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운명에 대하여>그리고 잡설 
 병장 이건룡 03-27 16:45 | HIT : 127 



< 어느 운명에 관하여>

 최근 나들이에 폴란드 감독이자 타르코프스키의 단짝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TV 십 부작인 십계 중 "어느 운명에 관하여"를 볼 수 있었다. 지젝의 다큐멘터리는 구하지 못해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걸 보았다는 사실을 위안 삼기에는 충분했다.아이팝 무비에서는 그 외 '십계'중 3편이 더 있어 나중에 삼삼한 즐거움을 남겨두지만 한편 당 2000원씩이다. 72시간 내 여러번 봐도 상관없다 하였지만 한번 밖에 볼 수 없는 하루살이 같은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으니...업데이터 더 되든 DVD를 구할 수 있다면(어둠의 자료도 물론) 어떻게 해서든 보고 싶다.

 여기에서는 볼 수 없으니 앞날에 달콤한 꿈을 그리며 <어느 운명에 관하여>에 대해 적어 본다. 눈치 챌 분들도 있겠지만 그의 십 부작은 명칭인 십계에서 유추하듯이 각각 십계명에 대응하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있다.

< 어느 운명에 관하여>에 해당하는 대목은 십계명 중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영화는 상점에 진열된 TV속의 학교인 듯한 공간에서 우르르 뛰쳐나오는 아이들 중 한 아이를 바라보는 한 여인의 응시로부터 시작한다. 응시대상인 TV 속의 아이를 다시 카메라는 비추고 그 후 시퀸스는 TV속의 아이와 아버지, 부자간 화목한 가정으로 바뀐다. 아버지는 과학자이며 아들은 아버지의 과학적인 사고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물음에 조그만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 컴퓨터 옆에 있는 자신의 조그만 컴퓨터에 수식을 작성하여 계산을 맞추어 아버지의 칭찬을 받기도 한다. 처음의 여인, 아버지의 누님이자 고모는 아이에게 카톨릭 성당에 같이 가자고 권유하며 아이의 물음에 아버지와의 서로 다른 종교관에 불안한 낯빛으로 이야기 해준다. 아버지는 고모의 종교관에 납득을 하지 못하며 어느 정도 서로의 거리를 암시한다. 

 영화 전반에는 앞으로 찾아올 운명의 불안감을 조성한다. 불길한 음향과 함께 호수를 뚫어지게 바라  보는 노숙자, 아버지의 종교에 대한 설교 중 초 현실적인 다가오는 불현?갑자기 켜지는 아버지의 컴퓨터 등등...

 아이의 생일, 아버지는 아이에게 스케이트를 선물해준다. 그리고 아이의 단꿈을 위해 호수의 얼음의 두께를 계산하고(아버지는 과학자이다) 밤에 혹시 몰라 얼음위에 올라 얼음의 두께를 확인한다. 그 다음날 상황이 갑자기 어수선하게 돌아간다. 언제나 곁에 있을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호수의 얼음이 깨져 한 아이들이 호수 속으로 빠졌다는 불길한 소식이 들린다. 걱정에 호수가 아닌 곳에서 소수문하였지만 찾을 수 없었고. 절망감에 빠져 향한 호숫가에 아이의 시신이 건져져 올라오는 걸 목도한다.

 아버지는 그날 밤 성모마리아의 이콘 앞의 성상 앞에 서 흐느끼며 제단을 부수어 버리고 이콘앞에 업드린체 성모마리아를 바라본다. 성모마리아 이콘 위로 떨어지는 몇 방울의 빗방울로 성모마리아의 눈가의 물감이 흘러내린다. 물감은 마치 눈물같이 흘러 내린다.

 다시 처음의 한 여인(고모)의 시퀸스로 다시 돌아간다. 마지막 쇼트는 우르르 뛰쳐나오는 아이들 중 물에 빠져 죽었던 아이의 모습은 화면 밖으로 나오려는(현실로 침범하려는) 과잉적인 클로즈업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과 함께 마무리된다.   


 한 시간 남짓 되지 않는 영화를 보고 슬라보예 지젝의 <진짜 눈물의 공포>를 찾아보았다. 지젝은 이책 에서 키에슬로프스키를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고 그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은 이 책을 통해서이기도 하다. 불행한 건 당시 그 책을 내 방에서 찾질 못했다. 잠깐 공황에 빠져 '어떻게 해야 하나?'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고민 속에 허우적거렸지만 당시 복귀하는 당일이라 회복도 빨랐다. 최근에 확인 했지만 동생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예측에 의하면  책상 위 잡동사니 동산 아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잡담으로 대략의 느낀 점을 아래 정리해본다(이후는 강조하건대 잡담이다). 

 매치되는 영화는 그 전날 보았던 <피터팬의 공식>이었다. 아 영화를 본건 정말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눈에 띄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혀 내 취향도 아니었고 후배와 보기에는 안 좋은 장면들도 많았으며 영화의 몽타주적인 관점에서 벤야민의 넝마주의에 대한 대목("여기 수도에서 하루 종일 쏟아낸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대도시가 버린 것, 잃어버린 것, 낭비한 것, 소홀히 한 것, 망가트린 것 모두를 그는 분류하고 수집한다. 그는 방탕의 고문서, 폐기물의 잡동사니들을 열람한다. 제각각 구분해서 현명하게 선별한다. 그는 수전노가 재산을 모으듯이 쓰레기를 모으는데, 이들 쓰레기는 산업의 여건에 의해 수리되어 실용품이나 향락품이 된다."<아케이드 프로젝트>(829쪽))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어 담은 장면은 어떠한 면에서 실패한 대목들이 많은 것 같았다(같은 성장통 영화인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릴리슈슈의 모든 것>의 아라베스크의 연주곡과 대비를 연상하게끔 하는 유부녀의 피아노 연주의 표현은 빈곤했다). 실험적인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준다 해도 같은 개인적으로 같은 성장통 영화인 <릴리슈슈의 모든 것>과 비슷한 장면이 많았다. 높이 산 실험적인 면에서는 눈살 찌뿌리는 과도한 외설적인 표현에는 극장의 스크린이 너무 어려웠다(뇌사상태의 주인공의 어머니가 나신 그대로 샤워장에 향하고 샤워하는 부분은 정말 어떠한 은유여도 해석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불만을 쏟아내는 그 전날의 감상에 비한다면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보았던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어느 한 운명에 대하여>의 카메라가 담아내는 상들에는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물론 "책이 큰 명성을 얻으면 그러한 책에는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합리적인 지식이 들어 있다는 믿음이 그것입니다"<아케이드 프로젝트>(816쪽).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장통 영화들이 그리는 지옥들 <릴리슈슈의 모든 것>의 이지메, 원조교제, 살인들 <피터팬의 공식>에서의 병원비를 벌기위한 매음, 강도, 또한 유부녀를 향한 사랑과 기묘한 성적인 관계 등의 플롯보다 최악의 지옥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선입견을 불식시키는 능력)은(을) 보여준다 .  

 벤야민이 제사하는 보들레르의 알레고리에 대한 표현 중 '피투성이 연장'에 버금가는 이처럼 의미심장한 쇼트가 등장한다. 아들에 대한 절망감에 차 혹시나 모른 기대는 "그놈을 삼킬라치면 ······ 내 허파는 타는 듯하고/영원한 죄악의 욕망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아케이드 프로젝트>(827쪽) 보들레르의 <파괴>의 한 구절처럼 숨에 차, 타는 허파를 부여잡으며 분주하게 실낱같은 희망 속에 아들의 자취를 찾는다. 그리고 분노에 신을 위한 제단을 부수며 흐느껴 울면서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반면 고모에게 찾아오는 마조히즘적인 기쁨, 초현실적영역에서의 침범하는 아이를 받아들이는.

 이걸로 첫 감상문은 일단락 한다. 여담이지만 과학자로 등장한 아버지가 강의한 대목은 기호학 강의(정확히 언어과학분야 맞나?)였다. 번역의 불가역성에 대한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아버지)가 내준 문제에 쩔쩔 매는 학생들의 풍경이란. 유리 로트만의 <문화 기호학>을 보자니 러시아에는 쟁쟁한 기호학자들이 많은 것 같다(더불어 기호학 연구 또한 당연 활성화 되었을 것이다). 물론 뚜렷한 배경은 폴란드인지 소련인지는 모르겠다. 

ps. 이번 기회를 물꼬를 틀었으며 최근 책과 함께 최근에 나온 그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DVD를 구입하였으니 이제야 그에 대한 좀 더 많은 텍스트를 읽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옵션이 아마 50여분짜리 감독과의 대화이다!-DVD 판매순위 4위를 기록하기도). 초딩때 부터 서점에 판매하는(혹은 학원에 걸려진)걸어 놓을 수 있는 포스터 중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레드>의 감독이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짧은 기억이 있었던 감독이다(우연히 짧은 쇼트를 보았나?). <레드>는 그의 색 삼부작중 하나로 알고 있는데 그 외에는 <블루>, <화이트>가 있다. 








 병장 김광철 
 오호....아이팝 무비에 이런 영화도 있었군요~ 
 주로 어둠의 경로를 이용하는 어둠의 자식인 저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입니다. 
 앞으로 애용해야겠는걸요(웃음) 

 그리고 건룡씨 지젝 다큐멘터리 찾으면 꼭 좀 알려주세요~ 
 저번에 이야기 듣고 여기저기 뒤져보는 중인데 쉽지않군요;;; 03-27   

 병장 이건룡 
 지금 사정이 넉넉치 않아요. 다음 나들이 까지 기다려야 한데다가 사이버지식검색방에선 이걸 검색하는 자체가 거의 무리라서. 아이팝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접근했지만 아이팝 무비를 둘러보니 분위기상 이런게 있다는 사실 조차 놀랍더군요. 빨간 딱지들 틈바구니에서...간혹 있다는게. 03-28   

 병장 배진호 
 어느 운명에 관하여라 생생한 묘사가 마치 단편적으로 그 영화를 본듯한 느낌을 주네요 
 그나저나 꽤 많은 것들이 복합되어 있네요..수많은 연결고리들을 의지에 의해서 
 한데 묶어 놓은듯이 말이죠.. 03-28   

 병장 이건룡 
 배진호님이 관심을 가지고 읽어 주셔서 그렇죠 (웃음) 영화를 찍는 방법과 같이 생각해 볼 문제인것 같아요.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유명한 점 하나가 바로 주제를 결코 놓치지 않는 점입니다. 홍상수 감독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화 한편을 찍기 위해 수많은 완벽한 준비를 끝내 놓고 한다고 하죠. 시나리오등등 심지어 한 배우 오디션을 하루내내 본다고 하니...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