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민 (7급 하지연/051114)
내가 이집에 이사 온지 3년이 넘었지만 또 그때는 과연 내가 이집에 정착을 하게 될지 또 이사를 하게 될지 알 수가 없었고 또 집주인이 팔지 않겠다하여 짧은 인연으로 끝나나 했는데 참 그것이 우스운 일인 것이 살면서 자꾸 내 집 같다는 생각이 들더란 것이다. 10년 동안 두 번 집을 샀는데 집이란 돈이 있다고 사지는 것이 아니었고 운이 닿아서 또 어느 날 저건 내 집이다 생각이 드니 집주인에게 팔으라고 떼도 써보게 되는 것이었다. 첫 번의 집은 인연이 아니었던지 곧 나를 떠났고 한동안 이집 저집 떠돌이 생활을 하다 지금 이집은 처음 보게 된 날부터 낯설지 않다 여기어 2년간 살면서 주인과 잦은 실랑이 끝에 기어이 내 집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런 연유로 처음 이집에 들어올 때 제대로 손을 보지 못하고 들어왔는데 살면서 그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처음 시작은 옷 정리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여름옷을 드라이클리닝을 해서 박스에 차곡차곡 넣고 겨울옷을 꺼내 거는데 겨울옷은 워낙 부피가 큰지라 옷걸이가 너무 비좁아 억지로 걸어놓은 스웨터 어깨가 늘어진걸 보고 속에서 불이 확 치밀어 오른 것 이었다. 진작 바꿨어야 했는지 모른다. 10년 전 샀던 드레스장이 아직 멀쩡해서 계속 새 옷장을 짜는 걸 미뤘는데 이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옷장을 짜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심이야 그렇게 했지만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눈이 빠져라 뒤져서 스타일을 결정하고 업체 조사를 해서 가격 상한선을 정하고 맞추는 게 좋을지 그냥 사는 게 좋을지 결정하고 나니 열흘이 넘게 걸렸고 또 옷장을 손대고 나니 신발장이 마음에 걸렸고 안방에 쌓여있는 책들이 마음에 걸렸다. 또 한 일주일쯤 인터넷을 뒤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내가 손에 쥔 돈과 하고 싶은 것과의 괴리감은 당혹스러우리 만치 차이가 있어 기어이 내 욕심을 채우자니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아마도 당분간은 변변찮은 옷 한벌 사입기도 힘들고 연말에 계획했던 여행도 포기하고 후배들 전화도 피한체 두문불출 이불 뒤입어 쓰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시작 된 일이고 그리고 어느 날 한꺼번에 질렀다.
그게 한 달 전이다.
가구를 주문하고 한 일주일쯤 필요 없는 짐들을 정리했는데 정말 많이 내다 버렸다.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네 개에다 돈 주고 딱지 사다 부친 짐도 세 개나 된다. 늘 사람이 사는데 그리 많은 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하면서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주섬주섬 갖다 쌓아 놓은 건지 내가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옷장은 120벌이 걸린다는 드레스 장을 넣었고(절반쯤 텅텅 비어있다) 80켤레가 들어간다는 신발장은 제일 윗 칸에 든 공구함을 꺼내려면 내 키로도 의자가 필요한 크기며, 책장은 제일 많이 고민했는데 지금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고생이 무색할 정도로 많이 기쁘다. 바닥에 누워있던 책들도 모두 제자리를 찾았고 군데군데 빈곳은 여백의 미도 보이는 것 같고 또 어서 좋은 책으로 채워야지 하는 의욕도 불러일으킨다. 어제는 그동안 빛도 못보고 접어서 넣어놓았던 그림을 표구하라고 맡겼다. 표구가 또 그렇게 비싸다는 걸 처음 알았다. 부업삼아 하게 나를 문하생으로 써달라고 했다가 배접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을 어떻게 쓰냐고 핀잔만 당했다.
요번 주는 거실 뒷벽을 도배하기로 하고 어렵게 마음에 드는 아트 윌을 주문해 놓았다. 그런데 이 물건이 나를 엄청나게 속 썩이고 있다. 주문한지 벌써 한달이나 되어 가는데도 아직 세관을 통과 못해 내손에 들어오지를 않고 있다. 속상한 것으로 따지자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고 도와주기로 한 후배 마음이 변할까봐 전전긍긍을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참 그렇다. 큰 것 손대고 보니 이제 작은 것 하나하나가 걸리기 시작한다.
거실마루를 단풍나무로 바꾸려고 보니 문을 손대야 하고 문을 손대면 벽지를 다시 발라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까지 하면 예산초과이니 눈물을 머금고 이쯤에서 손을 들어야 옳은데 속이 어찌나 쓰린지 손이 올라가지를 않는다. 지금도 저녁에 집에 가면 소파에 덩그르니 앉아 생뚱맞은 분홍색 문과 몰딩을 쳐다보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다.
그리하여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진행중인 것은 나름대로 잘 되어가고 있는데 한 삼 일째 막힌 곳이 TV가 있는 곳에 놓아야 할 테이블을 결정 못해서 이다.
이름 있는 가구 브랜드에서 나온 AV 테이블와 고재가구 테이블에서 딱 막혀있다. 이건 처음부터 비교가 되지 아니한다.
가구 브랜드에서 나온 AV 테이블은 이태리의 이름난 가구 디자이너가 제작한 작품인데 그 매끄럽고 군더더기 없는 수려한 자태가 책장과도 잘 어울 것이 틀림없고 또 그 모던함이란, 테이블의 표피는 윤기가 흐르고 멋진 디자인의 세련됨에 정말 작품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닥에 넉넉한 카펫을 깔고 그 테이블이 놓여있는걸 상상하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이다.
그러면 고재테이블을 한번보자.
이 테이블은 어느 300년 된 한옥에서 뜯어낸 청마루로 그 목수의 말을 빌자면 이제 우리나라에 몇 남아있지 않는 자재라 한다. 탁자를 뒤집어보니 과연 300년 동안 어느 고관대작의 집 마루를 떠받치고 있느라 그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결을 쓸어보니 목수가 여러 날 동안 먹인 기름이 반질반질하고 촉촉한 기운이 느껴진다. 저것을 내가 가지면 어떠할까 그 좌탁에 가끔 책이라도 얹고 차라도 마시면 내 방 한가운데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갈 것 같다. 어느 밝은 달이 뜬 저녁이면 책 읽다 지친 나에게 창밖에서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와 300년도 지난 얘기를 도란거리며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둘 다 가지고 싶다.
이것이 나의 욕심이다.
그러나 그 둘을 한 공간에 둘 수 없는 것이 또한 나의 딜레마이다. 이 물건들은 둘 다 주인의 풍체이기 때문인데 누구하나도 객으로 취급하여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니 한집안에 주인이 둘은 될 수 없는 이치로 내가 누구를 맞이하여야 할지 그것이 정말로 고민인 것이다.
이일을 어찌 할까
어떤 선택을 해도 기어이 후회하고 말리란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어찌 해야 내가 덜 후회하게 될 것인가. 나는 이것이 너무 고민이다. 그래서 며칠째 입맛이 없다.
병장 김동환 (2005-11-14 15:13:58)
으윽. 행복한 고민이세요.
아. 나도 얼른 이런고민 하고싶어라.
일병 안대섭 (2005-11-14 15:16:58)
120벌의 배트복과, 80켤레의 배트슈즈를 상상해버렸네요(...)
로또를 구입하거나, 브루스 웨인을 꼬시거나...뭐 그런 느낌!
병장 이준영 (2005-11-14 15:17:21)
즐거운 고민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합니다
상병 고계영 (2005-11-14 15:17:38)
저는 고재 테이블에 살며시 한표.
뭐 저의 개인적인 취향과 맞은 것이라서 그만
동환님 말씀처럼 행복한 고민이시네요. 부럽습니다.
난 언제 저런 아기자기한 집을 꾸미며 살아갈 날이있을꼬.
병장 한상천 (2005-11-14 15:19:50)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이야기의 한면을 보는것 같군요..
그분도 고가구와 여러 핸드메이드 물건때문에 정말 많이 돈을 투자했다고 나오던데 말이죠..
저도 제방에 이쁜 책장 하나 만들고 싶은데.(책도 들어가고 CD도 넣을 수 있는 그런..)
언제나 금전적인게 문제이군요..
상병 엄보운 (2005-11-14 16:01:23)
물감 짜놓는 빠레트 같은 책상에서 여러가지 책들을 펼쳐놓고 있으면.. 무릉도원!!
병장 박윤철 (2005-11-14 22:20:21)
집을 꾸미는 재미 역시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오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고 (벌써 심각하게 '지르' 셨다 해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좋은 집 잘 꾸며 주세요. 집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즐거워지네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장 박대열 (2005-11-15 10:21:04)
저 같은 경우엔 그 두개보다 더 좋은 걸 찾아 떠납니다
둘 중에 하날 버려 후회하는 것 보다 둘다 버려 화끈하게 후회하는 쪽이죠
대신 더 좋은걸 찾았다면 다행~
병장 이재성 (2005-11-15 14:21:44)
기회비용이란것 아니겠습니까..
병장 오규현 (2005-11-16 07:33:25)
고재 테이블에 한표.
세련됨이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고풍스러움이란 오래 남는 것이 아닐까요?
하사 윤석호 (2005-11-17 10:00:41)
사람을 행복케 하고 또 불행케 하는게, 욕심인가 봅니다.
욕심을 가질때 '해야한다'라는 의지와 '할수있다'라는 희망이 따라와 행복하고
욕심을 가졌을때 그 욕심이 또다른 욕심을 불러와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게 하는거 같아요.
그래도 욕심은 가질 수 밖에 없죠. 성인이 아닌데.(웃음)
병장 김우중 (2005-11-17 20:21:46)
"정리의 혹독함"
그건 해본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죠..
이래나 저래나 난 군인이고, 무엇인가를 해보려해도 언제나 나에게 오는건 리미트타임..
아, 내방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여름옷들, 그리고 다시 세상빛을 기다리는 겨울옷들,
정리해야하는데... 82일만 참자..
병장 함대식 (2005-11-23 22:31:07)
정리의 기술이라는 책이 문뜩 생각납니다. 필요한지 않필요한지 고민할 물건은 버려라.. 정리 힘들고도 어려운 작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