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베스트-내글내생각] 어머니의 르네상스: "사랑은 위대하다"  
상병 진수유   2009-06-15 11:02:24, 조회: 145,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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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에 와서야 확신이 든 것은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바깥 세상에서 나는 효자는 아니었다. 개인적인 일에 몰두하다 보면 부모님은 그저 부모님일 뿐, 사랑의 대상이라거나 깊은 관계에서 생성되는 내면적 기쁨의 대상은 아니게 된다. 있을 때 잘하라 그랬던가. 궁은 이렇게 과거로 남은 기억속의 대상 하나하나를 새롭게 변화시켜 떠오르게 한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이라는 존재는 다른 대상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다.

재수시절 쯤부터 나와 어머니 사이에는 이미 커다란 심연深淵이 놓여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걸까. 나에게 해답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꺼려했다. 대화의 시작이 곧 불화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나의 마지막 논리가 나는 정말 싫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싫지만 지는 건 더 싫었기 때문이다. 왜, 도대체 왜? 무엇 때문이지? 정말 웃기군! 이건 도대체 무슨 자존심인지, 무슨 고상한 철학인지, 작태作態인지!

그것은 길고 또 지루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모든 것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갈라진 틈은 시간과 함께 점점 더 벌어졌다. 조금씩 조금씩 소리없이 깊어지는 상처에, 어머니와 나는 각자의 동굴로 더 깊이 들어갔다. 우리 사이에 가능했던 의사소통은 오로지 짧고 간결한 최소한의 정보 전달 ㅡ 마치 디지털의 무미건조함과 편파적인 얼굴을 닮은 듯한 0과 1의 흐름뿐이었다. 괴로웠다. 나는 내 자신에게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사랑을 보내고 계셨기 때문이다. 아들이 자신의 사랑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또 동시에 본인의 사랑 때문에 더 상처가 깊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자제하는 사랑의 '최대한의 노력'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최대한의 노력'을 알면서도 나는 그러한 모습조차 증오했다. 잘못은 양쪽에게 있을 수 있지만, 이 게임의 패자는 분명히 나일 것임을 충분히 예감하면서도 나는 그 패배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에 패배한다는 그 드라마적 감수성 말이다.

3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늦은 시기에 나는 입궁을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포항에서 울지 않으셨다. 마지막 건물로 열을 맞춰 들어가면서 용기를 내어 뒤를 돌아 보았을 때, 어머니는 또 당신의 '최대한의 노력'을 발휘하여 내게서 등을 돌려 계셨다. 어머니는 분명 그 때 울고 계셨으리라. 어머니는 내게 꾸준히 편지를 보내 주셨고, 동시에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의식과 기억 속에서 점차 증발하고 있었다.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이쁠 것 하나 없는 궁은, 사랑의 강제적인 장치가 되어 나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노골적으로 열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 '대화'를 시도했고, 지난 날의 아픔과 상처를 따로 끄집어내지 않아도, 그 사이에 놓여있던 심연에는 곳곳에 소담스러운 햇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내 하나뿐인 사랑스런 남동생이 지방 미대에 진학함에 따라, 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둘만이 쓸쓸이 남게 되었다. 그 상실감을 전면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얼핏 들은 바는 있다. 나는 어머니에게 새로운 기쁨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어느정도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적인 사랑 ㅡ 동시에 진실적인 사랑을 앞으로도 위대히 행해나갈 어머니를 증폭시키게 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미술에의 입문이다.

어머니는 고졸이고, 특별할 것 없는 그냥 한국의 어머니이다. 나와 동생은 어느정도 각자가 원하는 길을 걷게 되었고, 동생은 고2때쯤부터 갑작스레 미술을 하게 되었다. 동생으로 인해 우리 집안에는 '미술'이라는 분야가 하나의 새로운 화두로 자리잡게 되었다. 어머니는 예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언제나 갖고 계셨다. 좀 더 차원 높은 것, 고급스러운 문화, 귀족적인 양식들 따위를 향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저열한 신분 상승에의 의지라기보다는, 마치 내 어릴적 만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꼬마 아이가 교회 커튼 뒤에 가려진 루벤스의 세 작품을 보고 나서 기쁨에 겨워 죽음을 맞이하는 그러한 감정일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저 가끔씩 운을 띄워 드리는 정도로 예술에 대한 취미를 가지도록 권유하였다. 이로써 새로운 프로토콜에 의한 새로운 통로, 바로 '미술'이라는, 나와 어머니 관계의 상징적인 결과물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최근 개인적인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의해 교회에서만 자신의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으시던 어머니는 지금 미술을 배우면서 자신의 내면과 예술이 맞닿고, 또 신적인 어떤 의지와 맞닿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로써 어머니에게는 제2의 인생이 불어오고 있는듯 하다.

"나는 예전에 이런 것을 생각만 했었지 실제로 해 볼 엄두는 내지 않았는데, 해보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구나. 내가 처음 미술학원에 간 날 선생님께서 바로 그림을 그리도록 시킨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그림들이 어떻게 그려졌고 발전했는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내가 너무 막 황홀한 거 있지.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게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데 있잖아, 60세 먹은 분도 한 분 오시는데 예전에 CEO였대. 근데 사람이 참 깨끗하고 점잖으신 분이야. 그 분은 일본의 어느 작가의 책을 보고 꽃만 그린단다. 그 작가도 꽃만 그리는 작가인데, 꽃을 그리는 법을 상세히 설명을 해 놨대. 자기는 그 꽃만 그리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꽃의 표현이 너무 신비하고 즐겁다는 거야. 그런데 나랑 같이 처음 미술 시작하는 아주머니들이 네 분 정도 더 계시는데, 선생님께서 어제 나만 칭찬하시더라? 나는 집에서도 계속 연습하고 있거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중요한 건 잘 그려야 겠다는 마음 보다는 자유롭게 그냥 즐기자는 기분으로 천천히 하는 게 중요하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 봤는데 정말 그림이 하나 딱 나오는거야. 엄마는 이걸 왜 진작에 안 했는지.. 그래도 지금이라도 하게 되서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 모르겠구나. 네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하지 못했겠지.. 응원해줘서 고마워."

사랑은 그런 것 아닐까. 논리와 설명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아득하면서, 그 아득함에 조용히 자신의 법칙에 따라 피어있는 꽃과 같은. 그 꽃의 향기는 너무나 은은해서 결국엔 누구나 그 꽃에게 자신의 꽃 또한 헌사할 수밖에 없는. 이렇게, 사랑은 위대하구나. 나는 이제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나 또한 '최대한의 노력'으로, '진실'되게, 어머니의 꽃에 나의 꽃을 아낌없이 바치고 싶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7-14 12:36)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5:56:59 



상병 양동훈 
  그래요. 가족이라는 건, 정말 그래요. 

분명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세대차이가 있어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짊어진 짐이 달라요. 

하지만, 생각이 다르고 말이 달라도.. 

결국 마음은 통하는 게 가족일 거에요. 결국에는. 

저희 어머니는 스포츠댄스에 빠져 계시는데 어느새 수준급 실력을 갖추셨더라고요.(웃음) 농담삼아 '나이먹고 무슨 춤바람이 나서 주책이냐고' 하지만 그냥 웃으시면서 아들 가르쳐주겠다고 손을 내미시는 걸 보면 도저히 거절하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런게 가족 아닐까요..껄껄 2009-06-15
11:16:22
  



상병 장일대 
  어머니라는 단어..궁에오고나서 머릿속에 다시한번 각인된 단어지요 
가족속에서 희생만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 
날개를 달아드리고 싶다만 제 부족한 능력에 
한탄만 하고있답니다. (울음) 2009-06-15
11:25:18
  



일병 박준우 
  제가 정말 유별나서인지 아니면 아직 철이 안들어서 모정을 느끼지 못하는것인지 
이런 글을 읽을때면 평범하게 공감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어쩌면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계신걸지도 모르겠지만 

저희 가족은 그저 무관심이 최고의 관심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정말 모정이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입궁할때. 부모님은 훈려소 앞에 저를 턱 내려놓으시고 휙 가버리셨습니다. 
들어가면 차 돌리기도 귀찮고, 사람들 나갈때 나가면 차 막힌다고... 

제가 입궁하니까. 부모님 두분이서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여생을 보내고 계십니다. 
한달쯤 돌아다니다가 일주일쯤 귀국했다가 또 나가고의 반복입니다. 

아버지께서 궁인이셨기 때문에 그러신거 같습니다. 
궁에서도 무궁화꽃 두송이를 따고 궁을 떠나셔서 그런거 같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옆에서 20년 넘게 궁인의 아내로 사셔서 그런지 

아들의 궁 생활에 정말 무관심 하시더랍니다. 

해외여행 나가실때 통화요금 비싸니까 로밍폰으로 전화하지 말고 엽서나 기다리라고 말하고 끊어버린것만 아니었으면 좀 덜 서운했을텐데... 2009-06-15
11:38:23
  



상병 김태완 
  하. 찡하군요. 
궁에서 외출을 못한지 4달째. 
이번달도 못나갈 것으로 결정된 지금. 
너무나도 어머니를 보고싶게 만드는걸요. 
왜그렇게 어머니께 전화를 안했나 모르겠습니다. 
지금 출근하고 나서 어머니께 바로 전화한번 해봐야겠습니다. 


한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한 아이의 어머닌 장애가 있었습니다. 
눈이 안보이고 말을 잘 못했습니다. 
그런 어머니지만 아들을 위해 병을 주우며 끼니를 떼웠습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아들의 눈물을 딱딱해진 손으로 떨면서 닦아줄 때 전 함께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딸을 외국에서 상경하고 그녀와 헤어질 때 난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누구든 저와 같은 일이 있으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겠지만 대부분 삶면서 이에 대해 간과합니다. 삶에대한 회의와 허무로 인해 무너지려 할 때 가족을 생각합니다. 어느새 옆구리에 끼고있던 죽음이 멀어져 있습니다. 2009-06-15
17:45:28
  



상병 진수유 
  동훈 // 거절하기 힘든 사랑이 있는 것 같아요. 
일대 // 예, 저도 항상 아쉬운 마음입니다. 
준우 // 정말 서운하셨겠어요. 작은 위로를 보냅니다. 
태완 // 전화 꼭 해보시길! 2009-06-16
10:06:53
  



상병 이종보 
  전 세가족이라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느끼고 있지요. 입궁하면서 더더욱 몸에 와닫기는 하지만, 누구나 공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 어머니의 사랑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답니다. 그럴때는 제가 스스로(저도 모르게라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요.) 사랑을 빗겨가곤 한답니다. 지금도 고쳐지지 않는 나쁜 버릇인데, 이상하죠. 여기 있으면서 부모님의 사랑이 그립다가도, 막상 피부로 와 닫을때쯤 되면 어디엔가 숨어서 부담스러운 기분을 토해낸다는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