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개 - 글로 삶을 풀어쓰다  김동석의 칼럼 자체 해석본 
 
 
 
 



얼개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제 글은 아주 평이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 만한 것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쉽게 쓰는 것, 그러면서도 특별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거예요.

- [얼개에 앞서]에서.

동석님의 글은 정말 잘 읽힙니다. 
모두가 아는 단어로, 모두가 동감하는 내용을, 그러나 모두가 글로 표현하지 못했던 
글을 쓰는 동석님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 한형진님의 덧글에서.




누군가에게, 나와 아무런 얽힘이 없었던 이에게 글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이 글을 읽는 그대는 나를 모릅니다. 얼굴을 보았다 해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도, 나를 참말로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떠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 내가 무슨 일을 겪어 이 글을 쓰는지. 참마음은 숨어있습니다. 

나의 얼개는 나의 글 속에 숨은 그림을 찾아준 이들이 있었기에 쓰는 것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얼개를 쓰지 못했을 거예요. 읽어주고 그 뜻을 헤아려준 이가 있어 나는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글을 읽으면서 언짢았던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허원영은 그의 글에서 읽는 이를 언짢게 만들어야 좋은 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나는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글을 쓰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다른 이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달라지자고 부르짖거나 바꾸어가자고 소리치는 글을 쓴다면 그건 나를 속이고 거짓으로 꾸미는 일이기에 차마 그런 짓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동석님께서 느리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역설하시는 동안 저는 같은 이유 같은 맥락에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자기 주관이 결여된 채 ‘지적 허영(물질적 허영)이나 지식 과포화(물질적 과포화)를 불러일으킬 속독(빠른 성공..정도)' 은 의미 없는 삶이 될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논지를 연관시켜보았습니다. 

- 정성진님의 댓글에서.



나에게 글읽기란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책가지에 올린 세 개의 칼럼은 글을 읽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그 글에서 '읽는다'와 '살아간다'는 같은 말이었습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다시쓰기」에서 나는 우리의 모습과 삶이 어떠했으며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고, 「어마어마한 독서목록에 기가 죽은 분들께 드리는 글」에서는 삶을 살아가는 '길'을 이야기했으며, 「올바른 독서법에 대하여 - 느리게 읽는다는 것의 의미」에는 삶을 다루는 마음가짐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글읽기를 이야기하며 내가 생각하는 삶과 내가 살아간 삶을 이야기했고, 있는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며 떳떳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다른 글도 썼지만, 그리고 몇몇은 책가지에 올라와 있는 글이 있지만, 굳이 그 글들을 칼럼으로 올리지 않은 데에는 필진을 처음 하고자 했을 때부터 '내가 책가지에 올리는 칼럼은 글읽기와 삶이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글이어야 한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더듬더듬 글을 읽어나가던 어릴 적부터 이제까지, 나는 글쓰기에 앞서 언제나 그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글을 적어나갔습니다. 글을 읽는 이들의 모임에서, 나의 글이 다른 이들의 삶 속에 스며들려면 먼저 글읽기와 삶이 같다는 내 뜻을 알려야 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그 세 개의 글을 가지에 올렸습니다. 다른 이들이 삶을 이야기할 때 나는 오로지 글읽기만 말했습니다. 꼭 있어야 할, 내가 늘 책마을에 있기를 바랐던 글은 '글읽기가 곧 삶'이라고 말하는 글이었습니다.

참마음을 남에게 보여주고 거짓없이 삶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나를 모르는 다른 이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오랜 옛날에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의 마음을 움직이려 참마음을 보여주고 삶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비꼬기와 꾸미기보다 삶을 말했고 멋진 꿈보다 투박한 내 모습과 삶 가운데 놓인 작은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게는 꿈이 있었습니다」에서 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그저 '이야기'만이 아닌 나의 삶을 이끌어왔던 글, 나의 삶과도 같은 글이었습니다. 내 글은 바로 내가 딛고 선 터전이었습니다.

나는 이 얼개를 우리말로만 썼습니다. 쉬운 낱말만으로 얼마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나도 그대도 알고 있습니다. 참뜻은 오히려 어린 아이의 말처럼 쉬운 것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 까닭으로 돌려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것은 뜻없는 일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더없이 뜻있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여태껏 만나지 못한 좋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이 쓴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었고, 그 글을 읽으며 나는 또 어느새 달라졌습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고 나의 글이 그대를 움직였다는 것에 기꺼웠습니다. 

이제 나는 전역인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곳에 올리는 글은 그것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나는 그 글에서 이곳을 어떻게 느꼈는지 적을 생각입니다. 그 글을 한 마디로 줄여 말하겠습니다. '그동안 나는 책마을과 더불어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즐거우십시오. 그리고 끝날까지 잊지 마십시오. 이곳이 얼마나 우리를 가슴 벅차게 만들었는지를.
 

  
 
 
 
병장 이영기 (20060723 165302)

축. 얼개 완성을. 
동석씨가 목표로 하던 것을, 어떤 의미로든 마무리 지었다는 의미에서의.    
 
 
상병 조주현 (20060723 170934)

축하드립니다. 
얼개는 이렇게 쓰일수 있군요.    
 
 
병장 주영준 (20060723 171134)

내게 당신이 직접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글이에요. 
당신이 지금까지 ㎢ 그 모든 글들과 마찬가지로. 

잘 가요. 라는 말은 전역인사를 위해 아껴둘께요. 헤헤.    
 
 
 병장 김동환 (20060723 171427)

브라보. 정말 축하합니다.    
 
 
병장 김형진 (20060723 173535)

사장님 나이스 샷.    
 
 
병장 김정훈 (20060723 204122)

참으로 멋진 삶을 쓰신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왼쪽 심장이 쿵쾅 쿵쾅 뛰네요. 이런 걸 가슴 벅차다고 하는건가봐요.    
 
 
상병 박종민 (20060723 214526)

아, 주현님이 말씀하신 대로, 
'얼개는 이렇게 쓰일 수 있군요'(2) 

본문에 나왔던 그런 연유로, 
저는 언제나 당신을 책마을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간판 글쟁이라고 
줄곧 생각했었습니다. 

어려운 것도 쉽게 쓰는 극강의 글쓰기를 몸소 실천하신 동석씨를, 
책마을 주민들은 언제나 기억할 거라고 믿어요. 
마지막 칼럼, 잘 읽었습니다!    
 
 
병장 박민수 (20060724 020610)

멋져요.    
 
 
병장 황민우 (20060724 080642)

나가면 자주 볼 수 있겠지 
기타 장만해놔 (씨익)    
 
 
일병 김지민 (20060724 124324)

요호. 기대중.    
 
 
병장 박원홍 (20060724 215942)

필진이 아니셨군요. 그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병장 김동석 (20060725 101403)

아핫. 이런, 오해를 사게 되었네요. 필진이었습니다. 무척 게으른 필진이었죠. 
제가 얼개를 쓰게 된 까닭이 궁금하시다면 저의 회원특집 공지를 참조하세요.    
 
 
병장 박원홍 (20060725 202135)

아~진정 제가 게으른 책마을 주민으로 살고있나봐요.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달지않았을 댓글을. 요즘 맨날 밖으로만 다녀서 미뤄둔 페이지의 압박이 장난이 아니군요. 아무튼. 동석님 글 잘봤었는데 마지막 글이라니 정말 아쉽네요. 혹시나 정모때 보면 사과주 한잔 드리겠습니다.    
 
 
상병 김청하 (20060727 004718)

예, 잊지 않겠습니다. 이곳이 얼마나 저를 가슴 벅차게 만들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