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 수록 느는 건 고집 뿐이다. 
 
 
 
 
- 序

언제부터인가,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다가도 결국 중요한 것은 삶이라는 깨달음으로 나는 이내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곳은 삶이기 때문에 호락호락하지 않을 수 있었고, 삶이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정말 훌륭한 글을 쓰고 싶지만, 그보다 정말 훌륭한 삶을 살고 싶었다.
주위가 모호해질 때마다, 삶은 그 품을 열어 어머니 품 속 같은 더 큰 모호함 속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그 곳에는 어릴 때부터 먹고, 자고, 웃고, 울던 내가 있었다. 그건 마치 중력같이, 아무리 높이 뛰어올라도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고 말던, 지긋지긋한 고향과도 같은 것이었다.



해가 갈 수록 느는 건 고집 뿐이다. 내 걸어온 길이 길어질수록 그 길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 세상에 완벽한 선택항이 어디있겠냐만 내 길에서만큼은 길가의 모든 꽃들이 나를 도왔다 믿고 싶다. 저 멀리 예정된 나의 길 안에서만큼은 지금 걷고 있는 나의 길이 완벽할 것이라 믿고 싶다. 그것마저 없으면, 세상은 너무 각박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아무 증거도 없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고집이다.

매 발자욱마다 따라붙는 번민이었지만 그 번민에 따라 매번 움직였던 건 아니다. 멍청하게 내처 앞으로 걸었던 적도 있었다. 잡을 수 있는 건 다 움켜쥐고 싶었고, 손가락 사이로 시간은 매번 속절없이 빠져나갔다. 
나는 내 허물들을 다 기억하지 못했고 내게 온 도움들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군데군데 텅 비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빈틈을 채우라 채근하기도 했다. 나는 그걸 채우려 노력하거나, 노력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력한 것들 중에 내가 뛰어넘은 것도 있고, 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에 따른 보람과 실망은 앞다투어 텅빈 골방에 누운 나를 찾았다.
잘못이 있을 때마다 밤늦도록 괴로웠다. 잘못했다 닦달하는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나를 죽이고 싶었다. 잘못이 있을 때마다 내 몸의 빈틈은 휑한 공간을 울어댔다. 내 안의 빈틈이라 내 잘못 같았고 내 안의 빈틈이라 내 잘못이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볼 때마다 밤늦도록 괴로웠다. 잘나고 못난게 어딨냐며 결코 합쳐질 수 없는 모호함의 굴레로 나를 끌고 들어갈 때 그 웃음은 차라리 치욕이었다. 질투에 복받칠 때마다 내 속의 빈틈은 텅빈 목구멍처럼 울컥댔다. 그 속으로 잡힐 것 없는 칼날은 밤새도록 허공을 베어냈다. 
빈틈 사이로 그렇게 한바탕 분탕질을 치르고 난 밤이면, 섹스 후에 아직 채 다물어지지 않은 질처럼, 나는 오래오래 떨었다.

내 가진 것이 빈틈밖에 없었기에 나는 빈틈으로 서서 세상의 빈틈이고자 했다. 그것은 멋있어보이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한 다짐이 아니라 쫓기고 몰려 벼랑 끝까지 다다랐을 때 어쩔 수 없이 보이던 낭떠러지 너머의 세상이었다. 내 앞뒤로 이어진 자기 착취의 끝없는 서열에서 튕겨나와 나는 그것하나 견뎌내지 못한 놈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다. 좁아터지고 구멍난 내 속을 갈라 남은 창자속 하나까지 낱낱이 보여주고 싶었다. 자, 나는 이리 구석구석 못난 놈이니, 그대들은 와서 보고 원없이 우월감을 섬기라, 그대들이 내게서 우월감을 얻어가는 만큼, 내 모자람이 곧 내 방패요 내 빈틈이 곧 나의 무기가 되리라. 
그리 발악같은 살풀이를 끝내고 나자 내 안의 곡소리가 멎었다. 모든 굿판이 그렇듯, 아무 것도 변한 건 없었지만, 그때부터 나는 내 빈틈을 싸안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이름을 걸고 시를 쓸 수가 있었다.

내게는 너무나 뚜렷했던 내 영혼의 개구멍, 그 곳으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창호지에 난 손가락구멍처럼 내 가슴에다 대고, 이봐, 나에게도 이만한 구멍이 있다구.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엎어진 자리마다 앉은 딱지가 닮은 것처럼, 그 딱지를 서로 대보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닮은 것처럼, 빈틈은 빈틈을 닮아있을 거라 생각한다. 빈틈을 가진 자는 틀림없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아이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서로의 빈틈을 마주댄 채로, 나는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고자 한다. 그렇게 은밀하고 공공연한 나눔이 무럭무럭 자라 나와 너의 빈틈이 서로 모이고 모이면, 종내엔 세상을 넘을 세상만한 빈틈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틈 속에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남의 빈틈을 메우려기 보다 자신의 빈틈을 기억하고, 그 틈 속에서라면 세상의 모든 아픔들이 쏟아져 들어와 제 몫의 위로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공상이 그렇듯이 변한 건 아무것도 없을 테지만, 나는 포기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한계를 뛰어넘기 전에 스스로 그 한계에 머물고자 했으므로, 내가 이야기할 것은 다만 내 모자람 뿐이다. 그걸 당위라고 말하진 않겠다. 그래서, 고집이다.

그 고집으로, 오늘도 나는 내게서 떠나는 것들에 웃으며 손흔들어주었다. 한때 내것이라 믿었던, 이제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들에게, 안녕.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또 한해가 지나있었다.

                                                                               - 20060116, cryingkid






*  이런 글로 얼개를 대신하게 되어 많은 분들께 죄송합니다. 특히 이미 보신 분들께는요. 꽤 오래전에 쓴 글입니다만, 앞으로 제가 이 글의 한계를 뛰어넘든, 혹은 이 글의 한계에 안주하든, 아직도 제가 할 말은 이 글 위에 머물러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기에, 감히 얼개라는 이름을 걸고 옛글을 올립니다. 

  
 
 
 
병장 주영준 (2006/03/30 14:06:41)

오래 전에 쓴 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오래 전의 삶에 매몰된 사람이 누추해보이는 딱 그 만큼, 아름다워요. 앞으로 수고 많으십시오.    
 
 
상병 안대섭 (2006/03/30 14:09:50)

이분 좀 많이 고집스러우시네요. 새삼 반갑습니다.    
 
 
병장 이상준 (2006/03/30 14:25:44)

대현님의 좋은 글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이제 책가지 게시판에서도 문학의 향기를 접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병장 박준응 (2006/03/30 15:09:09)

앞으로 좋은 글 부탁드릴게요. 멋진 얼개네요.    
 
 
 병장 김동환 (2006/03/30 15:47:20)

새삼 고백하자면 책마을에서 대현님과는 꼭 한번 토론에서 맞대봤던 기억이 있는데. 
결코 밉지않은 고집이라는 인상을 받았었죠. 
같은 길 위에 있군요. 대현씨가 좀더 앞서있긴하지만. 길을 벗어나지 않고 부지런히 따라갈께요. 
반갑습니다.    
 
 
병장 육이은 (2006/03/30 15:51:10)

뭐랄까요. 대현씨. 너무 좋다고나 할까요.    
 
 
상병 조용준 (2006/03/30 16:26:59)

대현님, 역시 고집스러운 분이십니다.(웃음)    
 
 
상병 이영준 (2006/03/30 16:44:40)

기대하겠습니다.    
 
 
일병 김병완 (2006/03/30 20:00:39)

병장 최성운) 
많은 글을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우리, 나중에 직접 만나 대화로 대신하죠.    
 
 
하사 윤석호 (2006/03/30 20:16:02)

고집뿐만이라도 좋소. 당신의 틈새에 서서 울부짖는 모습, 앞으로 많이 기대할게요. 
처음 읽는 얼개지만, 참 좋네요.    
 
 
상병 조주현 (2006/03/30 20:43:10)

기대하고 있습니다.    
 
 
병장 김석윤 (2006/03/30 21:45:24)

당신의 글은 언제나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군요. 평생 보지 못하더라도 여기 서서 바라본 대현씨를 기억할께요. 감사합니다..    
 
 
상병 엄보운 (2006/03/30 23:00:50)

대현님의 글. 자주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랩니다. 좋은 칼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상병 박진우 (2006/03/31 16:03:49)

아, 이건 김훈씨의 문체. 
김훈스럽게 생긴 대현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