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한 독서목록에 기가 죽은 분들께 드리는 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고전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새로운 책들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고, 더 이상 출간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나마 억지로 책을 펼치자니 쏟아지는 업무와 피로 때문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지요. 혹시,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1년에 수십 권씩 꼬박꼬박 읽는 이들을 보면서 감탄하며 '나는 저런 사람보다 뒤쳐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학하시지는 않으십니까.

몇몇 회원들의 독서목록을 보며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반드시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해서 훌륭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책은 삶의 깊이와 폭을 넓혀주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책보다 훨씬 훌륭한 스승도 얼마든지 있지요. 봉사에 관한 책을 읽는 것과 걸인을 돕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 중 우리를 더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어느 쪽일까요.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어째서 제사장과 레위 인보다 더 아름다운지를 알고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세상은 도서관 사서의 몫이 되었겠지요. 아시다시피 그들은 세상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죠.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은 그저 아무 목적 없이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는 행위의 목표가 없다면 엉뚱한 길로 걸어갔다 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어요. 

자신이 가려는 길을 알고 그 길을 먼저 걸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책은 바꾸어 말하면 선행자입니다. 물론 선행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해서 꼭 더 나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에요. 단순히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책읽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물론 그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책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발판이자 도구입니다. 훌륭한 도구를 써서 남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만, 기존의 도구 없이도 숱한 시행착오 끝에 획기적인 방법을 창안해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오히려 무턱대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헤매다 혼란만 일으키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더 많지요.

중요한 것은, ‘책에 대한 글’을 읽을 때 필자의 다독이나 다상량을 부러워하기보다 어떻게 그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가를 살피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저 책들을 읽어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저 사람은 이 책을 이렇게 읽었는데 나도 읽어보고 나서 나는 나름대로 이렇게 읽었다고 한 번 써봐야지' 하고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순간, 책은 단순한 지식덩어리를 넘어서서 도약대로 탈바꿈하는 것이고, 책에서 길을 발견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하나의 책을 읽더라도 자신만의 독법을 발견한다면 지식을 쌓아두기만 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책에서 얻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급해하실 필요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책의 노예가 아니라 책을 노예부리는 주인입니다. 필수교양도서목록이라는 책 더미에 끌려 다니는 노예생활로 지난 몇 십년을 허비한 것도 모자라 다시 베스트셀러와 아무개의 추천도서목록에 휘둘리시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어떤 길이 있는지 까맣게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어떤 길을 걸을지,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한 조언도 자신이 걸어갈 길의 성격과 어떤 방식으로 걸어갈 지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습니다. 항상 올바른 길이나 보편적으로 옳은 길이란 없습니다. 다만 보편적으로 조금 쉽다고 하는 길이 있을 뿐이죠.

둘러보니 길이 너무 많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먼저 목적지와 목적지로 가는 이유를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신발과 어떤 걸음으로 걸어나갈지 생각해보세요. 이제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이실 겁니다. 그 중에 자신의 선택과 비슷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이야기들을 읽어나가시면 됩니다. 굳이 여러 갈래의 길을 모두 걸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길은 합쳐지기도 하고 다시 나뉘기도 하며, 결국 길은 거의 비슷비슷하게 마련이니까요. 다만 자신의 선택에 따라 걸어간 사람의 길에서는 자신만의 향기가 날 것이고, 다른 사람의 길을 허겁지겁 따라가기 바빴거나 되는대로 걸어간 사람에게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겠죠. 꼭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수많은 책과 그에 관련한 글은 결국엔 나의 길을 걷기 위한 ‘참고자료’ 일뿐 ’안내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고, 독서 또한 양보다는 질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찾아온 월말 결산에 즈음하여, 올려봅니다. 

  
 
 
 
 상병 박진우 (2006/03/02 12:49:48)

동감(끄덕)    
 
 
병장 김형진 (2006/03/02 12:59:34)

진급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아까 코멘트에서 봤는데, 이 분이 그 분이 맞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만.    
 
 
 병장 박준응 (2006/03/02 13:09:50)

저는, 
책을 많이 읽고 이해한다는 것 = 좀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것 
이라는 도식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 사람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동석님께서 지난 번에 '하이퍼텍스트'라고 언급하신 것에 대해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죠. 
이 말을 왜 했냐면, 그 '하이퍼 텍스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에요.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병장 한상천 (2006/03/02 13:36:06)

진급축하드립니다. 언제나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제 못보겠지만 다시 볼날이 있겠지요.    
 
 
 병장 김동환 (2006/03/02 14:29:16)

오! 친절한 동석씨(웃음) 
동감이에요. 잘읽었습니다.    
 
 
 병장 손재선 (2006/03/02 16:16:02)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집이든, 소설이든, 한 권이라도 다 읽고나면 독후감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냥 100권을 읽은 사람과 50권을 읽으면서 갖은 생각과 메모를 한 사람이 더 좋은 독서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고, 이 둘 중 후자보다는 10권을 읽더라도 착실하게 독후감을 쓴 사림이 더더욱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병장 홍석대 (2006/03/03 08:24:57)

하나씩. 차근차근히. 조급해하지말고.    
 
 
상병 오승원 (2006/03/03 17:11:37)

100% 공감합니다. 전에 '책을 말한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독서가들이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1년에 100권 이상을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었지요. 그러나 거기에 1명은 적은 량을 읽는 독서가였습니다. 항상 많이 봐야 좋은 줄 알았던 저에겐 아 저런 방법도 있구나 한 획기적인(?) 사건이었지요. 뭐 아직도 다독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1권을 읽더라도 그 작가와 소통할 수 있다면 10권 100권을 그냥 읽는 것보다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월말 결산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저에게...)    
 
 
병장 정광훈 (2006/03/04 21:25:42)

저같은 경우에는 우선은 지식보다는 
감성을 얻고 싶어요. 
책을 통해 책속의 인물들의 감성을 
간접체험하고, 
스스로도 생각해보며 
조금씩 그렇게 감성을 발전시키는 거죠. 

그래도 다독의 압박은 조금 혼란을 주긴 주네요.    
 
 
 상병 박성진 (2006/03/09 02:21:31)

다독의 압박감이란 것은 군대안에 있어서 배가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만으로도 
필요이상의 강박관념을 만들어주는데, 거기다가 군에 오기전에 다짐했던, 그리고 전역까지의 목표들, 
그중에 어떻게 보면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게 독서일진데, 그마저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이 압박감을 두,세 배는 더 증폭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병장 주현탁 (2006/03/10 10:35:11)

너무 책에 쫓기어 독서를 하면 안되겠죠. 
좀더 여유로운 독서를 해야 할텐데.    
 
 
병장 김강록 (2006/03/10 10:59:38)

「말썽이 생기는 건 질색이에요!」 
「말썽이 질색이라고!……어디 좀 들어봅시다. 두목이 원하는 건 도대체 뭔지.」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살미오!」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 못 든 것 같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라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있었다. (p.159) 

- 「그리스인 조르바」中에서 

지원사격, 입니다만. 근데 이것도 책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으하하하)    
 
 
병장 주영준 (2006/03/10 11:17:02)

조르바에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나요. '두목. 제대로 살고 싶으시오? 그렇다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책들부터 먼저 싸그리 태워버리시오. 불을 지르란 말이오' 뭐. 이런 식의 이야기였던 듯 한데. 작년 이맘때 읽어서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