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개] 개미다  
병장 김선익   2008-11-30 22:28:54, 조회: 230, 추천:0 

바다는 넓고, 하늘은 끝도 없이 높다는 사실은 티끌하나 없이 완벽하게 이해하겠는데,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곳곳에 그것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만큼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있다는 사실이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된다. 십만명? 아니 일만명의 숫자조차 나에게는 실감이 안된다. 그들 개개인이 나와 마찬가지로 생각, 꿈, 이상, 욕망을 가진 인격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뿐이다.

우리 집 바로 앞에 소각시설이 들어오게 됐다. 당연하게도 주민들의 극심한 항의가 계속됐다. 시에서는 이에 대한 방안으로 문화시설을 건설해주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나는 소각로와 문화의 집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문화의 집 안에는 헬스장, 수영장, 에어로빅 시설들을 비롯해서 청소년들을 위한 노래방, 밴드연습실, 미니 도서관, 세미나실 등이 있었다. 돈이 없던 고등학교 시절 그 곳은 꽁짜로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읽고 싶을 때면 찾는 곳이 되었다. 간사님과 처음 만나게 된 것도 그 때였다.
- 청소년 인권단체에 가입해 볼 생각없니?

나는 소통할 곳이 필요했다. 간사님을 만나기 일주일 전, 국어선생님의 추천으로 시 토론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주제는 ‘한국교육을 말하다’였다. 네 명의 학생들과 경쟁을 벌였는데 다들 ‘뻔한’ 소리들을 하고 있었다. 나도 신문어귀에서 어렴풋이 봤던 기억이 있는 말들을 마치 자기생각인 것처럼 너무나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설명하는 내 또래들을 보면서 신기할 뿐이었다. 
-제 생각을 말하자면, 저는 문학을 아니, 우리나라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 곳에 참가하게 된 것도 국어 선생님의 추천이었구요. 그런데 저는 평론가가 될 순 있어도 시인이나 소설가는 되질 못해요.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이게 문제라구요.
나는 그 곳에서 혼자 고등학생이었고, 다분히 감성적이었다. 참가상과 함께 5천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주며(그것도 개인적으로) 웃고 있던 국어선생님을 만났을 때, 문학시간이면 자리까지 바꿔가며 앞 자리에 앉던 나는 어느 새 맨 뒷자리에 가 있었다. 이런 나에게 간사님의 제안은 솔깃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입하게 된 청소년 인권단체 ‘날개’, 얼마 후 임원선거에서 나와 함께 가입한 친구는 회장에 뽑혔고, 나는 총무를 맡게 되었고 나는 점점 날개에 일부분이 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청소년들의 인권을 알리기 위한 오직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기였다. 공연장소를 섭외하고, 각 고등학교의 동아리회장들을 만나 지원요청을 했다. 밴드 동아리를 위해 밴드연습실을 24시간 개방했고, 영화동아리를 위해 의상을 준비해주고, 만화동아리를 위해 그림용품을 구입해줬다. 얌전하게 빼는 문예동아리 회장을 설득하기 위해, 잘생긴 회장을 앞세워 여자고등학교에 몰래 들어가 합평회에 깜짝 참가하기도 했다. 결과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각 학교 동아리들의 연극과 밴드공연, 전시회, 교복패션쇼 등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0교시 폐지, 두발과 교복자율화, 청소년 범죄, 청소년들의 문화공간등 그 당시 이슈화되었던 문제에 대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토론대회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고, 내가 직접 만든 시화에 인기스티커가 붙을 때면 그 곳에서만큼은 나도 시인이었다. (내 아이디어였기에 살짝 말하자면, 셀프아이스크림이 호황을 거둬 30만원의 이익금을 얻었고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학교 앞 횡단보도 만들기였다. 횡단보도가 부족하다거나, 교통량에 비해 부적절한 횡단보도를 조사해 그 효율성을 높이자는 의도였다. 발로 뛰는 조사를 통해 구청에 의견을 제출했다. 얼마 후 초등학교 앞 두 곳의 횡단보도 시스템이 개편되었고, 또 다른 고등학교 앞에는 횡단보도가 추가되었다. 
세 번째 프로젝트는 지방 간 교류를 통한 워크숍이었다. 총 네 차례의 워크숍동안, 우리는 한층 객관적인 입장으로 우리를 볼 수 있었다. 이 워크숍을 통해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이라고 한다면, 체육대회의 개최였다. 우리는 각 지방의 청소년단체들과 연계하여 체육대회를 열었다. 우리는 장소와 각종 인프라들만 제공했고, 행사의 주체는 청소년들이었다. 세 번의 체육대회를 통한 이익금과 남은 시지원금은 불우이웃돕기에 썼고, 우리는 타 지방 청소년단체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할 기회를 얻었는데 바로 모범청소년인권단체로 뽑힌 것이다. 부상은 대만과 싱가포르에서의 일주일이었다.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 처음 받아보는 비자, 대만과 싱가포르의 청소년단체와의 만남, 직접 보는 이국적인 풍경들. 모든 것이 놀라웠다. 그래, 한 때 나는 이런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비누로 똥을 닦으면, 똥이 깨끗해지지 비누가 결코 더러워지진 않는다고 굳게 믿을만큼 순진하다. 다만 이 세상엔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많다는 걸 감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문화의 경험도, 충격도 없었다. 오직 혼자만의 상상으로 이루어져, 순진한 내 모습은 그대로 갇혀버렸다. 나는 개미만큼 작아져버렸다. 

숨구멍과도 같은 소통의 공간이 생겼다. 십만명도 아니고, 일만명도 아니고, 일천명이라,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작은 내 숨구멍때문에 호흡이 정지되면 인공호흡이라도 해줄 수 있는 책임감을 부탁드린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10 18:18)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6
13:30:38 

 

병장 정병훈 
  일단 도장 찍고 하하하. 요글래 들어서 정말 읽을 만한 글이 많이 올라옵니다. 
얼개는 아껴 뒀다가 읽고 싶을정도로 잘 쓰인 글들이 많아요. 지금 하는 일이 있어서 조금 쉬었다가 읽어 보겠습니다. 하하하 2008-11-30
22:32:54
  

 

병장 문두환 
  호오...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모범'청소년인권단체라기 보다는 일종의 지하조직이었다고 할까요(웃음)? 그때는 청소년의 인권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건방진 것으로 간주되었던 시기였던지라 학교에서 징계와 제재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했었고, 단체는 순식간에 와해되었더랬죠. 여튼 맑은 선익님의 글이 야근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식혀주었네요. 고마워요. 흐흐. 2008-11-30
22:34:35
  

 

병장 김현민 
  개미만큼 작아져버렸다. 숨구멍과도 같은 소통의 공간이 생겼다. 
그 숨구멍과도 같은 소통속에서 호흡이 정지되면 인공호흡을 부탁한다라. 

좋은 글귀였습니다. 잘읽었어요. 2008-11-30
22:37:06
  

 

병장 김민규 
  "나는 아직까지도 비누로 똥을 닦으면, 똥이 깨끗해지지 비누가 결코 더러워지진 않는다고 굳게 믿을만큼 순진하다" 

우리이기에 가질 수 있는 순수, 세상이 속일지언정 그것에 눈감고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를 지닌 선익님의 글귀가 사뭇 기대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08-11-30
22:51:20
  

 

상병 이지훈 
  멋집니다! 잘 읽었고 이어지는 글들 기대할게요 

요즘 얼개 읽는 재미에 빠졌네요 흐흐 2008-12-01
00:20:12
  

 

병장 정병훈 
  재밌네요. 얼개라는 한계적인 글을 이렇게 만나는것도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몇편의 글을 읽지 못했지만, 선익님의 글에선, 그래요- 순수와 젊음을 느낍니다. 
선익님이 호흡을 멈추면 심폐소생술을 할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2008-12-01
11:10:52
  

 

병장 이동석 
  선익님을 알아보고 표를 던지신 분들의 안목에 찬사를 먼저 보내야겠습니다. 

가나다순으로 할때, 책마을에는 좌선익 우기화-가 아닌가 싶어요. 어떤 부분-에서 일까요. 껄껄. 2008-12-01
11:36:06
 

 

병장 정병훈 
  오- 좌(左)선익 우(右)기화라. 
선(先)동석 후(後)무준 정도와 비슷하군요. 그럼 전... 중(中)병훈하겠습니다. 음하하하하 

껄껄껄- 동석님 얼개 기다리다 목 빠지겠습니다. 2008-12-01
11:40:12
  

 

병장 이동석 
  선빵 동석 후회피 무준, 중간 병훈 (?) 뭐 이런건가요? 낄낄. 

얼개는 아마도 오늘 저녁에나...(땀) 2008-12-01
11:52:23
 

 

병장 김선익 
  허리가 아팠어요. 계속 참았는데 점점 심해오더라구요. 
그래서 저녁까지 50일정도 남았는데, 12일간의 저녁전슈가를 미리 썼어요.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때였는데 거의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중간에 슈가를 나와버렸죠. 
나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든 간에 아픈 상태로 저녁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사지방 검사결과 디스크라고 하고, 복귀 후에도 몸은 아직 좋질 못하고, 
저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시선은 결코 곱질 않고, 
개인적으로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2008-12-19
20:15:37
  

 

병장 김선익 
  혹시 서정인씨 좋아하시는 분 있나요? 2008-12-19
20:15:50
  

 

병장 이동석 
  두둥- 선익님 돌아오셨어요? 허리는 좀 어떠세요? 2009-01-03
15:5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