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일치. 이건아니잖아. 기대와 현실사이의 간극.
어제저녁 '웃찾사'를 보며 한껏 웃었다. '개콘'과는 달리 매니아 성향이 강하고 개성적인 인물들이 즐비해있는 SBS 개그맨들 답게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컬트적 재미 또한 여전했고, 각종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관객들의 참여의 여지를 늘려놓으며 참여의 재미또한 느끼게 해주었다.
혹자는 유행어를 너무 억지로 만들어낸다는 것때문에 싫다고들 하는데, 모르는 말 마시라. 유행어가 있어야 우리는 그들의 개그와 일체가 될수있다. 무심코 유행어가 나올 타이밍에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그네들의 유행어. 거기서 개그를 하는 개그맨과 개그를 즐기는 관객과의 사이가 좁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유행어를 몸서리치도록 거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웃찾사'가 재미없는건 당연하다. 그런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보고있어도 낄낄 웃을수 있는 개그를 선보이는 박성호나, 옥동자, 오지헌, 육봉달 등이 포진된 얼굴과 행동만으로도 웃길수 있는 '개콘'을 보는게 속 편할것이다.
그들중 유독 눈에 띄는 두가지 코너가 있었으니. 바로 '언행일치'와 '이건아니잖아.'
두 코너는 기대와 현실사이의 간극을 과장된 형식과 유희적인 방법으로 벌려놓음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고 있었다. '언행일치'를 살펴보면 코너 초반에 엄마가 항상 이 코너에서 염두에 두어야할 네글자 단어를 상기시켜준다. 언행일치. 말과 행동이 똑같아야 한다는 말. 관객들은 그럼 그들의 개그는 말과 행동을 똑같이 하는데서 오는 개그이겠구나 하는 기대를 하며 그들의 개그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그 기대는 말과 행동을 완전히 반대로 해버리는 엽기적인 가족들의 현실로 무너지게 되고, 그 사이에서 오는 즐거움으로 관객들은 웃게되는 것이다. 뭔가 중대하고도 중요한 말을 할것같은 분위기로 만드는 아빠의 솨솨. 이라는 이상한 의성어와 이해할수 없는 괴기한 행동들. 관객은 중요한 대사를 기대한다. 그러나 아빠는 '우리 통닭시켜먹을까' 라는 대사로 관객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웃게 만든다. 엄마는 딸의 행동을 보고 너무 화가 났는지 딸을 마구잡이로 팬다. 한참을 패던 엄마가 씨익 웃으며 하는 말. '금쪽같은 내 새-끼.' 역시나 기대를 한참이나 어긋나게 한다. 딸 역시 마찬가지다. 거울을 보더니 갑자기 거울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발로 밟고 막 화를 낸다. '나 너무 이뻐!' 못생겼다는 말을 기대하던 관객을 여지없이 배신하는 현실이다.
사실 딸과 엄마의 역할을 남자가 맡는다는 것 자체가 언행일치가 아니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도 자신들의 개그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코너의 초반에 읖조리는 엄마의 우리집 가훈, 언행일치. 라는 말 또한 코너 내내 보여주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인해 언행불일치를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들에게 내재되어있는 언행불일치적인 습관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 내뱉어놓고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하는 우리들의 그런 작은 부분을 콕 집어내어 크게 부풀리고 우스운 대상으로 대상화 시킨다. 그리고 '그냥 웃자.'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습관을 괜히 심각하게 대할 필요도 없고, 누구나 다 그러니까 그냥 웃어넘기자고. 웃음의 이데올로기를 우리의 무의식속에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삶의 언행불일치까지도 그들을 풍자해낸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이 일을 하면 이렇게 되겠지 라고 기대를 하개 된다. 예를 들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똥을 다 싸고 휴지걸이에 손을 갖다 댄다. 물론 휴지가 있으리라는 기대에. 그러나 예상했던 휴지가 없어 기대를 저버리는 현실 앞에 우리는 절망하고 갈등하게 된다. 주관화된 사건이라면 견뎌내기 힘든 상황이겠지만 타자화시키고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시트콤과도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기대와 현실이 일치하는건 일상이다. 로버트 맥기는 자신의 라는 책에서 극적인 사건을 끌어내는 갈등은 이러한 캐릭터들의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 사이에서 오는 간극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기대화 현실사이의 간극은 극적 상황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일상은 한편의 극으로 완성되어간다.
'언행일치'의 개그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전혀 일상이 아니다. 엽기 코드로 대변되는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서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극도의 확대 해석된 언행불일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의 개그가 피부에 와 닿으며 웃기는 까닭은 그네들의 모습이 실은 우리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현실. 말과 행동. 그 사이의 간극을 그들은 웃음으로 썰어내고 있는 것이다.
'언행일치'와 더불어 '이건아니잖아' 라는 코너 또한 인기다. 아무런 bgm도 없고, 흔한 세트와 준비물 또한 없다. 두명의 신인 개그맨이 준비하는 거라곤 오로지 대사. 그것뿐이다. 스탠딩 코미디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혹자는 율동도 준비할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 율동은 특별히 준비한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냥 즉석 애드립으로 리듬에 취해 하는 행동에 불과한 것 같다.
그들은 특유의 리듬감과 빠른 대사로 젊은이들의 열광을 이끌어낸다. 개그가 끝났어도, 둘의 목소리와 리듬은 여전히 남아있다. 소위 말하는 중독현상인게다.
그들의 개그방식 또한 '언행일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언행일치'는 말과 행동의 간극을 풍자하는 형식이라면, '이건아니잖아'는 오직 말로써 승부를 한다. 길고 긴 대사를 통해 고양시킨 기대감을 허물어버리는 결정적 단어 하나를 사용하여 관객을 웃기는 방식을 사용한다. 마치 예전의 '허무개그'나 정준하의 '안좋은 추억'을 보는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신인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랩의 형식을 차용한 획기적인 코너의 진행방식으로 '이건아니잖아' 는 아직도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개그의 사회성이 흐려져가는 요새의 개그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사적인 사건을 배치함으로써 웃다가 한번쯤 생각해볼꺼리를 던져준다는 점에 있어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또한 그들의 개그방식은 정말 따라하기 쉽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안녕하세요. 저는 태어날때부터 무척이나 여성스러워서, 너무나 여성스럽게 생기고 행동도 여성스럽다고 해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이름만 들어도 여자다움이 느껴지는 내 이름은!
주 영준입니다.
이건아니잖아. 이건아니잖아.
몇개 더 들어본다면
송희석씨가 쓴 글을 읽어보죠. 주말소묘 17.
이건아니잖아. 이건아니잖아.
하지연씨께서 오랜만에 댓글을 달아주셨는데요. 한번 읽어볼까요
족구해라. 신발.
이건아니잖아. 이건아니잖아.
뭐, 이런식이다. 얼마든지 우리의 삶에 차용해서 쓸수 있는 생활개그를 선보이면서 그들의 인기는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기대를 무너뜨리는 현실. 21세기를 들어서며 기대를 무너뜨리는 현실의 농도가 점점 짙어져가고 있다. 비행기는 당연히 하늘을 날아야 하는 기대를 무너뜨린 911테러의 현실. 지하철은 안전할거라는 기대를 무너뜨린 런던 지하철 테러와 대구 지하철 방화의 현실. 태풍 준비는 매년 하던대로만 하면 되겠지 하는 기대를 무너뜨린 태풍 매미의 현실. 내가 살아있을 동안엔 금강산에 못 가보겠지 하는 기대를 무너뜨린 금강산 관광의 현실. 등등...
일상에서 조차도 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수십번씩은 기대를 배반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것이 나의 삶이기에 일상이라고 믿어버리고 지루하다고 믿어버린다. 나의 삶 또한 극적인 부분이 많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는 나를 좋아할거란 기대를 무너뜨린 이별통보의 현실. 이라던지, 5급은 나오겠지 라는 기대를 무너뜨린 1급 판정의 현실. 이라던지.
그렇다. 기대와 현실사이의 간극은 우리 일상에서도 존재한다. '언행일치'와 '이건아니잖아'에서 보여주는 간극을 과장시킨 웃음은 어찌보면 마냥 배를 부여잡고 웃을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충분히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나 한번쯤 웃어보자. 현실에 대고 '푸하하' 크게 웃어볼수는 없는것 아닌가. 그들의 개그를 보고 듣고 즐기며 웃어버리자. 일상의 간극을 대할때도 그때의 웃음을 잊지말고, 간극을 대하자. 현실앞에서 절망할것이 아니라 조금 더 여유롭게 '피식' 웃어넘기고 또 다른 기대를 품으며 살아가자. 그것이 개그의 긍정적인 역할이니까.
어제 웃찾사를 봤으니 이제 또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한다.
음, 다음주에 웃찾사를 한다는 기대를 무너뜨리는 특별방송이 편성되는 현실이 일어나면 어쩌지 하는 예상이 문득 머리를 스치운다.
병장 김동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7-23 1254)
병장 주영준 (20060722 162615)
하지연씨께서 오랜만에 댓글을 달아주셨는데요. 한번 읽어볼까요
족구해라. 신발.
이건아니잖아. 이건아니잖아.
박진우에 올인. 인트라넷 보다 처음으로 소리내서 낄낄거렸다. 그리고 나 나름 행동은 여성스...
상병 조형규 (20060722 162821)
크크크, 요새 웃찾사가 정말 연타석홈런을 치고 있기는 하죠.
그나저나 영준님이 언급하지 않은 하나가 더 웃...(흠)
병장 이영기 (20060722 195121)
웃찾사를 봐야하는 건가 이건 (..........)
TV를 보질 않아서 (.......) 어 근데 말씀하신 내용은 알겠군요 보지 않았어도. (방긋)
병장 김동환 (20060722 210319)
좋아요좋아요.
저도 웃찾사에서 그 두가지는 무척 좋아합니다.
병장 김동환 (20060722 211037)
아무래도 이건 가지로
푸훗. 너무 웃겨요.
병장 송희석 (20060722 221814)
내이름만 없어도 가지로하겠는데. 으흠. 에잇. 인심썼다. 가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첫번째 개그에 올인합니다.
병장 정멸 (20060722 222347)
정말 글 잘쓰셨네요.
가지로에 한표!
병장 이영기 (20060722 222610)
멸씨 가지로라고 하셔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웃음)
제가 대신 했다고 하지요 하하.
상병 김청하 (20060723 002842)
다른 글들도 그렇습니다만, 진우 씨 말고 누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상병 정완수 (20060723 014433)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웃음)
병장 박원홍 (20060723 084830)
이건 아니잖아. 그 리듬감이랑 표정, 몸짓이 눈앞에 그려지는 군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병장 김강록 (20060723 102344)
진우씨에게 LP 출판사의 Critical Thinkers 시리즈 제 4권 문제적 텍스트 롤랑 바르트를 추천합니다.
병장 주영준 (20060723 112114)
아니 근데 진짜로 나 나름대로 여성스러....
병장 김형진 (20060723 121515)
영준 그 입 다물라!
병장 안대섭 (20060723 131351)
다물라! 다물라!
상병 박종민 (20060723 214639)
크크큭. 아 이런 센스쟁이 진우씨. 내 방명록에 답글 봤어요
싸랑해요- 캭.
병장 주영준 (20060724 082316)
김형진 안대섭 다 물어버리겠다.
병장 김강록 (20060724 101925)
확실히 주영준이 남자보다는 여자 역할을 하는 게 보다 확실히 어필하긴 합니다. 웃찾사개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