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필진론 : 나는 왜 논쟁하는가 
 
 
 
 

  오승원 님의 글로 시작된 '필진'에 대한 말싸움은, 몇몇 분들의 내지름을 거쳐서 동석 님의 글로 대략 정리가 된 듯이 보인다. 동석 님은 일련의 말싸움이 ['필진이 책마을 회원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지적한 글을 놓고 '책마을 회원이 필진을 대하는 태도'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하기 때문]에 소모적이라고 지적하면서, 필진들은 책마을 회원들을 대하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보여야 생산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싶다.
  그럼 이렇게 대충 진화된 화재현장에서, 나는 왜 다시 글을 쓰는가. 우선은 동석 님의 '필진 논의'에 대해 동의하기 때문이다. 책마을 필진의 역할은 보다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결국 내 글의 결론은 '필진'의 역할에 대한 내 나름의 정리가 될 것이지만, 내가 좀 더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글쓰기와 글읽기의 문제다.


  먼저 이 점을 분명히 하자. 맨 처음 올라온 오승원 님의 글은 필진 대 회원의 구도라든가 필진이라는 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대부분의 칼럼이 이해하기 어렵다, 읽으면 기분이 더럽다, 좀 알고나 써라' 등등의 순수한 '글 내용상의' 문제제기만 있었다. 동석 님은 [오승원님의 잘못 이전에, 그 속에 있는 진지하고도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것이 진지하고도 근본적인 물음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글의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글은 쓰는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 그냥 드러내지도 않는다. 고스란히 드러낸다. 왜냐하면 글은, 말과 더불어 한 사람의 정신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춤을 춤으로써 자신의 정신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런 예술들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이다. 그러나 글과 말은 그렇지 않다. 특히 글은 그것이 형태를 지닌 채 - 종이 위든 온라인 상에서든 - 고착된다는 의미에서 더더욱 직접적이며 오래 남는다. 또한 글은 다른 이의 육체가 아니라 그 육체를 움직이는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굉장히 파괴력이 강하다. 그러므로 글은 함부로 써서는 안되는 것이며,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무겁고 위험한 도구를 다루는 것인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글이 곧 정신이며, 정신이 곧 그 사람의 글이다.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이 둘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인간은 글을 쓸 필요조차 없다. 글을 쓰는 기본 자세부터 틀려먹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글이 자기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글 내용에 대한 지적은 곧 글쓴이의 인격과 정신상태에 대한 지적이다. 이것만큼 한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지적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오승원 님의 첫번째 글이야말로 "진지하고도 근본적인 물음"이다. 적어도 승원 님이 비판하는 '칼럼'을 쓴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러므로 승원 님은 '칼럼'에 대해 지적함으로써, '칼럼'을 쓴 '나'라는 인격이(어떤 특정인을 지정하지 않았으므로 나를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이해하기 어렵고', '뻔한 얘기 비비 꼬아 말하며' '기분이 더럽고'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뻔뻔히 내뱉는', '싹수가 보이는' 인간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 그런 인간인가 - 즉 그런 글을 썼는가 - 하면 그렇지는 않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다. 유머가 부족한 점이야 그럴지도 모르고, 읽고나니 기분이 더럽다는 것은 승원 님의 감상이니 할 말 없다. 그러나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타협이 안 된다. 나는 뻔한 이야기를 비비 꼬아서 말한 적이 없으며,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던 적도 없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결코 쓴 적이 없다. 내가 한 점 거리낌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단순하고' '상식선상에 위치한' 글을 쓰는 나로서는, 이런 문제제기가 어처구니 없다.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화가 나는 것이다. 다른 필진들이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화내지 않고 '승원님의 사과를 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라든가 '능력이 안 되서' 등등의 말을 뱉어낸 것에 대해서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건 자기 글에 대해 떳떳하지 않다는 것과 동일한 말이다. 나는 내 손으로 그렇게 엉망진창인 글을 올렸소,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승원 님의 첫번째 글과 같은 엉터리 지적에 대해서조차 정당하게 화를 낼 수 없는 글은 애초에 쓰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리고 대부분의 필진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지만) 애초에 책임질 수 없는 글 따위는 쓰지 않았다. 정재명 님은 어떤 답글에서 '공개된 글이라면 비아냥거리고 씹어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는데, '공개된 글'의 책임은 팔 내리고 서서 각목으로 치는데도 두드려맞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문제제기에는 정당한 답변으로, '근거없는 엉터리 지적'에는 정당한 분노로 답변하는 것이다. 내 글의 수사나 논리의 헛점을 지적하는 올바른 문제제기라면 모를까, 근거도 없고 느낌만 나열한 개수작에는 절대로 무릎꿇을 생각이 없다. 글로 밥벌어 먹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아는 인간의 자세란 무릇 그래야 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책임도 질 수 없는 엉터리 글을 여기저기 싸질러 놓기 일쑤이며,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룸펜으로 인생을 마감하기 쉽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앞으로도 승원 님의 첫번째 글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글)을 정당한 근거도 이유도 없이 폄하했기 때문이다. 내가 예전에 강성주 씨와의 논쟁에서 집요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태도는 옳지도 않을 뿐더러 아무 결론도 못낸다. 지적을 하려면 그것이 어떤 부분인지, 혹은 어떤 글인지, 아니면 적어도 누구의 글인지는 말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 필진 개개인들을 싸그리 묶어 그들의 글을, 인격을 진흙탕에 내동댕이 치는 것은 무슨 태도인가.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다.
  승원 님의 글을 조목조목 지적해 가면서 어디가 틀렸는지 따지고, 글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라는 '누구나 다 아는 진실'을 구구히 설명해줄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자세에 대해서 긴 시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두겠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승원 님의 제대로 된 해명을 원한다. 승원 님의 두번째 글은 '정당한 분노'를 가중시킬 뿐, 절대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 더불어 그 해명에는 그놈의 '요구사항'이 뭔지 조목조목 지적해 주는 행위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 해명이 있다면 나는 승원 님의 글을 정당하게 인정할 것이며, '개수작'이니 하는 발언도 취소할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서, 나는 글의 내용이 아니라 필진 개개인들을 '필진들'로 묶어 공격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이 '말싸움'에서 끊임없이 비난받는 '필진들'의 개념은 대체 무엇인가? 현재 책마을에서 필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총합인가? 분명 그것은 아닐 것이다. 승원 님의 글에서도 드러났고 다른 분들도 심심찮게 말했듯이, 그 '필진들'에 하지연 님은 빠져있다. 내 생각에는 감성적인 글을 쓰는 김형진 님도 빠져있을 것이고, 과작(寡作)의 필진인 안대섭 님 역시 제외되었을 것이다(여기에는 별 이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므로 굳이 논증하지는 않겠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필진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사실은 필진 제도나 책마을의 구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통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일부 필진들'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것이다. '필진 제도'의 문제와 '일부 필진들'의 문제, 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밤나무와 참나무만큼 다른 문제다. 얼핏 보면 비슷해보일지 모르지만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도대체가, 승원 님의 첫번째 글처럼 '막 쓴' 글은 물론이거니와 기타 '필진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필진 제도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로 봐 줄 필요가 없다. 물론 그 문제제기가 얼마나 서투르고 어처구니 없든지간에, 우리 책마을이 그 문제제기를 통해 더 나은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는 있다. 그건 옳은 길이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발전이 없다.
  이런 '일부 필진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먼저 그 문제제기가 필진 제도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부의' 필진들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글을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말이다. 엄한 사람들까지 한곳으로 몰아놓고 '필진들'이라는 푯말을 걸어놓은 뒤에 사격하는 모습은 비극적이기 이전에 희극적이다. 도무지가 우스운 일이다. 줄간격이 좁은 공책에 정확하게 글을 쓸 수 없는 어린아이가, 큼직큼직한 깍두기 공책에 삐뚤빼뚤 글을 쓰는 모습이 연상된다. 불만을 가지게 된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그 하나만을 공격하기에는 여의치 않거나, 그냥 심기에 거슬려서 '필진들'이라고 싸잡아 공격하는 것은 아니냐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글'이나 혹시 모르겠지만 '인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려면 초점을 그렇게 좁혀서 해주는 것이 상호간에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 '글'이나 '인간'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명이라면 그 '글들'과 '인간들'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어떤 '인간'의 어떤 '글' 속에 있는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지적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비평의 방식이다. 절대로 '필진들'이라고 도매금으로 한데 묶어서는 안된다.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없는' 글이나 인간(하지연 님 같은)이 속하게 되며, 엉뚱하게도 필진 제도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런 문제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할 말은 다 했으니, '해야 할 말'을 할 차례다. 그건 바로 필진이라는 제도의 문제다. 이게 진짜 문제이며, 정말로 이야기를 해 볼만한 문제다. 지금까지 내가 앞에서 했던 말들은 문제점의 '지적'이지만, 이것은 발전을 위한 '한 걸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前者)도 후자(後者)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전자가 후자보다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 실질적으로 물고 늘어져야 하는 문제는 후자다. 왜냐하면 '말싸움'은 어느 정도 진화되었으며, 우리 책마을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후배들이 군대에 와서도 책마을을 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인터넷이 연결된 부대가 아니라도 좋다. 책마을이면 된다. 좀 거창하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사람들을 성장시켜줄 수 있고, 또 실제로 성장시켜준다. 이런 곳은 되도록이면 오래, 그리고 올바른 방식으로 지속되어 나아가야 한다.

  동석 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필진에 대해서 생각한다. 물론 이런 '제안'은 스스로의 것부터 제시한 다음에 '제안'하는 것이 순서다. 나로서는 어째서 '필진'인 동석 님이 자신의 '의견'은 제시하지 않은 채 다른 필진들에게 '제안'하는 것인지 좀 의아하다. 동석 님의 '의견'을 먼저 제시했더라면 동석 님의 의도가 보다 명확하게 전달되고 글의 설득력이 배가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런 순서의 문제가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애초에 이 '필진'이라는 것은 어떤 규정과 방침에 의거해서 활동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공지사항을 봐도 그렇고, 나부터도 '필진'이라는 것은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을 자유롭게 쓰는 자리라고 알고 있었다. 상원 님이 답글로 말했듯이, 나 역시도 필진 제의를 받을 때 '쓰고 싶은 글을 자유롭게 쓰시면 됩니다'라는 말만 들었다. 형식도, 주제도 제한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시콜콜한 일상잡담만을 늘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른 필진들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도 필진이 되고 나서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 지 구상했다. 그 구상은 필연적으로 '자유롭게 주어진' 필진이라는 역할에 대한 자기규정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나는 '필진'을 어떻게 규정했는가. 그 내용에 있어서는, 공개된 글을 여러사람이 보는 앞에서 쓰는 이상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고 주장하고 싶은 어떤 것'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식은 입대 전에 써 왔던 것을 그대로 가져오기로 했다. [에세이]와 [Ex-Libris]다(어떤 형식인지는 '얼개'에 다 써 있다). 그리고 역할에 있어서는 이 '필진'이라는 자리가 일종의 '서비스 직종'이라고도 생각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글 쓸 시간이 자주 나는 전우들이 다른 전우들을 위해 '생각해 볼 만한', 또는 '서로 이야기해 볼 만한' 글을 쓰는 일, 그것이 필진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자기규정에 맞춰서 지금까지 글을 써왔다. 여기에 어긋나는 글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자신할 수 있다. 이번 '말싸움'과 관련된 듯한 칼럼 '새로운 단계에 대하여' 역시 미리 구상했던 것이며, 논쟁과 상관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회원들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 경우에는 칼럼으로 쓰지 않았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책가지에 올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내가 다른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지, 단순한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써왔다. 그리고 아마 다른 필진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이것만큼 단순하며 이해하기 쉬운 조건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써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자꾸 '필진'이라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로 나눠 보았다.

  1) 글이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제기 - 라고도 할 수 없는 투정 - 은 승원 님의 첫번째 글과 일맥상통하며, 이전에도 종종 나타났던 것이다. 굳이 쉬운 말을 어렵게 쓰며 잘난 척 하려는 것 같다 - 어디까지나 같다 - 는 것을 근거로, 이런 방식의 문제제기를 했다.
  나는 이 문제에 하지연 님이 제외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필진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 필진들'의 글쓰기 문제다. 그 '일부 필진들'은 그들이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이들에게 '이해하기 어렵고', '비비 꼬아 말하며' '했던 말을 또 하는' 느낌 - 어디까지나 느낌 - 을 준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런 식의 문제제기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글의 어떤 부분이, 무슨 논리구조가 잘못되었고 허술한지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는 '일부 필진들'도 그 '느낌'에 맞춰서 글을 써주는 것밖에는 해결방법이 없다. 애초에 필진들에게 쓸 수 있는 범위와 내용,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기준에 맞춰'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규정과 제도가 시행된다면 나는 즉각 필진 자리를 반납하고 영원히 책마을에 발을 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세상 어느 독재시대에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 - 작가가 쓸 수 있는 범위를 강제로 규정하는 - 을 요즘 같은 시대에 당한다면, 그게 잘도 참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건 웃기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글의 문제점을 온당하게 지적하고, 혹은 느낌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근거(예를 들면 어떤 글의 어떤 부분이 이러이러해서 기분이 나빴다, 든가)를 갖추었다면 필진들은 그것을 겸손하게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개수작'과 '지적'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언컨데, 내가 책마을에 발을 들인 뒤로 지금까지 필진들의 글에 대한 불만에 '개수작'은 많았어도 '지적'은 없었다.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진들의 글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해서도, 뭔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려는 사람들은 누구의 어떤 글인지를 명시해주면 좋겠다. '~인 것 같다'는 말로는 누구도 설득할 수가 없다. 나에게도 '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심증이 있으며, '이문열과 젖소부인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심증도 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런 걸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2) 필진들은 권력이다
  사실 이게 문제의 본질이다, 라는 식의 어법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문제의 본질인 것을. 필진들의 글이 이해하기 어렵다느니, 잘난 척 하는 것 같다느니(이런 말이 실제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런 의미는 충분히 드러난다), 뻔한 말을 비비 꼰다든지 하는 말들이 자꾸 나오는 것도 다 이 문제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필진들은 '특별히' 마련된 '책가지'라는 게시판에 '모두에게' '공개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책마을 게시판의 글들이 쌓이고 흘러가면서 2페이지 3페이지로 넘어가는 와중에, 필진들의 글은 '책가지'라는 독립된 게시판에서 오래 유지되면서 특정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준응 님이 어딘가의 답글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책가지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없는 일반 회원들 중에도 어렵게 쓰고 난해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충분히 많았는데 거기에 대한 지적은 여지껏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필진들은 드러나는 글을 쓰고, 그로 인해서 주목을 받으며 그렇기 때문에 불만을 사고 문제를 제기당한다. 만일 책가지 게시판이 없다고 상상해 보라. 책마을 게시판 하나만이 존재한다. 여러 사람들이 여러 글을 쓴다. 글들이 쌓이고 밀려 내려간다. 이런 식의 시스템에서는 따로 '공개된'글을 써서 '주목받는' 일이 없기 때문에 '권력'이니 '수성'이니 하는 발언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필진 자리를 1년 넘게 지켜왔고, 유랑의 와중에도 꾸준히 글을 써온 나로서는 안타까움이 많다. 왜냐하면 필진이라는 제도가 있고 '책가지' 게시판이 따로 존재하며 '필진들'의 글이 따로 올려지는 한,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결방법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아도, 드는 생각은 이전에 말했듯이 책가지 게시판을 없애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해결책보다는 보완책에 대해서 생각하는 편이 더 좋을 듯 하다. 이 '필진 제도'라는 것은 나름대로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들은 모두 군인이고 모두가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서 글을 읽고 생각하는 일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글을 쓸 시간이 있고 또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다른 전우들을 위해 필진 자리를 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말하자면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떤 자리를 맡아 책임을 지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없다면 책마을은 꽤나 심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보완책으로는 필진의 조건과 책임, 그리고 글 내용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있겠다. '필진들'에 대한 두리뭉수리한 비난을 억제하는 효과는 확실히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은 운영진과 필진들, 그리고 회원들 모두가 함께 논의해봐야 할 문제다. 여지껏 책마을에서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는 것은 의외로 문제가 쉽게 보완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불어 '이달의 독서후기/내글내생각'을 확실히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책가지'라는 게시판이 단순히 '필진들'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좀 더 뚜렷하게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그 자리는 '칼럼'이 올라오는 자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책마을 회원들 모두가 함께 읽어볼 만한 글을 올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책가지 게시판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읽어볼 만한 글을 눈에 띄는 자리에 걸어놓는 것.
  정재명 님은 "바깥과의 교류가 제한됨으로 인해 지식의 유입에 한계가 있다"는 말을 함으로써 필진들의 글에 '한계'가 존재함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수성"하며 "연대"하려 한다는 논리를 이끌어 낸다. 그러나 지금 군에 있는 우리들 20대 - 대부분은 대학을 휴학하고 왔을 - 에게서 과연 어떤 '한계 없는' 지식을 바란다는 것일까. 책가지 게시판은 '결함이 없고' '한계가 없는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사이에서 우리들의 머리로 우리들의 손이 써낸, 우리들이 생각해 볼 만한 글들을 다 같이 보자는 의미에서 게시하는 자리다. 거기에 대단한 지식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이대가 제한된 모임이라면 어떻게든 생길 수밖에 없는 한계점이며, 동시에 장점이다.


  나로서는 여기까지가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의 전부다. 사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의견의 표현에 불과하며, 진짜로 발전적인 방안은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가운데에서 생겨날 것이다.
  글을 마치기 전에, 이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책마을 회원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필진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감은 수시로 있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동석 님의 말대로,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반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문제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렇기에 이 논쟁은 유의미하다. 사실 이런 논쟁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가 통증을 느낄 때 병원에서 진찰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논쟁은 누군가의 문제제기로 인해 일어난 것이고, 그것은 이 커뮤니티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논쟁은 그것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뻗어 나감으로써 의미가 생기는 것이지, 논쟁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 가지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논쟁이 줄 수 있는 것까지 무의미하다고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이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대체로 팔짱 낀 채 '어이 어이, 그건 다 무의미한 짓이야. 그만둬'라고 말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들은 분명 바깥 세상에서 이런 경우를 종종 겪었을 것이고(나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지만), 그래서 진저리가 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로서는 좀처럼 쉽게 '무의미'를 말하고 포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책마을'이라는 곳은 나에게 소중한 공간이며, 지금 군대에 몸을 담고 있는 다른 이들이나 이후에 입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소중해질 공간이기 때문이다. 정재명 님의 발언 중에 "어쩔수가 없습니다. 싫어도 못떠납니다"라는 발언 만큼은 진실이다. 이곳은 격리된 공간이고, 따라서 우리들은 '한 곳에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성장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논쟁에서 의미를 찾고 뭔가 만들어내려고 하는 일은, 너무나도 뻔한 결과가 보이는 '플레임'의 굴레 속에서 허덕이는 뻘짓이 결코 아니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이 공간이 소중함을 느끼고, 나 이후에 군대에 몸 담게 될 수많은 후배들에게도 이 소중한 공간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물론 그 '미래의 군인들'은 나에게 그런 일을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고, 아마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모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게 되더라도 감사를 느끼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이 공간이 '군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이 공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병장 송주영 (2006/03/25 14:57:25)

그래서, 
이 논쟁의 끝에는 에덴이 존재하는 건가요?    
 
 
병장 허원영 (2006/03/25 15:08:49)

적어도 이 지상에서, 하느님이 하늘에서 '옛다'하고 던져주는 에덴 같은 건 없습니다.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죠. 책마을이 무슨 에덴으로 바뀌기를 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어 그래, 이제 말싸움 같은 건 질렸어'라고 손 놔 버리면 그걸로 끝입니다. 에덴은 커녕 노아의 방주조차 사라지겠죠. 

이 책마을이 수 차례의 유랑의 역사를 거쳤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작은 커뮤니티는 그 험난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운영진과 여러 회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계속 자리를 잡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냥 손 놓고 방관하면서 냉소하는 거야 뭐 어렵습니까. 거기에 무슨 책임이 있습니까. 이번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말들과 심하다 싶은 빈정거림이 눈쌀을 찌푸리게 했고, 그것이 큰 의미 없이 지속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끝에 에덴이 존재하는가?'라고 물으면 당연히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논쟁의 끝에 에덴이 있을 리가 있습니까. 다만 저는 이런 논쟁이 그냥 무마되고 사라져 책마을의 기반이 흔들리고, 결국 미래에는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결과를 우려하는 겁니다.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에덴을 꿈꾸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발붙이고 이야기를 나눌 작은 동산 하나가 흔들리는 게 걱정되는 것입니다.    
 
 
 병장 박준응 (2006/03/25 15:26:38)

원영 / 
속이 시원한 글입니다. 
동석씨의 글을 읽고 든 찝찝함도 해결해 주셨고, 
마음대로 안 되는 반박의 조각들을 제대로 묶으셨군요. 
제가 필진이 아니어서 더 자유롭다는 입장상의 이유로 부질없이 휘두르던, 그래서 많이 부족한 칼을 놓을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글이네요. 

그리고 논쟁에 끝에 에덴이 존재할 거라고 믿고 싶어지네요.    
 
 
상병 박종민 (2006/03/25 22:28:26)

이런 글을 출력으로도 부족하지요. 
필사해봐야 됩니다. 

저도 어설픈 펜대 그만 굴려야겠어요.    
 
 
병장 한상원 (2006/03/26 02:39:52)

저 역시, 일련의 글들에 대한 분노(?)의 정도에서 원영씨와의 차이를 보일뿐, 기타 필진 제도에 대해서는 원영씨와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흐지부지 넘어가기 보다는 필진제도에 대해 합의를 명시화하는게 좋을 것 같군요. 일종의 서비스라는 생각-원영씨가 주지 하셨다시피, '글 좀 올려주지 뭐' 따위의 시혜적 의미가 아니라- <자유롭게 쓴다>가 필진들에게 주어진 틀이었다는 것을 책마을에 처음 오는 분들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촌장, 리장님과 필진분들,주민분들의 중지를 모아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의 칼럼, 일련의 댓글들, 저는 이 지리한 논쟁이 슬슬 원영씨를 비롯한 많은 분들로 하여금 모두 넓은 범위에서 중언부언만 하게 만드는 소모전으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다음 주까지 계속된다면 말이죠.    
 
 
상병 송희석 (2006/03/26 08:45:26)

결국 내일 공지하나가 퍽 하고 뜰것입니다.(그때 모두가 회원의식을 갖고 참여해주면 참 좋을것 같아요!)    
 
 
상병 엄보운 (2006/03/26 11:03:59)

동석님의 글에 대해 동감을 하여 필진론을 작성했으나 뻔히 보이는 약점을 계속 찌르기에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책마을에 득보다 해를 더 끼칠 것 같아 원영씨의 글에 답글을 답니다. 계속된 소모전으로 감정이 상한 사람이 필진론을 쓰는 것보다는 이 쪽이 더 발전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생각도 원영님과 같습니다. 필진과 책마을 회칙(?)에 중지를 모아야한다면 이 글을 기반으로 했으면 싶습니다. 촌장님과 리장님께서 공지를 올려주시면 그에 따라 적절한 제 의견 표시를 하겠습니다. 

원영씨 글은 역시.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군요.    
 
 
상병 안대섭 (2006/03/27 08:57:51)

댓글로 다작한다고 생각했는데...(털썩)    
 
 
상병 정재명 (2006/03/27 15:37:22)

제 이름이 나와 어찌할 선택의 여지 없이 리플을 남깁니다. 
대단한 지식이 존재 하지 않는다는것을 인정하고 쓰셨음에도 꽤나 많은글 (일일이 찾아볼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해 찾진 않았습니다만.) 에서도 지식의 우월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표기나 용어의 사용등이 느껴짐은 대단한 지식으로 가장한체 표현되고자 함을 뜻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같이 보고 그러자고 게시하는 글이라고 하심에도 그게 일시의 과시의 의미를 지니는 글도 있는것 같습니다.(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전체를 의미하는것도 아니구요.) 
그리고 연대와 수성이라는것은 단지 용어의 사용으로 인해 어찌 이해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에 리플달린것들을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어느정도 편갈림 현상이 나타나고 갈라진 안에서 팔은 안으로 굽고 있다는 것을요. 안으로 감싸고 돌기는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쨋든 문제도 잘 집어 주셨구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해석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튼 무한 소모성 논쟁이 될것 같기도 하구요. 자기중심의 입장을 철저히 배제한다는거 자체가 
원체 힘들기 때문에 조금 힘들긴 하네요.    
 
 
상병 정재명 (2006/03/27 16:01:02)

아 그리고 하나. 이것 역시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시겠죠? 
모범답안을 제시하려 쓰신건 아니라고 보겠습니다.    
 
 
 병장 박준응 (2006/03/27 16:14:54)

제가 나설 건 아니지만 하나만. 

일일이 찾아볼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해 찾진 않았습니다만... 

뭐, 하나를 보고 열을 알기도 하시는 모양이군요. 부럽네요.    
 
 
상병 정재명 (2006/03/27 17:01:13)

뭐 이런식으로 비꼬시려면 비꼬시는건 상관없습니다만. 
모순이란건 이런걸 말하는거겠죠 준응님?    
 
 
 병장 박준응 (2006/03/27 17:07:23)

재명 / 
다만, 원영님께 지식의 우월성, 과시 등을 지적하면서 
재명씨께서는 그 오류를 범하고 계시는 것 같아 한 번 꼬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사실 모르기 때문에, 
거짓이라면 비꼬는 거라고 받아들이실 거고, 
사실이라면 칭찬으로 받아들이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뭐, 저에 대한 선입견이나 반감에서 나온 걸 수도 있겠네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할게요.(꾸벅)    
 
 
상병 엄보운 (2006/03/27 17:13:13)

원영씨의 글쓰기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문장이 술술 떠올라서 마치 서기가 된 것처럼 무슨 뜻인지도 모르게 글을 받아 적어서는 이런 문장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할 때서야 비로소 원영씨 같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을 제대로 읽어보시지도 않고 이런 평을 남기시다니, 재명님께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낍니다.    
 
 
병장 한상원 (2006/03/27 17:14:04)

재명님// 이 질문 역시 편들기의 일환이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필진이나 책가지 게시판에 대해서든, 재명씨가 생각하는 정말 '바람직하게' 현학적 태도든 지식의 과시가 없는 글쓰기에 대해서든, 그리고 무엇보다 더 댓글에서 지적하신 그런 '문제있는' 글들이 무엇인지 밝혀달라는 요청입니다. 그 다음에서야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할 수 있겠죠. 사실, 여러 사람이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데 아무도 답변해주시지 않거든요. 그래야 고칠건 고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겠죠. 그렇지 않으면 영문도 모른채 일방적인 매도에 가까운 비난을 '비판'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상병 엄보운 (2006/03/27 17:30:38)

상병 정재명/ 그리고 모든 글은 개인적인 생각을 담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나름의 모범적인 답안을 포함합니다. 여기에 올라온 진지한 필진론에 대한 글을 개인적인 생각 아니면 모범답안이라고 나누려는 시도 자체가 쓸데없는 논쟁의 불씨만 키울 뿐입니다. 불필요한 말이라 생각하여 다들 거둔 날카로움들을 다시 꺼내지 않게 해주세요. 그건 재명님이 요청하신 것 아닙니까?    
 
 
상병 정재명 (2006/03/27 17:44:10)

보운 //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평을 남겨서 실망하셨다는 보운님께 먼저 말씀드리죠. 전 맨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제 이름이 언급되었기에 말을 한거구요. 제 이름이 거론된 부분에 대해서 답을 한겁니다. 전체에 대해서 한게 아니라는걸 생각해 주시구요. 전체에 대해서 태클걸고 싶지도. 태클도 안걸었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간단답글달기라는 버튼을 눌렀습니다만 [최소한 제 이름이 쓰인곳에 대해서는 말을 해야겠기에.] 

준응// 해석하기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만한 멘트를 남긴건 제 실수겠네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허나 저는 전체를 읽지 않아도 다 안다 이런의미가 아니라. 다른 글들을 이미 읽었기에 다시 뒤져가며 그부분만을 찾아내려 하지 않겠다 라는 의도로 남겼습니다. 그 부분을 너무 비꼬아서 말씀하셨기에 저역시 반응으로 그런글을 남기게 되었네요. 본의는 아닙니다 

상원 // 대안을 가지고 있었고 전체를 해결해 보겠다고 생각했었다면, 이러한 논란의 처음부터 깃발들고 뛰어들었을겁니다. 그러나 저역시 완벽한 답안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뿐더러, 해결해야 할만큼 긴급하고 다급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다만 '이건 좀 아닌데.. 뭔가 좀 거슬린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계속 방관자로 있었습니다만, 어느글을 쓴것도 아니고 단지 리플하나 단것만으로 다른것도 아니고 제 이름이 계속 등장함에 따라 제가 갑자기 중요인처럼 나타나는군요. 
제가 예전에 쓴 리플.[몇개 쓴것도 없습니다만.] 중에 글의 책임성을 말한게 있습니다. 얼토당토 않는 비아냥은 인정할 수 없다는 말도 봤습니다만,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는 결국 글을 쓴 본인에게서 출발한다는걸 왜 빼놓고 계시는지에 대해서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자신의 논리가 분명하고 합리적이면 그것에 대해서 비아냥 당하는건 못참는것입니까? 글에 나오는 용어의 수준과 인용의 수준 인물의 수준을 제한하고 표현을 제한하는건 글에서 작게에게 제한을 가하는것이라면 독자의 입자에서는 비아냥대거나 그냥 느낌상으로 맘에 들지 않아 쓴소리 하는것도 막는것이라면 제한을 가하는것이라고 봅니다. 독자의 반응을 기대하고 글을 쓴 글이라면 이유없는 박수도 있을테고[그냥 내용을 몰라도 멋져보이면 박수 칠 수 있습니다. 이런것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법이지요.] 이유없는 조소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필진들은 후자에 대해서는 용납을 절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일부 필진들 께서는 계속 언급되는 글의 용어의 난해함, 인물, 인용의 난해함을 꼭 예문을 필요로 하시는것 같습니다. 이 밑 글들의 제목을 보십시요. 제목만 보고 이해되는 것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려워 보인다고 비판하는게 아닙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목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어의 사용 영어의 사용. 이런것에서 거부감이 오는겁니다. 근데 그것들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않으려 하시고, 고칠 생각도 없으신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에 제한을 가하는것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입니다. 그렇다면 반대급부로 독자되는 입장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되는게 아닙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합니다. 양비론 처럼 흘러갑니다만, 결국 어느한쪽에서 무릎꿇고 죽는다고 해서 끝날일 아닙니다. 어느쪽이든 서로간의 말을 이해하려고 해야겠지요. 
어차피 저는 계속해서 방관자였고, 앞으로도 방관자입니다. 우연찮게 말려들었습니다만, 유목민이기에 남깁니다. 
[글재주가 없어 항상 두서가 없는점 양해드립니다. 리플이지만.]    
 
 
상병 엄보운 (2006/03/27 18:14:33)

상병 정재명/ 

거론된 부분에 대하여 답을 하시려고 하셨겠지만, 첫번째 답글에서와 같이 원영씨 글 전체에 대하여 재명님 의견을 밝히셨습니다. '(전체 글 중에) 꽤나 많은 글에서 보이는 우월성과 대단한 지식의 가장'을 지적한 재명님의 글은 전체적인 부분에 대한 지적이 맞습니다. 

필진의 글이 명백한 인과관계로 오해를 내포했다면 그것에 대해 지적받는 것은 정당합니다. 어느 정도의 쓴소리까지도 수용할 수 있을 테지요. 하지만 글을 공개적으로 썼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모든 책임과 빈정거림의 원인은 필진에게 있어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글을 건성으로 읽어 독자가 오해한 것도,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지 않고 표피적인 이해만 하는 것도, 자신이 자주 보던 문체가 아니라는 이유까지 모두 필진의 잘못으로 돌려야 한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수용자는 절대적으로 수동적이고 결백한 사람임을 가정해서야 되겠습니까. 

제목을 보고 이해 되는 글이 단 하나도 없다는 말은 지나친 과장입니다. 영어의 사용과 한자의 사용에 대한 지적도 지나친 과장이고요. 영어와 한자가 쓰인 글은 아래와 같이 모두 6개입니다. 

1 : 칼럼 : - [얼개] Let Me Introdance Moolself (상병 김강록/050810) 
22 : 추천글 : - life on mars (상병 김형진/051010) 
53 : 칼럼 : - Lesson3 (상병 안대섭/051129) 
102 : 칼럼 : - Time to say goodbye - 어느 평범한 인사 
104 : 칼럼 : - 藝術과 政治의 力學關係에 關한 考察 
115 : 칼럼 : - 득도(得道) [12] 7급 하지연 

22번 글은 필진의 칼럼이 아닌 추천글이니 지적하신 책가지의 필진에 대한 논의에서 빠질테고, 아마도 지적하고 싶으신 현학적인 내용의 칼럼 제목은 104번 하나입니다. 136개의 게시물 중에 단 하나의 게시물 - 많이 양보해서 5개 - 때문에 거부감이 일고, 필진들이 인지해야 하고, 고칠 생각을 해야 한다는 재명님의 주장은 터무니없습니다. 

'그리고 일부 필진들의 많은 글' 이라는 표현보다는 정확히 누구의 어떤 글이라고 명시해주십시오. 그래야 해명을 하던지 오해를 풀던지 다음부터 그런 글 쓰지 않을 생각을 고쳐먹을 것 아닙니까?    
 
 
상병 박종민 (2006/03/27 21:09:57)

재명님// 
의 요지는. 글쓴이는 X대로 쓰고싶은대로 쓰는데, 
왜 글 읽는이는 X꼴리는 대로 말하지 못하는가? 
왜 이들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가? 이거잖습니까. 

텍스트의 생산자와 수용자의 입장은 다르다고 봐요. 
더군다나, 필진이 프로작가도 아니고, 
이거 예를 들어서, 
영화감독이 영화만들어 발표했는데, 
관객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든 X같네 어쩌네 하든 상관없지요. 
하지만 이곳은 생산자와 수용자가 구분된 곳도 아니고, 
책마을이라는 커뮤니티에서 필진과 회원은 같이 숨을 쉬고 같은 글을 읽습니다. 
이건요, 감독한테 직접 찾아가서, 
밑도 끝도 없이 "당신영화 X같아요." 라고 말하는거 하고 똑같애요. 
프로페셔널이라 할지라도, 모욕감을 느낄진대, 
같은 책마을 주민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건 폭력이죠. 
그래서 비평이라는 것은 엄격한 근거를 요구하는 어려운 작업인거지요. 

필진들이 책가지에 글을 올린것은 자유의사이고, 소재도 문체도 자유입니다. 
주민들은 책가지를 직접 클릭하고 더 나아가 필진 개개인의 글을 '클릭' 합니다. 
'클릭'의 의미는 '선택'입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필진의 글을 선택해서 읽었으면 기분이 더럽든 유쾌하든 
그건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지요. "필진의 글이 너무 어렵다, 잘난척 한다." 
라는 개인의 감상은 있을 수 있는 의견입니다만, 
그것을 공공연히 필진들에게 요구해서는 아니되지요. 
그것은 "아, 이글 너무 좋구나"하는 또다른 있을 수 있는 감상의 자유를 박탈하니까요. 
그래서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겁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지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책마을을 떠나라는 말이 아니고요, 
자신에게 안 맞는 글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시고, 
자신에게 맞는 글을 읽으시라는 거지요. 이 곳 책가지에서도 스타일은 다양하니까요. 
하지만 안맞는다고 해서 해당되는 생산자에게 자신의 스타일대로 맞춰달라는 것은 
투정이나 다름없어요. '개수작'이죠. 
그랬다가는 또 다른 이들(원래의 스타일을 좋아했던 사람들)의 즐거움을 빼앗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원래가요, 
글쓰기라는 것이 제목만 보고 훤히 들여다 보이면 재미가 없잖아요. 
글쓰기의 한 기법으로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문제로 지적해주신 영어/한자로 된 제목들은 보운님이 열거해주신건데요. 
글을 잘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제목과 본문이 매우 긴밀히 연결되고,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로 보이거든요. 
아닌거 딱 한 개 있지요. 
영준님의 칼럼. 예술과 정치의 역학관계에 관한 고찰. 
이거는 글을 한번 더 읽어보시기를 바래요. 
제가 보았을 때는, 알아듣도 못할 한문을 잔뜩 써 겉멋만 든 글들에 대한 
반감으로 일부러 저렇게 제목에다가 한문으로 칠갑을 했다는 글쓴이의 설명이 
글에 잘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저 또한 그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구요. 
이런 일련의 글쓰기는 모두 하나의 '기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이렇게 생산자와 수용자가 같이 호흡하는 공간에서, 
직접 "이래서 맘에 안들어"라고 근거도 없이 직접 '발화'하는 것은 5VA지요. 

몇 번을 강조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수용자에게는 맘에 안 들면 싫은 글 안보면 될 '자유'가 있지만, 
생산자에게는 '수용자'중에 맘에 안드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맞춰야할 '의무'는 없지요. 그걸 너무나 당연스럽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옹호하는 것에 대한 분노처럼 보입니다. 

요즘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뱅뱅도는 논의는 사실 이것인거 같아요.    
 
 
상병 정재명 (2006/03/28 07:46:11)

보운 // 하아~ 이제 조금씩 지쳐갑니다~ 똑같은말 똑같은 의미 반복하는것도요. 
보운님께서.. 개인적으로 드리고 싶은말은 말꼬리 잡아서 늘어지는건 논쟁이 아니라 태클입니다. 
제 가 쓴 리플에서 하나도 없다 라는게 개수로서 1개도 없다 이말이 아니라는거를 제가 인정하길 바라신다면 밑에 제목보고 이해할 수 있는거 있습니다. 그말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이 그렇다는거라는거 아셨을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그리 하시는지... 게다가 제목은 그냥 단순한 예에 불과한데 굳이 예를 끝까지 파고 들어서 얘기를 하시겠다면 할말이 없습니다. 그런식으로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건 논리적인 반박이 아니라 물어지기에 불과합니다. 의미를 봐주세요. 수차례 말씀드렸던 사항에 대해서요. 
제가 누가 잘했다고 한적 있습니까? 전 전에 개인적인 쪽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유없는 태클과 비아냥에 있어서는 방법상의 잘못이 분명히 있다고 말씀드렸고, 누누히 리플이나 최고한 제 기준에서 공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글에서는 그런 것이 '잘한거다' 라고 말한적은 없습니다. 최소한 그부분에 대해서 어느정도 인정은 해라.! 라고 요구했을뿐이지요. 

그리고.. 
종민 // 님께서 얘기하시는 상황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예로 드셨다면 그건 일단 필진이란것 그리고 책가지라는것이 있는한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필진이란 사람과 책가지란곳은 생산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데다 시장선두진입의 우위를 이미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다른 생산자들이 생산한것도 동등한 위치선상에 놓고 비교한후 선택하는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되고 다른 생산자들과 공평한 위치에 있는것이 분명히 아니기에(읽는것은 독자의 능력에 불과하다... 라고 하시면 게시판의 분리를 통한 포커스인에 대해서 생각해주셨으면합니다.) 성립이 안됩니다. 
그렇다면 타 생산자에 비해 우월한 입장에 있는 글쓴이인 필진들은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들어가야 합니다.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씀하신 보운님 말씀처럼 말이죠. 읽기 싫으면 읽지 마라. 칼럼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것도 아니고, 필진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것도, 책가지 게시판을 폐쇄해라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공개의 책임에 대해 저는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제가 글에 제한을 하자는것도 아닙니다. 글쓰는이의 책임이 있다면 거기에 대한 비판도 수용할줄 아라고 계속 계속 말하는겁니다. 여기에 누구글은 책임지고, 누구글은 책임지지 말라는식으로 어떤글을 딱 찝어서 예를 들어야 되는겁니까? 그리고 기법 이란 얘길 하셨는데,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상병 송희석 (2006/03/28 08:51:43)

휴! 무의미한 논쟁이 아닌것은 분명한데, 사람인지라 감정싸움으로 번질위험은 존재하네요! 
일단 지훈님이 아직 공지사항을 안올려주셔서 저의 건의사항이 계속 미뤄지고 있네요. 
그런 의미로 지금 여기에 조금 남겨볼까 합니다. 
저의 건의사항입니다. 
1. 책가지는 어느누구나 글을 올릴수 있다. 
2. 책가지에 올리는 글의 성격은 내글내생각으로 준한다. 
3. 책가지에 글을 올리는 모든 회원은 필진이 될수 있다. 
4. 필진은 책가지에 올리는 글들중 회원들의 투표로 좋은글에 뽑힌분들로 직함을 얻는다. 
5. 기존필진은 그대로 필진으로 한다. 
일단 여기까지 건의 드릴께요!    
 
 
상병 엄보운 (2006/03/28 09:35:14)

상병 정재명/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책임'을 그런 식으로 남을 매도하여 도피하실 생각이시라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표현을 인정하기보다는 타인의 정확한 지적을 '태클'이라는 여집합으로 도망치시려는 모습에서 안쓰러움이 묻어납니다. 

뭉뚱그려 '~그런 것 같다.' 라고 말하지 말고 도대체 어떤 글 어느 부분이 이상이 있는지 이야기하십시오. 그런 터무니 없는 지적은 질력이 납니다. 재명님 글을 스스로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거부감이 든다는 영어의 사용, 한자어의 사용이 어디 표현되어 있습니까? 현실을 왜곡하여 자신의 글의 근거로 삼는 것만큼 추악한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잘못된 근거를 들어놓고 그것을 지적당하면 "태클이다!" 라고 주장하고, "단순한 예였는데, 그렇게까지 파고들면 할 말이 없다."라고 말하는 행동은 제대로 된 자세가 아닙니다. 

제목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강한 표현을 '마음을 열고 그 안에 의미를 파악해달라'는 요청을 하시다니- 너무 과도한 부탁입니다. 책가지의 글에 대한 잣대와는 너무나 다른 이중잣대군요. 전반적인 의미가 그렇다는 뜻으로 표현하시려고 했다면 좀 더 약하게 글을 쓰셨어야 합니다. 제 3자가 봤을 때 재명님께서 쓰신 '제목만 보고 이해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라는 표현을 답글에서 밝히신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반박이란 '어떠한 주장 따위에 대하여 반대하여 말함' 이라는 뜻입니다. 재명님께서 쓰신 '태클'은 맥락적으로 부정적인 뜻을 포함하는 '옳지 않은 반박'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신 듯 합니다. 저는 '전체에 대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라는 재명님의 주장과 '책가지 전체를 왜곡'한 재명님의 근거를 지적하고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러한 정당한 지적까지 태클이라고 매도하실 생각이신가요?    
 
 
 병장 양인수 (2006/03/28 12:19:42)

역지사지... 
조금씩만 물러서서 한번 바라봤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안타깝습니다.    
 
 
상병 박종민 (2006/03/28 22:35:18)

저 또한 유감스럽게도 경제학도입니다만, 
재명님의 분석에는 쉽사리 동의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필진과 주민의 관계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죠. 
텍스트의 생산과 그 수용에 있어 올바른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인데, 
'생산자'라는 용어를 바로 재화의 '생산과 소비'로 끌어다 쓰시는 군요. 

오해라면 죄송합니다만, 
재명님께서는 상대방의 글 중에 핵심은 외면하고, 
꼬투리 잡힐 부분을 잡아서 논쟁하시는 
필불패(必不敗)의 알리바이 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래가지고는 결론이 나는 것도 아니거니와, 
좋을 게 하나없는 소모전에 불과하지요. 
논의는 자꾸자꾸 뱅뱅돕니다. 

핵심만. 이야기합시다. 

몇 번을 강조해야 알아들으실지 참 궁금한데, 
비판이 있어야 더 발전하는 법입니다. 그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왜 이걸 제가 외면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만 그 방법론을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재명님과 저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 쇼부치면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안타까운 것. 
반론을 제기하실 때에는, 
상대방의 글을 정독하고 반론을 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 
이 말은 위의 제 의견에도 나왔던 말입니다. 

반복하지만, 비판은 또다른 기호(말씀하셨듯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에 대한 공격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충분히 정당하게 있을 수 있는 또다른 기호의 자유를 박탈하게 되니까요. 
"비판은 신중해야 한다." 는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구요. 
칼럼들의 글에 대한 비판에 정당한 근거를 요구하는 것은 
필진들에게 있어서도, 
또 필진들의 글을 좋아하는 주민들에게 있어서도 "정당한 권리"입니다. 
이건 편가르기가 아니라, 원영님께서도 말씀하셨듯 가치관의 옹호입니다. 
근거없고 가시돋친 독설까지 비판이라고 묵묵히 받아주라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합니다. 

자유는 그것에 책임을 질 때에만이 자유라 일컬어 지는 것입니다. 
상처받을 말을 해놓고서는 책임을 지지도 못하면 그것은 방종입니다. 
아무리 사이버공간이라고 해도, 지켜야할 매너가 있는 법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재명님이 '틀렸다'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병장 노지훈 (2006/03/29 04:25:29)

책마을의 방향성과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운영진과 함께 상의해주시길 바랍니다. 필진은 일반회원이므로 회원의 자유로운 글쓰기에 제한을 가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의 운영에 대한 논의는 공지사항을 확인해주시고 의견을 표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병장 김대현 (2006/04/01 09:33:56)

예전부터 느껴왔지만, 종민씨도 정말 명품리플러이시군요.    
 
 
상병 박종민 (2006/04/02 14:59:12)

↑ 아, 요걸 이제야 보다니. 민망해요(후다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