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 : 짧은 재회와, 긴 이별 
 
 
 
 
그날은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시험이 있던 날. 시험을 대충 때우고선 조기에 학교를 땡땡이치는 미션을 완벽히 성공한 다음, 서울 사는 친구들을 만나 가볍게 몸을 풀고 나서는, 한달전에 약속했던 중학교 반창회 약속시간에 늦어서 허겁지겁 서울역에서 기차표를 사들기 위해 1호선 전철역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매표소 앞에서 우연히도 E양을 만나게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E양이 날 먼저 알아봤다는 것.

"...저기, XX에 사는 조용준 아니세요?"
"누구... 아! E양이구나!"
"아! 맞구나! 무슨 일로 서울에 왔어?"
"히히. 잠시 서울 놀러왔다가, 중학교 반창회 가는길이야. 어디가는데?"
"아, 그렇구나. 나는 잠시 친척집에 가려고 했던 참인데."
"...아, 그렇구나. 그런데 친척집이 어디인데?"

E양은 아무말 없이, 매표 창구로 가서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에, OO가는 무궁화호 두장 주세요."
"...친척집이 OO에 있었어?"
"...응"
"나 고등학교 OO으로 갔는데. 세상 참 좁다."
"세상이 좁은게 아니라, 너희집은 OO바로 옆이잖아."
"그래도 이렇게 만난다는게 어디야. 하하"

같이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타고, 한시간 남짓 지나는 시간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능 답안지 밀려 쓴 사건이며, 왜 이과를 택해서 수학점수를 바닥을 쳐서 남 대학가는거 보태줬는지 한숨쉬는 이야기부터, 서로 이성친구가 없다는(심지어는 사귄 경험조차 전무한) 혈기왕성한 시기 최대의 고민까지 안나온 이야기가 없던것 같다. 그리고 OO역에서 내린 다음, 역전 버스정류장에서 내가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하는 찰나, 갑자기 버스를 기다리던 E양이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오늘 반창회 있다면서?"
"응"
"...어디서 하는데?"
"우리 동네."
"...같이가자. 친척집은 약간 늦게 가도 상관 없어."

결국은 이렇게 해서 E양을 데리고 약속장소에 데리고 가 버렸다. 그때서야 비로소 느낀거지만, E양은 꽤나 예쁜축에 속했다. 그런데도 예전의 소극적인 성격을 버리지 못해서, 고백도 쉽게 못하고 고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것 같았다. 중간중간에 사소한 대화로 슬쩍 떠보는 늑대들의 말에도, 수줍어하면서 슬쩍 눈길을 피하는 모습까지야 쉽게 예상을 했지만, 여자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것은 여전히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날의 끝은 알콜홀릭으로 흥을 돋우었다. 반장이 어떻게 식당 아주머니를 꼬드겨서, 이제 곧 어른이 된다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유치한 생각으로 맥주를 마실수 있게 해버렸고, 예나 지금이나 맥주광인 나는 신나게 맥주를 들이켰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깜박했던 사실. E양의 주량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E양은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그렇듯, 남이 주는 술 거절 하지 못하고, 그대로 다 얻어마신 뒤, 고주망태가 되어서 쓰러져 버렸다. 한차례 속을 깨끗이 비운 뒤에는 어느정도 몸을 가눌수는 있었지만, 그 상태로 OO시까지 들어간다는건 상상하기 힘든상황. 더군다나 친척집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꽤나 좋아할만한 모습이었다.

어쩔수 없이 단골 목욕탕으로 가서, 그곳 주인에게 이리저리 사실을 이야기 한 다음(동네의 왠만한 사람들은 부모님과 잘 알기 때문에, 거짓말 했다가는 두배로 되돌아온다. 역시나 우리집은 시골이다.), E양을 여관방 한구석에 잘 놔둔 뒤에 곧바로 여관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나는 부모님께 "이거 수능 끝내더니 허구헌날 술만 퍼마시고 들어오냐!"라는 잔소리를 듣고, 추운 겨울날 반바지에 반팔차림으로 집 바깥으로 쫓겨나서 세시간동안 달을 보며 있어야 했다.

그 다음날, E양에게서 핸드폰으로 짤막한 전화가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여관비를 내 주면서까지 방을 잡아준것에 고마워했고, 더불어서 반창회에 데려가줘서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것에 대해서도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뒤로 며칠간 서로 연락을 하거나 한 기억은 없는거 같다.

이후 두달정도 지난 후 E양은 핸드폰을 잊어버렸고, 동네 친구들과의 연락 역시 끊어져 버렸다. 동창인 D군처럼 허무하게 스틱스강을 건너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친구들 사이에 위안이 되어버렸다. 친구들 사이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또 다시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는 말만 있고, 흔히 하는 싸이월드를 찾아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좁은 세상에 살던 나에게 있어서, 이별과 재회,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이별은 익숙치 않은 일일 뿐이다. 익숙해질만큼 여러가지 일을 겪었고,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뜩이나 이별은 슬프지만, 이별에 익숙치 못한 내 자신이 더더욱 슬픈 존재인건 아닐까. 

  
 
 
 
병장 주영준 (2006/04/12 14:37:57)

하아.    
 
 
상병 박해성 (2006/04/13 02:05:05)

하아아.    
 
 
 병장 노지훈 (2006/04/13 05:10:20)

우웅    
 
 
상병 이영준 (2006/04/13 07:13:33)

오오.    
 
 
상병 송희석 (2006/04/13 07:14:15)

으흠.    
 
 
상병 안대섭 (2006/04/13 07:14:34)

울증에 가중치.    
 
 
병장 이석현 (2006/04/13 09:11:02)

아. 왜인지 모를 서글픔.    
 
 
상병 조주현 (2006/04/13 11:05:56)

칫..    
 
 
병장 김영서 (2006/04/13 12:58:34)

후후후    
 
 
병장 김성준 (2006/04/13 16:50:21)

"싸이월드를 찾아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 

글 잘 읽었습니다. 뭉클    
 
 
상병 김상엽 (2006/04/13 16:57:55)

그럴때는 다모임을 찾아보세요- 푸훗    
 
 
상병 곽지훈 (2006/04/18 08:54:08)

후우...    
 
 
상병 송종문 (2006/04/18 20:35:52)

으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