 무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적을 격퇴했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게 어쩔 수 없는 것인지 한 병사가 개틀링포를 바닥에 내던지며 분개했다.

“제길! 탄약만 좀 더 있었어도……”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볼멘소리가 줄을 이었다. 허나 에란테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총성으로 시끄럽던 시내는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허나 어디까지나 짧은 휴식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부대원들은 실로 소중한 때를 누리고 있다는 듯 각자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했다. 벽에 기대어 노래를 흥얼거리는 자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탄약을 장전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있기를 수십 분 후, 기다림이 조금 지겨워 지려는 찰나, 무차별 포격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실로 엄청난 규모의 포격이었다. 방금 전 일을 보복이라도 하듯이.

앞 건물에 플라즈마 포탄이 작렬했다. 모두들 황급히 자세를 낮췄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상황을 확인했을 땐 그곳엔 이미 인기척이 사라져 있었다. 에란테는 애써 눈길을 돌렸다. 생각할 틈 같은 건 없었다. 중화막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폴 마틴 중위가 그녀를 제지했다.

“에란테 대위님. 여긴 이제 위험합니다. 즉시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합니다.”

허나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맹렬한 충격이 그들을 강타했다. 둘은 튕겨 나가 반대편 벽에 부딪혔다. 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잠시 후 에란테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른팔 너머에 마틴 중위가 쓰러져 있었고 건물 주위로 온갖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같이 있었던 다른 이들은 건물 바깥으로 튕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운도 꽤 끈질기군요……”

마틴 또한 정신을 차렸는지 힘겹게 일어나려 했다. 치명상을 입진 않은 것 같았다. 에란테가 그를 부축하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오늘 밤까진 살 수 있을 것이야. 그 정돈 할 수 있어.”

누가 먼저 웃었는지는 모르지만, 둘은 유쾌하게 이 상황을 받아넘겼다. 그동안 수많은 사선을 넘나든 그들이었다. 죽음이 새삼스레 두렵진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은 무언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웃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죽음이 바로 목 앞에 있음을 실감하는 것일까?

둘은 서로를 부축해 가며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왔고, 이내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조급한 마음이 일었는지 마틴이 절룩거리는 발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주위는 아직 포탄 세례를 받고 있었다.

마틴이 길 앞쪽에서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때 문득 찢어진 UCS의 깃발이 에란테의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그녀의 현실 감각을 급작스레 무디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게 마치 꿈 같이 느껴졌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지금껏 싸워 왔는지…… 만약 지금 여기서 죽는다면 과연 스스로의 선택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인지……'

오로지 제 기능을 발휘하는 건 그녀의 다리뿐이었다. 잠시 후 그녀가 힘겹게 정신을 차려 주위를 직시했을 땐 인류의 옛 도시가 온통 잿빛으로 뒤덮인 채 붉은 피를 발하고 있었다.

지금 이 모든 광경을 에란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상황에도 소금 달팽이를 갈망하는 자기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39:41 

 

병장 고동기 
  저번에 잠깐 명목님 블로그에 갔다 왔습니다. 
머신즈 그린웨이 카테고리가 유난히 눈에 띄더라고요. 
있었던 것 맞죠? 2008-11-11
16:08:29
  

 

병장 정영목 
  네 있습니다. 단 아직 비밀글로 되어있습니다. 2008-11-11
16:17:21
  

 

상병 양순호 
  이히힛. 아직 나오고 있군요. 소금 달팽이로서부터 나온 이야기말이죠. 2008-11-11
16:21:05
  

 

병장 이동석 
  우웃 2008-11-18
15:4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