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머신즈 그린웨이 STATE 1-1  
병장 정영목   2008-08-29 15:11:10, 조회: 522, 추천:1 

우리, 변화의 탐구자,

그들을 보았노라.

모든 흐름이 한 점으로 흡수되나니,

마침내 끝을 맺는다.

우리, 그들에게 이것을 보낸다.

우리, 변화의 탐구자.

-플로우 인스파이어러,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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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44년 3월. 마르세유.

“바르셀로나가 함락되었단 말이죠……”

아파치 시스템의 연구 노드, AI 도네호가와가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어투였다. 이에 전투 노드의 앉은소가 격분하여 도네호가와에게 소리쳤다.

“인간이 저 정도로 초능력을 개발했는데, 연구 노드는 대체 뭐하고 있었던 거요?”

“그러게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제 기술적 우위에 기반한 전투는 끝났습니다. 우린 예전보다 압도적이지 않아요. 그리고 브론도 씨가 중화막을 개발했잖아요? 왜 그걸 사용하질 않죠? 게다가 제가 드린 전자기장 방어 매커니즘은 아직도 실전 배치가 안 되었더군요.”

도네호가와가 냉소적으로 쏘아붙이자 앉은소의 홀로그램 영상이 크게 일그러졌다. 조정자 샤먼이 이들을 제지했다.

“잠깐. 제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침공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힘을 너무 집중시켰습니다. 이제는 보다 진지하게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군요.”

외교 노드의 검은주전자가 거들었다.

“아메시스트 커뮤니티에서 정지장 기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번 바르셀로나 함락은 일시적인 현상일 터이니 우리끼리 너무 싸우지 맙시다.”

“잠깐만요. 확실히 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도네호가와가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엊그저께 반엔트로피 작업 중에 잠시 꿈을 꿨습니다.”

“꿈? 우리 AI가 꿈을 꾼단 말이오?”

“이름이야 마음대로 붙여도 됩니다. 중요한 건 그 경험에서 헤르실리아를 만났다는 겁니다.”

2년 전에 자살한 그들의 인간 지도자 알렌 헤르실리아의 이름이 언급되자 좌중의 AI들이 잠시간 동요했다.

“그 분이 무슨 메시지라도 보냈습니까?”

샤먼이 담담하게 물었다. 물론 그 태도 속에는 미묘한 다급함이 어려 있었다.

“글쎄요. 처음엔 데이터 처리기가 제 인식 커널에 간섭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영상이 반복된 것이더군요. 그 분은……”

도네호가와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리곤 긴 브론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곳 마르세유가 전자기 폭풍으로 뒤덮여 완전히 괴멸한 모습을 제게 보여줬어요. 그리고 아메시스트 커뮤니티가 우리를 배반할 것이라 경고했고요.”

“뭐라고!”

좌중이 발칵 뒤집어졌다. 검은주전자가 반론을 폈다.

“그런 검증되지 않은 환영 때문에 우리가 아메시스트를 버려야 한다고는 생각하기 어렵군요. 물론 새로운 경험을 외면해선 안됩니다. 허나 아메시스트는 혁명 당시부터 우리와 함께 한 인간들입니다. 어쩌면 아파치에 대한 열정이 우리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이들이라고요! 게다가 그들은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그 초능력 또한 UCS 녀석들의 것과 다르지 않지. 어쨌거나 그들도 소금 달팽이를 먹지 않소?”

“하지만……”

샤먼이 살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AI는 과거 인간들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메시스트 커뮤니티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밝힌 상태입니다. 그들은 생태적 농경을 통해 소금 달팽이를 적정 수준으로만 생산할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대규모 사육이 바닷물을 너무 빨리 고갈시켜서 그렇지 소금 달팽이 자체가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그리고 전자기 폭풍 건은 도네호가와 씨가 개발한 전자기장 방어 매커니즘을 각 도시에 설치하는 방향으로 막아 봅시다.”

잠자코 있던 내정 노드의 붉은구름이 말문을 열었다.

“전자기장 방어 매커니즘의 실전 배치 진행율은 현재 32.496183% 수준입니다. 예측치에 따르면 814만 2344초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문제는 도네호가와 씨가 언급한 이 마르세유인데…… UCS의 방해 공작이 워낙 치열해서 이제 갓 20.113297%를 넘긴 수준입니다.”

“아직도 인간들은 우리 문명을 제대로 이해 못한 건가? 중심부를 치면 우리가 무너질 걸로 아나?”

“그럴지도 모르지요. 허나 바르셀로나를 잃은 것만도 우리 아파치에겐 치욕입니다. 중심부가 무너져도 상관없다고 해서 그걸 굳이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샤먼이 이제 정리하자는 듯 손을 흔들었다.

“UCS 또한 바르셀로나를 오랫동안 점거할 수 있으리라 생각진 않을 것입니다. 볼텍스를 이곳 마르세유 지척에 열었다는 것 자체가 한방 먹여주고 빠지겠단 계책이겠지요. 일단은 바르셀로나에 대한 생태적 압박을 계속하세요. 폭풍, 해일, 지진, 뇌우. 생화학전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써도 좋습니다.”

“좋아! 알겠소.”

앉은소가 흥겨운 듯 대답했다.

“이만 오늘 회의를 마칩니다. 각자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각 AI들의 홀로그램 영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도네호가와도 연결을 끄려는 찰나, 샤먼으로부터 비밀 채널 개설 요청이 들어와 있다는 걸 발견했다. 도네호가와는 살며시 볼을 부풀리며 그 신호를 흘겨보았다. 분명 일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34:45 

 

병장 조현식 
  죄송합니다... 아래 얼개에 작성해 놓으셨군요..(웃음) 

이런거 참 흥미로워요. 특히 얼개에 쓰신것처럼 세계관 같은걸 작성할때면, 신이라도 된 듯한 느낌에 시간가는줄 모르게 되죠. 2008-08-29
15:22:46
  

 

병장 전승원 
  앉은 소의 인디언 명을 까먹었군요. 와타... 블라블라 였는데. 월요일날 정확히 알아오겠습니다. 2008-08-29
15:54:20
  

 

병장 정영목 
  타탕카 요탕카 일겁니다. 2008-08-29
17:12:25
  

 

병장 이동석 
  그런데 AI면, 인공지능인가요? 
아니면 조류독감?(농담) 2008-08-31
10:3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