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 
 
 
 
 
심심한 사과의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책가지라는 게시판이 가지는 무게를 온몸으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아까 그 얼개를 올려놓고는 무덤에서도 눈을 감을 수 없을 것같아 결국, 이렇게 다시 써버리고 말았다. 아니라고 해도 결국 나의 경솔함에 저주를.
용서를 빈다. =======================================================================================
피천득의 피딴문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필이다. 소주 한잔처럼 칼칼한 일상에서 달달한 뒷맛 같은 깨달음을 이끌어낸다. 담백하면서도 꾸밈이 없다. 병영도서관 한 칸을 차지하고 앉아 늘 그 제목만큼은 날 반하게 하는 ‘생활의 발견’이란 책처럼, 나의 글도 언제나 생활의 발견에서 태어나고, 일상의 깨달음으로 끝이 난다. 일상 속에서 수많은 문제를 사유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보다 이런 가벼운 깨달음 쪽에 더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가 없다.

27사단시절, ‘쿨함에 대하여’란 글로 시작된 수많은 名게시물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었다. ㅡ‘가벼움의 미학’에 대한 책이 나온다면 정말 대박일거다.ㅡ라고. 결론은 쿨함에 대한 아쉬움으로 맺었다고 보이지만, ‘가벼움이라’ 가볍게 되뇌이며, 그동안 내가 좋아하던 것들의 본질이 그 가벼움임을 알게 된 것은 그때부터다.

가볍게 생각하기. 한 주제를 무섭게 사유하고 깊은 통찰로, 언어의 날줄과 씨줄들이 정교하게 교차하여 짜여진 글들을 보면, 입도 못 다물고 대단함에 환호하면서도, 나는ㅡ능력부족에 기반하여ㅡ가볍게, 가볍게 쓰고있다. ‘쓸 수 밖에 없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황민우상병님과 오재찬병장님(전역하셨지만)의 글들, 존경하는 필진 분들의 주옥같은 글을 보고나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한 소절 따라 부르고 싶지만, 명창들의 작품을 행여나 망칠까, 박수만 치고 마는 것이다.

이전에 한상원 병장님의 답글을 보면서, 더욱 노력하고, 더욱 생각해보아야지 란 결심을 했지만, 결국 내가 가고 있는 길은 가볍게 생각하기다. 가볍게 일상을 밟아 흘러나온 액기스를 맛보는 것에서 그치고 있다. 나라고 무거운 글을 쓰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ㅡ능력부족은 부단히 노력하면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ㅡ이렇게도 내가 무거운듯 시작해서 언제나 가벼움으로 수렴하는 글을 써대는 이유는, 가벼움 핑계삼아 내 주변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너무 깊은 주제에 사로잡혀 무거워질까 가라앉을까 두려워하는 이 겁쟁이에게 트여진 마지막 길은 가볍게 생각하기. 가라앉기 전에 가볍게 한발 한발 내딛으면서 살아가는 총총걸음과도 같은 글이, 비록 참방거리는 물위에 내던져진 발자국 같아, 지나가면 사라진데도,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은 가볍지만, 한걸음을 내딛는 과정이 충분히 무겁다고 생각되기에, 난 만족하고 있다.

그래도, 가볍게만 살아가는 건 문제가 있다. 가볍다는 문제는 진지함이 가지게 되는 필연적 무거움을 탈피하지만, 그 맛도 여운도 역시 비길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난 거장의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요리 대신, 값싸고 맛있는 밑반찬 같은 무언가를 제공하고 싶다. 없어지면, 왠지 허전하기만 해도 난 충분히 성공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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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썼을 때, 혼자 써본 얼개라는 느낌이 강했다. ‘필진’이 될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때였다. 때문에, 부끄럽게도ㅡ억지로 짜낸 가식덩어리ㅡ얼개를 썼다가 지워버리는 ‘특단의 조치’가 시행되고 만 것이다.(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날 볼때, 난 이 책마을 필진의 이단자ㅡ미달자가 더 가깝네..ㅡ다. 나란 놈은 다른 필진들처럼 명확한 주제의식을 지닌 것도 아니고, 때문에 시야도 좁고, 생각도 얕다. 필력 또한 결코 따르지 못한다. 

하지만 발을 들여놨다.

중도하차라는 건 말도 안된다. 책마을을 드나들면서 꿈꾸던 필진의 꿈이 이루어졌는데,(필진이라는 명찰만 달았을 뿐, 향후 노력여하에 달려있다는 건 알고 있다) 노력조차 안하고 부담감에 눌려 죽어버리는 모습은 용납할 수 없다. 피동태에서 능동태로의 변화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감상자의 역할로만 가득 찬 이제까지의 삶에서 처음으로 연주가의 길이 열렸다. 오버한다고 해도 난, 이 일이 내 인생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계기'라고 여기고 있다. 이렇게 겁나고, 떨어보긴 처음이지만, 초심자의 두려움일게다. 내가 나를 토닥거리며, 떨려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발을 억지로 움켜잡고 한발을 내딛고 있다. 잔뜩 겁에만 질려서 초반엔 후들거릴지라도 끝날때까지 멈추진 않겠다. 

다시,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하면 늘 내 머릿속엔 ‘왼손잡이’라는 노래만 흐른다.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이 가사만 유독 크게 들리는 이유는 아마도 가볍게만 생각하는 이들밖에 없기 때문에 세상은 변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깊은 통찰과 사유는 그에 비례하는 추진력을 이끌어낼 텐데, 그에 비하면 부족함에 고개만 떨굴 뿐이다. 

커다란 물탱크에 파란 잉크 한방울을 떨어뜨렸다고 해서, 물색깔이 변하지는 않는다. 난ㅡ적어도 지금의 난ㅡ잉크병이 될 수 없다. 낙숫물도 구멍을 뚫는다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난 미약한 한방울의 낙숫물일 뿐이다. 딱 한방울만 더 불러모아도 좋다. 물에 닿는 즉시 원형도 유지못한 체 흩어져 버려도 좋다. 단지 그걸로 한방울만 더 불러 모으면, 그걸로 난 좋다. 흔적조차 남지 않아도, 난 성공한거라고.

이제 눈이 좀 감길 것 같다. 그런 의미로, 
잘 부탁드립니다. 

  
 
 
 
병장 노지훈 (2006/03/18 22:47:04)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혀 지겠죠. (웃음)    
 
 
상병 송희석 (2006/03/19 09:08:11)

음하하하! 가벼움의 미학을 꼭 보여주세요!    
 
 
 상병 박진우 (2006/03/19 13:08:31)

키치의 아름다움. 


포스트모더닉하게 들리는군.    
 
 
 병장 김동환 (2006/03/19 16:59:50)

주현님 화이팅!!!(웃음)    
 
 
병장 주영준 (2006/03/30 14:07:29)

기대 욜라 많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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