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어머니',막심고리끼 - 노동소설은 정말 종말인가
일병 지승인 2009-08-19 10:51:48, 조회: 111, 추천:0
-거칠게 써둔 걸 여과없이 거칠게 올림.
-'종말'이란 심심한 단어를 또 목록에 추가시키게 되어서 정말 죄송한 바이다.
-별도의 표시를 해둔 부분은 모조리 본문 발췌다. 공유하고 싶다. 아울러 그에 대한 생각도.
1.책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라는 객체가 어떤 방식으로 주체화되나.
a.경계 안에는 성난 사내가 맨 위에 위치하고 그 사내로부터 뻗은 폭력은 어머니로 흐르며 경계 중간쯤에는 아들 빠벨이 걸쳐있다. 성난 사내로부터의 폭력과 학대로 점철된 삶은 너무 심하게 얼룩져서 인생 그 자체를 좀먹고 그녀는 유년시절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b.성난 사내의 죽음은 바운더리를 재정립한다. 그의 퇴장과 함께 아들 빠벨은 완전히 무대 내로 들어오고 그의 빈 자리를 답습하는 듯 하다가 이내 그 전철을 거부한다. 무엇이 사내를 성나게 하는가, 무엇이 폭려을 근저까지 내려보내는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극적으로) 변모한다.-심지어 그 과정도 없다.도입부를 읽어내려가면서 굉장히 작위적이라고 느낌.
c. 집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성격은 완벽히 전환된다. 빠벨과 그의 동지들은 젊은 이성과 순수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방문은 어머니로 하여금 그 열정에 감화되게끔 이끈다.
c'. 그리고 옆집에 사는 르이빈의 등장. 언제나 경계를 서성거리지만, 상황에 동의하고 방법론적으로 의문을 던지며 꿋꿋하게 자신의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개인적으로 기분 좋은 인물이지만, 묘사적으로는 교활하고 영리한 이미지로 꾸며진 듯하다. 피와 눈물로 호소하는 그의 실천은 괜시리 부정적으로 인식되게끔 하니까.
d. 무력감과 분개. 폭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고, 언어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메이데이를 기점으로 빠벨 역시 무대에서 ‘일시적으로’ 퇴장하고 (언제나 귀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므로) 어머니는 이제 홀로 무대에 선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2.정말 궁금한 이야기.
판타지가 아닌가!! 작위적인 도입부. : 어째서 빠벨은 노동운동을 접하게 되고 참여하게 되었나. 해소되지 않는 의문을 방치하고 메이데이를 목도한다. 비장한 발걸음 장중하게 솟은 깃발의 고독한 행보. 부러져서 내팽겨졌지만, ‘영웅’ 빠벨은 결코 비굴하지 않다. 웃으며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민중. 노래는 마술처럼 드문드문 들려오다가 이내 불씨가 꺼진다. 그러나 이것은 깜부기 불.
민중은 끊임없이 웅성거린다.
-그들을 보라구.병사들이 진격해왔는데도 그 앞에서 우리의 형제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구.
-바로 그겁니다. 빠벨 블라소프를 생각해보시오.
영웅담의 탄생은 언제나 지켜봐 줄 누군가가 필요한 법은 아닐까. 누군가의 입을 빌어서 말해질 성스러운 타자. 그리고 망령처럼 맴도는 이야기는 전의의 불씨를 되살리는 미풍.
-제발 내 말좀 들어보시오들! 그리스도를 위하여! 여러분은 모두 혈육이나 마찬가지요. 모두가 훌륭한 사람들이오. 두려워 말고 마음을 열어요. 무슨일이 생겼는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세요. 우리의 자식들이 평화를 위해 나아가고 있어요. 우리의 피붙이들이 진리를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 당신들 모두와 당신들의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 성스러운 길에 자신들을 내던지고 있어요. 그들은 밝게 빛날 새날을 추구하고 있어요. 그들은 새로운 삶을 주고자 합니다. 진리와 정의,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이 넘치는 삶을 원하고 있는 거예요.
빠벨 자신이 이 말을 했더라면 얼마나 민망했을까. 냉소적인 현대인들은 욕지거리 한방으로 일소해버릴 것이다. 설령 타인의 입을 빌어서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뽑아들면서 생각했다. 가증스러운 판타지물을 읽으면서 왕창 비웃어주자. 그리고 책을 펼쳐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찔찔 짜면서 읽었다. 자괴감. 나에 대한 자괴감과 함께 밀려오는 것은 이 상황을 냉소로 지켜보게끔하는 이 시대에 대한 한탄이다.
노동소설의 종말은 완료형이지 않을까. 전쟁의 참상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시대다. 몇 개월간의 파업이 진행되어도 누군가,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도 그저 ‘현실’을 얇은 액정뒤로 멀찌감치 유리시킨 채 바라보는 우리는 시대의 방관자다(누군가는 매체를 인간의 확장, 그 도구라고 규정했지만 실상은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진실로 거짓되 플라스틱 감각이다.) 철저히 분리된 우리들은 서로 다른 것을 ‘택할 자유’가 있다. 주어진 다양성에 만족하고 관용과 중도라는 덕목 뒤에 숨어서는, 타인에 대한 모든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을 던져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에 쉽게 분노하지도 않으며,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힘도 용기도 잃었다.
누군가는 이 풍요로운 시대에 감사할 줄 모르는 나에게 배부른 소리를 한단다. 그러나, 이 세대가 절망하는 원인이 풍요라는 것을 배부른 나는 알고 있다. 폭력은 너무도 세련되어져서, 그리고 우리는 너무 무감각해져서 마침내 이 만연한 피냄새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과거는 꿈도 꾸지 못한 막막한 풍요 속에 던져진 것이다. 끝없이 파편화되고 유리된 현실들을 한하나 찾고 부닥치기엔 이 낮선 것들이 두렵다.
순수하게 억압받는 이가 없는 이 세상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고통과 죄책감은 이중으로 견뎌야한다. 누가 이 시대에 도식적인 계급을 논하는가. 리버럴로 가린다고 달라질까. 공공연한 저 자유에 희망적으로 투항할 필요는 없다.
*그녀 자신은 물론 모두들 불만을 토로할 뿐이지 왜 인생이 그렇게 고달픈 것인지 어느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세계는 우리들의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것이에요. 우리들에게는 국가도 없고 인종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동지가 있고 적이 있을 뿐이지요. 모든 노동자들은 우리들의 동지들이고, 모든 부자와 권력자들은 우리의 적입니다. 한번 세상을 둘러보세요. 그래서 우리 노동자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게 되면 엄니의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저 위대한 ‘피의 일요일’이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어머니,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감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이태리인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모두 한 어머니의 자식입니다. 이 세상 모든 국가의 노동자들이 한 형제지요. 위대하고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사상의 자녀들이에요. 이러한 사상은 날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의 하늘에 떠있는 제 2의 태양입니다. 정의의 하늘은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요. 그가 누구이고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사X주의자는 정신적으로 우리의 형제입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영원히 한 형제가 될 것입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8:19:45
일병 지승인
글씨에 색깔 넣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 2009-08-19
10:54:30
병장 양동훈
아. 방법 적었는데, 날아갔어요. 아 귀찮아.
킥킥킥 2009-08-19
10:56:47
병장 양동훈
아 그리고, 요즘 승인씨 글,
왜 이렇게 너무 불친절하죠. 하악.
일단 먹고는 있는데,
질겨요. 씹히지가 않네요. 끄응. 2009-08-19
11:11:18
병장 김예찬
빨간색으로 쓴다고 예를 들어서 글 쓸 때 HTML 체크를 하고, <font color=red> 글 </font> 2009-08-19
11:14:32
일병 지승인
동훈님,'요즘' 인건가요. 올릴까말까 무지 망설이고 올리는데, 그 전에 뭔가 바꾸는 작업을 해야할까요. 누군가 제 글이 불친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는데, 저의 주관적인 판단들을 어떻게 객관적인 지표로 바꿀지를 모르겠어요.
아아악. 안생기는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자면 굉장히 부끄러운데다가, 그렇다고 그냥 생각나는 걸 이렇게 주절이고 있자니, 불친절의 증거물로만 퇴적되고, 그렇다고 가마 앉아있자니 답답하고.
이건 국배판 쵸재깅 다이어리로군요. 뭔가 쇄신의 필요성을 느끼네요. 그 필요성만으로는 부족하고ㅡ. 노력해볼게요. 휴. 2009-08-19
11:19:48
병장 양동훈
안생기는 여자친구 이야기나 좀 해줘봐요. 크큭. 2009-08-19
11:21:34
일병 지승인
오오, 되는군요. 놀라워라. 초록색은 그린!
동훈님, 별로 재미도 없을 법한 이야기라서...게다가 언제나 이야기는 과거화되어야 한답니다. 나는 화석같이 나의 이야기를 굳혀버리고 싶지 않아요.처음부터 관객이었다면 모를까.
아쉽지만, 내 다음 번 이야기가 진행되면, 그제서야 솔솔 털어놓겠죠? 여기 나오는 무수한 연애이야기는 어느정도의 객관화, 타자화가 진행된 이야기들이니까요. 나는 그것들을 분리시킬 엄두가 안나네요. 혹시 나는 성불구자가 아닌가. 아아. 2009-08-19
11:26:40
일병 심현주
동훈/ 승인씨 글은 이해는 쉬운데 말하긴 까다로워서 질긴것처럼 느껴질꺼에요.
이 완고함이란. 외길로의 질주. 2009-08-19
11:35:49
상병 장동욱
파편화되고 유리화된 현실이라 할지라도 본질은 하나일 겁니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 어떻게 지배하는가. 권위가 만들어낸 이미지 속에 또다른 권위가 탄생하고, 그 권위는 우리의 시선을 고착시킵니다. 그 멈춘 우리의 좁은 시선에서 파편화된 현실이 탄생한다 생각합니다. 지배자들이 만들어낸, 도저히 바꿀수 없다는, 우리 모두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으며, 절대 연대할수 없다는, 빌리자면, 위의 '계급'이 만들어낸 환상들의 세상 말입니다.
타인의 이미지마저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것을 현재도 '소비'하는 것은 우리이고, 귀찮음에 무감각하게 느끼려 들고, 애써 자기위로하는 것도 우리의 모습이리라 생각합니다. 2009-08-19
14:34:17
일병 지승인
동욱님, 잘 알고 계시네요. 밑에 글 참 잘 읽었답니다. 동욱님이 바로 그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