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문학의 위기에 대하여 (상병 허원영/051017)
우리시대의 문학은 위기에 처해 있다, 라고 말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많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도 다양하다.
분명 외양으로 보면 문학은 위기에 빠졌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 싶다. 출판시장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지만,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문제집이나 자격증 시험을 위한 문제집, 또는 국가고시를 위한 문제집 등 문제집이 출판시장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문학 분야를 들여다봐도 판타지라든가 인터넷 소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소설'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규모의 문제도 있지만 '문학의 위기'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창작'의 문제다. 우리시대의 문학 '창작'에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이 '창작'의 문제는 간결히 말해 더 이상 '쓸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훌륭한 소설들은 이미 다 나왔고, 새로운 실험도 모두 시도되었고, 이제는 고정된 틀 안에서 했던 이야기를 또 한다.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더라도 이전에 있었던 것이다. '문학의 위기' 운운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대부분 이런 비아냥이 내포되어 있다.
이런 주장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서 나는 일말의 자괴감 같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후대의 사람들이 전대의 창조물을 찬양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은 하루 이틀 된 습관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그렇지 않았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우리는 전대의 찬란한 창조물들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된다. 우리 세대가 과연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인간의 삶을 극명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 만큼 훌륭한 희곡을 쓸 수 있을까. 이상만큼 신선한 실험을 해낼 수 있을까.
이런 자괴감과 더불어, 나는 그 주장에서 우리시대에 대한 절망도 본다. 모든 것은 돈으로 환산되고 평가받는 시대. 순수한 시 한 편의 가치는 역사상 최하위점을 찍고 있고, 정성들여 쓴 소설 한 권은 가치평가 그래프의 하강 곡선을 앞장서서 그리고 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쓸 수 있는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소리높여 외칠 수 있는가. 모든 노력에 대한 순수한 포기. 이것 또한 핵심이다. 말한들 무엇한단 말인가, 라고 한다면 그것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분명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시대의 문학은 위기에 처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발표된 모든 소설과 시와 희곡과 문학 작품들을 모아놓고 보았을 때, 우리시대에 이르러 모든 실험은 종료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낼 가능성은 0에 수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문학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고, 문학 안에서의 노력이 너무나도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는 분명 어느 정도의 효용이 있으며, 배워야 할 교훈도 있다.
그러나 창작하는 사람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진행되는 모든 것은 위기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자명하다. 자명하기에 아무 쓸모도 없는 명제다. 그러나 그 역으로, 위기는 진행되는 모든 것에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에 처한 우리시대의 문학은 '진행중'이다. 역사상 어느 시대에도 그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리 없듯이 우리시대의 문학도 '정지'하지 않았다. 문학을 읽는 사람이 있고, 그 문학을 읽고 자라나 다시 문학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이 있는 한, 문학은 영원히 '진행중'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항상 '위기'가 존재할 것이다. 창작하는 사람은 '위기다!'라는 말이 들려올 때, 거기에서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그들이 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1992년 어느 날 오후 2시, 서울 모처에서 <백남준과의 대화>라는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는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과 학생, 그리고 일반인들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뤘다. 이 행사에서, 어느 한 기자가 백남준 씨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예술은 이제 벽에 부딪혔다,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백남준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닌데. 아직 할 게 많은데."
그들이 해야 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아닌데. 아직 할 게 많은데." 최고의 시는 아직 낭독되지 않았고, 최고의 소설은 아직 쓰이지 않았으며, 최고의 그림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음악도 아직 들려지지 않았고, 그리하여 우리의 앞길은 아직 막다른 길이 아니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멈출 겨를이 없다. 아직도 쓰이지 않은 수많은 시구들, 소재들, 표현들이 눈 앞에 어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이 수많은 진부함의 장애물과 높다란 전범(典範)들 앞에서 주저앉지 않는 이유다. 그들은 자기 눈 앞에 놓인 커다란 세계가 끝이 났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더 이상 쓸 것이 없다는 주장도 코웃음으로 넘긴다. 그들은 바쁘다. 아직 할 게 많다.
상병 김성훈 (2005-10-17 12:42:06)
음악에 있어서도 비슷한 말들이 많이 오가지요.
요컨대, 실험은 들어설 여지가 없고, 좋다는 멜로디는 다 나왔고...
그 이야기를 들은 게 십 년은 되었는데...
애석하게도(?) 그 사이에도 참 많은 실험이 있었던 듯...
상병 김성훈 (2005-10-17 12:43:18)
그리고 설사 실험의 가능성이 없다한들,
그것이 문학의 가능성과도 관련될지는 미지수가 아닐까 합니다.
상병 김상희 (2005-10-17 13:36:29)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실험되고 창작되는게 예술의 세계가 아닌가 생각해요.. Force라는 하나의 단어에 의해 뚝딱 만들어지는 스타워즈를 생각하면 창작의 세계는 끝이 없지요.. 문학의 위기가 공감이 가는 부분이라 한다면 창작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문제라고 생각되네요...
병장 한상원 (2005-10-17 17:42:48)
사람이 삶을 살고, 생각을 하고 희노애락애오욕의 온갖 감정들 속에서 살아가는한 문학은 영원할 것이라 생각해요. 다만, 상희씨 말처럼 그것이 문학이란 틀을 지니고, 출판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만이 문제된다는 생각이에요. 시장과 관련되어서 직업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세속적으로 남을 뿐이죠.
누구든지 글을 쓰고, 세상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문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인부락 가보세요. 정말 오색창연한 언어들로 우리 또래의 청년들이 시작을 하고 있답니다. 그들의 언어로요. 존경스러워요.
병장 김석안 (2005-10-18 10:51:24)
시인부락에는 어떻게 가죠?
상병 백일선 (2005-10-18 12:42:35)
수많은 좋은(?) 문학작품이 이미 나와버렸다고해서 그것이 문학의 위기라면...
현재 우리는 총체적인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는것이 되겠습니다.
음악, 미술등의 예체능분야 말고도 다른 분야에서도..그리고,
현존하는 60억 인간들 이전에도 수백 수천억명이 이미 지구상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왔으니까요.
세익스피어의 희곡도 내가 쓴것이 아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수작도 내가 쓴것이 아닙니다. 서점에 꽂혀있는
수많은 문제집도 내 지식의 일부가 아니고, 위태로워 보이는 순수문학작품들도 나의 머리에서 나온것이 아닙니다.
위기를 거들먹거리는 인들은,
사실은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 왜? 내가 할수 있는건 다른사람들이 벌써 다 해버렸거든.."
이라고 비참한 변명을 하고 있는것에 불과합니다.
무언가 끊임없이 창조하며 살벌한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런 변명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것에 불과할껍니다.
우리 자신은 어떤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지 생각해볼때라고 생각되는군요.
병장 최재원 (2005-10-18 14:28:01)
몇 백년 전의 문인들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만들어 질수 있는 모든 위대한 작품들은 이미 나왔다.하고...
하지만 지난 수 백년 간 인간의 생활에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런 변화의 과정 속에서 많은 수작들이 탄생했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오히려 이전보다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이번에는 어떤 수작들이 새롭게 탄생할지...
무척이나 기대되는 군요.
상병 진주연 (2005-10-20 09:03:45)
내가 하는 건 분명 위대해야지","역사 상의 한 줄은 남기는 훌륭한 예술가가 되야지."
이런 종류의 불필요한 압력을 일부 예술인들은 소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저 자기가 말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쓰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것을 표현하면 충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위대하다, 뛰어나다, 명작이다. 이런 평가는 타인들의 몫일 뿐입니다.
이렇게 하면 타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식상하다고, 촌스럽다고,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평하진 않을까?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예술가로서의 자질미달입니다.
그런 시선들에 의해 망설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나가는 자세는 언젠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겠죠.
상병 진주연 (2005-10-20 09:10:21)
백일선 상병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 왜? 내가 할수 있는건 다른사람들이 벌써 다 해버렸거든.."
이런 나약한 변명을 하는 예술가는 서둘러 은퇴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뇌와 땀이 담긴 예술가를 무차별하게 상스러운 언어로 비난하는 것을 취미이자, 자기연민이자, 밥벌이로 하지 말고.
상병 엄보운 (2005-10-20 11:10:05)
소설의 종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동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석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밀란 쿤데라
상병 엄보운 (2005-10-20 11:11:09)
but,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지요. 너무 내용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만.
병장 장성운 (2005-10-20 18:07:41)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안다.
예술이 한계에 도달했는지는 도전해봐야만 알수 있을 듯 하네요.
물론 끊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