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의미있는 현상을 꼽으라면 단연 록과 밴드의 꾸준함이다. 월드컵 기간중 거리로 몰려나온 수십만 인파를 호령한 윤도현 밴드가 ‘국민가수’ 대우를 받게 된 후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 주류 가요계의 변방으로 완전히 밀려났던 ‘소수의 음악’ 록이 비로소 ‘대중음악’의 지위에 올랐다. 롤러코스터와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했던 Ex를 비롯해, <라디오스타>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노브레인, 자우림, 크라잉넛 등이 윤도현 밴드가 지펴놓은 록의 불씨를 살렸고 체리필터, 불독맨션, 트랜스픽션, 스웨터, 럼블피쉬 등 밴드도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선전하고 있다. 반짝 특수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모처럼 한 무리를 이룬 록밴드들과 각각의 면면은 ‘록의 전성시대’를 기대해보게 한다. 




성공한 록밴드들을 꼽다보면 가장 흔하고 단순한 특징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리드보컬이 여성이냐 아니냐는 것. 자우림의 김윤아, 체리필터의 조유진, 롤러코스터 조원선, 럼블피쉬 최진이, Ex 이상미, 스웨터의 아아립 모두 여성이다. 




록밴드에서 보컬은 프런트 맨이다. 아무리 연주를 중시하는 밴드라 해도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노래하는 이에게 향하기 마련이다. 노래 실력이 변변치 않은 뛰어난 연주인들이 종종 보컬을 겸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러나 록의 발생지인 미국은 물론 60년대 신중현이 ‘애드4’를 결성하며 시작한 한국 록에서도 여성은 오래도록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70년대 ‘피메일(female) 록’ 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서구에서도 ‘록=남성의 음악’ 이라는 도식은 꽉 끼는 바지, 땀에 전 민소매 셔츠, 치렁치렁한 긴 머리 남성 같은 남성적 이미지와 함께 팔에 맞은 불주사처럼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고정관념으로 남아 있다. 하물며 변변한 여성로커의 존재조차 떠올릴 수 없었던 한국에서 프런트 우먼을 내세운 록밴드들의 인기몰이는 반갑기 짝이 없다. 




리드보컬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무리로 취급을 받는 이들이기에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남성 리드보컬 밴드들과는 다른, 공통의 특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장 단순한 예는 리드보컬이 여성이므로 여성스런 음악을 할 것이라는 짐작이다. 굳이 꼽자면 여러 팀 중 여성적인 느낌은 ‘톡톡 튀는 초록색 음악’을 표방하고 공중에서 부유하듯 맑고 울림이 강한 이아립의 보컬이 특징인 스웨터뿐이다. 건조하고 나른한 음색을 지닌 조원선의 롤러코스터는, 다분히 중성적이고 힘을 바탕으로 저음과 비음을 적절히 구사하는 김윤아의 자우림은 때때로 상업적 여성미를 살짝 드러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저음과 비음이 섞인 묵직한 음악이다. 하드코어를 가미한 조유진의 체리필터는 강력하고 원초적인, 전통적 의미의 남성적 록을 구사한다. 




좀더 나아가면, 여성이 밴드의 리더로서 남성 멤버들과 대등하거나 우월적인 관계를 맺고 있거나 여성의 시각을 노래에 담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도 있다. 밴드 내에서의 비중이 가장 큰 사람은 자우림의 김윤아이다. 대중적인 이미지에서도 그렇고 작사, 작곡 모두 남성 멤버들을 압도한다. 반면 롤러코스터의 조원선과 스웨터의 이아립은 각각 남성 멤버들과 협업하는 편이고, 대중 앞에 보여지는 모습과는 달리 조유진은 음반 수록곡을 체리필터의 이름으로 싣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머지 멤버들과 비슷한 정도의 역할을 한다. 역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에게서도 여성으로서의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의식과 의사소통의 부재를 주로 노래하는 김윤아의 노래에서조차 여성보다는 개인과 젊음이 앞서 있다. 조원선이 만든 노래들 역시 무료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부추기면서도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투여서 노래를 부르는 이의 성(性)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왜 여성이 리드보컬이라고 해서 여성적인 느낌 혹은 여성의 두드러진 역할이나 문제의식을 억지로 끄집어내려 하는 것일까, 그것도 일률적으로. 무엇이 여성적이고 무엇이 남성적이냐를 새삼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윤도현 밴드나 크라잉넛, 부활 등 ‘정상적인’ 남성 리드보컬 밴드에게서는 록이라는 본령 외에 그 어떤 공통점도 묶어내지 않으면서 여성들에게만 무언가, 그것도 공통의 무언가를 부과하려는 것은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는 차별적 명제에 동의하는 것이다. 또 잘못 알려진 공통점은 앞으로 데뷔할 여성 로커들에게도 좋지 않은 가이드라인이 될 뿐이다. 리드보컬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그저 저마다의 개성과 특징을 지닌 하나의 록밴드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이제 막 시작된 한국 밴드의 성적 불평등 해소를 진정으로 지지하는 일이 아닐까 



*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관계로 부대의 몇몇 분들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 가수의 음악성 판단은 개인적 감상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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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여성보컬 , 음악 , 록밴드  추천 : 0, 조회 :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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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병장 김우상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지마 한국의 밴드의 SpotLight는 오직이라고 부를만큼 보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께서는 그렇지 않지만 대중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편중되어 있습니다. 원문에서 언급하신 밴드중에서도 EX의 이상미가 그렇고 자우림의 김윤아 체리필터의 조유진 세력을 확장해서 버즈의 민경훈 FT아일랜드의 이홍기 등이 그 예입니다. 그나마 요즘 밴드들은 미모(?)도 출중하여 많은 관심을 받지만 여성보컬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밴드에 있어서 보컬으로서만의 인식 또한 한번쯤 생각해 볼만 하지 않을까요.
2007-12-12 17:28:49 | ipaddress : 52.2.6.190  

  
 어쩔 수 없는 부분인것 같아요. 
정말 음악을 전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2007-12-13 08:23:14 | ipaddress : 18.77.1.123  

06|상병 전영호A  
 러브홀릭의 지선양도.... 비록 솔로로 나온다곤 하지만, 밴드에서 여성보컬중 하나인데..
2007-12-12 19:47:18 | ipaddress : 5.4.1.183  
02|일병 박종윤  
 이 건은,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루저의 담론과 굉장히 연관되는 부분 같은데, 조만간 짧은 분량의 글로 답글을 달아야 겠네요.(웃음)

2007-12-13 06:07:07 | ipaddress : 26.144.1.29  
02|병장 이기중  
 한국에서 밴드의 SpotLight는 보컬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이야기에 100% 공감입니다. 자우림, 체리필터, 롤러코스터, 러브홀릭 등등의 밴드에서 보컬 외의 멤버들 이름은 하나도 몰라요.(땀땀)

2007-12-13 08:10:04 | ipaddress : 56.4.2.227  
  
 '록 음악에서의 여성성'이라 함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저는 그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진짜로요. 그건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



//록과 밴드의 꾸준함. 록과 밴드가 대중음악계에서 지닌 위상은 언제부턴가 꾸준히, 협소하지요.
2007-12-13 08:28:13 | ipaddress : 52.2.6.64  
  
 현진 // 사회적 통념의 여성성을 록에 대응시켰을 뿐입니다. 

무겁고 예술가연한 프로페셔널들이 하는 음악이라기 보다는 소프트한 목소리에 외모와 이미지가 음악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해진 상황에서 여성 보컬들의 자체의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팬들의 사랑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대중가수' 자체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테니까요.
2007-12-13 08:51:38 | ipaddress : 54.1.35.179  
  
 논외이지만 rock은 재밌는 음악입니다

실제로 이세상 4% 엘리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을때 가장 좋아하는 음악장르는

클래식이 아닌 rock이었습니다(뭐 일례로 빌게이츠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락밴드인 weezer죠)

허나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락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있죠

green day가 american idiot이란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탈때의 인터뷰가 생각나는군요

"아직도 그래미에 락이 상을 탈 자리가 있군요!"

2007-12-13 09:06:21 | ipaddress : 26.1.2.138  

02|일병 박종윤  
 오옷, 공감지수 200퍼센트!(웃음)

그린데이, 최근 앨범으로 올수록 좋아지지요?

2007-12-13 10:00:19 | ipaddress : 26.144.1.29  

02|상병 김준호  
 전 그린데이 예전 basket case 랑 she 부를 때가 더 좋았는데(땀) 
그래도 확실히 american idiot은 여력을 보여준 음반인듯.
2007-12-13 11:33:14 | ipaddress : 16.1.161.78  

  
 개인적으로 american idiot는 상당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2007-12-13 15:00:58 | ipaddress : 26.1.2.138  

  
 정말 여성 보컬들이 가진 이미지는 색다르죠.

뭐랄까 밴드에서 보커링 여성이라면, 가창력의 수준을 뛰어넘어 많은 시선이 집중된다는..



p.s 한때 보컬 밴드를 했던 사람으로 정말 슬프면서도 재미있는 사항이었죠.. 
      제가 부를때랑 여자동기 보컬이 부를때랑..호응도가 달라요 호응도가..흑흑.
2007-12-13 09:44:43 | ipaddress : 38.9.5.74  
05|병장 방원우  
 공감공감~ 호호.  여성 보컬이 더 멋있던데..
2007-12-13 10:49:50 | ipaddress : 5.12.1.94  

  
 저도요.
여성 보컬의 보이스에 빠져 들기 시작하면 정말. 후후.
정말 매력적이죠.
2007-12-13 20:44:08 | ipaddress : 18.77.1.120  

02|상병 이현승  
 여담이지만 우리 나라 음악 프로그램에서 비쳐지는 락그룹의 모습이란 정말 어처구니 없습니다.

80%는 보컬, 10%드럼, 나머지가 기타, 베이스 이런순으로 나오게 됩니다. 온통 보컬에만 초점이 집중되 있죠.

심지어 기타 솔로가 나올때도 보컬만 보여주는 건.. 정말 할말이 잃게 만듭니다.



2007-12-15 15:53:03 | ipaddress : 56.7.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