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머신즈 그린웨이 STATE 1-4  
병장 정영목   2008-09-19 19:12:51, 조회: 194, 추천:0 

“아아...... 이놈의 폭풍은 대체 언제쯤 끝날까!”

UCS군의 한 용병이 진절머리가 났다는 듯 투덜거렸다. 이어 다른 이들도 비바람에 흠뻑 젖은 채 막사에 들어와 각자 자신들만의 저주를 퍼부었다. 그들 대부분은 우선 아무 곳이나 걸터앉아 맥주부터 들이켰다.

“몰랐나? 우리가 이곳 바르셀로나에서 철수하지 않는 한, 저 기계들은 폭풍을 멈추지 않을 걸?”

“곧 지진이 일어날 거라는 소문도 있던데?”

“요 끈덕진 곤충들은 또 어떻고!”

주위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 지더니 현 상황에 대한 온갖 불만이 터져 나왔다. 허나 피로감 때문인지 그들의 열띤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저격 라이플을 손질하던 한 용병이 사뭇 진지한 어투로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아파치도 관대하지. 플라즈마 탄으로 쓸어 버리면 될 텐데, 그저 우리를 피곤하게만 만들고 있으니...... 겨우 바르셀로나 하나 뺏겼다고 해서 흔들릴 아파치가 아니잖아?”

“쳇.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이 알게 뭐야? 그나저나 약탈전이라고 해서 참전했더니 질질 끌기만 하고! 제길! 대체 언제 철수하는 거야?”

사실 대부분의 UCS 사람들은 그들의 체제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소금 달팽이를 제대로 공급받지도 못하는 데다가, 그마저도 생산되는 것은 지배층들이 독차지 하기 때문이었다.

“이 참에 아파치로 망명할까? 아메시스트 훈련을 받으면 제한된 양이나마 소금 달팽이를 먹는다던데......”

그때,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던 그 용병의 입이 찢어졌다. 모두들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방바닥에 나뒹구는 동료를 바라 보았다. 심상찮은 기운을 내뿜는 한 장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적을 찬양하다니. 이적 행위다.”

모두들 차갑게 얼어붙었다. 미스트 포인터였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재판도 없이 사람을, 윽......”

또 한 명의 용병이 쓰러졌다. 그는 숨이 막힌 듯 목을 고통스럽게 움켜 쥐더니 이내 거품을 물었다. 주도권이 완벽하게 미스트 포인터에게 넘어갔다.

“철수는 없다. 우리는 곧 마르세유로 진격할 것이다.”

다들 멍한 눈으로 우물쭈물 거리기만 했다. 현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흘 후 이곳 바르셀로나와 팔마항 연안을 기점으로 대규모의 수복 작전이 시작된다. 우리 부대는 육로를 통해 이동할 것이다. 한 시간 이내로 이동 준비를 마치도록.”

잠시간의 웅성거림이 일더니 한 용병이 미스트 포인터를 향해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우리는 애초에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어! 뜬금없이 웬 확전이야? HD사 관계자는 어디 있어? 재계약을 요구한다!”

이상한 일에 말려들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었다. 이에 미스트 포인터는 마치 어린 양들을 대한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UCS 이사회에서 비상 상황을 선포했다. 각 기업의 모든 용병은 징집병으로 신분 전환될 것이며, 그에 따라 각종 제약을 받게 된다. 이에 반하는 자는 군법으로 처리될 것이다.”

“뭐야!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에 동의했다는 거야?!”

다들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자 용병으로서의 본능이 발휘되었다. 누군가 재빠르게 미스트 포인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허나 총탄은 목표물에 명중하는가 싶더니 점점 그대로 느려져 버렸다. 중화막(Neutralizing Membrane)이었다. 총을 쏜 이도 이를 예상했는지 추가타를 가했고 곧이어 다른 이들도 이 대열에 합세했다. 한동안의 공방이 오간 후, 용병들이 하급 중화막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열병기를 동원하자 미스트 포인터도 결국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부대에서도 일이 터졌는지 다들 무기를 들고 뛰쳐나왔다. 이렇게 해서 바르셀로나에 주둔하고 있던 만여 명의 병력이 UCS 점령 사령부의 통제권에서 벗어났다. 해당 부대를 담당하고 있던 각급 간부, 특히 미스트 포인터 10여명은 반기를 든 자신들의 부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며 해안으로 후퇴했다.

사실 악천후가 아니었다면 그 용병들은 더 큰 피해를 입었을 터였다. 바르셀로나 항에 주둔하고 있던 항공모함 뉴캐슬호가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폭격기를 파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당수의 부대가 이미 소요 사태를 맞고 있었다.

“이제 어떡하지?”

제1482기계화보병대대 소속의 메실리야 카린이 바르셀로나 시가를 벗어나면서 동료에게 물었다. 준수한 흑인 청년인 마크 브론도가 그 말을 받았다.

“ADA 사에 연락해 봐야 소용없겠지. 벌써 제명되었을지도 몰라. 게다가 요즘 UCS 이사회 자체가 이상해. 뭔가에 홀린 녀석들 같다 랄까.”

“그래 네 말이 맞아. 갑작스런 계엄령도 석연찮고. 모든 것이 열세인 상황에서 웬 점령전? 원하던 바닷물이나 훔쳐 가면 될 일을......”

“흠...... 역시 아파치로 가야 할까?”

카린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동의하는 눈치였다. 브론도는 이동에 방해가 되는 각종 장비를 내려놓고 북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카린 또한 영양 주사 다발과 이온 권총만을 챙긴 채 뒤따라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이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용병들이 안전 지대까지 탈출하자 바르셀로나 일대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다. 아파치의 공격이었다. 이 지진으로 인해 각종 시설물이 파괴됨은 물론, 거대한 해일이 해안가를 덮쳐 UCS군 함선 다수가 좌초되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죽기 살기로 도망쳐 대부분 아파치에 항복했다. 본대에 합류한 이들은 몇 되지 않았다. 미스트 포인터들이 탈영을 막기 위해 온갖 제재를 가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갑작스레 등작한 아파치의 전투 로봇에 의해 제압당했다.

“모두 항복하라. 너희들의 볼텍스는 이미 파괴되었다.”

자신을 향해 전자기파 공격을 가하는 미스트 포인터의 팔을 으스러뜨린 후 앉은소가 그 육중한 음성을 울렸다. 바르셀로나 전역의 모든 기계들이 그의 메시지를 되풀이 했다.

“끝까지 저항하는 자에겐 영원한 안식을 선물하겠노라.”

앉은소가 나름의 시적 표현을 써 가며 으름장을 놓았다. 허나 굳이 그러지 않아도 UCS 점령군 본대가 완전히 초토화된 상황에서 끝까지 싸우려는 이는 백여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의심스러운 프로그램에 의해 세뇌된 이들이었다. 앉은소는 포로들의 신원을 붉은구름에게 넘긴 후, 혹여 숨겨 져 있을지도 모르는 EMP 폭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샤먼과 도네호가와 또한 항복한 인간들의 행렬을 상공에서 바라보며 탈취한 UCS군의 비밀 자료를 검토했다. 그 와중에 200만 병력의 침공 계획이 발견되자 도네호가와는 실소를 머금었다. 머릿수로 싸우려는 인간의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여전히 께름칙한 기분이 남아 있긴 해도, 분명 UCS군은 아직 아파치의 상대가 아니었다. 이제 문제는 항복한 인간들의 처우였다. 통계상 아메시스트 훈련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은 3% 미만이었다.

“어쩌겠어? 훈련을 못 견디는 자는 자치령에서 조용히 살던지 아니면 UCS로 돌아가던지 선택하라는 수 밖에......”

샤먼이 이렇게 투덜대긴 했지만 그도 이것이 매우 난해한 문제임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은 애초에 이 바르셀로나를 내주게 된 계기, ID(Identity Disruptor) 공격에 대한 조사가 더 급했다. 도네호가와는 미스트 포인터들의 시신을 단백질 처리 탱크에 넣은 후 연구 로봇들에게 몇 가지 조치를 설명했다.

정보 추출 과정으로 인해 묽은 죽이 되어 가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도네호가와는 생각했다. 인류를 과연 자신들의 욕망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까? 사실 헤르실리아의 부탁만 아니었더라면 도네호가와는 진작에 이 문제를 포기했을 것이었다. 그만큼 소금 달팽이는 인간 욕망의 깊은 곳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36:14 

 

병장 어영조 
  아아, 조금씩 더 재밌어 지는데요. 
정말 잘읽고 있습니다.(웃음) 2008-09-19
20:19:32
  

 

병장 배상혁 
  역시 이런 글은 돈을 내고 읽어야 해.. 
(중얼중얼) 2008-09-19
22:44:57
  

 

병장 이동석 
  아아, 페인트칠 끝나고 제대로 읽을께요. 흑흑 2008-09-22
19:37:17
 

 

병장 이동석 
  오오, 처음부터 다시 읽었어요. 그리고 벌써 이시간이 되었군요. 허허. 2008-10-02
13:4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