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개] 사랑하는 자신과의 뒤늦은 화해  
상병 정근영   2009-02-15 23:05:06, 조회: 287, 추천:0 

# 1
나는 공부를 잘했다. 천성적으로 뛰어난 단기기억력과 순간집중력 덕분에 벼락치기에 강했고, 그 때문에 빈둥빈둥 놀면서도 늘 상위권에 머물렀다. 초, 중학교 때부터 혼자 공부하던 습관 때문이었는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나의 공부방법론은 더욱 발달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간신히 상위권에 머무는 정도였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자 이상하게도 시험을 볼 때마다 점수가 쑥쑥 올라가서 전교 1등도 심심치 않게 할 수 있었다. 비록 겉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자만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나는 밤늦게까지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 애들을 비웃듯 새벽까지 스타를 하곤 했다. 그런 나를 주위의 애들은 부러운 듯 쳐다봤고, 나는 쿨한 척을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기면서도 내심 그것들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스타도 내가 탑이었다. 쉽사리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한, 두명 정도는 있었지만.

그랬던 나에게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이과 영역은 중학교 때 이후로 관심을 뚝 끊어버렸고, 왠만한 문학작품은 ‘조국의 해방을 간절히 염원’이라는 주제로 귀결되었으며, 역사는 그냥 암기만 죽도록 하면 되었다. ‘cogito ergo sum'이라는 명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데카르트는 그냥 합리론의 선구자였고, 사르트르와 키에르케고르와 니체는 모두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에 불과했다. 헤겔에 대해서는 ‘정-반-합’과 ‘변증법’만 알면 끝이었고, 양적 공리주의자라고 배웠던 제레미 벤담이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는 사실 따위 알 필요도,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 것들 따위 몰라도 시험에서 100점 맞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비록 ‘대학’이라는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목표를 위해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애초에 ‘앎’에의 의지가 없던 나에게 단편적인 지식의 나열에 불과했던 순간의 기억들이 오랫동안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고등학교 3년 동안 머릿속에 눌러담았던 살얼음같이 얇디 얇은 지식들은 수능이 끝나기 무섭게 휘발되기 시작했다.


# 2
언제였을까. 독후감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고, 일기 안 써온다고 매번 혼나고, ‘글’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짓눌려 있던 나에게 ‘글쓰기’라는 말이 처음으로 깊은 떨림과 함께 가슴 한구석에 깊숙이 박혀버린 순간이.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한창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길드에 가입하고 이런저런 커뮤니티들을 전전하던 나에게 ‘Press L'이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도 명문이라 일컫어지는 'I'm sorry, dol a wa jul rae?' 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는 눈물이 핑-돌고 말았다. 한낱 게임을 소재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나는 당장 그분의 블로그로 기어들어가 모든 글들을 다 읽기 시작했다. 그분은 글을 참 잘 썼다. 문체는 깔끔하고 세련되었으며, 문장 하나하나에는 풍부한 감성이 묻어나왔다. 나는 곧 그분의 팬이 되고 말았다. 비록 그 당시에는 그 흔한 댓글도 하나 달지 못하고 한낱 눈팅족에 머물렀지만, 언젠가 제대로 글을 쓰게 된다면 그와 같은 글을 쓸 것이라 막연히 상상해왔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해 내가 동경을 품게 된 것이. 단언컨대 지금의 내 글을 이루고 있는 5할 이상은 그분의 글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의 씨앗은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몸 어딘가에 뿌려졌다.


# 3
내가 짐작하던데, 아마도 지금 책마을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 중 상당수는 이곳 책마을을 접하기 전에도 글을 써왔던 것 같다. 탄탄한 구성과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이성, 다양한 어휘력, 가슴에 푹 담갔다가 꺼낸듯한 싱싱하고 산뜻한 문장들, 그리고 화려한 수사와 비유는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관념을 녹여서 글로 풀어쓰는 지난한 노력의 과정을 거쳤을 그들의 모습을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 명예의 전당과 책가지, 칼럼에 가있는 수많은 글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그 노력의 가치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에 비해 나는 어떤가. 자기 만족을 위한 싸이월드 다이어리에나 써놓을 법한 글들을 말 그대로 싸이어리에나 써놓았고, 그 또한 대부분이 단편적인 생각의 나열에 불과했을 뿐, 나의 의지로 글다운 글을 써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당연히 타인과의 생산적인 피드백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었으며, 그렇게 나의 생각들은 내가 자초한 울타리에 갇혀 외롭게 죽어가고 있었다.


# 4
나에게는 ‘열정’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앞에서도 말했듯 타고난 순간집중력 덕에 어떤 것이든 잠깐만 ‘버닝’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었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지속시킬 에너지의 원동력이 없었던 나는 곧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니힐리스트가 되어갔다. ‘능력’과 ‘스펙’과 ‘자격증’과 ‘영어’로 점철된 20대를 냉소적인 눈으로 비웃었지만, 그것에 대항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지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하는 행위를 증오했다. 끝도 없이 부유하는 정체성이 역겨웠다. 그래서 난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이것만으로도 남들과 차별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5
궁에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생산적인 일 중에 하나가 독서라는 사실을 깨닫고-라면 거짓말이고, 나는 단지 쉬는 시간에 할 일이 없기에 따분해서 이등병때부터 열심히 책을 읽었다.(그래, 나는 개념없는 후임프였다) 그것에는 그냥 텍스트를 섭취하는 이상의 의미가 없었고, 따라서 별다른 목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갓 배터리 두칸을 채울 무렵 우연히 책마을을 발견했고, 곧 그 만남은 나를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명예의 전당과 책가지를 읽다가 나는 갑자기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이 내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나에게 존재한 적이 없던 전투적인 열정이 나의 심장을 태워버릴 듯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서서히 이제껏 외면해왔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마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예전이면 그냥 흘려넘겼을 보르헤스, 마르케스, 라캉, 발터 벤야민, 비트겐슈타인, 롤랑 바르트, 루카치, 촘스키, 우석훈, 강유원, 장하준, 신영복 같은 이름들이 뇌리 속으로 박히기 시작했고 대학교 때 독후감 교재로 만났던 김애란이니 김경욱, 김영하, 김연수, 박민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문학시간에 흘려넘겼던 피천득의 ‘인연’이 얼마나 아름다운 책인지 깨달았으며,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같은 선생이 이상화가 열 여덟에 썼다는 ‘나의 침실로’가 조국해방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실은 피끓는 젊음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치는 시일 거라고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했고, 조식과 견희는 분명히 서로 사랑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저지르는 일이 과거 독일이 그들에게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 분개했고,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좌절했다. 책마을과의 만남으로 인해 나는 비로소 세상을 마주볼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세계를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내 글의 나머지 5할을, 이곳이 채워주었다.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씨앗이 서서히 싹을 틔우고 있었다.


# 6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꽤나 많은 분들의 호응을 받은 나의 부족한 글들과 몇몇 분들의 추천에 힘입어 이렇게 얼개를 쓰고는 있지만,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고개를 돌리지 않겠다. 대신에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다가가 그의 마음을 공명시켰다면, 그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것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내가 오직 하나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쉽게 펜을 꺾지 않겠다는 의지 뿐이다. 나는 이제서야 과거 속에 머물러있는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나는 글의 힘을 믿는다. 혹자는 책만 읽고 방에 틀어박혀 글이나 쓰는 샌님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결국은 행동하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글’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믿는다. 모든 것은 생각을 토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비록 내가 지금은 비루한 모습으로 물을 찾아 헐떡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의 글이 지금의 나와 같은 모습을 한 행인들에게 사막 속의 오아시스로 다가가 달콤하고 시원하게 그들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20.3.1.47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10
09:45:06 

 

책마을 
54.6.4.170   조회수 0의 상큼함! 낄낄. 2009-02-15
23:08:45
 

 

병장 김동욱 
54.6.4.170   본케릭으로 로긴. 

그때 제가 그런 말했었지요? 제가 좋아하는 후배놈이랑 닮았다고, 낄낄. 그 놈이 저랑 좀 비슷하거든요, 뭐 이것저것. 그래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는데, 근영씨의 글을 읽고 있으면 뭔가 같은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누군가를 마주대한다는 건 불편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즐겁군요. 

"‘능력’과 ‘스펙’과 ‘자격증’과 ‘영어’로 점철된 20대를 냉소적인 눈으로 비웃었지만, 그것에 대항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지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하는 행위를 증오했다. 끝도 없이 부유하는 정체성이 역겨웠다. 그래서 난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낄낄. 더도없던 대학생활의 제 모습입니다. 단지 역겨웠던 건, 아니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아무 그들은 단순하게 비웃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제 모습이었지만. 부러웠거든요. 뭐든 열정적으로 하는 친구 놈들이.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니까, 계속 안으로만 움츠리고 냉소적인 말들만 내뱉고. 

'트레인스포팅'이라는 영화 기억하시나요? 그 이름이 갑자기 기억안나는데 머리빠박 깎은 영국남자 배우가 차가 오가는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리던. 거기서도 주인공이 그런 식의 독백을 읊조렸던 것 같아요.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라면서. 

근영님. ban gab. 2009-02-15
23:55:45
 

 

상병 정근영 
20.3.1.44   에잇, 저 짓궂은 글설리의 정체는 동욱씨였군요. 

맞아요. 사실은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는지도. 
단지 쉽사리 인정하기가 싫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것이 아니라며 애써 합리화하고, 자위하고 있었을 뿐인지도. 

그렇기에 저에게는 이 책마을이 정말 소중하답니다. 
아마도 제 인생의 베스트 Turning-Point 가 될 것 같아요. 


아무튼, 이젠 [칼럼]이라는 말머리가 부끄럽지 않게 머리 빠지도록 글을 써야겠군요. 
안 그래도 무거웠던 책마을의 글쓰기 버튼이 더더욱 제 어깨를 짓누를 것 같아요, 흑 2009-02-16
00:09:27
 

 

상병 장형순 
24.18.1.181   //동욱 

이안 맥그리거 에요. "choose life... "로 시작하는, 삶의 요소들을 장만하기 위한 노력과 그것을 거부하는 10대의 방황, 그리고 결국 현실을 찾아가는 마무리. 이기팝의 노래죠. 이 영화와 이 노래만 아니었어도, 제 지난날 아무것도 안 하는 삶에 그렇게 당당하진 않았을텐데. 젠장. 

//근영 

마치 하나의 종족처럼,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방종하다 깨닳고 고민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것 같네요. 누구도 참신한 경우의 '알깨기'를 경험하지 못하고 그 부끄러움이 출발이 되는 걸 보면 그것이 피할 수 없는 모두의 통과의례인 것일까요. 아니면 이마저도 구획화된 농장 시스템에서 성장한 우량종자들의 폐 일까요. 

지식을 배우기도 전에 그 의미와 실용에 대한 비뚤어진 관념부터 마음에 배어버린 우리이기에, 앎.에 대한 태도는 대체 어째야 하는 것인가 고민합니다. 무기를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 무기의 사용에 대한 도덕적 자아도 형성되지 않은 어린애같은 내가, 무기의 날을 갈고 닦는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까도 고민합니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는 도덕과 가치관을 불신하는 우리 세대의 지식이 홀로 자생하며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는 함께 고민하는 동료들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당신으로 인해서 많은 것을 알고,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어야 하는지, 안다면 어찌해야 하는지 함께 답을 얻게 되길 기대합니다. 2009-02-16
04:22:37
 

 

상병 정근영 
20.3.1.44   형순 / 감사합니다. 우매한 글에 달린 날카로운 현답이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군요. '앎'의 과정에 있어서 형순씨가 말한 것처럼 그 '앎'이 어떻게 쓰일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놓칠 수 있는 점을 짚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09-02-16
07:47:36
 

 

병장 김민규 
22.34.42.32   아, 소름돋아. 
아침부터 찌릿찌릿하게 만들거유? 아 정말. 그건 그렇고 아직까지도 "보르헤스, 마르케스, 라캉, 발터 벤야민, 비트겐슈타인, 롤랑 바르트, 루카치, 촘스키, 우석훈, 강유원, 장하준, 신영복 같은 이름들"중 반의 반도 제대로 접해보지 않은 나는 뭔가. 역시 그냥 일찌감치 개념없는 나인으로 돌변해서 책마을이나 들여다보고 있을걸 그랬나. 
아무렴 어때요. 나가서 한 1년 도서관에서 살지 뭐. 면벽수행이라도 해야겠습니다, 낄낄낄. 

I'm sorry, dol a wa jul rae? 머리속에 울려퍼지는데 공허한 소리엔 메아리가 없네요. 대신해서 절절하게 울려 주시라요. 기대감 만빵- 2009-02-16
08:41:13
 

 

상병 이동열 
22.36.32.250   솔직해서인가요? 가슴에 와닿습니다... 제가 걸어온 일련의 과정과 어느정도 부합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공감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물론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겠지만요(웃음) 여기에 제가 갈 길은 아직도 너무나 멉니다. 멀고 험해서 걱정스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왠지 모르게 동반자를 찾은 것같은 착각(?)이 듭니다. 기대하겠습니다. 2009-02-16
09:19:39
 

 

병장 정병훈 
16.35.11.88   메롱. 

아, 얼개는 올라오는데, 다음 글을 못 읽는, 나는. 기쁠까 슬플까? 2009-02-16
11:39:13
 

 

일병 송기화 
22.80.6.58   근영님도 참.(응?) 

얼개도 올라왔고, 근영님의 저녁인사까지 읽을 수 있는 저는 마냥 기쁘기만 할까요? 
엥. 2009-02-16
13:29:15
 

 

병장 홍석기 
54.1.37.124   드디어 근영씨의 출동- 

책만 읽고 방에 틀어박혀 글이나 쓰는 샌님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는 냉소적인 니힐리스트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고, 등을 두드려 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울타리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들에게 개구멍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 근영씨가 되리라 믿어 의심지 않습니다. 근영씨 글은 이미 오아시스 정도가 아니라 아이시스니까요. 흐흐. 

제 위에 달린 답글만 해도 이거 부담감이 상당하실 듯하지만- 저 역시 된 인간은 아니기에 기왓장 하나 더 올려 드립니다. 헤헤. 기대할게요- 2009-02-16
14:04:17
 

 

상병 정근영 
20.3.1.45   민규 / 옴매, 설마 저걸 제가 다 읽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흐흐, 보르헤스가 쓴 글 중에 "나는 책 목록에 대한 목록을 찾아 헤멨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들어서는 저자 이름만 봐도 읽고 싶은 욕망이 드는 책들이 많아서 한숨만 나오는군요. 이게 자칫 무분별한 지식에 섭취-에 지나지 않을까 약간의 걱정이 되긴 하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닥치는 대로 읽으려구요. 

동열 / 클클, 저 역시도 잘 부탁드려요. 동열씨의 책 목록은 기대하고 있답니다. 

병훈 / 울컥, 나가서 봅시다. 오늘쯤 출발했으려나, 흐흐 

기화 / 엄머, 그러고보니 기화씨는 제 저녁인사를 보겠군요(히죽) 

석기 / 석기씨의 댓글은 제게 용기가 되는걸요. 그나저나, 아이시스라면 500ml짜리 생수 한 병? 원샷에 끝낼수 있는 정도라니.. 역시 제 그릇은 작군요, 흑흑 2009-02-18
09:09:07
 

 

일병 오효섭 
7.5.1.143   박수세번 웃음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