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time 
 
 
 
 
별 생각 없이 공지사항을 클릭했더니 무려 다섯 명의 주민의 리플에서 내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추천이 들어왔는데 필진 지원하겠냐는 촌장님 쪽지를 받았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그냥 '필진 시켜주세요'라고 들이댈 성격의 인간은 아니고, 오히려 이름을 걸고 책임 질 일을 하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 하는 편이다. 별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은 없고, 글쓰는 취미 자체가 없다. 분명히 없다. 일기도 안 쓰고 시는 더더욱 안 쓰며 학교다닐 때는 노트 필기도 거의 안 했다. 책마을에도 매일같이 붙어 있긴 하지만 게시판에 글도 몇 안 썼다. 필진으로 추천하신 분들도 내가 쓴 글이나 리플을 읽고 감동이 밀려왔다거나 하는 일은 분명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추천받은 김에 필진 지원하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맨날 눈팅하며 리플 대충 끄적이는 것보다 뭐가 됐든 생각도 좀더 정리하고 진지하게 글을 써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수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주민이 고작 대학 물 일이년 먹으면서 책 몇 권 줏어본 처지에서 수준을 논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니체를 읽어보지 않았고 기든스도 읽어보지 않았으며 데리다도 당연히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글을 쓰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대가들의 고전과 이론을 거론해가며 서로를 논박하는 것은 후일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의 할 일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너무도 당연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식으로 여겨지는 몇몇 관념들에 소박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정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서 누군가 이미 언급했지만, 우리는 무장을 해제당했다.

무한 감동이 밀려오거나 재미있는 글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고 앞으로도 쓸 일이 없다. 그런 글은 다른 사람들이 써 줄 것이다. 나는 지금 다른 무언가를 쓰고자 한다. 세상 돌아가는 게 소설보다 재밌어서 소설 안 읽는다는 진중권의 말에 공감하는 편협한 감수성의 소유자로서, 경영대 출신이 총장 하면 안된다던 사학과 노교수의 강의에 감동하던 순진한 학부생으로서, 정문에 있는 지하철 개찰구를 연상시키는 바코드 리더기가 싫다는 이유로 도서관(열람실) 안 가던 희한한 습관의 소유자로서, 공부는 안 하고 술이나 퍼먹던 요즘은 망해간다는 학회 07년 커리큘럼을 고민하는 한심한 예비 복학생으로서 쓸 수 있는 그런 것. 한마디로 별 대단한 글은 못 쓴다는 거다. 

우리는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현재 있는 위치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지금 이곳은 오직 유일한 공통의 생명줄이다. 지금은 보잘것없는 몰래 멀티에 세워진 드랍쉽 한방에 날아갈 위태위태한 해처리에 불과하지만 그 라바는 상대의 마지막 넥서스를 급습할 저글링이 되고 회심의 드랍쉽을 공중 요격할 스커지가 될 것이다. 그래, 우리의 몰래 멀티는 언젠가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저그처럼. 아무리 부숴도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크립처럼. 가자. 


 

  
 
 
 
상병 송희석 (2006/05/26 04:59:56)

첫 칼럼을 진심으로 기대하는 바입니다.    
 
 
상병 안대섭 (2006/05/26 07:24:21)

새로운 멤버들의 약진 앞으로! 로군요.    
 
 
일병 김현동 (2006/05/26 07:28:06)

하필... 저그(땀).    
 
 
 병장 손재선 (2006/05/26 09:49:18)

군대는 스타를 벗어날 수가 없는건가! 우리는 카스를 하지만!!    
 
 
상병 조주현 (2006/05/26 16:20:29)

끼끼끽-(저글링)    
 
 
 병장 김동환 (2006/05/26 17:01:24)

아싸. 갑시다 저글링!    
 
 
병장 박민수 (2006/05/28 10:21:27)

멋지군요.    
 
 
상병 박종민 (2006/05/28 15:09:10)

재선 / 지금은 구석에 짱박혀 글록 따닥이에 스치기만 해도 죽는 '피 3'에 armor 걸레의 ak 세이브일 뿐이지만. 그 ak는 다음 스테이지에서 모두 권총이겠거니 방심하고 C4를 해체하는 CT들의 머리를 날려버릴 비밀 병기요, 회심의 주밍 awp를 불발시킬 라이플 어태커가 될 것이다. 그래, 지금의 비참한 캠핑은 언젠가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테러처럼. C4를 박구선 아무리 안달난 CT가 깔짝거려도 쉽사리 고개를 내밀지 않는 마지막 테러처럼. 끝까지 살아남자. 

카스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건가요? (씨익)    
 
 
 병장 노지훈 (2006/05/30 18:11:44)

무한 기대 중이옵니다~    
 
 
병장 김형진 (2006/05/30 18:43:20)

기운 넘치는 얼개 잘 읽었습니다. 100일 넘게 남았다고 강조하시던 형주씨의 활동 기대할게요. 소박한 듯 보이지만 드센 기개가 묻어나는 얼개라 그런가요. 형주님의 우리시대 상식으로 여겨지는 몇몇 관념들에 대한 소박한 의문제기가, ally all─결국 좋은 게 좋은 거지─로 대표되는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아드레날 저글링처럼 거침없이 전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드는군요.    
 
 
상병 조주현 (2006/05/30 23:32:49)

종민/CT는 글록이 아니었죠 아마? 이름도 기억이 안나 쿨럭, 그나저나 나도 AK너무 좋아 하하하 2점사의 맛    
 
 
상병 박종민 (2006/05/31 00:45:10)

주현 / usp죠. 그냥 젤 약한 걸루다가 써넣은 건데, 날카로우시군요. 씨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