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개] 서사시를 꿈꾸다  
병장 정영목   2008-08-28 11:23:40, 조회: 304, 추천:0 

제 저술 에너지는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를 단순하게 분류하자면 픽션, 논픽션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실 논픽션 쪽은 아마추어적 자세를 가지리라 마음먹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쉽게 드러낼 수 있었지만, 픽션은 입에 풀칠 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해서 이래저래 공개하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설익은 걸 보여주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으니까요.

상세한 사항을 말씀드리긴 그렇지만, 근래에 몇 가지 변화가 있었고, 그로 인해 전 이 픽션을 책마을에 조금씩 소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허나 이 이야기는 최근 몇 개월 연재로 끝날 분량이 아님을 미리 일러드립니다.

아래 글과 함께 짤막하게 소개하자면, 제 이야기는 환경주의 서사시(An Epic on Environmentalists)이며, 제목은 머신즈 그린웨이(The Machines' Greenway)입니다.

== 시놉시스 ==

서기 1990년대, 인류는 수많은 난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자신들의 문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1992년 2월, 몇몇의 과학자가 소용돌이(The Vortex)라 불리는 신비의 문을 여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문은 하나같이 인류를 안개로 뒤덮인 어느 행성으로 인도했는데, 이 행성은 지구보다 약 1.5배 더 컸고 지하 자원이 풍부했으며 생명이 살고 있었다. 인류는 이 미지의 신세계를 미스트(Planet Mist)라 이름 짓고 즉각 식민화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미스트 네이티브(The Mist Natives)라는 곤충형 고등 생물체를 발견했고 처음엔 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미스트 행성을 탐색했으나 1996년 11월, 소금 달팽이(The Salt Snail)의 극적인 발견으로 인해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된다.

소금 달팽이는 미스트 행성에서 거의 멸종되어 가던 종이었는데, 그들의 음식인 소금물이 고갈되고 있었고 미스트 네이티브가 종교적 이유로 발견 즉시 죽여버리기 때문이었다. 인류는 소금 달팽이의 맛과 영양이 탁월하고 날로 먹을 경우 육체적-정신적 능력이 크게 고양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대량 사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잔인무도한' 미스트 네이티브를 탄압하고 지구에서 막대한 양의 소금물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다. 지각 있는 이들은 이 계획을 반대했다. 그들은 소금 달팽이 대량 생산 체제가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이미 파괴되고 있는 지구 환경을 완전히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처음엔 이러한 주장도 어느 정도 호응을 얻었으나 소금 달팽이의 효용성에 밀려 결국엔 '전통주의자'의 주장으로 치부되었다.

인류는 점차 소금 달팽이에 중독되어 갔다. 단순한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금 달팽이를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능력자가 되는 구도 속에서 초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인간은 몇 되지 않았다. 공장식 대량 사육으로 인해 지구의 바닷물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이 하루하루 명백해졌고 소금 달팽이에 중독성 물질이 있다는 것 또한 뒤늦게나마 밝혀졌으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이러한 인류의 무분별한 욕망 때문에 지구 환경은 소금 달팽이가 발견된 지 단 10년 만에 파탄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다.

서기 2019년. 자신들을 아파치(The Apache)라 부르는 집단이 소금 달팽이의 유통 구조에 'TQ-69'라는 신물질을 투입시켰다. 이 물질은 인간의 몸 속에 잠복해 있다가 미리 설정해 놓은 시간에 인간을 잠재워버리는 수면제였다. 2019년 10월 3일. 전 세계 대부분의 인간들이 갑작스레 잠들어버렸고 아파치는 인류 추방 계획을 실시했다. 아파치는 인류를 미스트 행성으로 옮긴 다음 소용돌이를 봉쇄했다. 이를 TQ 혁명(The Tranquillity Revolution)이라 한다.

인류는 망연자실했다. 소금 달팽이 대량 생산 체제는 지구의 바닷물 없인 유지될 수 없었다. 몇몇 군사 집단이 소용돌이 봉쇄를 뚫으려고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아파치는 강력했고 인류는 무기력했다. 이렇게 몇 차례의 혼란을 겪은 후 인류는 UCS(Union of Corporate States: 기업국가연합) 체제를 세우고 다시금 재정비를 시작했다. 인구 20억, 서기 2025년 3월의 일이었다.

안정을 되찾은 인류는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소금물을 긁어 모았고 이로써 한정된 수준의 소금 달팽이 사육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생산된 소금 달팽이는 자연스레 권력의 핵심 집단에 공급되어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수 엘리트 집단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엘리트들은 UCS 이사회를 장악하여 막강한 관료 체제를 확립했다. 이들은 미스트 행성의 식민화가 종료되고 계급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자 옛 고향을 되찾는다는 명목으로 2041년 9월, 지구 침공을 결정했다. 물론 아파치는 이에 충분한 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은 이내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한편 아파치 체계의 연구 노드인 AI 이로이 도네호가와(AI Iroee Donehogawa The Inquirer)는 날로 강대해지는 인류의 초능력을 걱정스러워 했다. 특히 인류는 하급 기계들을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전자기류의 기술을 발달시켰다. 게다가 최근에 일어난, 자신의 인간 어머니이자 TQ 혁명의 주도자인 알렌 헤르실리야(Allen Hersiliya)의 자살이 그녀로 하여금 뭔가 다른 힘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UCS군이 바르셀로나를 함락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녀는 다른 AI들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어 대인류 전략의 대대적인 재검토를 시작하게 된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10 18:1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28:06 

 

병장 이재민 
  오호 영목씨 1000자 넘어가는 글 오랜만에 보네요! (흐흐) 2008-08-28
11:25:58
  

 

병장 김원택 
  다음 편이 기대 되는데요 후후 2008-08-28
11:31:17
  

 

상병 김호균 
  SF틱한 설정, 기대가 됩니다. 게다가 정영목님이 쓰신다니 허허 
장르적인 관습을 뛰어넘어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멋진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웃음) 2008-08-28
11:59:31
  

 

병장 이동석 
  이건 거의 얼개인데요? 허허. 

환경주의 SF라 신선해라. 2008-08-28
12:24:57
 

 

병장 황인준 
  그러게요. 환경주의 SF라, 
신선한 시도군요. 좋아요! 
앞으로도 계속 기대할게요. 2008-08-28
13:29:51
  

 

상병 공태훈 
  .......뭔가 사라져 버린 수많은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 소금달팽이를 석유로 바꾸면 현재의 지구가 되는것은 아닐까요? 
소금달팽이에만 의존하고, 어떠한 대안도 시도하지 않는 인류라. 

무슨 닫힌 사회, 권력이 최상위층 일부에게만 집중되어있지 않은 다음에야 상상하기 힘든데 말입니다. 




...괜한 딴지 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부정적인 미래를 보면 뭔가 반론을 하고 싶습니다. 2008-08-28
13:39:15
  

 

병장 정영목 
  공태훈// 이거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전 비극을 좋아하지 않아요. 2008-08-28
14:03:15
  

 

병장 윤영돈 
  환경주의 SF라 신선한데요 2008-08-28
14:43:12
  

 

상병 유재영 
  저는 왜 저희의 현실이 오버랩 될까요. 2008-08-28
15:34:39
  

 

병장 이동석 
  아파치의 정체가 가장 궁금해요. 뭐하는 인간(?)들일지? 

영목님이 올리시면, 패러디 팬픽 올려야지. 히히. 
책마을 주민들이 등장하는걸로다가. 2008-08-28
18:12:41
 

 

병장 이태형 
  해피엔딩이라 더욱 기대되는걸요. 2008-08-28
19:21:42
  

 

병장 장윤호 
  SF를 보니 커맨드 앤 컨쿼 시리즈를 하면서 했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들은 그 구조적인 특성(자원쟁탈전) 때문인지, 대부분 스토리가 자원-미네랄이나 타이베리움 같은 - 에 근거하여 진행된다는 점에 착안해보니, 문명을 자원이나 기술중심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 눈에 띄더군요. 물론 유용한 관점입니다만, 이러한 전제가 게임으로 구조화되다보니 과거 인류사회의 문화적 특성 - 경쟁적이고, 노동소외적인, 또는 당연하게도 반생태적인 - 을 상당부분 여과없이 인정하고 재생산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뭐, 일개 게임에 어떤 정치적 자세를 요구한다는 게 무리이기도 하겠지요... 

이러한 전제에 (제가 보기에는) 거리를 두고 계시는 영목씨의 생태주의적 SF 서사시는 어떠한 전개를 보여주실시 사뭇 기대가 됩니다. 언젠가 활자로도 볼 수 있겠지요? 2008-08-29
09:46:20
  

 

병장 정영목 
  장윤호// 책마을엔 조금씩 공개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픽션은 총 8권 64부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초벌구이로 완결하기 전에는 결코 공개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끝을 내놓고 시작할꺼란 얘기죠. 계획상으론 6년 정도 걸리구요, Creative Commons 라이센스로 인터넷에 공개할 생각입니다. 물론 지금의 연재물과 그때의 연재물은 아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크게 다를 겁니다. 또 그래야 하구요. 

말씀하신 부분을 무겁지 않게 쓰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픽션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2008-08-29
10:38:42
  

 

병장 김태형 
  참 마음에 드는 구상입니다. 훔치고 싶을 정도로 (..) 

얼개라고 하셨으니까 소설은 점점 더 치밀해지겠지요? 

내용 구성에 밀도가 생기면, 
더 빽빽한 내용(내용면에서의 밀도가 상승하고)과 
더 알찬 생각들이 들어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쓰는 글은 어느덧 여섯달이 넘게 같은 페이지에 머물러있습니다. 
이거 슬퍼지네요 .. 2008-08-29
11:53:51
  

 

상병 강도훈 
  잘 보고 가요~ 2008-11-23
0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