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개] 삶을 노래하며  

상병 손근애  [Homepage]  2009-05-17 09:59:50, 조회: 87, 추천:0 

삶을 노래하며.

다음세대의 20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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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년, 대입을 마치고 한창 신입생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새롭게 펼쳐진 자유와 새롭게 만나는 인연, 그리고 새로운 환경. 갑작스레 많은 것들이 주어진 탓인지 어떤 것도 진중하게 느끼고 사색할 새가 없었다. 나는 그저 그 갑자기 찾아온 모든 혜택들을 향유하기에 바빴다. 숱하게 사람들은 만났고, 숱하게 많은 밤을 대화로, 게임으로, 프로그래밍으로 하얗게 지새웠다. 부끄럽게도 모든 것이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답례인양 느껴졌던 것이다. 주변에서 늘상 말하지 않았는가. 대입은 제한된 모든 문을 열수 있는 마스터 키Master Key라고. 그렇게 나는 찾아온 답례-그것이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었을지라도-를 눈앞에 놓인 음식모양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꿈결 같던 시간들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대학교에 올라와 두 번째 시험을 마치던 날, 종강 파티라는 이름으로 술자리가 벌어졌다. 처음으로 맞는, 고등학교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편하고 긴 대학교의 방학이라는 기분에 취해 잘 실감하지도 못하면서 웃고 떠드는 사이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향해갔다.
너나 할 거 없이 취해버린 무리들과 막차를 타러 이동하던 중, 한 고등학교 앞을 지나쳤다. ‘금일’이라기보다 ‘익일’에 더 가까운 시간, 새까만 교복을 입은 통일된 머리스타일의 학생들이 몰려나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재잘재잘, 왁자지껄. 
그 답답한 건물내에서 하루종일(정말로 하루 종일) 똑같은 생활패턴으로 똑같은 하루하루가 반복되었을텐데 무슨 이야기 할 것이 그리도 많을까. 바로 일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의 내 모습이라는 데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 나는 그들의 표정과 말, 그리고 눈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곧이어 소스라쳤다.

그들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 현재는 불만족스러울지언정, 앞으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6개월만 지나면 자신도 나와 같은 위치-대학생-에서 그동안 못 누려본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듣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진한 희망을 들으며 전율했다. 그들의 선망어린 눈길을 받으면서 고개가 떨구어졌다. 어디엔가라도 숨고 싶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대학생, 즉 성인이라는 위치에 나 자신을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 약 8개월 전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그때 내가 떠올렸던 생각들이 머릿속에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대학생이라는 것, 성인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다. 나 자신은 저 자리에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이라는 이름의 자유를 당당히 들고서 자신의 일을 결정하고, 20대의, 20대만의 기치를 하나하나 해나가는 존재였다. 열정과 패기로 가득 차 반짝였던 그들의 눈은 그 당시 내가 알지 못했던 가치를 바라봤고 그 가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날 줄 알았다. 내가 행하지 못하는 일도 그들은 행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을 바라봤다. 20살을 동경했다. 내 앞에 놓여질 책임과 의무는 바라보지도 못한 채. 

내모습을 바라보고 20대를 꿈꿀 아이들에게 나는 과연 내 앞선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것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나는, 내면에서 울려오는 그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해 그날 밤 내내 두려움에 몸서리 쳤다.

몸은 20대에 들어섰지만 내면 또한 그러한가. 앞선 자는 자신이 가는 길을 후에 올 이에게 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나는 그 책임과 의무를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나는, 많은 인생경험을 가지고 있고 내가 보기에 정말로 곧은 길을 대쪽같이 걸어가고 있는 분들을 주로 만나는, 배움이라는 이름의 현실도피를 감행했다. 

도피를 감행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대화를 나눌수록 더욱더 현실은 나를 옥죄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여되는 책임, 어려워져만 가는 사회는 스펙Spec 경쟁이라는 전쟁터로 나를 내몰았고, 그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갈 길은 사회에서 최고라고 말해지는 목표를 잡고 그것을 성취하는 수 밖에 없어보였다. 사회가 어렵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좋은 모범이 되기 위해 나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다. 

그렇게, 어느샌가 나는 열정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대입=절대 가치'라고 세뇌 단계까지 주입시키던 학교교육과 무한 경쟁이 되어버리고 있는-그래서 자멸하고 있는-현실 인식으로 달궈지고 있는 냄비속의 개구리처럼 주어진 상황에, 주어진 목표에 되는대로 근근히 살아가는데 그쳤을 뿐이었다.
문득, 내가 바라봤던 20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바라봤던 그들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는가. 현실이 힘들다는 핑계로, 흥미범위를 스펙경쟁에만 국한한채 그저 땅만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의 모습이었나. 

그리고는 서글펐다. 아니라는 답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무엇보다도 서글펐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에는 현실이 너무나도 잔인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앞으로만 달려야 하는 평행선, 그것이, 현실이었다. 
사람이 지성의 동물이라지만, 결국 그것은 의식주가 해결된 다음의 가치일 수 밖에 없는 것... 이 과하게 과열된 씨알만한 사회는 입시경쟁에서 놓이자마자 그 의식주를 위협할 수 있는 경쟁을 또다시 가중시키고 있었다. 

어느새부터인가, 20대가 죽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의 20대는 꿈이 없다고, 사회의 주축이 되어야 하는 20대 이건만 지금의 20대는 그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사회를 바꾸려기보다 물질적인 성공에만 눈멀어 있다는 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소위,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세대들, 그리고 현 세대의 중축을 맡고 있는 세대들로부터. 

그 소리를 들으며, 할 말을 잃었다. 지금의 20대는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으며 대차게 나갈 용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서글펐다. 그리고 분노했다. 버젓히 살아있는 내가 죽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서글펐고, 그들이 함부로 재단한 그 언사에 분연히 대응할 말을 찾지 못하는 현실도 서글펐다. 그리고 살아있는 나에게 함부로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것에 분노했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 우리에게 물려준 그들의 입에서 나온 사망선고이기에 분노했다. 

왜 내가 속한 20대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사망선고가 내려져야 하는가.
청춘이 끝났다고 감히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 누구인가.
20대의 날개를 꺾은 것은 누구인가.

시각이 바뀌었다. 조금씩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고, 이력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해 했던 사회 경험들은 나의 시각을 조금 더 트이게 했다. 조금씩, 나 자신을 채워가면서 고개를 드니 주변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염없이 비틀대고 있는 20대의 친구들, 후배들. 자신의 뜻을 펼치지도 못하고, 아니,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경쟁이라는 대세에, 스펙이라는 단어에 몸을 내 맡겨 휩쓸리고 있는 사람들. 검게 죽은 그들의 눈빛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온통, 나의 모습들이었다. 그 모든 것이, 그 모든 것이.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들이 재단할 정도로 싸구려 목숨들은 아니었다. 모두, 살아있었다. 그들은 그래도 꿈을 바라고 있었다. 감히 꾸지는 못해도 꿈을 꿀수 있기를 바랐다. 그게 그들의, 아니 우리들의 희망이었고 그것이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나는 이상주의자다. 한때 후배들의 시선이 주는 책임감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상주의자다.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펼치며 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현실보다는 꿈을 좇으며 그 꿈에서 행복을 찾기를 누구보다도 바란다. 그렇기에 다그치고, 일으켰다. 모두가 죽었다고 말해도 나는 가냘픈 숨소리의 희망에 기대어 우리 20대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그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응원가를 부르려 한다. 형편없었던, 도망쳤었던 내 도의에 대한 속죄로, 사회를 변화시킬 거대한 20대에 대한 힘에 대한 예우로.

찬란하고 무궁한 가능성의 20대...
나를 바라보고 20대를 꿈꿀 후배들을 위해서, 아직 살아있음을, 희망을, 그리고 20대의 삶을 노래하리라. 내 온 힘껏, 목소리를 다하여 나의 20대를 울려퍼지게 하리라.
캄캄함 속에서 길을 잃은 자에게 방향을 부여해주는 하나의 찬가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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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ol에 올라가게 될 제 글의 방향을 참 많이도 고심했습니다. 
원래 기한은 4월 20일로, 논의가 시작되고 방향이 잡힌 그날로부터 약 3주간의 기한이 있었지만 쉽사리 글을 써내려가지 못했던 것은, 쉽사리 정해지지 않고 잡히지 않는 제 글의 방향 때문이었습니다.
20대의 소통을 위한 공간에 컨텐츠를 제공하게 된다는 부담감은, 제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기왕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내가 내 스스로 발을 디딘 곳이기에 더 좋은 방향의 컨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머릿속의 생각의 통로를 꽉 틀어막았습니다.
때맞추어 터진 제 신상의 문제는 사고를 더욱더 조급하게 할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20대의 초기로 생각을 돌렸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가면서 하나하나 기억을 되짚으면서 이미 와버린 중반까지의 삶을 하나하나 돌이켰습니다.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후회없이 살았지만, 이렇게밖에 안되었나는 생각에.
그러고는 타자를 두들겼습니다. 결국 제가 할수 있는 정도는 이정도입니다. 제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그리고 제가 바라봤던 20대를 비추어, 20대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 
아직도 고칠곳이 너무도 많고, 감정적인 글이지만 부끄러운 글이나마 올리는 것은 그래도 대략적인 제 방향을 소개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전 아직도 제 후배들이 두렵습니다. 그들이 저를 보면서 어떤 20대를 바라보고, 어떤 20대를 꿈꿀까요.
저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지요.
하지만 꾹 참고, 한발을 내 딛습니다. 내가 바라봤던 20대의 모습을 위해서, 그리고 제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을 위해서.

혼자 간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질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곳의 사람들과 함께 내딛으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저는 조금 늦었지만, 아닌 사람들이, 그래도 다 같은 길을 가고 있으니까요.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4:32 

 

상병 양동훈 
  정말 뭐같은건,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라는 말 따위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도 못한다는 겁니다. 

젠장. 

한없이 쪽팔리네요.. 2009-05-17
13:57:20
  

 

병장 고승철 
  "20살을 동경했다. 내 앞에 놓여질 책임과 의무는 바라보지도 못한 채." 

정말 동경했었죠.... 2009-05-18
07:55:27
  

 

병장 이동열 
  다시 희망을 노래해봅시다. 
저 역시 독창이었다면 쉽사리 부르지 못할 희망의 찬가지만 
합창으로는 희망의 찬가를 부를 수 있을 것같습니다. 
함깨 노래합시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