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머신즈 그린웨이 STATE 1-3  
병장 정영목   2008-09-08 14:21:30, 조회: 236, 추천:0 

태곳적 신비를 되찾은 땅.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생태계, ‘평온의 숲’의 한 모퉁이에서 아파치의 수소 반응기가 그들만의 섬세한 과정을 통해 물을 생성하고 있었다. 마치 잠든 듯 고요한 이 재생의 향연 속에서 이따금씩 정체 모를 숨소리만 살며시 울려 퍼지더니, 문득 토끼 한 마리가 수풀에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시 후 작은 여우 두 마리가 다가왔고 토끼는 그들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현재 아파치 사회에는 탐페레 협약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AI 도네호가와가 10여 년 전에 내놓은 ‘전 생명 지능화 계획(The Plans of All-lives Intellectualization)’이 이윽고 성공 단계에 이른 것이다. 허나 ‘각성’한 모든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으려면 일상 생활 전반을 규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했다. 특히 URC(Universal Root’s Compounds)를 통한 식량 공급이 핵심 의제였는데, 생명체 본위의 영역을 수정하는 것, 이를테면 먹거리를 강제하는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열띤 토의가 펼쳐 지곤 했다.

샤먼과 도네호가와 또한 한적한 오솔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바르셀로나가 잠시 함락되었으나 아파치의 압도적인 힘은 그대로라는 샤먼의 주장과 인류가 아닌 다른 위협이 존재한다는 도네호가와의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서로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데이터가 나노 초 단위로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AI들의 자의식 대결은 대개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합의점을 낸 채 다른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는 사항은 여전히 존재했다. 출발이 같다고 해서 결과도 같은 건 아니었다. 샤먼이 자신의 다형상 생성기를 조작해 갈까마귀로 변하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올빼미 한 마리가 그 뒤를 따랐다.

“그래. 도네호가와. 상황이 심각하다는 건 인정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평온은 전적으로 ‘우월함’ 덕분이지. 힘, 도덕, 이성 그 모든 것의…… 그런데 이 균형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으니 분명 위기는 위기겠지……”

샤먼이 말끝을 흐렸다. 저 멀리 거대한 UR-Sahara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파치 테라포밍 프로젝트를 이끄는 핵심 시설 중의 하나였다. 사하라 사막을 초원 지대로 변모시키고 있는 저 막강한 기계 나무를 보면서 샤먼이 희망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인간의 초능력 자체는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가 생물학적 다양성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그들의 소금 달팽이를 ‘놔두고’ 있는 거지, 조금만 더 선을 넘어서면 소금 달팽이 생산 시설을 타격하면 되니까. 그러면 UCS 체제 자체가 흔들리겠지.”

“그게 바로 예의 알파가 원하는 것이라면?”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이렇게까지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요즘 들어 아파치 시스템에 대한 교란 행위가 빈번해지고 있어. 이것이 단순한 파괴 공작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칼날이 숨어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류의 총체적 역량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게다가 침투 패턴에도 이상한 점이 많아. AI 특유의 룩손식 접근법(The Luxonian Approach)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인류가 AI에 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AI를 내세우는 걸까? 첩보에 따르면 UCS의 어느 기업이 아파치 시스템을 점거하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던데 아마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어.”

이에 샤먼이 포기한 듯 투덜거렸다.

“그래. 그래. 뭔가 드러나지 않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겠어. 각종 데이터가 그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 그렇다면, 그 알파를 접수할 방안은?”

“정보전 또는 전략 무기를 사용하는 방안이 있는데, 난 전략 무기로 공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내 ‘직감’엔 그들이 정보전을 원하고 있거든. UCS의 정보 기술 관련 기업들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좋아. 그 건은 통과. 목표 지점에 전략 폭격기를 투입하도록 앉은소에게 말해둘게. 그건 그렇고 아메시스트 부대를 마르세유에서 철수시키자니? 그 꿈 때문이야?”

이번엔 도네호가와가 포기한 듯 투덜거렸다.

“알아.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선 별 근거가 없어. 다만 정황이 그 꿈처럼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불안할 뿐이야. 게다가 아메시스트 쪽이 흔들리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도네호가와의 말대로 현재 아메시스트 커뮤니티는 탐페레 협약에 대해 미묘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겉으로는 찬성하지만, 속으론 좀처럼 납득하지 못하는 태도. 이성은 인정하지만 감정이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인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자신들만 각성한 상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질적인 존재가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것을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도덕적이고 헌신적인 아메시스트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었다.

“아메시스트들도 인간이야. 그리고 인간은 아직, 근원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취약한 존재고...... 그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런 걸 뭐. 그들은 개나 말이 발언권을 가지는 걸 원하지 않아. 우리 아파치를 향한 UCS의 증오도 이러한 맥락이겠지. 노예가 감히 일어났다는 것.”

샤먼이 침묵을 지켰다. 유예적 거부 의사였다. 어쨌거나 아메시스트는 아파치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이 전쟁을 단순히 기계와 인간 간의 대립이 아닌, 수호자와 파괴자의 대결로 성립시키는 상수. 도네호가와 또한 더 이상의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저 앞만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UR-Sahara가 지척으로 다가와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지상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한적한 곳에 착지한 다음 다시금 인간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그렇게 걷더니 샤먼이 먼저 무언가 생각을 정리한 듯 도네호가와에게 의미 모를 눈빛을 살짝 보냈다. 도네호가와 또한 샤먼의 전송 메시지를 보고 씽긋이 웃었다. 그곳엔 헤르실리아의 사진들로 이루어진 샤먼과 도네호가와만의 암호문이 담겨 있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36:01 

 

병장 이동석 
  새로운 세계를 만드시겠군요. 
아직 윤곽은 안 보입니다만, 
완성되면, 
영화판권은 제게... (농담) 2008-09-09
13:21:55
 

 

병장 정영목 
  시트콤 프렌즈나 
아즈망가 대왕, 
풀 메탈 패닉 외전 류의 웃음 코드를 잘 아시는 분은 
후에 저작권 관계 없이 맘대로 쓰셔도 됩니다. 
혹 이동석 님은 잘 하실지도.. 

헌데 반드시 웃겨야 함. 농담 아님 (...) 2008-09-09
13:35:22
  

 

병장 황인준 
  새로운 세계의 창조주라, 
멋져요!(웃음) 2008-09-09
16:23:31
  

 

병장 이동석 
  두둥- 
그 정도 포스로 웃겨야만 한다니, 이거 이거... (크크)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어요. 2008-09-10
06:30:52
 

 

상병 김희순 
  이해가 안가는부분이 많아요 

저만 이해하지못하는것일지도.. 2008-11-21
10:14:54
  

 

병장 정영목 
  김희순 님// 

이해가 안가시는 부분이 있으면 제 탓이 큰 것이니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8-11-24
19:3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