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절. 
 상병 김현진 05-27 01:18 | HIT : 275 



* 편의상 경어 생략하겠습니다. 
**27 일 오전 7시. 아주 조금 수정했습니다.


0. 

22 시 49분. TV를 껐다.

 오늘 몇 시간이나 TV를 본 것일까. 열 네시간이나 TV를 봤기 때문일까, 뭔가 쓰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완전히 잊어버렸다. 오랜만에 좀 길게 글을 써보려 했던 나는 겨우 되찾았는데 그렇게 쓰고 싶어했던 알맹이들은 간데 없이, 대신 오늘 이 놈이 보여준 스타리그 내용과 결과가 용량을 차지했다. 그래. 분명히 두뇌의 용량은 지금(스타리그가 내가 쓰고 싶었던 내용을 지워버린 것처럼 보이는) 내 모습처럼 작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좀 깊은 곳으로 밀려나 버린 것 같으니까 좀 찾아보면 나오겠지- 라는 데 생각이 미치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쓰고 싶어했는지 생각이 났다. 나는 며칠 전 바깥 공기를 좀 마시고 왔는데, 이 기간 동안 상경해서 만난 어느 선배의 얘기를 하려고 했었다. 

"Mission Clear" 라는 메시지는 언제나 달콤하다. 하지만 전역일을 345일 앞둔 어느 상병에게는 또다시 새로운 미션이 부여된다. 마치 1945 스트라이커즈에서 1-8을 깨고 나면 엔딩이 아니라 2-1이 나오는 것처럼. HARD 뒤에 EXPERT가 뒤따르는 것처럼.


... 이렇게 쓰다 보니 '도대체  무슨 얘기이길래 이렇게 뜸을 들일까'라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부디. 기대하지 마시길. 23년 삶을 돌아볼 때 나는 대개 그런 기대를 배신해 왔고, 배신에 대한 죄책감도 미안함도 심지어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니까.


... 난 (사실은) 소심하니까.


1. 

 난 장남이므로 당연히 그는 친형은 아니다. 다만 그는 처음으로 '엄마 아빠' 품을 벗어나 뭘 해야 되는지도 몰랐던 한 대학 새내기를,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터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마치 형처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위 '진부하다 싶을 정도'의 형 모델-너도 후배들에게 이렇게 해줘라-을 제시해 주었다. 그는 딱 경상도 사나이 의 이미지였다. 어쨌든 정경학부생이었고 나름 사회과학도였던 그와 나는 곧 '무지함'이라는 공통분모로 우리라는 울타리를 칠 수 있었다. 그 안에서 그저 더러운 세상을 집어들어 씹고 밟고 짓이겨 드리블을 하다가 칩 킥으로 쓰레기통에 넣어댔다. 1년 동안. 그와 나는 울타리 안의 혁명가였고, 따라서 우리는 동지였다.

 상경한 나는 '그 형'이 보고 싶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시절의 동지를 보고 싶기도 했다. 여느 때처럼 전화를 하면 반드시 받아 줄거라 믿은 난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폴더를 열고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꾹- 눌렀지만, 전화는 혼자서 울기만 했다. 별 수 없이 "형 저 왔어요. 어디세요" 라고 문자만 남겼는데, 이건 보았으나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자, 받는 사람이 양자의 관계까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난 결국 그 형에게 이렇게 말한 셈이다. "형. 나 올라왔는데 형 안 바쁘면 연락해줘요. 바쁘거나, 만나기 귀찮다면 볼일이 있다고 문자만 보내도 돼요. ...Please."  마치 뭔가 버려선 안될 것을 버린 듯한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서브를 넣은 이상 공격이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그의 연락을 기다릴 수만도 없었다. 귀중한 이 바깥 산소를 사람 하나 기다리면서 들이마시는 건 꽤 부끄러웠으므로. 난 친한 후배와 함께 노래방을 가는 걸 택했다. 노래방 시간이 끝날 쯤 그의 문자가 '드디어' 왔다. 그는 뭔가 취재(수업)를 하고 있는데 이게 꽤 오래 걸리는지라 볼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그랬다. 어쩔 수 없었다. 단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볼 권리따윈 갖고 있지 않았다.


2.

 하지만- 결국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난 강록이형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농담'을 하며 돼지고기를 구워먹다 말고 2년 만에 그 형을 맞이해야 했다. 그다지 좋은 장면은 아니었지만 이 다음에 일어난 일은 이 사이에 낀 단백질에 비교해 봐도 차라리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만' 나타났으므로.

 그와는 30분 간 함께 있었다. 시끌벅적한 술집에 앉아 그와 나, 친한 후배, 그리고 강록이형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맥주와 마른 안주만 먹었다. 마지막에 그가 가장 길게 쏟아낸 말들은 결국 침묵에 대한 변명이었다. 어려운 가정환경,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를 떠나 자립하고 싶고, '남자답게'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 그걸 이루려면 일단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난 지금 이 현실을 인정한다. 난 이 사회도 세상도 약자도 관심이 없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오직 나 뿐이기 때문에, 너에게조차 침묵밖에 줄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상처를 줄 어떤 단어도 입에 담지 않았지만, 내 가슴은 미어졌다. 잔을 비우고 우린 합의라도 한 것처럼 서둘러 헤어졌다.


 술집을 나서며 깨달았다. 늘 걸었던 이곳엔 늘 봤던 것들은 없다. 이제 우리에겐 오후 6시에 가도 새벽 2시에 3차로 간 것처럼 취한다는 술집 '가인'도, 노래방에서 불러주었던 이등병의 편지도 없었다. 강의보다도, 학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었던 시절은 나에겐 추억이지만 그에겐 후회일 뿐일지 모른다. 더 이상 그를 맘대로 볼 수 없는 것처럼 '그 시절' 또한 내가 보고싶다고 해서 맘대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약 30분 동안 마셨던 맥주 500cc와, 사는 이야기로 채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차지한 맨유와 첼시의 FA컵 결승전 경기만이 우리 울타리 안에 남아있었다. 아니, 울타리도 이젠 무너졌다. 작대기 세 개와 개구리 마크 사이에는 심연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3.

' 그의 변절'인가, '나의 여전한 무지'인가. 친했던 사람이 소시민의 전형으로 철저히 전락해 가는 (절대 내 주변에서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해왔던) 순간을 목도한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울타리'는 무엇이었을까. 나름 진지했던 담론들은 그저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부르주아적 유희였을 뿐이었단 말인가. 그 고민들은 다 어디로 가고 '성공'만이 남았단 말인가.

 그게 당연한 걸까? 다른 내 주변 사람들도, 심지어 나도 저렇게 변해야만 할까? 이전의 나였다면 분명히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난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을 텐데 이번만은 그럴 수 없었다. 슬픔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뭐, 어쨌든 하나는 확실했다. 난 동지를 잃어버렸다.


4.

 다음날 새벽, 집에 돌아온 나에게 그로부터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메시지에는 자기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깃들어 있었으며, 한 화면도 다 못채운 주제에 '미안하다'는 말이 세 개나 들어 있었다. 눈시울이 젖는다. 그래. 그는 '침몰'한 것일 뿐, 변절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난 짧게 '화이팅'이라는 답문을 보냈다. 비록 세 번의 미안함 또한 그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 테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세상에 고개를 숙인 것보다 나와의 관계에 큰 상처가 생겼다는 사실을 더 아파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화이팅'이라는 말은 그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응원을 해주는 순간 그는 한 번 더 무너졌을 것이다. 그건 3년 전 '그 형의 동생이자 동지였던' 김현진이나 할 짓이니까. 그래서였을까, 문자메시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복귀했다. 그가 내 전화번호만 봐도 어떤 원죄같은 죄책감을 느낄까봐.  


 병장 양각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암초와 노도, 기타 상상불가한 신묘막측스런 왠갖 장애물이 가득한 정신나간 세상을, 구름에 달 가듯 우아한 허공답보로 지나는 사람은 (친일문학을 했다던) 어느 소심한 시인의 시속에서 딱 한번 봤던 것 말곤 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침몰' 이란 단어의 무게와 먹먹함은, 고작 땅을 딛고 사는 사람에게 쓰기엔 버거운 것 같아요. (차라리 변절하는 게 나을지도.) 05-27   

 상병 천재혁 
 요즘들어 '성공'이라는 단어만을 바라보고 있는 저로서는, 

 무언가 한쪽 가슴이- 
 조금은 허하게 만드는 그런 글이랄까요. 


.. 그래도 우선은 바라보고자 하는 위치를 바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과연, 음. 사람마다 보고자하고 바라는 것이 다르겠지요- 
 성공을 바란다는 것이 세상에 고개를 숙인것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세상에 당당히 고개를 드는 한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05-27   

 상병 김현진 
 조금 수정해 봤습니다. 제게 있어 가장 슬픈 건 제가 알고 지내던 '그 형'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이제 30분도 같이 앉아 있을 수 없었던 어색한 사이가 되었고, 그 시절은 둘이서 추억하기엔 괴로운 과거가 되었네요. 

 뭐, 저도 변한다면 다시 술잔을 기울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05-27   

 병장 이지웅 
 안타깝습니다. 

 과거의 불타는 열정을 가슴에 묻고 성공이란 가치를 위해 '변절자'에 입장에 서게되는건 우리의 사회현실에 비춰볼때 어쩔 수 없게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지요. 

 하지만 그런 이들이 사회적 성공을 거둬 미래에 사회적 강자의 입장에 서게 되었을 때에 그때의 열정을 기억하고 양심에 기초하여 생활한다면 언젠가 사회도 아름다워 질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항상 그런 믿음을 가슴에 안고 불가피한 '변절자'들을 떠나보낼 수 밖에 없죠. 05-27   

 일병 정영목 
 아니다 싶을 땐 버로우 타는 것도 좋은 생각이죠. 거기서 그치면 안되겠지만. 

 담담히 기다리세요.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실 겁니다. 05-27   

 상병 박준연 
 그래요. 지웅씨의 말처럼 80년대는 '애국적 사회진출' 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이들이 떠나갔다고 들었어요. 지금 그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희망조차 품을 수 없다면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요.. 

 현진씨가 학교로 돌아갔을 때 여러 동지들이 새로운 동지와 함께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무지함을 깨우쳐 줄 선배가 현진씨가 되는거죠. 
 어떠한 위로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이거 참 (...) 화이팅! 

 새벽별은 
 가장 먼저 뜨는 찬란한 별이 아니네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별 
 그래서 진정으로 앞서가는 별 
 희망의 별이라네 

 박노해 <새벽별>의 일부 


 기다림에 지쳐 잠든 이들 새벽길 나설때까지 
 시대의 밤 하늘 성성히 지키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이 
 시린 하늘 첫마음 빛내며 떨고 있는 바보같은 사람아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대가 진정 새벽별이라네 05-28   

 상병 김현진 
 응원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거창하게 운동을 했다거나 남들에게 뭔가 깨우쳐줄 능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제가 옳다고 믿는 것과 옳지 않다고 믿는 것들을 여전히 믿으면서 살고 싶어요. 인간을 위한 가치들 말이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더 좋겠구요. 05-28   

 일병 황인준 
 그냥 지나가려다 반가운 이름에 흔적을 남깁니다. 
 가인이라 하심은 김광석의 노래와 화채가 생각나게 하는 그곳을 말씀하시는지? 
 여기서 그 이름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항상 3차로만 갔던 곳인데, 생각해보니 6시에가도 같은 기분이 날 것 같군요. 
 요즘 끊임없이 고민하는 저로서는 와닿은 글입니다. 저도 인간을 위한 가치들을 믿으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인데 이 소박한 소망을 간직하며 살아가기에 왜이리도 힘들까요. 
 아직, 아직은 용기를 잃고 싶지는 않네요. 
 아무튼 결론은 반갑다는 거죠. 하하 05-28   

 상병 송지원 
 짠한 글이네요. 50여일 남짓 현진씨를 보았지만, 현진씨는 충분히 신념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하구요. 암튼 힘내시길! 그리고 가인 반갑네요. 05-29   

 상병 김현진 
 캄사합니다. 꾸준히 정진해야지요. 

 가인 좋지요. 이번에 나가선 가지 못했다는 게 유감이지만. 다들 바쁘더라구요.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