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머신즈 그린웨이 STATE 1-6  
병장 정영목   2008-10-06 00:51:16, 조회: 164, 추천:0 

“크크. 아파치도 한물갔군. 이래 물러 터져서야.”

BF(Biological Fireworks) 사의 수석 연구원 시드니 헨리가 소금 달팽이 농축액을 들이키며 키득거렸다. 그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마르세유에는 강렬한 화염 폭풍이 치솟았다.

“같은 인간을 자폭용으로 사용하는 게 그리 좋은가?”

미스트 포인터 특유의 은빛 눈동자를 번득이는 한 남자가 시드니를 나무라듯 말했다.

“흥. 인간? 그딴 값싼 동정 따윈 집어치워. 녀석들은 경쟁에서 진 도구일 뿐이야. 스스로 자초한 거라고. 먹히지 않으려면 노력했어야지.”

시드니의 전형적인 대답에 그 남자가 싱거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것이 우리의 철학이지.”

“아니. 자연의 법칙이야.”

“확고하시군, 그래. 그런 그대의 오차 없는 확신 덕택에 제네틱 프레임 사 본부가 날아가 버렸네. 아파치의 폭격으로 말이지.”

“쳇. 그건 당신도 묵인했던 거잖아?”

이에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점잖은 태도로 검은 망토를 벗어 내리더니 번개 같은 속도로 상대의 오른쪽 어깻죽지에 대검을 찔러 넣었다. 수염 가득한 그 남자의 얼굴이 마치 야수처럼 일그러졌다.

“다시 한 번 말해볼까? 과학자 양반? 누가 뭘 어떻게 했다고?”

“제길…… 왜!? 가슴에 박아 넣지 그랬어? 페랄 스타스. 미스트 포인터끼리 이런 유치한 장난은 하지 말자고!”

시드니가 페랄의 허벅지에 총격을 가했다. 뜻밖의 일격을 당한 야수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자 이번엔 몸을 크게 흔들어 상대를 밀쳐냈다. 자신의 어깻죽지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크으으……”

“알았어. 알았다고. 비밀은 지켜 준다고 했잖아! 이 짐승아! 이렇게 싸워봐야 서로에게 득 되는 거 하나도 없단 말이다!”

시드니와 페랄은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지독한 침묵이 흐른 뒤, 이윽고 페랄이 다시금 망토를 둘러쓰고는 어둠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버튼이나 눌러라. 애송이. 너의 역할은 거기서 끝이다.”

여전히 분을 못 삭였는지 페랄이 벙커를 나가며 한 마디 내뱉었다. 시드니 또한 끝까지 이죽거렸다.

“앉은소 앞에서 한번 그래봐. 그러면 조금은 무서워 해 줄게.”

허나 시드니는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총을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페랄 스타스는 UCS 최고의 무장이었다.

“흐흐. 재미있는 녀석이군. 부디 오래살길 바란다. 애송아.”

잠시 후 야수의 발걸음이 멀어지자 시드니는 힘이 풀린 듯 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맥없이 주저앉아 형상 재생을 시전 했다.

“이사회 녀석들…… 저희들끼리 사분오열 되어서 싸우는 꼴이라니. 크크. 뭐…… 나쁘진 않아. 그래야 나 같은 놈도 권력을 잡지.”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났는지 그는 마치 분풀이 하듯 다시금 폭발 버튼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이제 곧 포로들의 자폭 공격으로 인해 전자기장 방어 매커니즘이 완전히 무력화 될 것이었다.

‘전자기 미사일의 효과 역시 점점 증폭되겠지.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다만. 낄낄. 그러고 보니 이제 아파치는 포로를 받아들이려나? 녀석들의 고귀한 이상을 실험해 보는 것도 재밌겠군. 인간도 아닌 것들이 휴머니즘 어쩌고 지껄이긴.’

시드니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낄낄댔다. 허나 그때. 어떤 물체가 자신의 눈앞을 스쳐지나가자 그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총을 집어 들었다. 찰나의 순간, 그가 총구를 겨눈 곳엔 웬 올빼미 한 마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너는!”

“이제 갈 때까지 갔더군요. 같은 종족을, 그것도 포로를 자폭 폭탄으로 사용하다니. 뭐, 그만한 정신 조작 기술과 단백질 재조합 기술은 칭찬해 드리죠.”

올빼미가 인간 형상으로 변하며 아메리카 원주민 복장의 아리따운 여성의 모습을 취했다. 그리고 이 불쌍한 인간 남자가 그런 자신의 모습에 매혹되었음을 알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아…… 인간들은 이렇다니깐. 시도 때도 없이 호르몬을 분비하다니. 헤르실리아. 당신은 왜 인간이었나요.”

도네호가와가 진실로 안타까운 듯 탄식을 내뱉더니 시드니를 쏘아 보았다.

“말하세요. 이 기술을 ‘가르쳐’ 준 이가 누구죠?”

시드니는 뭔가 압도적인 힘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하... 하데...”

그때 시드니의 눈깔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거품을 물며 꼬꾸라졌다. 그러나 도네호가와의 나노 드론들이 이미 그의 뇌를 복제한 뒤였다.

“역시, 입막음 제어가 되어 있었군. 한번 속지, 쯧쯧. 그건 그렇고. 음…… 하데스라. 유치한 이름이군.”

나노 드론들이 가져온 정보를 훑어 처리하면서 도네호가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데스. 황천이라.

“샤먼. 마르세유의 상황은 어때?”

도네호가와가 전장 통신을 연결하자 샤먼의 모습이 홀로그램화 되었다. 지하 벙커라 그런지 전파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앉은소가 필사적으로 막아보고는 있는데…… 사실 이미 무너졌어. 제길…… 게다가 아메시스트들도 감염된 거 같아. 그들도 폭발하고 있어.”

“무력화제가 안 통해?”

도네호가와가 혀를 찼다. 하데스란 놈. 대체 어떤 녀석인지!

“일단 여기서 나갈게. 아직 타겟이 더 있는 거 같아.”

“뭔지는 모르고?”

“응. 아직……”

그때 샤먼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미스트 포인터에게 이온포를 날리자 통신이 끊겨 버렸다.

“샤먼도 참. 과격하네.”

도네호가가 벙커에 폭발물을 흩뿌리며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의 렌즈에 시드니의 형상이 잡혔다.

“불쌍한 인간 남자. 부디 성불하길. 그리고 다음 생에는 믿음직한 동료를 두도록 해요.”

그녀가 눈을 감겨주자 시체가 아주 잠시 평안한 모습을 짓는 듯 했다. 그래. 인간은 이런 맛이 있어야지.

잠시 후, 그녀가 지하 벙커에서 벗어나 하늘로 날아오르자 이어 대규모 연쇄 폭발이 지상을 강타했다. 그 폭발은 주위의 대공포들을 휩쓸어 버리고는, 한동안 그 일대를 거대한 흙먼지로 뒤덮었다. 도네호가와는 남은 대공포들의 산발적인 공격을 유유히 막아내며 상공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앉은소 아저씨. 미스트 행성의 A34-G38 지점이 클리어 되었답니다. 이곳으로 부대를 진주시키세요.”

접수했다는 신호만이 깜박이더니 이내 대규모의 아파치 항공 부대가 그들의 볼텍스를 통과했다. 지상에서 그 압도적인 광경을 목격한 인간들이 앞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못가 미리 잠복해 있던 미스트 네이티브들에게 대부분 생포 당했다.

“자, 그럼 난 이제.”

도네호가와는 볼텍스로 방향을 틀어 지구로 진입했다. 하데스란 녀석의 의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MDA를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전자기 폭풍으로 우리들의 눈을 돌린 후 아파치 시스템에 잠입할 요량이었어.’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번득였다.

‘이미 늦었을지도. 흠. 그렇다면……’

도네호가와는 아메시스트 커뮤니티의 수도 시드니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죽은 그 인간 남자의 이름도 시드니였지? 별 의미 없는 우연의 일치가 도네호가와의 자의식을 잠시나마 요동치게 했다. 물론 이는 불과 피코 초 단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36:58 

 

병장 이동석 
  인디언 복장, 쿨럭. 

영목님 연재를 기다리다 보니 시간도 술술 가는군요. 흐흐. 2008-10-06
06:18:00
 

 

병장 황인준 
  꾸준히 올라오는 영목씨의 글을 보니 
좋군요(웃음). 
앞으로도 꾸준히! 부탁드려요.. 2008-10-06
11:19:28
  

 

상병 김호균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이팅!!입니다(웃음) 2008-10-06
15:22:12
  

 

병장 김태형 
  또 다시 다음이 기다려지는군요, 감사히 잘 보고 있답니다 (씨익) 2008-10-06
18:41:31
  

 

병장 정영목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2008-10-07
09:5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