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개]Voice of the Voiceless- 진정한 다수를 위하여  
상병 홍석기   2008-09-04 11:33:54, 조회: 296, 추천:1 

A.

언제부터일까. ‘나’라는 말이 ‘우리’가 되어버린 것이.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러 갔다. (너와 내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러 갔다)
우리가 영화관을 나왔을 때,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보러갔다)
그리고 얼마 후,
천만 명이 그 영화를 보았다.
나는 ‘천만 관객’ 속에 묻혀 버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을 멈춘다면,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GQ>를 보고 있을까.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있을까. 몇 명의 사람들이 강남대로를 걷고 있을까. 몇 명의 사람들이 돈 버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Everything is a copy, of a copy, of a copy........
역겨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의 모습이. 그래서

나는 Minority가 되기로 했다. ‘나’를 지켜내고 싶었다. 한동안 인간과의 대화를 꺼리고 나만의 세계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아무도 읽지 않았을 법한 책과 아무도 보지 않았을 것 같은 영화를 보았다. 그렇게 ‘우리’의 공감대는 사라져 갔고, 수많은 ‘타인’들은 하나 둘씩 지워져 갔다. 혼자 남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 나는 너를 원하지 않으니까. 나와 네가 모이면 ‘우리’가 되어버리고, 나는 나 자신을 또 잃어버리고 말 테니까.

믿었다. 이것이 정의이고,
믿었다. 이것이 도(道)이며,
믿었다. 이것이 행복이라고.

그렇게 나는 걸었다. 별 하나 없는 새까만 밤을.
이 고요함이 나를 생각하게 한다. 나를 숨쉬게 한다. 나를 살아가게 한다.




B->C.

이렇게 난 또 버려졌다. 나의 이야기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더 이상은 대화할 용기도 없으니, 궁상 맞지만 당신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해야겠다.
사실 나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을 잃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단지 내가 타인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태생적 조건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Minority라고, "Fuxk 'em all!" 이라 왜치며 자신의 시야 속에 갇혀버리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난 이런 그들과 ‘다수’의 사람들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내가 더 소중한 존재라는 걸 나타내고 싶다는 싸구려 자존심 때문에 ‘다수’는 ‘트렌드’ 와 ‘대세’를 쫓기 바쁘고, ‘Minority'는 그것의 반대를 좇아 다른 이의 경외심을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고독‘해지기 싫어서, 소외되기 싫어서, ’다수‘는 더 많은 사람을 찾고, ’Minority'를 자신을 배신할 수 없는 무엇을 찾는다. 둘 다 같은 뿌리를 가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처럼.  근데 또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당위성을 주장하느라 타협하긴 더 어렵고, 결국 나만 피곤하다. 젠장. 
  
그러나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Minority'는 자신이 스스로 답을 내린 사람들이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누군가가 제시해 준 답을 따르는 것 뿐. 답은 외부에 있고, 그들은 스스로의 답을 답안지에 기입할 수 없어. 5지선다형 문제에 답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은 사회적 탄압과 무시로 인해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심, 그리고 고독과의 조우. 그렇게 우리 모두는 왜곡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그들은 언제쯤 스스로의 선택지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그러니까,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줘.
눈을 마주치고 나의 목소리를 들어 줘.
세상 속으로 나와 줘. 우리 같이 걸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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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글재주도, 교양도, 지식도, 경력도, 학력도, 짬도, 심지어는 한동안 잠수탔다가 무례하게 이런 허접 글을 가지고 돌아올 정도로 염치도 없는 저는 소소한 일상 속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일상 속에서 묻혀 버린, 왜곡되어 버린 목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우리 책마을의 ‘다수’ 만이라도 자신만의 선택지를 가져보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함께 걸어가는 그날까지,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10 18:1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28:24 

 

병장 이동석 
  이런, 분명 책마을에는 '겸손병'이 창궐하고 있어요. (농담) 

이제 수면으로 떠오르셨으니, 날아갈일만 남았군요. 하늘을 달려봅시다. 2008-09-04
11:40:30
 

 

상병 이동열 
  아아 전 홍석기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걸어가야겠어요- 

함께 걸어갈수나 있으려나(땀) 아무튼 열심히 쫓아가보겠습니다(얍) 2008-09-04
12:04:29
  

 

병장 이재민 
  저도 한때 minority를 추구했으나 
남들과는 다르다는 허영심에서 기인한 바가 큰 것 같아 다수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다수의 길이 꼭 남들이 제시한 답을 따라가는 것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절대다수가 추구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오감에 소구하는 요소인 경우도 많습니다. minority의 길은, 그러한 본연적 즐거움을 버리고 억압하는 길일수도 있겠다. 하는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제 생각엔, 
어느정도 개인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단 겁니다. 
제 경우엔 minority보다는 다수속에서 그들과 호흡할 때 행복함을 느끼는 타입인 걸 알았습니다 2008-09-04
13:05:52
  

 

병장 황인준 
  이제 더 많은 좋은 글을 볼 수 있게 되었군요. 
좋아요 좋아요. 앞으로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 2008-09-04
13:18:49
  

 

병장 주해성 
  남은 생활이 조금 더 즐거워 질 것 같군요 기대하겠습니다. 
아 응원도 할 겁니다 (웃음) 2008-09-04
13:43:21
  

 

병장 조현식 
  저는, 메이저에 포함되지 못한다는걸 자신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다른 길을 걸어가는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포장하려는 것이 마이너리티들의 작동원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맞는 말일까요?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메이저로 편입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다수를 이끄는 것은 다수의 방식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니까요. 

여기서 제가 간과한점은, 사회는 프로야구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마이너리그 싱글a,더블a,트리플a, 그리고 그 아래 수많은 독립리그들 위에 태산처럼 존재하는 메이저리그. 이러한 단순한 피라미드의 구조로 파악했던 사회가, 사실 피라미드보다는 그물망에 가깝다고 깨닫는순간 마이너와 메이저의 경계는 씨줄과 날줄의 교차점만큼이나 의미없는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뭐, 이렇게 생각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해봤자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생각하니 더 우울해지긴 했지만요. 제가 무슨소리를 하는거죠? 아무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08-09-04
13:47:12
  

 

병장 이태형 
  바로 그거네요, 그거. 
생각지 못했던 건데.. 고마워요. 2008-09-04
13:48:09
  

 

병장 허기민 
  음,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저 역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웃음). 2008-09-04
14:03:53
  

 

상병 김호균 
  minoritiy가 생각하는 다수가 스스로 답을 내려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그 다수 속의 누군가도 minority를 좀 더 다른 범주의 다수로 포함시켜서 
비슷하게 평가할 수 있겠죠. 
진정으로 용기있는 자는 monoritiy와 majority의 범주를 넘어선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오랜만의 글 기대하겠습니다.(웃음) 2008-09-04
14:48:40
  

 

병장 어영조 
  monoritiy가 주는 단호하면서도 뚜렷한 주관의식이 부럽기도 하면서도 
majority가 주는 안정감은 쉬이 포기하기 힘들죠. 2008-09-05
13:5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