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탈근대적 거짓말'에 대하여 
 
 
 
 

  김영하는 그의 에세이에서 '작가적 거짓말'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것은 작가들의 '전쟁 무기'로 이용되는데, "경주의 고분군에 가면 가끔 신라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라든가 "저는 가끔 우주의 저 높은 차원에서 다른 존재들과 교감하고 있어요"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김영하가 들은 가장 놀라운 '작가적 거짓말'은 이것이다. "늘 어지러워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 느껴져요." 김영하는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인다. "어쩌겠는가, 느낀다는데."
  이 '작가적 거짓말'의 특징은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는 '탈근대적 거짓말'이라는 것이 떠다니고 있다. 이 '탈근대적 거짓말'의 특징은 말의 모양새는 갖추고 있다는 것, 그러나 정작 자세히 살펴보면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탈근대적 거짓말'의 전형(典型)은 김규항의 책『B급 좌파』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에서 김규항은 이런 제목의 글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드디어 시민들이 국가와 정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서울역의 노숙자들을 보고 쓴 글이란다. 김규항은 이 글을 쓴 자를 찾아서 주먹이라도 날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나로서는 그것이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이런 글을 쓴 분은 정중하게 모셔와서 신문지를 덮어드리고 서울역 광장에서 석달 열흘간 - 12월부터 2월까지 - 생활하도록 해야 한다. 폭력을 쓰는 것은 문명인이 할 짓이 못된다. 적극적인 체험, 사회적 관계의 변화, 그것만이 비로소 인간을 변화시킨다.
  이런 '탈근대적 거짓말'은 그밖에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외계어와 이모티콘의 범람은 기존 언어 구조의 해체를 보여준다'는 주장이나, '독거 노인의 증가는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해 온 기존의 한국사회구조로부터의 탈주를 증거한다'는 식의 말 아닌 말들 말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서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지금 '탈근대 사상' 일반을 싸잡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탈근대 사상이 무엇인지,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른다. 내가 아는 '철학'이나 '사상'이라고는 기껏해야 니체에 멈춰 있을 뿐이다. 그것도 완전히 가 닿은 것이 아니라 겨우 발만 걸치고 있다. 따라서 나는 '탈주'라든가 '기관없는 신체', '탈영토화' 같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 '노마디즘 nomadism'과 라이프니츠의 '모나디즘 monadism'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그렇지만 또한 나는 내가 모른다고 해서 모두 별 의미없는 헛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분명 포스트모더니즘이 이 시대에 의미하는 바가 있을테고, 그것을 학문적으로 연구했을 때 얻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정확히 무얼 의미하고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가가 아니다. 그런 문제를 떠나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도구를 올바른 맥락에서 사용하지 않는 실태를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내 생각에 이런 '탈근대적 거짓말'이 뻔뻔스럽게 우리 사회를 떠돌아다니는 원인은,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사회 배후의 구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허공을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사회구조와 사회의식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아직 전근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예를 들어, 근대사회의 기본은 민주주의의 확립이다. 그리고 어떤 사회에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확인하려면 '사상범'의 존재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사회구조는 아직 전근대적이다. 또한 집요한 검열이 존재하고 특정 담론이 쉽게 배제당하며 사상 검증이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논의되는 모습은 우리나라가 사회의식의 측면에서도 전근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경제구조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는 아직 근대 - 제국주의와 약탈과 정복을 기반으로 한 - 를 벗어나지 못했다. 자본주의 생산-소비 체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으며, 그 구조는 오히려 점점 견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자연사적 필연은 '공산사회로의 이행'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견고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탈근대' 논의는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구조'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절대 무의미하다. 그런 의미에서 '탈근대적인 자본주의 사회'는 '풀만 먹는 호랑이'라는 말과 똑같다. 그런 것은 아직 등장한 적이 없으며, 아마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이런 우리나라에서, 유독 사상만 '탈근대'를 지향하고 있다. 땅에서 발을 둥둥 띄운 채 머리만 '탈근대'라는 허공 속에 집어넣고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사회구조와 의식부터 '근대화'시키고 꿈쩍도 하지 榜 '근대적 경제구조'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도 모자랄 판에, 그저 사상만 앞서 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탈근대적 거짓말'이라는 기도 안 차는 '괴리'와 '모순'의 덩어리들이 버젓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이 어긋남을 해결해야 한다. 사회-경제-사상의 묘한 불일치가 한 사회에 나타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회구조와 경제구조가 근대적인 프랑스나 미국 같은 곳은 탈근대 논의로 불붙어도 상관없다(사실 그 나라에서 뭘 어쩌든 상관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꼭 '사회구조'의 문제나 '경제구조'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것에만 관심을 기울이자는 말도 아니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써먹을 때도,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자는 이야기다. 우리가 발을 디딘 채 숨쉬며 살아가는 이 공간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해 가며 논의하자는 이야기다. 그걸 고려하지 않는 모든 논의들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줄 수가 없다. 그것은 죽은 논의들이다. 

  
 
 
 
상병 송희석 (2006/02/06 08:59:15)

으악! 왜 이글역시 저한테 하는 글로 느껴지는지 모르겠네요.(웃음) 
'탈근대적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저한테는 너무나 가슴아픈 송곳이군요! 
이러한 거짓말쟁이들을 대표하여 변명을 하자면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고 있을때, 탈근대의 논의를 하면 언젠가 우리가 올 탈근대를 조금 
편하게 맞이할수 있지 않을까 해서 탈근대의 거짓말만 할수도 있답니다.(웃음) 
정말 쓰다보니 변명 아닌 변명을 하네요!    
 
 
 병장 한상천 (2006/02/06 09:10:54)

예전에 책마을에서 누군가가 탈근대라는 허울에만 매달리고 있고, 현 사회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는다며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나군요. 제가 기억하는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군요. 물론 우주선이 도킹하듯이 완전하게 맞아 들어가는건 아니지만 말이죠.    
 
 
병장 김형진 (2006/02/06 10:52:46)

상천 // 강성주씨 말씀이신가요, 그 '거짓부리'라는 명문을 남기고 사라지셨던. 훗훗.    
 
 
상병 김강록 (2006/02/06 11:05:31)

형진 / 실은 제가 그 '산업적 엄숙주의'의 주인공입니다. (두둥!)    
 
 
 병장 김동환 (2006/02/06 11:28:55)

그것들이 아직 생명력이 부족한, 죽은 논의들이라는 말에는 동감해요. 그러나 논의를 생성하는 사람들의 의도와는 별개로 김칫국 마시는 논의가 사회현상을 선도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집니다. 제가 느끼기로는 탈근대적 거짓말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라 미처 매듭짓지 못한 그 전단계에 대한 논의가 당장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신 것 같아요. 
원영님의 글을 읽고 원영님의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선뜻 '원츄'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울수는 없는 것은, 언급하셨던 사회-경제-사상의 묘한 불일치에 대한 주된 이유가 엄연히 불가항력적인 현실로 고려되어야 할, 해방이후 그야말로 '급변'해온 사회의 변화속도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요즘 사회에서 재평가되고있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만 보더라도 해당시대에 논의되고 산뜻하게 마무리되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스무해가 넘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다뤄지는 것은 사람들이 사회의 변화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겠지요. 그 시대라고 해서 해당사건에 대한 비판이나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단지 사회 차원에서 그걸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릴 뿐. 
물론 지식인들 사회에서 도통 말잔치라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탈근대적 거짓말'은 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은 저도 간절하답니다. 특히 무슨말인지도 모르면서 들은대로 뱉어내는 분들이랑 세미나라도 하는 날엔 그 바램은 배가 되는걸요. 윽. 
그나저나 제가 맞게 읽은건지 모르겠네요.(땀)    
 
 
 병장 김동환 (2006/02/06 11:31:27)

강록 // 사실 그때 성주님이 뭐라 할까봐 무서워서 말 못했지만 저는 '산업적 엄숙주의'식의 표현이 
과하지만 않다면 굳이 그렇게 야단칠(웃음)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었었었어요. 흐흐.    
 
 
병장 허원영 (2006/02/06 12:21:37)

동환 님께 / 아아, 아닙니다. 제가 말한 것은 "탈근대적 거짓말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라 미처 매듭짓지 못한 그 전단계에 대한 논의가 당장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도 어쩌면 '독해의 문제'에 해당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그런 문제를 발생시킨 일차적인 원인은 글을 깔끔하게 쓰지 못한 저에게 있을테구요. 

먼저 말씀드리지만, 제가 글에서 보여드린 식의 '탈근대적 거짓말'은 절대로 필요 없는 것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죽은 논의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일치한 사회'의 문제를, 그것부터 '당장' 해결하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 불일치가 '불가항력적인 현실'로 만들어진 결과이든, '급변해온 사회의 변화속도' 때문에 생긴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그런 문제들이, 그런 불일치들이 아직 존재한다면 뭘 해도 그 지반을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예를 들어 탈근대 논의를 할 때에도, 반드시 한국의 사정을 고려하고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논의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허공에 붕 뜬' 논의가 되고 말겠지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탈근대 논의'가 필요없다던가, '당장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하자' 또는 '불일치를 일치시키고 나서 무언가를 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쓰더라도 현실적인 지반 위에서 현실적으로 적용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이건 '먹고 사는 문제', '경제 구조의 문제'를 외면한 채 유토피아를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겨냥한 글이었습니다만,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병장 김형진 (2006/02/06 12:30:59)

강록 // 부시대통령의 온정적 보수주의와 함께 xx적 xx주의의 양대산맥이라는 바로 그?! (두둥)    
 
 
상병 엄보운 (2006/02/06 13:12:04)

'근대도 이루지 못한 사회에서 탈근대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논점의 연장선 상으로 느껴지는군요.    
 
 
상병 김강록 (2006/02/06 13:21:26)

보운 / 포스트모더니즘이 진정으로 극복하려 했던 것들을 외면한 채, 새로 얻은 말재주로 기존의 권력을 연장하려는 이들에게는 철퇴를 가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은 보다 시의적절한 전략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되어야지, 자신에게 전염되어버린 근대성을 변명이라도 할 심산이라면 저는 사양하겠어요. 

형진 / 그러게 말이에요. 이거야 원, 엄숙해서.    
 
 
 병장 김동환 (2006/02/06 13:22:43)

아항. 제가 잘못읽었군요. 이런이런.(땀)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니 이제 이해가 갑니다. 히히. 번번히 죄송해요.    
 
 
상병 주영준 (2006/02/06 13:44:31)

데리다는 프랑스보단 영미권 학자에게 더 잘 수용되었다고 해요. 영미권 학자들이라고 더 반동적이고 보수적일 리는 없지만, 대충 그러한 경향성 때문에 쉽게 수용되었으리라는/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리라는 평에 귀를 덮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데리다를 공부하지 않을 필요는 없겠죠. 예전에 여이연 세미나에서 '포르노를 인정하자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대해 한 활동가가 '그게 현재 한반도 사회에서 어떤 전술적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까'라고 비판한 게 기억나지만. 

탈근대든. 전근대든. 근대든. 사고와 사상은 전술적으로. 라는 건 좀 무책임한가[웃음]    
 
 
상병 엄보운 (2006/02/06 15:56:12)

상병 김강록/ 예. 글을 쓰면서 그 같은 비판이 당연히 따라올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몇 마디 첨언한 문장은 철저한 '자기검열'에 의해서 삭제했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강록님의 성향에 동질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