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머신즈 그린웨이 STATE 2-1  
병장 정영목   2008-11-04 13:09:53, 조회: 140, 추천:0 

조금 늦었습니다. 제대 때까지 12주 정도가 남았는데 (염장아님 흐..), 휴가 빼고 머 빼고 하면 2-8까지 딱 완성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여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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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만약 생명이 이 우주에 해가 된다면 그것을 제거해야 하는가, 아니면 우주생태학적인 연결 고리를 발견할 때까지 그것을 유예해야 하는가? 제거한다면 누가 제거할 수 있으며, 유예한다면 그 지침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생명체에게 있어 이 우주는 완전한 폐쇄계가 아니다. 그들이 느끼는 우주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열역학 제2법칙의 저주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린’ 입장일 뿐이다. 이 우주라는 작은 모태에서 충분히 자란 생명체는 그곳을 나올 준비를 하게 될 때 스스로의 한계를 조심스레 탐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곧 심각한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우주를 초월하는 것도 죽음이요, 우주에 머무는 것도 죽음이라는 깨달음이다. 이때 생명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죽음은 무엇이고, 저 죽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진정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느냐에 따라 해당 생명권의 우주생태학적 가치가 결정되곤 한다.

-플로우 인스파이어러, <우주생태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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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자여, 잘 오셨소.”

도네호가와가 은은한 기운이 감도는 방으로 날아들자 심원한 눈빛을 지닌 한 남자가 예우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아메시스트의 젊은 지도자 존 크룩이었다.

“저도 방금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습니다. 물론 보내신 전문은 이미 읽었습니다만......”

크룩이 말끝을 흐렸다. 해명을 요구함과 동시에 손수 찾아온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어투였다.

“그 전문 그대로에요. 우리 아파치는 스스로의 부족함 때문에 소중한 동료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안기게 된 것을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해요.”

도네호가와가 고개를 숙였다. 크룩이 화답한 뒤, 농담을 건넸다.

“서로 나눌 이야기가 더 있다면 인간형으로 변하시는 게 어떤지요? 제가 기억하기엔 도네호가와 씨의 미적 감각이 상당히 뛰어난 것 같았습니다만.”

‘연구의 결과죠, 뭐......’

도네호가와가 속으로 대답하고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형상은 어느새 인간으로 변해있었다.

“굳이 해명 때문에 찾아오신 건 아닌 걸로 압니다.”

크룩이 넌지시 말문을 띄웠다. 그가 뭔가를 요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도네호가와가 크룩의 의도를 눈치 채고는 싱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지금 이 상황에서 크룩 씨를 직접 찾아왔다면 아무래도 ‘그것’ 때문이겠지요.”

인간 진화 프로젝트를 언급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는 크룩의 짝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크룩은 시치미를 떼며 사무적으로 대응했다.

“소금 달팽이 섭취가 못내 아쉬우신 모양이군요.”

“네, 솔직히 그래요. 하지만 크룩 씨를 언제까지 홀아비로 둘 수도 없는 일이라서요.”

3년 전, 정신력 공격에 대한 아파치 시스템의 취약점이 발견되었을 때, 아메시스트 커뮤니티에서는 SP(Special Proxy: 특별 대리자)를 조직하는 방안을 제시했었다. 문제는 이 계획이 소금 달팽이의 사용을 전제로 한다는 데 있었다. 당연히 모든 아파치 AI들, 특히 도네호가와가 이를 격렬히 반대했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며 거의 무산 직전까지 밀어붙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때 당시로선 딱히 다른 대안이 없었다. 긴 논란 끝에, 그들은 소금 달팽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때까지 한시적인 사용을 허용하기로 합의하고, 엄격한 감시 하에 소금 달팽이 사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덧붙이건대, 이는 사실 상황이 꽤 다급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후로 아파치는 인간 그 자체를 진화시키기로 결론 내리고는 이를 위해 아메시스트에게 유전자적 지원을 요청하게 되는데, 말인즉, 유전적으로 선별된 이는 아파치가 지정하는 짝과 혼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유전자들을 적절히 배합하고, 진화 과정을 촉진시키고자 했다. 물론 유전자 조작으로 하면 될 일을 굳이 그런 번거로운 방법으로 해야 하냐는 의문이 자연스레 제기되었지만 이에 대한 도네호가와의 답변은 한결 같았다.

“진화된 최초의 인류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다면 그건 재앙의 씨앗이 될 뿐입니다.”

묘한 설득력을 지닌 주장이었다. 물론 도네호가와의 계획 또한 나름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결과 값을 미리 예측한 것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는 이미 조작이라고 볼 수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인류 그 자체에 대한 아파치의 세심한 관심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상대는 누구입니까?”

크룩이 사뭇 기대 어린 어투로 물었다. 물론 겉으론 담담하고자 애쓰는 듯 했다.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본의 아니게 임무가 되어버렸거든요.”

도네호가와가 홀로그램 영상을 투시했다. 그곳엔 군복을 입은 한 붉은 머리 여성이 초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크룩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 UCS군?”

“그녀의 이름은 알렉시아 에란테. 보시다시피 미스트 포인터입니다. 현재 아테네에서 UCS군을 지휘하고 있지요. 미스트 행성이 초토화 되고 퇴로도 막힌지라 여러모로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을 훌륭하게 괴롭히고 있답니다. 뭐, 물론 그건 시간문제겠지만요.”

“저 여성의 유전자에 뭔가 특이한 사항이라도 있습니까?”

“그럼요. 하지만 결과는 어디까지나 확률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성장하는 생명체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개입되기 마련이거든요.”

도네호가와가 수초 간격으로 영상을 전환하며 전문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일반 시스템 이론, 막시밀리안 구조, 위상정신 이론 등등...... 그야말로 현란한 강의였다. 처음 1분여 간, 크룩은 도네호가와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포기하고, 대신 에란테라는 여성의 홀로그램 영상을 응시하며 그녀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강렬한 태양의 음악과도 같아요. 크룩. 당신의 역할은 그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도네호가와가 은근슬쩍 설명을 마치며 크룩의 의중을 살폈다. 그는 이미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

“더 이상 지체했다간 당신의 짝이 영원히 떠나갈지도 모릅니다. 우리 군이 아테네를 포위 공격하고 있으니까요. 하긴 제가 전면적인 공격은 중단하라고 일러뒀으니 별 탈은 없겠죠.”

“지금 즉시 아테네로 가겠소.”

“네, 좋군요. 수송기는 이미 대기 중입니다. 언제든지 출발하세요. 다른 이들에겐 제가 일러두겠습니다.”

“그럼 뒷수습을 부탁합니다.”

이에 도네호가와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크룩은 뭔가 모를 머쓱함을 느끼며 방문을 나섰다. 잠시 후 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홀로 남은 도네호가와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을 흠뻑 즐기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자, 하데스. 네가 보내주는 선물은 잘 받겠어. 하지만 네 뜻대로 되진 않을게야. 기대해도 좋아.’

분명 저 에란테란 여성에게 뭔가 함정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도네호가와는 하데스의 의중을 대략적으로 예상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그것을 역이용하고자 했다. 아파치를 지능적 진화 과정의 역동성 속에서 생존시키는 것, 바로 그것이 그녀의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도네호가와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복잡한 계산식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아메시스트 내부의 기묘한 움직임부터 고려해야 했다. 그 과정 중에, 문득 그녀는 자신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계산식 또한 그 확률이 그리 낮지 않음을 점차 드러내 가고 있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38:05 

 

병장 이동석 
  우왓- 그래도 앞으로 몇편은 더 볼수 있다는 희망찬 소리에 괜히 뿌듯-해지는군요. 

사바세계에서도 보여주실꺼지요? 흐흐- 2008-11-04
13:30:30
 

 

병장 전승원 
  왔구나! 기대하던 작품이 올라와서 잘 봤습니다. 2008-11-04
13:43:01
  

 

병장 정영목 
  사바 세계에선 당분간 공개는 안할 생각입니다. 한 5년 정도는요. 대략 32부, 절반이 완성되는 시점인데, 지금 여기서 공개되는 내용이 그땐 어떤 모습을 띄게 될지는... 저도 궁금하답니다. 

뭐 일정은 언제든지 변경되기 마련이지만, 어쨌든 15년 내에 완성은 할 것이라 마음 먹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그 약속이 전부에요. 제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남들에게도. 2008-11-04
13:46:30
  

 

병장 이동석 
  음- 그렇다면, 이 글을 보고 있는 우리는 정말이지 선택받았군요. 허허- 감사한 마음으로 잘 봤습니다. 완성된 그림이 어떨지 상상하는것만으로도 두근두근- 2008-11-04
13:50:07
 

 

병장 정영목 
  ALL// 

부끄러울 따름이죠. 그리고 기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11-04
14:02:04
  

 

병장 홍성기 
  오와! 왠지 에란테라는 캐릭터에 정이 가는걸요? 
도네호가와는 왠지 든든하다는...[먼산](쿨럭)[喀血](머엉...) 2008-11-04
14:54:00
  

 

병장 김영철 
  잘 읽고있습니다 ! 
정말 멋지십니다. 2008-11-04
16:5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