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이야기. 
 
 
 
 
취침나팔이 울렸다. 일단은 소설을 끝까지 봐야겠다. 웰컴 투 하드고어 랜드라고 하드고어 소설을 표방하는 편혜영의 소설을 펼친다. 아오이가든. 소설책 처음부터 끝까지 각각의 소재는 다르지만 꿰뚫는 것들은 같다. 시체와 시체. 죽음과 죽음. 비린내. 악취. 뭐 이런 것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식상하다는 것은 아니다. 웬만큼 재밌게 읽었다. 나는 얼마전 5일동안의 나들이 전부터 이 책을 읽었었으니까, 띄엄띄엄 보는 맛이 식상함을 덜어줬을 것이다. 원래는 잘 보지도 않는 소설평까지 읽고 나서야, 책을 덮는다. 기묘하게도 11시다. 나는 오늘 비번이므로, 지금 자면 7시간은 잘 수 있다. 행복하다. 그러나 눈은 좀체로 감겨도 감기질 않는다. 항상 무언가를 보고 번쩍번쩍 거린다. 라디오 소리가 웽웽거린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래도 자야한다. 안그러면 내일 피곤하다. 그뿐인가. 규칙적인 사회다 이곳은. 그런 이곳에서, 리듬을 깨뜨리는 행위는, 위험하다. 나는 규칙적이어야 한다. 내일이 망가지면, 일주일이 망가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나는 자고싶었다.

나들이를 나간동안 만났던 네가 떠오른다. 아. 그래.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왔었지. 나는 내가 연락 안할 줄 알았는데, 했었고. 이게 무슨 일이야. 별로 달갑지만은 않아. 우리는 마치 편혜영의 소설에서 나오는 시체들처럼 서있었어. 우리가 서있는 곳은 악몽처럼 모든 것이 죽어버린 도시 속이었어. 너와 나의 사이에는 수많은 폐허가 뒤죽박죽했잖아. 그거 알고 있니. 모든게 죽어버렸다는거. 그거 알고 있냐구.
학교에서 술먹는 가운데 그녀도 왔었다. 태연한 듯. 그 언젠가 사귈때 이런말을 했었다. 우리 헤어지게 되면 나 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할 자신 있어. 그렇게 분명히 말했었다. 웃기는 소리다. 아니 어쩌면, 내가 웃기는 걸지도 ㅡ 혹은 너와 나의 상황 자체가.
왜냐하면 ㅡ 과거의 너는 이미 죽어버려서, 묻어둔지 오래이기 때문에, 새로 만난 너는, 새로 자라난 너일 뿐이어서, 느낌이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는 것이다. 그래. 그런 거지. 연애 하던 당시. 그러니까 ㅡ 너를 사랑하던 그때에 나는 너의 머리카락 한올 부터 발톱 뿌시래기까지 모두 사랑했었다.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고 그리웠으니까. 그런 나도 죽었고, 그런 너도 죽었고, 그런 심장도 죽었고, 그런 풍경도 죽었으니까, 지금 만난 우리 앞에 펼쳐진 것들은 모두 폐허일 수 밖에.
한낱, 밤공기에 매달린 상상일 뿐이니까, 영상으로 떠오른다. 너는 거기에 축축하니 젖고 있다. 젝이랄. 이런 상상 하지 말자고. 어쩌면 상상이 아니고 회상일지도. 회상이 아니고, 단순한 논리적 사고일지도. 뭐 어쨋건 간에. 이러지 말라고. 너는 죽었잖아. 시신이 되어서까지 괴롭힐 건 없잖아.

아 잠이안온다. 라는 생각이 퍼뜩 나면서, 귀를 어지럽히고 있는 라디오의 음악이 거슬린다. 거슬린다. DJ DOC의 노래가 나오고 있다. 저 노래 소리가 없다면 나는 편히 잠 잘 수 있을까. 그래, 잠자는 법은 따로 있어. 양을 세는 것 보다도 탁월한 방법은, 자기 숨소리에 취하는거야. 뭐 이건 나만의 특이한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숨소리에 연연하고 있으면. 그 자연스러움에 매도되어, 태어나는 상상들까지도 자연스러워진다. 그래서 야밤의 느적느적한 꿈들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는 나는 자연스럽게 숨쉬어야지. 쉬, 후, 쉬, 후.
잠이 오는 것 같다.
라고 느끼는 순간 잠이 깬다. 그걸 안다. 의식과 무의식은 깻잎 한 장 차이다. 잠이 오질 않아. 잠이 오질 않아. 다시 한번 쉬, 후, 쉬, 후, 이번엔 흥분해서 그런지 호흡이 자연스럽질 못하다. 아냐, 이렇게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아. 잠을 자려면 자연스러워야 해. 나는 밤공기가 되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걸 알잖아.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그 짜증마냥 침낭을 풀썩거린다. 침낭 속 덥고 답답한 공기가 욕을 바가지로 하는 것 같다. 그래, 이런적 한두번이야? 이럴 땐 그저 무념무상이...
최고다 라고 생각 하고 있을 때, 야근이 끝난 고참이 내 옆자리로 와 매트리스를 버스덕 버스덕 편다. 상관하지 말자 상관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 할 수록 상관 하고야 만다. 그래 꼭 너같구나. 너를 잊을래 너를 잊을래 아무리 외쳐봐도 그게 안돼. 노래 가사까지 막 떠다닌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도 아니다. 이건 기필코 인조의 음향이다. 말하자면 잠을 청하기엔 너무 또랑한 의식 속의 증거다. 라는 거다. 
차라리 책을 볼까. 하지만 볼 책도 없다. 그럼 글을 쓸까. 하기엔 글이 안 써진다. 무엇보다, 자고 싶다.

맞아.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그랬었어. 잠을 자기 싫어하면, 오히려 깨어 있으려 하면 잠이 온다고. 그래 깨어있자. 깨어있자. 그러나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거짓불엉을 친 것은 아니다. 충분히 그말이 뭘 얘기하고 싶은 줄은 알아. 그치만 지금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야.


이번 나들이는 즐거웠지. 아 맞아. Y양도 만났었어. 참 많이 예뻐졌더라. 재밌어. 벌써 다른여자가 눈에 들어오는건가. 한창 사랑할때 만큼의 애정과는 비교도 안되지만, 그래도. 호감이라는게. 내게 오는건가? 그래 봤자 소용이 없어. 그런 생각에 미치자 미칠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있다. 소망과 반대되는 상황이란 것이 이곳에 또아리를 틀고, 나를 옥죄고 있다. 그래 더 열망해 열망해, 그럴 수록 옥죄는 너. 너. 너. 너. 너. 너. 너.
사랑하고 싶어. 사랑하고 싶은데. 대상도 없고, 나에겐 자격도 없고.

앗. 또 너무나 많은 잡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다간 영원히 못 잘지도 몰라. 아까 매트리스를 펴던 고참은 이미 잠자고 있다. 나보다도 빨리 코를 골고 있다. 억울해, 억울해, 나만 못자고 있어. 이 가운데서 간지러움이 발동한다. 또랑또랑한 정신과 잡념과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와, 야밤의 더운공기와, 간지러움이 내 몸과 뇌를 기어다니고 있다. 이러지마 이러지마.
한참을 벅벅 긁는다.

그래, 수능 전날엔 단박에 잤잖아. 그때 자기 최면 아주 잘 걸렸잖아. 이번에도 한번 해볼까. 그때 어떻게 했더라. 기억이 나기도 전에 ‘레드썬, 한방에 쏙 간다’ 라는 마음 속 외침이 울려 퍼진다. 울려 퍼지기만 한다. 어느새 내 심드렁한 가슴속에 꼬맹이는 그 어이없는 대사에 혼자 웃고 있다. 나는 웃을 수가 없다. 자야한다. 그러나 수능 때 했던 진지한 최면은 없고, 레드썬과 이형사만이 바보짓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고민한다. 수능때 어떻게 했었는가를 진지하게 파헤친다. 파헤칠수록, 정신은 아랑곳해진다. 그것을 나는 모른다.

결국 또 실패. 이제는 급기야 방금 코골기 시작한 고참을 불침번이 와서 근무교대 해야한다고 친절하게도 깨워준다. 지금이 몇시지. 얼마나 시간이 지난거야. 왜 이놈의 시간은 이렇게 잘가는 거냐고. 왜 항상 상대적인거냐. 바라지 않는 것과 바라는 것의 차이는 왜 이리 다른거냐고. 근무 교대를 위해 장구류를 철걱거리는 소리, 환복하는 소리가 또 나의 잠을 설치운다. 나는 얼풋 잠든 것 같다가도, 어느새 보면 뒤척이고 있는데, 잔건이 안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보면, 무언가의 위치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내 자세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잠은 역시 안온다. 간지럽다. 긁는다. 시원하다. 시원함은 정신을 또릿하게 한다. 나는 또 잠이 오지 않음을 고민한다. 고민은 잠을 오지 않게 만든다. 악순환의 반복. 반복. 밤은 길다.

아까 했던 생각들을 또 다시 곱씹는다. 거기다 이번엔, 초등학교적 생각까지 내려간다. 왜 갑자기 올챙이 생각이 나지. 과학시간에 올챙이 키우는 실습을 했었지. 알을 하나씩 받아와서, 개구리가 될때까지 키우는 실험관찰이었나. 뭐 그런거였는데. 내 개구리는 죽었어. 옆집 친구놈하고 하나씩 나눠 가지면서, 큰놈이면 대챙이 작은놈이면 소챙이 한다고, 소싯적 한자를 뽐내려고, 이름 지었었는데, 그놈이 대챙이 한다고 해서 싸웠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거 필요 없이, 내 개구리 뒷다리 나오다 죽었던 것 같은데, 물만 놓았더니, 처음엔 올챙이 놈 잘만 살다가. 뒷다리가 나오면서, 아가미 없어지고, 폐가 생겨서, 너 익사 했었지. 뒷다리 생겼으면 유리병 벽에 붙어서 악착같이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끈적한 뒷발도 없으니, 넌 죽을 수 밖에. 그래 맞아. 죽을 수 밖에 없었지. 
이상하게도 자라나는 너 잘 보다가, 그렇게 죽은 너를 보니, 묻어줄 마음 없었어. 나는 길에서 주은 메추라기도 묻어주는 착한 녀석이었는데. 왜 변기통에 버렸을까. 알맹이었을때 부터 봐온 너였는데. 단순히 비린내가 나서 그랬을까. 아니면 뒷다리가 문제였을까. 넌 왜 뒷다리도 안났는데 죽어버렸니. 내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은건가?

아 또 잠이 안온다. 생각은 점점 복잡해 지고, 짜증이 난다. 짜증은 열을 일으키고, 열은 더위를 느끼게 한다. 더위는 몸을 뒤척이게 하고 뒤척이는 몸은 나른할 새가 없다. 그러니 잠이 안온다. 어쨌거나, 자야하는데. 자야하는데. 이제 곧 있으면 불침번 서러 나갔던 내 옆자리 고참이 돌아올 것 같은데. 그런 순간까지 보는 건 싫어. 죽을 것 같아. 그런 억울한게 또 어딨어. 난 오늘 비번인데.

그러다. 언제 잠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상병 이영준 (2006/06/01 14:08:08)

왠지. 어두워요.    
 
 
상병 정재명 (2006/06/01 14:30:40)

흠. 과거에 상당히 연연하고 계신듯.. 한 느낌이 묻어나오는걸요.    
 
 
일병 김지민 (2006/06/01 18:05:21)

별거 없이, 이 어두움과 우울함만 느껴주시고, 그거에 매력까지 느껴주신다면야 더할나위 없이 감사.    
 
 
병장 이석현 (2006/06/02 06:37:10)

지민님의 글은 저에게 즐거움을 갖어다 주는군요. 
아. 즐거워.    
 
 
상병 김동민 (2006/06/03 11:13:46)

왠지 가슴 속이 뻐걱뻐걱합니다.    
 
 
병장 이은호 (2006/06/19 18:05:28)

불면증 공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