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쓰느라 그냥 빼버린 내용도 많고 합니다만, 근래 읽은 책중에 가장 파괴적이었습니다. 안읽어본 분은 읽어보세요. 꼭.

독서후기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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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rophy

다치바나 다카시의 저서를 통해 접했던 인문학과 이학간에 존재하는 깊은 괴리를 체감시키려고 다카시는 이학도에게는 세익스피어에 대해 묻고, 인문학도에겐 열역학 제 1, 2 법칙을 물음으로 도쿄대생들을 당혹케 했다. 그만큼, 각 계열에선 당연한 지식에 대해 서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당연한 지식이라는 말이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열역학 제 1법칙은 열의 총량은 보존된다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다. 이는 작게는 화학반응에서부터 크게는 우주안에 에너지 총량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빅뱅이전과 빅뱅이후의 우주 에너지는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열역학 제 2법칙은 무엇인가.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열은 평형상태를 이루려고 한다는 것인데, 이 평형은 곧 열 죽음(Heat Death)로 더 이상 열(에너지)교환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에너지는 사용가능한 에너지에서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로 바뀔 뿐이고, 이 흐름은 결코 역이 존재하지 않음을 말한다. (엔트로피 증가는 곧 불용에너지 총량이 늘어남을 말한다.)



현재의 발전적 세계관은 뉴턴이 토대를 이룬 것으로, 과학기술이 인류의 발전을 보장한다는 논리였다. 채집사회에서 농경으로 다시 산업사회로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정보화기술까지 인류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는 이 논리는, 엔트로피 법칙에 대입하여 보면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발전을 통해 인류가 누리는 에너지 총량을 늘어나고 있다는 이 말은, 제 1법칙에 따라 에너지 총량이 늘어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폐기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있는 발전의 결과물은 다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이것은 발전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채집사회에서 하루 노동량은 5시간 미만이었던걸로 새로이 알려졌다. 이는 현재 인류 대부분이 일주일중 5일을 꼬박 일해야 벌어먹고 사는데 비하면 어처구니 없을만큼 적은 노동량이다.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살지, 왜 농경사회로 넘어왔냐면, 넘어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게, 하루 에 5시간만 (일주일에 약 이틀가량의 시간만 일하면) 채집하면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왜 수확하여 에너지를 얻으려면 8개월에서 10개월 가량 비축된 잉여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농경사회로 굳이 넘어왔겠느냐 하는 거다. 여기에는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바로 유입되는 사용가능한 에너지인 동식물 채집량이 감소했기 때문에 생존에 필요한 유입 에너지량을 늘이기 위해 농경을 도입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이는 각 엔트로피 전환단계에 해당되는 설명으로써, 농경에서 산업으로, 산업에서 다시 IT로 생존을 위해 유입시켜야 하는 에너지를 구하기가 날로 어려워짐으로 그렇게 변한 것이다. 

뭐, 그렇더라도 농경사회까진 좋다. 그때까지만해도, 에너지는 적절한 순환을 하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산업사회다. 과학의 발전은 이전처럼 순환가능한 에너지에서 비순환성 에너지 즉 지하자원에 의존한 문명이다. 때문에 자원이 고갈될수록 에너지 채취 비용은 비싸져만 간다.(쓰는 돈에 비해 채취하는 에너지자원의 량은 점점 줄어가면서 효율이 낮아지고, 국가는 돈을 풀기만 할뿐이기 때문에 인플레는 가중된다.) 때문에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말은 환상이 되고만다. 현재 우리가 기반한 성장은 모두 비순환성 자원에 입각한 것인데, 이 자원 자체가 고갈된다는 것은 자꾸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열로 발전을 하면 될거라고? 하는 환상도 확실하게 깨부순다. 태양열은 물을 데울 수 는 있겠지만, 난방은 할 수 없다. 는 말처럼, 현재의 고 에너지 사회구조에서 태양열의 효율은 지극히 낮으며, 모든 산업구조와 생활방식이 재편되지 않는 이상 태양열 및 풍력의 순환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은 지극히 어렵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길은 없는가. 필연적으로 현재 우리는 엔트로피 분수령을 지나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플레는 심해지고 있으며, 각국의 빈부격차 역시 지독하게 벌어지고 있다. 자원은 끝을 내보이고 있으며, 산출량도 줄어가고 있다. 이에 저자는 에너지 완충기를 최대한 확보하여, 엔트로피 전환기를 효과적으로 맞이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 전환기는 혹독할 것이며, 세계의 인구가 20억내외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해야 인류의 존속이 가능하다.


옛 그리스 철학자와 동양철학은 옛것을 최대한 지켜서 후세에 전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연 지배적인 사상을 가지게 됨으로, 기존의 것들은 깨어지고, 무지의 소산으로 간주되어왔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 함을 인류 스스로 느끼고 있으며, 도시 ㅡ 가장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소비체 ㅡ를 벗어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이를 증명한다. 발전은 꿈이며, 순환과 지속이 미래를 이끌수 있음을 리프킨은 말하고 있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 2법칙의 다른 이름으로, 발전과 진보의 세계관을 때려부수는 새로운 세계관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조르제스크-레겐과 같은 이전 학자들이 학술했던 엔트로피 개념을 종합하여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였다. 이 책을 통해 현재의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낙관주의자(다 잘될꺼야. 에너지 효율을 높이자!), 향락주의자(미래가 무슨소용인가! 나만 잘먹고 즐기면되지!), 들이 눈을 뜨고 후손에게 최악의 미래를 선물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함을 알았으면 한다. 



고 말한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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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지는 삶에의 의지는 엔트로피 법칙의 반동이라고 한다.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반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다. 정신의 수준이 고도로 높아질수록 인류의 지속이 담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높은 성현들의 생각이 극도로 적은 엔트로피를 발생시키는 생활을 강조하며, 육체의 쾌락(엔트로피 증가에 원인인)을 멀리한 만큼 고도의 정신을 가지는 것이 그 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관련하여,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기독교의 신학자들은 인간이 만물의 주인임을 말하는 구절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며 변화를 종용하지만, 아직까지 큰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식으로 올가미에 걸린 짐승마냥, 줄에 목이 죄여 죽을때까지 달리는 것은 미련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슬프고, 안타깝고, 희망을 가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