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의 부활을 위하여 (상병 김강록/051002)
62. 양치기 소년의 부활을 위하여 :
처음부터 무려 부활씩이나 운운하고 나설 생각이었던 건 아니다. 그냥 좀 변명이나 대신 살짝 해줄까 했던 것인데, 그렇게 팔짱끼고 능글능글 말놀음이나 삼을까 하던 것이 갈수록 감정적인 문제로 번지고야 만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내 개인적인 사정도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아니, 이건 그렇게 애써 조심스러운 척할 문제가 아니다. 양치기 소년의 비극이야말로 이 시대 소년들이 처한 문제의 가장 핵심에 있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모든 동화들의 중심에 바로 이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내가 아까부터 양치기 소년 이야기만 계속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지금으로선 그런 느낌이다. 말석이나마 그래도 학생이랍시고 실내화 주머니나 살랑살랑 흔들고 다니던 나와, 어엿한 직장인이던 양치기 소년. 그리하여 그는 이미 반어른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벌을 받았다! 소년다운 모습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려고 했던 그는 끝내 박해받아야 했고 좌절해야만 했다!
우리는 소년의 본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 하나를 '거짓말'이라 일컫는 법을 배웠다. 우리의 본성은 곧 죄악이라는 걸 배웠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양치기 소년을 손가락질하는 저들 무리에 들어가 안도하기 위해서는, 소년의 본성 한 가지를 부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다. 어른은 소년의 변증법적 안티테제다. 소년의 모습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다는 건 불가능하다. 소년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잔혹한 역사적 과정이다. 그 역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헤겔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행해지는 성인식이 있다. 바로 우리의 심장에 칼을 꽂는 것이다. 소년의 죽음, 그것이 바로 어른이 되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자신이 양치기 소년을 손가락질하던 이들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느끼는 안도감에 왜 알 수 없는 을씨년스러움이 섞여있는지를. 그 안도감이란 기실 공동 묘지의 고요함이란 것을.
이제 들린다. 유일한 살아있는 인간이었던, 양치기 소년의 절규가. 이제 보인다. 시체들이 일어나 살아있는 소년에 대한 시샘으로 그를 손가락질하던 아비규환이. 비극이었다. 그것은 죽어있는 것들에 대한 살아있는 것의 패배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어쨌거나 그래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늑대는 필요하다. 늑대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스스로 늑대가 아님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 것은 마을 한가운데서였다. 사람들은 반가운 손님이라도 맞으려는 듯 듣는 즉시로 뛰쳐나갔다. 아니, 생각을 고쳐야겠다. 그 역시 어찌보면 또다른 상상력이었을지 모른다. 소년과는 다른, 죽음의 상상력. 다른 세상을 꿈꾸기보다는 세상의 부조리에 모든 책임을 지우고선 비로소 안도하는 도피적 체념. 소년의 방법으로는 꿈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매의 단장 그리피스의 결심. 그리피스는 헤겔주의자였다.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게, 생명을 지켜나간다는 게 말이다. 제기랄, 생명은 개뿔! 우리 안에서 사육되는 가축에게도 생명은 허락되는가? 태어나 터뜨리는 첫 울음부터가 어떠한 승인의 요건이었고, 즉시 이마에는 바코드가 매겨졌다. 그리하여 주변에서 으레 그러하듯 나도 죄수복 입은 학생이 되었다. 늑대와 인간이 다르지 않듯 학교나 가축우리나 감옥도 매한가지다. 어차피 똑같은 음모에 의한 기획이 아닌가? 그리고, 고작 양치기 소년 이야기 따위나 듣고 자라난 것이다. 빌어먹을!
헌데 그런 와중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가축의 덕목인 순응력, 그와는 정반대의 능력이 우리 인간에게 있었던 것이다.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담장 밖 미지의 공간을 향한 그리움! 놀라운 일이었다. 유독 그것도 학교 주변에 당구장이 많이 몰려있다는 사실은 말이다. 오로지 안간에 의지한 일이라기엔 지나치게 축복스럽다. 만약 신이 있어 역사한다면 그곳은 당구장이다. 그곳이야말로 아기 예수를 잉태한 마굿간이고 모세가 큐대를 뻗어 가른 바다이며 성배와 같은 서비스 요구르트다. 바로, 당구장이다.
질풍노도의 시절을 당구장에서 보냈다. 가슴팍에서 칼자국 비슷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 당구장에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학교 담장 안에서 대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말이다. 그리피스가 신이 될 때 나는 당구장에 있었다. 그래서 살았다.
그러나, 그 사이 나의 벗 양치기 소년은 어디로 갔는가? 그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실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박해받던 나의 벗, 십자가를 짊어졌던 양치기 소년은……. 그의 부활을 믿는다. 그때까지 나는 싸울 것이다. 살아남은 나의 생명은 그렇게 쓰일 것이다. 모두가 손가락질해도 상관없다. 나는 내 친구를 위해 싸울 것이다.
양치기 소년이 인간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아직 신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서둘러라. 무서운 건 늑대가 아니다. 지금, 양들이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 25일 일요일이라는 날짜를 적고 시작한 이 글을 월요일, 화요일까지 3일에 걸쳐서 썼다. 그날그날의 정신 상태에 따라 글이 3등분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제멋대로지만, 뭐 어떤가? 어쨌든 할 말은 다 했으니 됐다.
2005. 9. 25. 日
大영일고등당구스쿨 공채 24기 목동의 김프로
상병 김동환 (2005-10-04 07:25:55)
엇. 오랜만이에요~(웃음)
느닷없이 '지각대장 존'이라는 책.
읽어보시길 권해보고 싶군요.
병장 한상천 (2005-10-04 08:22:06)
전 성인식을 한적도 없는데 어느세 소년은 없어져버렸습니다.
세상을 알수록 볼수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