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만남. 0.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9-01-28 18:31:54, 조회: 7, 추천:0 

허름한 뒷골목에 허름한 술집, 간판조차 없다. 하나같이 허름한 차림의 손님들뿐이다. 지나가며 곁눈질로 스쳐본다면 그저 뒷골목에 자리한 낡아빠진 술집 같겠지만 이 술집에 대하여 알게 된다면, 조금만 주의를 갖고 저 부스스한 머리의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 놀라운 횡재에 참여하고 싶어서 냉큼 땅바닥에 굴러서라도 허름한 옷차림을 하게 될 것이다. 부스스한 곱슬머리의 남자가 삐걱거리는 술집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잠시 가게 안쪽을 훑더니 한 테이블로 향한다.
"자네 여기서 또 뭐하나?"
"고민 중이야."
혼자 테이블에 앉아 세 개의 잔을 괴상한 모습으로 쌓아놓고는 술을 붓고 있던 또 다른 곱슬머리의 남자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과학자 중 가장 정신 나간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으로 유명한, 그리고 그 정신 나간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실력이 뒷받침 되어있는 과학자 T는 술을 마시며 고민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그 고민의 원인은 주로 한가지였다.
"자네가 만든 걸 어떻게 써야 할지 또 모르겠나?"
T를 존경하는 사람은 세상에 한 가득이다. 하지만 T를 존중하는 사람은 세상에 M밖에 없다. 이 괴팍하고 미친 것 같은 과학자는 그저 별세계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T에게 외계인에게 보내는 것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게 보내는 존경심을 보이고 있었으나 M만은 그의 인간적인 면을 보아주었다. 고로, 둘은 술친구였다.
"만들긴 했는데..."
T가 술을 마시며 고민하는 주제는 늘 같았다.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너무 뛰어난 탓일까, T의 실력은 늘 그 놀라운 아이디어를 100% 활용하지 못하고 어딘가 어정쩡한 현실로 만들고 만다. 뭐, 그 정도 만 가지고도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침을 흘리며 이용할 자격을, 특허권 판매를 요구할 놀라운 기술들이지만 그렇기에 사람들은 T가 고민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 이번엔 또 뭘 만든건데?"
이 으슥한 곳에 위치한 이름도 없는 술집은, 정신 나간 과학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어째서 이렇게 특정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이 보이는가, 하면 이들은 술을 먹었건 먹지 않았건 남들이 듣기에는 개소리만을 지껄이는 사람들이기에 과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과는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대화를 원하는 과학자들은 은근슬쩍 한 곳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임머신과 비슷한 걸 만들었어."
이곳에 기자가 한 명만 있었어도 내일 아침에 쓸 기사거리를 걱정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일주일은 우려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알콜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즐기고 있는 과학자들뿐이었고, 게다가 T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은 M 뿐이었다.
"비슷하다는 게 문제겠군?"
"응."
M은 T의 앞에 앉았다. 그가 괴상한 모양으로 쌓아 둔 잔 중 가장 위에 놓인 잔을 잡아 자신에 앞에 내려놓는다.
"또 뭔데?"
"시간과 시간 사이에 길을 내었단 말이야."
"천천히 설명하라구. 자네 많이 마셨나?"
"그러니까 그건 문이 두 개 달린 방이야. 두 문을 A와 B라고 하지. 그리고 방 바깥은, 그러니까 예를 들어 A문 바깥은 어제와 연결되어 있고 B문 바깥은 내일과 연결되어 있는 거야. 그런 장치를 만들었어."
"대단하구만."
M은 솔직하게 놀라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시간 여행을 현실로 만들어놓고도 무언가 불만에 차서 고민을 하고 있는 T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그게, 들어가는 것만 돼."
"응?"
"A문을 통해서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B문으로 나갈 수가 없다고. 마찬가지로 B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A문으로 나갈 수 없고.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도 마찬가지야. 반대편 문을 통해 엿보기만 하려 해도 시야가 너무 흐터러져서 안보이더군. 게다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만날 수도 없더라고."
"허허, 이 사람 또 애매한 걸 만들었구만?"
"그렇다네."
두 사람은 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우선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축하의 의미이다.
"그런데 그거 실험은 어떻게 한 건가?"
목을 축인 M이 물었다.
"실험자를 한 명 A문으로 집어넣었지. 그랬더니 다시 돌아온 실험자가 알아서 내게 노래를 한 곡 불러 주더군. 당연히 성공이었지."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난 그 전날 다른 실험자를 B문을 통해 방에 들여보내고 그 안에서 만난 사람에게 노래를 한 곡 가르쳐 주라고 지시했었거든."
"그 전날의 B문과 그날의 A문을 이어두었던 건가?"
"그렇지."
"그런데, 그거. 시간과 시간을 잇는 것 맞나?"
M의 말을 들은 T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웃고 있는 것이었다.
"하하, 역시 자네는 유쾌해."
"역시."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간이 비틀리는 거야. 과거와 미래의 사람이 만나는 그 '방'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무조건 지금이 되는 거지. 시간과 시간을 비틀린 공간으로 이어붙이는 거라네."
T는 유쾌한 표정과 말투로 설명을 했지만 M은 그 설명을 들으면서도 웃지 않았다.
"그렇다면, 꼭 기준이 되는 시간이 두 개 필요한 건가?"
"허, 그건 무슨 소린가?"
"어제와 오늘처럼 정해진 시간을 한 공간으로 묶는 게 아니고, 어떤 시간에서 문을 열더라도 같은 공간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냐고."
T는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생각은 꽤나 길었다. 아무 말 없이 둘의 잔이 비어갔다. 잔을 세 번째 다시 채웠을 때, T가 대답했다.
"응, 될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M은 처음으로 얼굴에 웃음을 보였다.
"그래? 그러면 이런 데 쓰면 되겠네."
M의 말을 들은 T의 얼굴로 웃음이 번졌다.

이름도 없는 이 허름한 술집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간다는 사실을 아는 기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래서 위대한 과학자 T가, 자신의 새로운 발견을, 그리고 그 이용 가능성을 발표했을 때, 놀라지 않은 기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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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연재글을 하나 쓰기로 했습니다. 일단 위에 있는 글이 중요 아이템이며 약간의 소개지만, 읽으셔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입니다.
언제나처럼 현실감 살짝 떨어지는 이야기가 되겠고요. 다섯편 정도 올라갈 계획입니다.
연재라는 것, 엄청 부담되는군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15:36 

 

병장 김민규 
  꺄악! 2009-01-28
19: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