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환상소설_3  
일병 이석현   2008-12-23 14:15:38, 조회: 213, 추천:0 

<인연_4>
열어둔 창가로 써늘한 바람이 들어온다. 따뜻하단 표현으로는 부족한 초여름이지만 아직까지 아침의 공기는 차가웠다. 방안을 한바퀴 휘감으며 새로운 활력을 공기에 불어넣은 바람은 그 기세를 빌려 대자로 뻗어 누워있는 인간에게도 활력을 불어넣자고 생각한다. 바람이 인간의 몸을 한바퀴 감곤 다시 들어왔던 창문으로 빠져나간 후, 써늘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는 방안에서 한 인간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뜬다.
“아 뭐가 이렇게 추워”
바람이 불러넣고간 활력은 아무래도 인간에겐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바람이 들었으면 서운했을 말을 하며 일어난 인간은 바깥의 햇님을 보며 시간을 가늠한다. 
“으악, 늦었다!”
분명 해가 뜬지는 얼마되지 않은 이른 시간 같건만,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며 옷을 입는 이 인간은 - 남들에게는 동슥이라 불리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스스로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아 별로 인지하지 않고 있는 남자 - 뭔가 많이 늦은 듯 하다.
“무준 형님은 시간약속에 깐깐한데..”
*책* 알고보니 무준이란 사람을 만나러 가나보다. 이름으로 봐선 남자 같다. 시간약속에 철저한 걸 봐선 남들에게 용서가 없고 까칠한 사람일 듯 하다.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한 동슥과 형 동생하는 사이인 걸 봐선 분명 이자도 내 여자에겐 친절할 것이다. 하지만 또한 반대로 생각해보면 시간약속에 철저한 사람이 자기자신의 나태함엔 자비로운 경향이 있어 귀찮은 것을 매우 싫어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시간약속에 철저한 것도 조금이라도 더 게으름을 피울려는 그만의 철저한 계산일 지도 모른다. *책* 서둘러 옷을 걸치던 동슥의 눈에 침상 한구석을 굴러다니는 책 한권이 들어왔다. 이제는 보지 않아도 알만한 책, 비망록이다. 분명 어제 이상한 무당에게 구입한 책 한권이건만.. 이상하게 동슥은 이 책에서 시선을 뗄수가 없다. 이 책과 관련된 일이 뭔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만 희미할 뿐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물론 평범한 동슥에게 몽환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못한다고 탓할 수는 없는 거겠지만, 그래도 그의 무능력함에 은근히 열받는 사람이 있으리라.
“에 뭐, 일단은 챙겨가고 나중에 생각해야지”
간단하게 결론을 내린 동슥은 책에 대해생각하기 보다는 마침 어제 옷도 안 갈아입고 잠들었던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집을 나서선 빠른 속도로 한참을 뛰어갔다. 숨을 헐떡거리며 도착한 곳은 도시내에서 몇 안되는 2층 건물로 문패엔 ‘지상 최강 남자 바라한’와 ‘위자가 무사임을 인정함’등의 문구가 금빛으로 찬란한 광채를 뽐내고 있었다. 분명 저 문패만 떼어다 팔아도 꽤나 돈이 될법 하건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것을 보니 이 집주인의 성격이 불같아 후환이 두려운 것이 분명하다. 동슥은 잠깐 멈춰서 옷매를 다듬더니 조심스래 잠겨있지도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얼마나 기름칠을 매끄럽게 해놨는지 그 흔한 ‘끼익’소리 한번 나지 않고 부드럽게 열리는 문을 지나자 화려하게 꾸며놓은 정원이 보인다. 온갖 화초와 석상들로 가득 채워진 정원은 산책을 즐기며 마음을 다스리는 곳이라기 보단, 무조건 귀해보이는 것을 채워넣은 창고 내지는 진열대의 느낌을 준다. 이런 정원은 갖은자가 문도 잠그지 않고 살 수 있다니 이 집 주인의 성정이 더더욱 짐작간다. 정원을 지나온 동슥은 아까보다는 조금 작은 문 앞에 멈춰 다시 한번 옷매를 가다듬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마치 누군가 문을 두드리길 기다렸다는 듯 문 안쪽에서 가느다란 목소리의 주인이 용무를 묻는다.
“무준형, 저 동슥입니다.”
“동슥? 잠시만 기다려봐.”
대문보다 기름을 덜칠한듯 약간의 ‘끼익’소리와 함께 열린 문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곤 양팔을 허리에 얹은 채 희귀해 보이는 소재의 천으로 옷을 해입은 여자, 왠지 몸이 전체적으로 튼튼해 보이고 커다란 엉덩이에 보름달 같은 얼굴을 가진 것이 동슥의 이상형과 비슷해 보인다.
“형님, 잘 지내셨죠? 헤헤”
“너 오늘도 늦었다? 내가 저번에 경고 했을텐데!”
“아이코 형님, 제가 늦을려고 늦은게 아니라 오는데 왠 허약한 꼬마가 서낭당패 녀석들에게 곤욕을 치르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 모습을 보고 어찌 남자중의 남자인 제가 그냥 지나치겠습니까? 단방에 이단 옆차기로 한놈을 눞히..”
“또 변명! 너 자꾸 이런식이면 진짜...”
“아니에요 오늘은 진짭니다! 못믿겠으면 이따 장터사람들한테 물어보셔요. 캬. 제가 공중에서 2놈을 동시에 쓰려뜨는 모습을 형님이 봤어야 되는데..”
“니가 무슨 수로, 아무튼 늦었으니깐 값 깎을꺼야”
“아이고 형님, 제가 형님한텐 특별히 싸게 드리는거 아시자나요. 거기서 더 깎으면 전 뭐 먹고 장사합니까”
“그럼 늦지를 말던가!”
“아이코 다음부턴 절대, 절대로! 안늦겠습니다. 암뇨 절대 안늦고 말고요. 길가다 어려운 사람을 만나도 무시하고 지나쳐야죠. 암뇨 암.”
“어려운 사람은 도와줘야지.. 오늘만 특별히 봐주는거야”
“예예, 감사합니다. 우리 무준형님은 어찌 얼굴뿐만 아니라 맘씨도 이리 고우신지 몰라”
“까불지 말고, 여기 책하고 돈, 조심해서 돌아가라, 서낭당패가 해꼬지할지도 모르니”
“아이코 걱정마십쇼. 형님도 만수무강하십쇼! 아이코 고뇬참...”
무준은 동슥이 짝사랑하는 여인으로 무사 바라한의 4명의 제자 중 막내다. 그녀의 스승인 바라한은 성력자 바라매의 사촌 동생인데, 대범하고 인자한 형과는 달리 편협하고 과시하길 좋아하는 성품을 갖고 있으나, 그 무술솜씨가 뛰어나 아무도 건드리는 사람이 없는 존재로, 사실 거친성격이긴 하지만 천성이 착한 무준과는 그리 어울리는 조합으로 보이지 않는다. 처음 동슥이 무준을 만났을 때는 벌써 3년여 전으로 막 무준이 바라한의 제자로 들어갔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춘화를 바라한의 집으로 배달하던 동슥은 ‘막내가 하는 일’인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던 무준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 졌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동슥은 꾸준히 무준에게 애정공세를 했으나 워낙 남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무준은 감동과는 거리가 먼데다 -오죽하면 스스로를 무준(武俊 : 무예의 준걸)로 칭하니- , ‘나는 적어도 나보단 강한 남자가 좋아’라는 무준의 한마디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정식으로 무술을 배운 무준에게 동슥이 상대가 될리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 상대가 만만하다면 진심어린 사랑(?)으로 덮쳐볼만도 하건만 상대가 상대이고 그 뒷배는 더더욱 무서운지라 동슥으로썬 언감생심 꿈속에서만 가끔 즐거운 시간을 보낼 뿐이다. 동슥은 오랜만에 만난 무준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곤 마치 인형놀이라도 하듯 이 옷을 입혀보고 저 옷을 입혀보며 서점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한쪽 길가가 매우 소란스러워 지는 것이 느껴진다. 상념을 지우곤 고개를 돌려 보는데 멀리 있던 요란스런 옷을 입은 남자가 목검을 휘두루며 귀신같은 속도로 다가온다. 동슥은 순간적으로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 미처 도망가지도 못하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빤히 바라만 보고 있는다. 순식간에 동슥에게 달려온 남자는 목검을 휘두르며 외친다.
“봉(封)!”
길가 한쪽에서 왠 남자 한명이 쏜살같이 달려와 동슥의 이마와 손가락 한마디 만큼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목검을 휘두를 때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으나, 그 찰나의 시간에 반응하지 못한 동슥의 정신과는 달리 동슥의 몸은 정직하게 반응한다. 후들거리는 다리 살짝 축축해진 가랑이 사이 반쯤 풀어진 동공 쭈삣 닭살이 돋은 피부는 동석이 반쯤 넋이 나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쪽은 목검을 이마에 대고 있고 한쪽은 반 실성 상태로 눈풀린채 서있는데 의문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현(眩), 언제까지 숨어있을 셈인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이상한 소릴 외친 남자는 그제서야 목검을 내렸다. 그의 목검은 동슥의 앞자락을 살짝 건드리며 떨어져 내렸고, 덕분에 동슥은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동슥이 정신을 차리거나 말거나 남자는 동슥을, 정확히 말하면 동슥의 약간 뒤쪽을 노려보며 다시금 외쳤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이런 얼빠진 자가? 순순히 내게로 오거라”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동슥의 머릿속엔 어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다행히 그의 몸 또한 주인의 생각에 동의하는지 온몸의 피가 쿵쾅거리며 흐르는 것이 급격히 움직일 준비가 된 듯 보인다. 의지와 의지를 이룰 도구가 일치하는지라, 동슥은 있는 힘 것 뛰어나가려 했지만- 때마침 우연인지 고의인지 모르게 남자의 물음이 그의 고막을 때려 온몸의 긴장이 풀어져 도망칠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당신, 무당인가?”
“예, 에?”
“무당이냐고, 하, 이런말을 묻는 스스로가 우습군. 혼(魂)조차 보지 못하는 자에게- 현(眩), 이자를 끌어드려 이 자릴 모면할 생각이라면 포기해라. 험한꼴 당하기 전에 나에게 귀속되는 것이 서로 좋지 않겠느냐, 그리고 설사 이자가 무당이라 해도, 보구목(保具木)도 없는 상태에서 무얼 어쩌겠느냐. 만에 하나 네가 이미 귀속되었다고 한다면...”
말을 흐린 남자는 갑자기 무서운 표정으로 동슥을 노려본다. 무섭다기 보단 왜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고 있지 라고 생각하는 동슥이었지만 방금 전 목검공격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기에, ‘얘 뭐니’ 라는 표정이 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곤 무지막지하게 두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쪽 머리론 ‘어떻게 도망갈까’부터 ‘내가 생각보단 담이 쎈데’까지 온갖 잡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노려보며 분위기를 잡던 사내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 거리며 묻는다.
“네놈, 현의 귀속권을 포기하겠느냐?”
간이 이제는 배 밖으로 튀어나와서 일까, 아니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는 그의 특성 때문일까, 동슥은 하라는 대답은 안하고 그저 입에 나오는대로 지껄인다.
“현이 뭡니까?”
단번에 동슥의 머리를 쪼개버릴 것 같던 기세와는 달리, 남자는 설명하길 좋아하는 성격인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동슥의 반응에 놀라서인지 몰라도 엉겁결에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네 뒤에 있는 혼(魂)의 이름이다.”
대답을 한 자신도 놀랐는지 흠칫 얼굴표정을 굳힌 남자는 다시 한번 아까보다 더 험한 기세를 풍기면서 외쳤다.
“이놈, 현을 포기하겠느냐 물었다!”
이제는 설명하기도 지겨울 정도의 거대한 간을 보유한 동슥은 그 상황에서 유유히 뒤를 돌아봐주는 여유를 보여주어 남자의 이마에 파란 핏줄을 돋게 만들고 그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인내심의 한계임을 나타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나선 이젠 겁은 하나도 안 난다는 얼굴로 뺀질거리며 말한다.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누군가 남자의 머리에 귀를 가까이 대고 있었다면 ‘툭’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끊어졌다는 걸 느끼곤 말(言)만으로도 인간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단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리고 ‘툭’ 소리와 거의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목검이 출수하는 것을 보곤, 그 검에 담긴 살기(殺氣)에 또 한번 놀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엄청난 공격을 또한 전석광화와 같은 속도로 흘려내 버리는 누군가에게 놀랄 것이다.
“네년은 누구냐!”
“혼위사(魂衛士)입니다만...”
설명을 안해도 모두들 눈치채겠지만 동슥의 사랑, 무준이다. 동슥의 거짓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걱정된 그녀는 그래도 정이든 동슥이 걱정되어 몰래 따라와 본다. 사실 눈치채지 못하게 살펴만 보고 갈 생각이었으나, 남자가 갑자기 동슥에게 달려들자 자신도 모르게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오게 되었고, 처음 공격 때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 내버려뒀지만, 이번 공격은 장난으론 느껴지지 않아 이렇듯 나서 막게 된 것이다. 동슥은 방금전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보고 있는 무준을 보곤 이렇듯 간을 배밖으로 빼게 된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쪽팔릴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된 일이온지는 모르오나...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무준은 비록 경황이 없어 나서게 되었지만 무당을 상대해 보는 것은 처음일뿐더러,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와 다투는 것이 내키지 않다. 임기응변으로 남자의 오해를 이용해 동슥을 무당이라 생각하도록 하긴 했지만, 동슥이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이란 사실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어떤 이유에선지 지금은 혼자 있지만, 근처 어딘가 저 무당의 혼위사가 없다는 보장은 없다. 비록 무당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강한 존재라지만 강신하기 직전, 직후의 자신을 보호해줄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으음...”
남자 입장에서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혼을 만나 몇 칠 밤낮을 고생하며 뒤 쫒았건만 생각지도 못한 방해자를 만난 것이다. 축지술(縮地術)을 쓰느라 위사와 떨어져 있는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럽다. 물론 자신 혼자서라도 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하지만, 아무래도 무당과 혼위사의 콤비라면 위험부담이 있다. 게다가 거신력(巨神力 : 큰 산에 사는 산신령의 힘, 지기가 강하게 모여 있으므로 상당히 강한 근력을 발휘한다)을 빌려쓰고 있는 자신의 공격을 쉽게 막은 저 여자의 솜씨도 만만치 않다. 지금 여자의 실력이 강신을 받은 것도 아닐텐데, 만에 하나라도 지거나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그건 무슨 개쪽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이렇게 포기하자니 너무나도 아쉽다. 무엇보다 저런 풋내기 티나는 무당에게!
“너 이름이 뭐지?”
“동슥인데요? 이..” 
“말하지 마!”
무준은 화들짝 외쳤지만 이미 동슥은 간이 배밖으로 나온상태라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게다가 방금 무준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았는가! 게다가 이건 청춘소설에서 항상 봐온 연인들 간에 무흣한 감정이 싺트는 사랑의 씨앗이 아닌가! 물론 소설에선 대부분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 주지만, 어쨌든 남녀사이의 일이 아닌가! 동슥이 행복한 꿈에 젖어있는 사이에 무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동슥을 바라보고 있었고, 낯선 남자는 비열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으니, 어쩌면 이 중 가장 강한 자는 동슥일 지도 모른다.
“이동슥이라,”
남자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매에서 누런색 종이를 한 장 끄내더니 허리춤에 달린 자기병에 손가락을 넣었다 빼곤 뭐라고 적기 시작한다. 동슥은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고 보고만 있었지만 무준은 어느새 손발을 휘두르며 종이를 뺏으려 하였다. 무준의 움직임은 재빨랐지만 남자의 움짓임 또한 빠르다. 어느새 손가락의 움직임을 끝내더니 종이를 허공으론 던졌다. 순간적으로 붉고 가느다란 무언가가 종이로 들어가는 것이 보이고, 그 순간 종이는 찢어져, 정확히 말하면 작게 나눠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종이들은 물결을 치며 동슥의 몸을 한 바퀴 돌더니 다시 높이 떠올라 합쳐지기 시작한다. 다시 합쳐진 종이는 웬만큼 키 큰 사람 두 명을 쌓아놓은 높이에서 동슥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다.
“무슨 짓입니까?”
무준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무당이 사용하는 부적술이 그 강신술과는 다른의미에서 매우 무섭다는 사실을 안다. 강신술과는 달리 부담이 매우 적을뿐더러, 미리 준비만 해놓는 다면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완성할 수 있음에도 효과가 생각외로 강하기 때문에 그 효율성 또한 대단하다. 불안한 표정으로 부적과 동슥을 힐끔거리는 무준을 보고 남자는 예의 비열한 미소를 지며 대답한다.
“걱정하지 말거라. 설마 이런 일이 있을꺼라곤 예상치 못하여 해부(害符 : 해할 목적으로 만든 부적)은 준비하지 못했으니. 간단한 추적부일 뿐이다. 아직까진 말이지.”
말을 마친 남자는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더니 곧 엄청난 속도로 사라져간다. 무준은 잠시 쫒을까 고민했지만 남자의 멀어지는 속도를 보면 이미 늦은 듯 보여, 그보다는 저 부적을 어찌해야 할 지 고민한다. 물론 동슥은 그다지 상관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일단 부적을 달고 있다면 언젠가 저 괴인(怪人)이 다시 돌아올 것이고, 동슥에게 해꼬지한 뒤 그녀에게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그녀는 저 괴인의 행사를 방해했으니, 적이라 생각할 것이다. 무준이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는 사이, 동슥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상관치 않은 채, 그저 이상한 남자가 도망간 것과 무준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에만 감격한다. 감정을 숨기는 훈련 따위는 받은적도 없었고 긴장조차 풀어진 그의 얼굴엔 자연스럽게 헤벌쭉한 표정이 들어났고, 이런 모습을 본 무준은 과연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했는가 의심스러웠다.
“정신차려! 저 부적을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할지도 모른단 말야”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온 동슥은 머리위에 부적을 발견한다. 손바닥만한 부적이 은은하게 붉은빛을 품곤 하늘거리고 있다. 말없이 부적을 지켜보던 동슥은 허리를 굽혀 돌맹이 한 개를 줍더니 부적을 향해 던진다. 
“명중이다!”
돌맹이를 맞은 부적은 다시 잘개 흩어지더니 이내 다시 모여선 처음처럼 하늘거리기 시작한다.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이는 동슥의 행태를 지켜보던 무준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한숨을 쉰다.
“무당의 부적이 그렇게 쉽게 없어질리가 없지. 아마 강한 힘으로 단번에 제거해야 할꺼야. 난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안되니... 스승님께 부탁한다고 들어주실리도 없고, 할수없지. 바라매님께 부탁해보자.”
“바라매님!?”
바라매는 인자하고 대범하지만 너무나도 수행을 해서인지 만사를 귀찮아한다. 어쩌면 인자하고 대범한 것도 단지 귀찮아서 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평소엔 상관없지만 필요해서 바라매를 부르려하면 그 귀찮음을 상응케하는 엄청난 재물을 바쳐야 한다. 그렇다고 바라한에게 부탁할수는 없는게, 바라한은 호탕한척 해결해주겠지만 이것을 빌미로 온갖 협박과 압력을 가해 결국 골수까지 우려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슥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부적을 힐끗거리며 다시 한번 바닥에 돌맹이를 집어 들려 했지만 무준의 사나운 표정에 이내 포기하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바라매의 집을 향해서.


[부연설명]
축지술(縮地術)
땅의 혼을 빌려 자신이 서있는 지점과 혼이 서있는 지점사이에 끈을 이어 땅을 접어버리는 술법. 무당이 아니더라도 지기(地氣)에 밝은 사람이라면 행할 수 있는 술법이다. 지기에 밝지 않은 무당이 축지술을 사용하기 위해선 상당한 준비가 필요한데, 도착할 지점에 있는 혼들을 설득해야 하고 - 보통은 그들을 설득하기위해 상당량의 제물을 준비하곤 한다 - 축지를 펼칠 때의 반발력을 막기 위해선 스스로의 몸에 강한 혼을 강신시켜 몸을 강화해야 한다. 모든 준비를 하더라도 거리가 멀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지나가던 도깨비나 무당 혹은 강한 혼령이 축지의 끈을 느끼고 잘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아예 축지술이 시행되지 않거나 전혀 이상한 곳으로 튕겨나가는 수도 있는데, 이렇듯 끈을 끊는 이유는 땅과 땅을 잇는 끈이 근처에서 흐를 경우 혼의 흐름을 느끼는 자들은 몸이 관통당하는 듯한 기분 나쁜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성질 나쁜 도깨비를 만날 경우 오히려 끈을 따라 쫒아올지도 모르니, 축지술을 펼칠 땐 주의해야 한다.



덧1) 양현님은 다음화부터 본격적으로 등장시켜 드리죠. 후후
덧2) 어라 저기 나오는 저 여자는 누구죠? 제가아는 누구랑 이름이 같네요.
덧3) 캐릭터 신청 받습니다. 혹시 본인이 바라매가 되고 싶으신 분 연락주세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42:10 

 

일병 한성용 
  캐릭터 설정은 자유죠??? 2008-12-23
14:25:11
  

 

일병 이석현 
  성용// 
예- 자윱니다. 다만 필자가 그다지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맘대로 변경할수도 있답니다.(땀) 2008-12-23
14:27:43
  

 

일병 이석재 
  저도 나오고 싶군요. 허허허허, 설정도 자기가 잡는건가요? 그렇다면...전 냉소 플레이가 보고 싶습니다 허허 2008-12-23
14:38:17
  

 

병장 양 현 
  해부(害符 : 해할 목적으로 만든 부적)은 준비하지 못했으니. 

해부는. 이 아닐까 싶어요. 으하하하~!! 
나 좀 더 웃고 올께요. 크하하하하하하!!! 2008-12-23
14:51:54
  

 

병장 이동석 
  이건 뭔가요. 껄껄. 혜교-나 태희-는 아니되나요? 여자 주인공 격인 이의 이름이, 이런. 2008-12-23
14:55:57
 

 

병장 이동석 
  [*책* 알고보니 무준이란 사람을 만나러 가나보다. 이름으로 봐선 남자 같다. 시간약속에 철저한 걸 봐선 남들에게 용서가 없고 까칠한 사람일 듯 하다.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한 동슥과 형 동생하는 사이인 걸 봐선 분명 이자도 내 여자에겐 친절할 것이다. 하지만 또한 반대로 생각해보면 시간약속에 철저한 사람이 자기자신의 나태함엔 자비로운 경향이 있어 귀찮은 것을 매우 싫어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시간약속에 철저한 것도 조금이라도 더 게으름을 피울려는 그만의 철저한 계산일 지도 모른다. *책*] 

*책* 이라니, 각주, 뭐 이런의미인가요? 

[그래도 그의 무능력함에 은근히 열받는 사람이 있으리라.] 
[몸이 전체적으로 튼튼해 보이고 커다란 엉덩이에 보름달 같은 얼굴을 가진 것이 동슥의 이상형과 비슷해 보인다] 
무능력함보단, 이상형에 은근히 열받는군요. 낄낄. 

[춘화]를 배달하는 동슥, (낄낄, 그런데 누가 주문한건가요?) 
[입에서 나오는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는 그의 특성 ] 이건 좀 뜨끔- 


[단번에 동슥의 머리를 쪼개버릴 것 같던 기세와는 달리, 남자는 설명하길 좋아하는 성격인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동슥의 반응에 놀라서인지 몰라도 엉겁결에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네 뒤에 있는 혼(魂)의 이름이다.” 
대답을 한 자신도 놀랐는지 흠칫 얼굴표정을 굳힌 남자는 다시 한번 아까보다 더 험한 기세를 풍기면서 외쳤다. 
“이놈, 현을 포기하겠느냐 물었다!”] 

깔깔깔, 그런데, 제게 붙은 혼이 현-이라니, 이거 무슨 남탕도 아니고, 흑. 

다만, [동슥인데요? 이..] 원래 이름은 동석-인데 별명으로도 부적이 되나요? 2008-12-23
14:59:57
 

 

일병 이석현 
  껄껄. 전 무준님 오기전에 도망가렵니다, 2008-12-23
15:02:39
  

 

일병 한성용 
  애니 제나스(18): 영국 석유왕의 외동딸이며 꽤나 미인... 하지만 실상은 명품만 쫓는 된장녀에다가 뭐든지 남을 종부리듯 대하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지님...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서지오라는 동양인 대학생을 알게 되는데... 

서지오(21): 축구계의 무링요, 음악계에는 강마에처럼 대상이 누구건 간에 독설을 날리는 꽤나 대인배 성품의 청년... 별볼일 없는 지방대에 다니지만 치대생이라서 앞날은 꽤나 창창할 듯... 언제인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언젠가 만나게 된 버르장머리 없는 백인 아가씨와의 전혀 끊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인연이 시작된 것을 꽤나 골치아파함. 2008-12-23
15:04:03
  

 

병장 이동석 
  그리고, 바라매-님은 왠지 영목님이 딱일것 같다는 생각이 (거대하고 아름다우신,) 

그리고 바라한은 오히려 무준님이 어울리는데 (후다다다닥) 2008-12-23
15:07:22
 

 

병장 이동석 
  아 그런데, 정말 있죠, 저 책마을 주민들이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환상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일전에 릴레이 소설 쓰면서 더욱 그랬고, 그런데 지금까지 못쓰고 있는데, 역시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열심히 써야겠어요! 흐흐. 2008-12-23
15:08:41
 

 

일병 이석현 
  동석// 
저는 뭐 딱히 등장인물을 책마을분들로 채우고 싶다기보단- 본인이 나오는 글을 보면 왠지 더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으흐흐 
*책*은 제가 임의로 표시하고 안지운건데... 제 도련님들이 볼땐 지우고 보여주는거죠.흐흐, 등장인물은 같답니다. 안그래도 무준이란 이름에 대해 항의가 좀 있어요.(덜덜) 
춘화는 바라한의 독서생활이랍니다. 
현- 예 맞습니다. 현입니다. 성은 뭘까요 깔깔. 
물론 부적술은 본명만 해당됩니다. 뭐 꼭 이름을 모른다고 안되는 건 아니지만 복잡한 인과관계가 어울린 탓에, 아무래도 실패할 확률이 올라가죠.(간단하게 생각하면 게임에서 스킬을 쓰는데 미스가 뜬다고나 할까요) 인과관계는 너무나도 복잡하여 설명해봤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패스-가 아니라 설명할 재주가 없답니다 후후 

성용// 
....설마 저 인물들을 등장시키라는 건 아니겠죠?(땀) 

양현// 
같이 웃죠 껄껄 2008-12-23
15:27:38
  

 

상병 김무준 
  정확히 헐 네 번에, 어이 없는 웃음 다섯 번. 거기다 여자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아니꼽네요. 울컥. 아 요즘 울컥하게 만드는 일이 왜이리 많을까. 2008-12-23
15:51:23
  

 

일병 이석현 
  헐. 무준님- 
원하신다면 이름 바꿔드릴께요- 2008-12-23
16:04:01
  

 

상병 노유승 
  바라매.. 나도 되어보고 싶어 지네요... 
저도 출연 가능한 건가요..?헤헷. 2009-01-17
17:3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