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개] 부촌장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습니까? 얼개입니다.  
병장 이동석  [Homepage]  2008-07-21 15:35:59, 조회: 455, 추천:9 

부촌장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습니까? 얼개입니다.

조그만 쇳조각에 이름과 일련번호를 새겨 목에 걸었을 때 나는 어쩌면 세계가 만들어놓고 잊어버린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자 인간 멋대로 떠나 보낸 명왕성마냥 곁가지만 도는 넌 내 자식이 아니라며 내쳐버린 하나님 아버지의 어린양이었던 것이다. 음메에. 이건 소잖아. 그렇습니까? 어린양입니다.

소는 양의 창자를 갈아 마시더니 다리가 풀렸더랬다. 애비애미도 못 알아보니 하나님 아버지고 나발이고 그저 부처만 아니면 죄다 나가리다. 불자냐고? 불효자다. 불효자는 운다. 울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주시니까. 크리스마스는 케백수와 함께. 모두 함께해요. 자 손을 위로. 풋처 핸썹, 붓처 핸썹. 부처 핸썸. 부처 핸섬. 아 자꾸 잘 생겼다네. 정육점 이씨는 쑥스럽게 웃으며 오함마를 높이 치켜든다. 애비애미도 못 알아보고 하나님 아버지고 나발이고 모르던 소세끼도 부처는 알아본다. 우아아아앙. 울면 안 된다니까.

세끼 흰 쌀밥에 소고기만 먹던 인류는 결국 변비와 어떤 병으로 멸종된다. 아니 멸종 될 뻔 했는데 삼시 세끼 쌀겨만 먹던 진화한 ‘신조류’가 나타나 인류를 구원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조류세계는 인류독감과 광인병이라는 치명적 위협에 시달리게 되었다. 오른 날개잡이들은 이 기회에 인류가 자신들의 선조들에게 자행했던 집단 수용소와 홀로코스트를 보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왼 날개잡이들은 애초에 인류를 식용으로 사육한 게 잘못이었고 지나친 육식, 그것도 인간위주의 식습관은 조류에게 재앙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조류기구는 결국 인류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아파트에서 사육되던 인류는 땅에 파묻힌다. 아파트를 벗어난 소수의 인류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침팬지와 고릴라 옆에 갇힌다. 또 지구는 멸망했다. 인류입장에서 보자면 그렇다. 명왕성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명왕성엔 최후의 인류와 장미 한 송이가 살고 있었다.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왕자와 시들어가는 장미였다. 고향이었던 소행성이 재개발 되는 바람에 큰 수익을 올린 그들은 더 이상 쓸데없는 감정싸움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너 인간이었니? 4주간의 조정기간을 통해 명왕성을 쪼개 가지기로 한 둘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다. 아닌데? 인류는 완전히 멸망했다. 명왕성이 쪼개지자 조용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지구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불꽃놀인가? 외계인의 침공이다! 외계인이 우리의 소중한 명왕성을 폭파시켰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새들이 외계인의 배후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명왕성이 뭐였죠?

연행당한 새들은 날갯죽지에 쇳조각을 달아야 했다. –개똥지빠귀, XX-XYXYXYXY- 그리고 풀려난 새들은 남과 북으로 나뉜 명왕성으로 망명했다. 마침 왕자는 새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절한 개똥지빠귀들은 왕자를 싣고 날아갔다. 새들은 왕자가 너무 무거워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원초과로 단속했더니 벨트도 안 매고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무면허에 음주운전이 엮였다. 마침 왕자는 장미살해혐의로 수배 중이었다. 장미가 벌레가 끓는다며 농약을 요구해서 그저 농약을 주었을 뿐이라고 왕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모든 조류는 경악했다.

농약이라도 마시겠습니다. 왕자는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모두 그에게 유배형을 선택하라고 했지만, 그는 한번에 타오르기를 원했다. 그는 눈을 감으며 뭔가 석연찮은 걸 느꼈지만, 귀찮아서 세수도 않고 이도 닦지 않고 눈을 감았다. 

왕자가 어렸을 적 지구에 방문했을 때 가져간 우리에는 어린양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양은 인간이 만들어준 우리를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빈곤과 외로움과 질병과 기아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의 유언은 ‘거봐 잊어먹은 거 맞댔지?’


.....


이 곳은 어쩌면 명왕성이다. 나는 흐르고 흘러 결국 명왕성에 막 발을 붙인 하나의 씨앗이다. 모든 씨앗이 바오밥나무이거나 장미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난 그저 하나의 가능성이다. 책마을에서라도 제초 따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같은 잡풀이라도 보듬아준것처럼 모든 씨앗을 키워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설혹 바오밥나무라도 말이다. 바오밥나무가 부숴버릴 만큼 책마을은 연약하지 않으니까.

온갖 잡풀이 자라고 벌레가 날아다니며 거미줄이 무성한 곳에 살았다. 원래 인간은. 그런 것이 무질서라고 여기라고 배웠다. 지금 인간은. 

어쩌면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질서정연하게 만들고 통제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럴수록 끝내 닿을 수 없는 곳만 확연히 보이는 것이다. 꿈속의 책마을엔 잡풀이 풍성하며 벌레가 기어 다니며 거미줄에 이슬이 맺혔다. 그럼에도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능하고 게을러서가 아니라 어울림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거미줄을 치워야 한다. 잡풀의 아름다움도 한 두 번은 무시해야 한다. 벌레를 쫓아내기도 해야 한다. 공익을 위해서라는 개소리는 하지 않겠다. 우리는 단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최후의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줬으면 하는 이기심이다. 세계의 식물들과 곤충들과 절지동물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날 비난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난 이곳이 너무 좋고, 인간이 너무 좋다. 대신에 내 몸이라도 주겠다. 마음껏 뜯어먹고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마음껏 집을 만들어라. 난 책마을의 한 그루 바오밥나무다. 

-안녕하세요. 부촌장 이동석입니다. 마음껏 뜯어먹고 살아보아요.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10 18:1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27:08 

 

일병 이동열 
  마지막이 인상깊네요. 잘 부탁드립니다(꾸벅) 2008-07-21
15:44:58
  

 

일병 김상윤 
  별달리 할말이 없네요 
그저 추천할뿐! 
한편의 잘 만들어진 블랙코미디 영화를 보는 느낌 2008-07-21
15:53:42
  

 

상병 양순호 
  우적우적. 되새김질을 하는겁니다. 우적우적. 

저도 보면서 생각나는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책자'던가요. 
뭐 이런류가 생각나에요. 비슷하게는 티비서 줄창 방영해주는 '무서운 영화 시리즈'. 2008-07-21
16:02:39
  

 

일병 김상윤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였나. 
저는 영화로 본 기억이 나네여 
우주 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지구 철거, 던가 2008-07-21
16:06:56
  

 

병장 허기민 
  최강희 씨를 좋아하시는 부촌장님, 반갑습니다(웃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2008-07-21
16:23:28
  

 

상병 양순호 
  그러다가 갑자기 모 일로 인해 어쩌구 저쩌구가 되어버리죠. 
철거도 단숨에 짠! 하고 되던 모습이 참.. 2008-07-21
16:43:45
  

 

상병 강수식 
  시뻘건 여름을 맞이해보아요, 부촌장님! 2008-07-22
08:26:05
  

 

병장 장윤호 
  사바세계의 어린양이자 책마을의 바오밥나무. 
얼개마저도 위트가 넘치시네요. 2008-07-22
08:30:05
  

 

상병 홍석기 
  동석님 스타일이 잘 나타난 전대미문의 B급 얼개로군요. 

앞으로 책마을 잘 이끌어 나가시리라 믿습니다. 2008-07-22
11:26:49
  

 

병장 오영석 
  갑작스레 자연으로 돌아가라 라는 말이 떠오르는건 왜죠? 

어찌 되었든 부촌장님 잘부탁드립니다(꾸벅) 2008-07-23
00:20:09
  

 

병장 정영목 
  May the force be with you. 2008-07-23
07:28:44
  

 

병장 박상욱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얼개인가요? 
암튼 잘먹겠습니다(합장) 2008-07-24
09:34:54
  

 

병장 김근현 
  헐. 그렇군요. 2008-07-26
13:15:29
  

 

상병 박장건 
  잘 봤습니다. 하지만 제 어린왕자는 저렇지 않아요! 크핫.. 2008-12-11
22:4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