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개] 허깨비 <After service version>  
병장 정병훈   2008-11-28 22:58:38, 조회: 321, 추천:5 

별것 아니지만,호흡을 조금만 길게 하고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08年 11月 28日 18時 5分 ~ 21時 10分

                                                              *                     *                    *


                                                                                 허깨비

바람이 분다. 겨울바람은 차갑다. 매서운 바람은 그 존재가 보이는지 보이지 않는지 알 수 없다. 힘 있게 불어오는 바람에 갈대는 부대낀다. 갈대는 바람의 존재를 보는지 보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바람이 헛것인지 실체인지. 북쪽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은 실체하는지 헛것인지 알 수 없는 산맥과, 강과 들을 부대끼며 이곳까지 불어온다. 

창문을 연다. 아침공기는 상쾌하게 머릿결을 스치고 지나간다. 열려진 창문을 뒤로한 채 샤워부스로 몸을 옮긴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맑은 공기는 밤사이 발생한 텁텁한 공기를 몰아낸다. 

내 앞에 서있는 이것이 실체인지 헛것인지. 내 눈 앞에 있는 이 허깨비를 실체라고 해야 할지 헛것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악다문 입과 불끈 쥔 주먹으로 마주섰다. 

샤워기에서 물이 흐른다. 그렇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따뜻한 물이 흐른다. 흐른다. 내 몸을 흐르는 물은 내 몸과 하나가 되어 다시 바닥의 하수구로 흘러 내려간다. 샴푸를 하고, 샤워를 한다. 따뜻한 물은 지금까지 더렵혀진 나의 몸을 타고 흐른다.

허깨비는 나에게 다가와 실체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형식(形式) 없는 글과 진부(陳腐)한 소재, 어울리지 않는 단어(單語)와 흐트러진 문맥(文脈), 울리지 않는 마음과 닫힌 소통(疏通). 존재의 모습 속에서 나는 우두커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허깨비의 실체 속에서 나는 나의 실체를 본 것인지 보지 못한 것인지.

허깨비는 나에게 다가와 헛것의 자신을 나타낸다. 두려움과 욕망(慾望), 공포(恐怖)와 걱정, 자만(自慢)과 불안(不安).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헛것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허깨비의 헛것 속에서 나는 나의 헛것을 본 것인지, 보지 못한 것인지. 

달빛아래 칼은 서글프다. 날이 서지 않는 칼은 더 이상 칼임을 포기한다. 달빛을 머금은 칼은 다시 칼이길 원한다. 사각-, 사각-. 칼을 위해 칼을 가는가, 나를 위해 칼을 가는가. 사각-, 사각-.
달빛 아래 나는 칼을 다듬는다. 칼을 위함인가, 나를 위함인가. 사각-, 사각-. 칼의 눈물은 달빛과 만나 빛을 바라고, 이내 땅은 달빛으로 물든다. 달빛위에 선 나는 칼을 다듬는다. 사각-, 사각-.

달려온 달빛은 칼날에 의해 갈라진다. 이내 달빛마저 가르는 칼은 더 이상 서글프지 않다. 그것이 칼인지, 나인지. 더 이상 서글프지 않다. 칼의 웃음소리는 경쾌하고 날렵하다. 칼에 내가 베일 것인지, 네가 베일 것인지. 칼은 말이 없다. 

내 앞에 서있는 이것이 실체인지 헛것인지. 내 눈 앞에 서 있는 이 허깨비를 나는 다시 한번 바라본다. 자신을 바라보라는 허깨비는 나의 실체를 보며 웃음을 머금는다. 그 허깨비의 웃음이 실체인지 헛것인지. 내가 듣고 있는 웃음이 실체인지 헛것인지. 내가 바라보는 그것이 실체인지 헛것인지. 

허깨비가 나인지, 내가 허깨비인지. 허깨비가 실체하는지, 내가 헛것인지. 허깨비가 헛것인지, 내가 실체인지. 실체와 헛것, 허깨비와 나 사이에 나는 악다문 입과 불끈 쥔 주먹으로 마주선다.

한손에 칼집을 든다. 악다문 입과 꽉 쥔 두 손으로 나는 마주 섰다. 더 이상 도망갈 곳도, 도망칠 곳도 없고. 도망가고 싶지도 않다. 나의 칼은 매섭고 날렵하다. 칼은 칼집을 나오고 싶어 한다. 이것이 나를 벨지, 너를 벨지.

달빛의 갈래를 따라 다가온 금빛 물결은 나의 은빛 칼을 물들고, 이내 은빛 칼은 깨어지지 않을 금빛 칼이 되어 영롱하게 빛난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깔끔하게 휜 칼날은 이내 매서운 눈빛으로 세상과 맞선다. 불끈 쥔 주먹을 펴 칼머리를 잡는다. 금속과 가죽사이로 느껴지는 묵둑한 칼머리의 느낌은 흐느낀다. 바람을 향해 칼을 휘두르니 풍진하고, 바다를 향해 휘두르니 해진하니, 세상을 향해 휘두르니 세상이 반으로 출렁이더라.

칼집에서 칼을 빼 든다. 은빛 칼에 금빛 물결이 일렁인다. 달빛을 머금었겠지. 악다문 입은 말이 없고 주먹 쥔 손은 거침이 없다. 세상을 향해 휘둘러 이제 나의 모습을 드러내겠다.

허리춤에 찬 칼을 다잡고 실체인지 헛것인지 알 수 없는, 나인지 허깨비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을 향해 휘두르니 이내 고요하다. 고요와 적막과 정적. 그 사이에 나는 출렁이는 허깨비를 보았다. 허깨비를 내가 본건지, 내가 허깨비인지, 허깨비가 나인지, 내가 허깨비를 친 건지 고요와 적막과 정적만이 존재한다.

허깨비는 실체인지 헛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칼로 허깨비를 처단하겠다. 
그 허깨비가 검붉은 피를 쏟아 내든 내가 검붉은 피를 쏟아내든, 그것이 실체하든 헛것이든.


                                                              *                     *                    *


                                                     허깨비를 향해 칼을 휘두르니 세상이 붉게 물들더라.








[얼개]
【명사】 짜임새. 구조(構造).
¶ 기계의 ∼/ 소설의 기본 ∼.

느낌표[!]
쟁쟁한 필진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건 책마을에 들어온 후 최고의 명예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명예에는 책임이 뒤따르는데, 그 책임을 제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필진이라는 이름을 얻는다는 욕심만 생각하면, 무작정 얼개를 남기고 날름 받아먹고 싶지만, 이건 나만의 욕심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 며칠 동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위의 글은 그 고민에 대한 답례로 적은 글이 되겠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제 마음가짐이라고 말해도 무방하겠군요.


물음표[?]
일단은 칼럼이라는 말머리의 중압감은 대단합니다. 
과연 내가 무슨 글을 뽑아 낼 수 있을까 합니다. 일단은 ‘전문적인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 말하고, 아직 어린 나이에 ‘심도 있는 공부를 접하지 못했다’ 에 또 다른 이유를 건네겠습니다. 더불어, 책마을 주민 분들께서 절 필진으로 추천을 했을 때 과연 제 칼럼을 보고 싶어서 추천을 한 건지, 아니면 조금은 가벼운 글을 보고 싶어 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후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전문적인 글은 한없이 전문적으로 밖에 쓸 수 없는 제 필력이 문제이기도 하고, 저 또한 책마을 주민 분들과 더 많고, 깊은 소통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칼럼은 과학적인 얘기-생물학과, 의학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향과, 어떤 주제를 목적으로 이끌어 낼지는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좀 바뀔 수도 있기에 명시하지 않겠습니다. 가까운 시간에 정리된 글을 올릴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더불어, 소통이 가능한 글들을 좀 더 뽑아내고 싶습니다.



마침표[.]
1500명이 넘는 마을에서 단 5표를 받았습니다. 그 5표를 가지고 필진이라는 자리에 앉겠다고 승낙을 했습니다. 쉽지 않았던 선택임을 밝힙니다. 모자란 필력으로 그 자리가 탐이 났던 게 사실이고, 그 자리를 잡은 지금 막중한 임무가 눈앞에 보입니다. 

서민적인 필진으로 다가가도록 하겠습니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10 18:1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29:21 

 

상병 이지훈 
  흐흐 좋은 글 기대할게요 연속으로 올라오는 얼개가 반갑네요 2008-11-28
23:12:57
  

 

상병 김무준 
  예전에 비해서 문체가 많이 서늘해졌군요. 2008-11-28
23:32:25
  

 

병장 이동석 
  써걱- 써걱- 써걱- 2008-11-28
23:43:40
 

 

상병 강수식 
  얼개가 올라와있군요. 
(휴우) 몇 줄 쓰다가 다시 지워버렸습니다. 
어렵네요. 저도 이런 멋진 얼개를 쓸 수 있으련지. 

그나저나 
글의 방향을 대충이라도 조금 알려주세요(웃음) 2008-11-29
00:33:00
  

 

병장 김현민 
  잘 읽었습니다. 에효 큰일이네요. 

전 오늘에서야 봤습니다. 

필진. 정훈님의 얼개스킬은 

타케릭터에게 좌절감을 선사하시는군요. 2008-11-29
04:22:06
  

 

병장 정병훈 
  얼개가 자신의 소개와 더불어 앞으로의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는 말에 급수정합니다. 
당근오침 하고 와서 좀 다듬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2008-11-29
09:04:04
  

 

병장 이동석 
  아니, 뭐 얼개는 이를테면 그렇다는거죠. 얼개를 어떻게 쓰건 그건 작성자 맘-이니까요. 왜 이리 겸손-들이실까. 2008-11-29
13:49:56
 

 

병장 정병훈 
  지훈// 
좋은글을 뽑을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무준// 
어허- 제 문체를 지적해주시고. 흐흐흐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저리 썼다면 믿어주시겠습니까? 제 문체가 예전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설정입니다. 
수식// 
수식님의 얼개를 얼른 보고싶습니다. 이건 내글내생각 보는것 보다 흥미진진합니다. 
현민// 
정훈님이라면 절 말하는건가요? 허허- 제 얼개스킬은 시전자에게 부끄럼 +10을 주는군요. 
동석// 
저도 겸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만, 스킬시전 어드벤테이지가 붙는건 어쩔수 없군요. 2008-11-29
19:54:11
  

 

병장 김민규 
  "1500명이 넘는 마을에서 단 5표를 받았습니다. 그 5표를 가지고 필진이라는 자리에 앉겠다고 승낙을 했습니다. 쉽지 않았던 선택임을 밝힙니다" 

참 깊이 공감하는 한 마디네요. 필진이 무슨 프리미엄 회원권은 아니지만서도...... 
잘 읽었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2008-11-29
20:57:47
  

 

상병 이석현 
  으허허. 
정병훈병장님은 잘할껍니다. 

못해도 소심한 태댓글 만쓸꺼에요(두근두근) 2008-11-29
21:10:24
  

 

병장 김동욱 
  생물학과 의학, 좋아요 좋아. 그런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이곳 책마을에는. 

기대할게요 2008-11-30
01:00:23
  

 

병장 홍석기 
  배경 죽이는데요. 켄신과 사이토 하지메의 결전 전야 같은. 
하지만 더 죽이는 것은, 허깨비를 처단하려 하는 돈키호테 라 만차 같은 병훈님의 모습이군요. 

그래요, 그것이 허깨비든 무엇이든, 칼-을 뽑아주세요. 이 곳에서, 무엇과도 싸울 수 있는한 명의 무사를 보았으면 합니다. 

굉장한, 얼개입니다. 병훈님의 글이, 더더욱 기대되는데요. 2008-11-30
13:39:44
  

 

상병 김용준 
  음...정말 멋진 글인거 같습니다. 하하. 
그냥 제가 이 글을 보고 느낀점은 모랄까...장군의 기상?을 보고 있는거 같네요. 
아닐지도 모르지만요. 하하. 어쨋든 지금까지와는 몬가 다른 병훈님의 필체?를 
보는 것 같네요. 후후. 정말 멋진 글입니다. 허허허. 2008-12-09
10:23:17
  

 

병장 김태준 
  멋집니다 추천 꾸-욱 2008-12-10
11:17:13
  

 

상병 이동열 
  폭풍전야로군요(웃음) 

폭풍같이 몰아칠 병훈님의 글을 기대합니다(웃음) 2008-12-12
10:4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