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개] 삼국지. 그리고 그 이야기.  
상병 양동훈   2009-05-01 01:54:13, 조회: 143, 추천:0 

낯설었어요.
그동안 내가 정말로 바래왔던 일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눈앞에 펼쳐진 말 그대로의 환상은 그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요.
모두가 공유할 수만은 없는 깊이 속에서
약간씩은 지쳐가고 있었어요.
고작 이틀간의 유랑이었지만 그 속에서 얻은 건,
부딪혀보자, 생각은 그 뒤에 하자
라는 짧은 고민의 결과물이었어요.

무엇보다도,
내가 최고일 수는 없어도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어렵게 생각할 건 없잖아요.

철학, 사회, 문화,,,,,
뇌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는 공허함이랄까?
현학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현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많은 메시지들의 홍수..
이곳, 책마을이라는 곳에서의 한 유랑자의 도전이 이제 시작될거에요.

그래도,
보통 이상은 알고 느낄 수 있는 분야에의 도전.
일단 첫번째로는,
Abandonedsoul의 삼국지에 대한 무한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볼게요.
이 소모임에서 가입인사모음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 다름아닌 삼국지더군요.(웃음)
삼국지라면, 반평생을 걸고 사랑해 온 책이니 무엇보다도 주절거림이 편할거에요.
전쟁도 좋고, 전투도 좋고, 그 무엇도 제약하지 않겠어요.
그저 생각나는데로, '이것이 궁금해지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자료를 탐닉하고, 주입하고
바로 글에 도전하는 그런 모습으로 나아갈게요.

그리고,
언젠가 이 곳에서 몇달간이라도 눌러앉아 있다 보면
이 곳에서 벌어지는 광대한 사유의 세계를 읽어갈 수 있을 눈이 생길지도 모르죠.

이 시작은,
가벼운 도전에서 출발해 깊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어떤 몸부림일거에요.

그럼 한번 가 볼까요?

                                                                           어느새 3학년이 5학기째가 된 첫날
                                                                           Written by.. Abandonedsoul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0:06 

 

상병 김국한 
  하고 싶은 걸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최고가 되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현학과 현학이 아닌 것을 구분하려고 노력해보지만 항상 어렵네요! 확실히 현학이 아닌 것은, 동훈씨도 저도 오늘 5학기째가 되었다는 사실 정도일까요?(웃음) 2009-05-01
08:33:59
  

 

상병 양동훈 
  5학년째! 이제 3학년 중에서도 침좀 뱉는 시기인데 왜 이렇게 저녁시간은 오지 않을까요? 
모든 궁인의 고민이 아닐까 싶네요(울음) 2009-05-01
13:52:26
  

 

상병 오효섭 
  기대하겠습니다. 쿠쿠. 2009-05-01
14:04:10
  

 

상병 양동훈 
  허허(울음). 기대하겠습니다를 보니까 그대로 철렁하는데요? 
사실 여기서는 글을 쓰는데 필요한 자료가 하도 제약이 되서... 
225원짜리 돈먹는 기계와 씨름해야겠네요(웃음) 2009-05-01
14:58:39
  

 

상병 이종보 
  저도 삼국지의 팬으로써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같은 5학기로써도(이건 딱히 관련이 없어보이는군요.) 기대해봅니다. 


 [연재] 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1. 삼국지란?  
상병 양동훈   2009-05-15 14:37:29, 조회: 214, 추천:0 

연재를 시작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과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까, 어떤 인물이나 어떤 사건에 대해 조명하면 좋을까, 어떤 식으로 주제를 정할까 같은 부분 말이죠. 이런 부분들은, 사실은 궁인으로써의 어쩔 수 없는 제약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곳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나 자료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삼국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정보들인 정사와 연의가 없고(정말 연의도 구할 수가 없더군요......) 예전에 제가 썼던 글들, 혹은 다른 글들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중심을 잡는 것도 상당히 난해하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돈 먹는 기계를 돌리는 것 뿐... 그리고 그것들을 손으로 써서(!) 타이핑해서 자료로 쓰는 것 뿐...)
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어찌되었건 글은 써야 하고(이것을 엇나간 의무감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웃음)), 글들을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댓글은 환영합니다. 댓글을 환영하고, 또한 주제를 제시해 주는 것도 환영합니다. 동의도, 반론도 좋고 어떤 것이든지 다 좋습니다. 무엇에 대한 것이든 간에 정답은 없고, 의견이 모이고 쌓이면 정답을 향해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는데 도움이 되니까요.
얼개에서는 제목을 '삼국지, 그리고 그 이야기' 라고 잡았으나, 글을 쓰면서 이름을 좀 바꿨습니다. '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이 이번 연재의 제목이 될겁니다. 말 그대로 주저리주저리에 잡설...이지요. 특별한 주제도, 흐름도 없는 연재일겁니다.(개념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구요(웃음))
그리고, 제 글은 칼럼 같은 느낌보다는 마치 토론글의 느낌을 풍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허점이 많은 글일 겁니다. 그래서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럼, 이쯤에서 첫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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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삼국지를 3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말라(그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3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하지 말라는 거였던가?)’ 라는 격언(?)으로 유명한 바로 그 책이다. 어디서나 삼국지는 청소년 추천도서 목록에 항상 올라 있고, 다름 아닌 이곳에서도 ‘주민들이 뽑은 책’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한, 무수히 많은 삼국지 관련 서적과 기타 저작, 그리고 속칭 ‘삼국지 매니아’들의 삼국지에 대한 각종 글들을 합치면 그것만으로도 도서관 하나를 차리고도 훨씬 남을 양이 될 것이다.
지금 이 허접한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삼국지 매니아’중의 한 사람이라고 개인적으로 자부하고 있다. 기나긴 여행이 될 것 같은 이 느낌에서, 첫 시작은 차분하고도 딱딱하게 끊어 볼 생각이다. 이 글의 주제는 바로 ‘삼국지’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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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황건적의 난부터 오가 멸망하는 280년까지의 약 110년 정도의 기간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다만, 삼국지의 주요 인물의 어린 시절까지도 다루고 있으므로 그 역사가 다루는 시기는 조금 더 길어진다. 삼국지의 각종 주요인물(여기서 말하는 주요인물이란 조조, 손견, 유비를 말한다)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조조가 154년생이므로, 대략 130년 정도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삼국지를 논하는 사람들은 대략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속칭 정사라고 불리는(정사라고 함은 바른 역사라는 뜻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에서 가장 인정받는(?) 역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이름이 정사인 것은 아니다.) 진수의 삼국지부터, 배송지주, 자치통감 등을 아울러 ‘역사’를 논하는 사람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나관중의 삼국지통속연의라는 ‘소설’을 논하는 사람이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정사파, 연의파라고까지 불리면서 서로 간에 약간의 ‘대립’양상을 보이기도 하는데, 인터넷이 발달하고 각종 정보를 접하기가 쉬워지면서 지금은 적어도 토론에 있어서는 실제 역사서를 중심으로 하는 흐름이 보편적으로 퍼진 상태이다.

이 글을 비롯한 앞으로 필자가 쓰는 모든 글에서는 진수의 삼국지는 ‘정사’로, 배송지주는 ‘배주’ 혹은 ‘배송지주’로, 나관중의 삼국지통속연의는 ‘연의’로 통칭하고, 기타 등장하는 사서나 참고서적에 있어서는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 또한, 정사라고 칭한 책의 경우에는 그 속에 배주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어차피 정사의 주석으로 달려 있는 것이 배주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의 이 글은, 각종 주요 서적들의 소개로 마치도록 하겠다.

정사는 진수가 쓴 것으로, 진수는 진나라에서 벼슬을 한 인물이다.1) 촉에서도 벼슬을 했으나 촉이 망하고 진에서 벼슬살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진수는 그 당대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며, 그의 삼국지 역시도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높은 평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진수의 삼국지를 평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위나라 시대(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국지의 시기)의 세 영웅에 대해서는 편년체와 기전체의 사서로 여러 가지가 나와있지만, ‘위씨춘추’와 ‘위략’또는 ‘강표전’이나 ‘오록’등은 어떤 것은 감정의 고조 때문에 징거를 잡기가 어렵고, 어떤 것은 소략하여 요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오직 진수의 ‘삼국지’만이 실질과 수사가 융합을 이루어 정통과 분석이 잘 되어 있으므로, 문과 질이 제대로 합치되었다. 순욱과 장화는 진수를 사마천과 반고에 비교했는데, 이것이 터무니없는 칭찬은 아니다. - 문심조룡, 유협

정사는 그 분량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나 각종 인물의 연대기를 담담한 문체로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게 서술한 면이 돋보이는 저서이다. 비록 위를 계승한2) 진의 신하로써 조조같은 위나라의 주요 인물에게는 과한 평가를 한 경향도 있으나, 대개 그의 인물평은 날카롭고도 흥미롭고 또한 정확한 편이다. 부족한 부분에서는 냉정한 평가를, 그리고 뛰어난 부분에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이 그의 인물평이다.

그 다음 다루어야 할 것은 배송지주이다. 배송지는 송나라(아닌가.. 아마 맞을 것 같은..) 사람으로, 진수의 정사가 내용이 간결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수백 권의 사서를 참고하여 정사 이곳저곳에 주석을 달았다. 배송지주는 지금은 소실되어 없는 수많은 사서들을 참고하여 그 주석을 달았고, 중간중간에 ‘신 배송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같은 종류의 말로 시작되는 수많은 자신의 의견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삼국지의 주요 인물이나 사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해왔는지에 대한 자료로도 유용하며, 거의 정사와 맞먹는 방대한 분량의 주석으로 삼국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마지막으로 다룰 것이 바로 연의이다. 정식 명칭은 삼국지통속연의로, 연의라는 말은 그 자체로 ‘역사소설’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연의는 삼국지에 대한 어마어마한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그 실제 역사에 대한 수많은 ‘오해’를 낳은 책이기도 하다.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연의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치밀한 사건구성과 섬세한 사건 및 전투의 묘사 등으로 그 흥미를 끌어올렸으며, 단순히 그 책 자체로도 무궁무진한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삼국지연의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종류의 평역본3)이 나오면서 더더욱 많은 오해의 싹이 되었다.

Written By
Abandoned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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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때 진수의 아버지가 진식이고 그래서 진수가 제갈량에게 좋지 않은 평을 썼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를 확정할만한 근거는 없다(말 그대로 근거 자체가 없다. 부정할 만한 근거도 아주 뚜렷한 것은 없지만, 역사를 논함에 있어 근거가 없는 것을 추측만으로 그랬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진서 진수전에서는 진수의 아버지가 누구라는 이야기는 없고 다만 마속이 처형될 때에 연루되어 곤형(곤형이란, 흔히 알고 있는 곤장형이 아니고, ‘?刑’이다. 이 곤형은 죄인의 표식으로 머리를 깎고 칼을 쓰는 일종의 징역형이다.)을 받았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진식이라는 이름이 정사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것을 감안할 때, 진수의 아버지가 진식이라면 그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상 적다고 봐야 한다. 이 말은, 진수가 진식의 아들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추론이라는 이야기이다.
2) 사마염이 사실상 제위를 찬탈한 것이라 하더라도, 명목적으로는 합법적인 선양이었기 때문에 진의 입장에서도 위를 무시하거나 깎아내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 진수는 평범한 재야 역사가가 아니었고, 명목적으로는 ‘임금의 명을 받고’ 삼국지를 집필했기 때문에, 진수의 삼국지에도 위를 높이는 모습이 여러 군데 등장하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조조, 조비 등의 경우는 무제기, 문제기 등으로 본기에 배치하고 있지만, 유비나 손권의 경우에는 선주전, 오주전 등의 이름으로 열전에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비나 유선은 조조나 조비의 경우와 같이 ‘휘’라는 황제의 이름을 지칭하는 용어를 사용하지만(예를 들자면, 선주의 성은 유, 휘는 비로... 라는 식의 서술이다. 조조나 조비도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나라 황제들의 경우는 일반 장수와 같이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예를 들자면, 손권의 자는 중모로...라는 식의 서술이다). 상식에 비춰 보자면 유비나 유선의 경우도 손권같은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3) 평역이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번역을 하면서 역자의 생각이나 판단을 글 속에 개입시키는 것이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책이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이문열 평역 삼국지이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의 경우는 평역이라는 방식을 통해 연의를 풀어가면서 정사, 혹은 기타 역사서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읽을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쓰여졌으나, 역사에 대한 잘못된 해석들이 줄줄이 도마에 오르면서 삼국지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문제서적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0:15 

 

상병 이석재 
  끌끌. 잘 봤습니다. 

  [연재]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2. 첫 번째 인물탐구 - 도겸  
상병 양동훈   2009-05-16 16:19:46, 조회: 221, 추천:0 

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2. 첫 번째 인물탐구 - 도겸

이 글이 사실상 첫 번째 연재글이 될 것이다. 주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다, 그 대상 인물을 도겸으로 결정했다. 유명한 인물, 유명한 사건에 대한 글을 쓰면 분량도 채우기 쉽고, 글을 진행하기도 편하겠지만 왠지 그냥 써보고 싶은 인물이 바로 이 도겸이었다. 이 도겸이라는 인물도 한때 인터넷 세상에서는 격론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었고, 이 사람만큼 그 평가과 극과 극을 달리는 경우가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연의에서의 도겸은 말 그대로 ‘성인군자’로 나온다. 난세를 살아 갈 힘이 없는 유약한 인물로, 조조, 원소, 공 손찬 등에게 둘러쌓인 힘없는 태수. 자신의 부하가 조조의 아버지를 죽이자 ‘내 목을 내놓아서라도 서주의 백성을 구해야겠다’라고 말하는 성인. 조조가 쳐들어오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여기저기에 구원요청만을 하는 진실로 연약하고 아름다운 인물이다. 그 능력이 부족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난세에도 인과 의를 지키려고 한 인물로 그려지며, 마지막에는 아들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며 유비에게 끝내 서주를 양도하는 ‘삼국지에서 몇 안되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실제 도겸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유비와 그 일족, 장수, 그리고 유비와의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아름다운 서술을 했던 연의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도겸에 대한 탐구는 분명한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도겸은 ‘유비에게 서주를 넘겼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름답게 포장될 만한 이유가 충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쯤에서 진수의 도겸에 대한 평가를 한번 보고 출발하도록 하자. 진수는 정사를 집필하며 열전을 몇 명씩 묶어서 배치한 경우가 있고,1) 한 명씩 배치된 전과는 달리 이런 경우에는 그 묶음의 마지막에 그 사람들에 대한 평을 남겼다. 참고로, 도겸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다. ‘공손찬, 공손도, 공손연, 도겸, 장양 등은 주군을 지배하였지만 일반 백성들만도 못하였으니 평론할 가치가 없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최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평가이다. 하지만, 이 평가에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도겸에 대한 단편적 시각이나 평가가 아닌 도겸이라는 인물의 전반적 조명이기 때문이다. 정사에서 도겸을 다룬 전은 대략 15개 정도가 되는데, 사실 이 모든 전의 모든 기록이 가치있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주요 내용들을 일단 나열한 후에, 그 내용들을 기반으로 해서 도겸의 삶을 파헤쳐보도록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보인다. 그리고, 그 내용들에 번호를 붙여서 번호를 기입해가며 글을 진행시키는 것으로 하겠다. 중간중간 사서의 기록들이 끼어들 경우, 글을 쓰기도, 읽기도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서주의 황건 무리가 난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도겸을 서주자사에 임명하였다. 그는 황건 무리를 쳐부수어 달아나도록 했다. - 정사 도겸전 (1)

도겸은 강직하고 절개가 있는 인물로서 - 배주에서 인용한 위요의 오서 (2)

도겸은 도의를 위배하고 감정에 따라 행동했다. 광릉태수였던 낭야 사람 조욱은 서주의 명사로 충성스럽고 정직하였으나 소원시되었고, 조굉등은 아첨하는 사악한 소인들인데도 도겸은 그들을 가까이하고 임용했다 - 정사 도겸전 (3)

하비성 사람 궐선은 스스로 천자라고 칭했다. 도겸은 처음에 그와 동맹을 맺어 약탈을 일삼았다. 후에 도겸은 궐선을 죽이고 그의 군대를 거두어들였다. - 정사 도겸전 (4)

조공이 서주를 정벌하자 서주목 도겸은 사자를 보내 전해에게 위급함을 전했고, 전해는 선주2)와 함께 이를 구원했다 - 정사 선주전 (5)

조공의 부친이 도겸의 관할 하에 있던 태산에서 살해되니, 그 허물은 당연히 도겸에게 돌아갔다. 태조는 도겸을 토벌하려고 생각했으나 그가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두려워했다 - 배주에서 인용한 위요의 오서 (6)

조조의 서주 공격에 대한 역사서의 어긋난 서술
세설신어 - 조조가 먼저 공격하여 도겸이 보복으로 조조의 아비를 죽인 것
정사 무제기 - 도겸이 조숭을 죽여 그 보복으로 조조가 도겸을 공격함 (7)

도겸이 죽은 후, 미축은 도겸의 유명을 받들어 소패에서 유비를 영접했다 - 정사 미축전 (8)

여기까지가 정사에서 도겸을 다룬 주요 내용들이다. 우선 첫 번째의 조명은, 도겸의 ‘유약함’에 대한 반박이다. (1)을 참고하면, 황건 무리의 난을 도겸이 진압하였다고 나온다. 반란 내지는 폭동이 일어났을 때 자사가 바뀌었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이전의 자사가 제대로 난을 제압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선임 자사가 난을 진압하지 못하자 도겸을 자사로 새로이 임명했고, 도겸이 그 난을 진압했다는 것은 ‘유약함’과는 무척이나 먼 얘기이다. (6)에서도, 도겸을 그저 유약한 인물로는 볼 수 없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또한, 위에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조조가 쳐들어왔을 때 도겸은 항상 군사를 이끌고 맞서거나 직접 농성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적어도 연의에서처럼 ‘날 죽여서라도 백성을 구해야겠다’라고 말하는 연약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그의 인물됨에 대해 다루어진 부분으로 (2), (3), (4), (5) 등이 있다. (2)와 (3)은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강직하고 절개가 있는 인물이 도의를 위배하고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척이나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위요의 오서에서도 뒤에는 도겸의 인물됨이 (3)과 비슷했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젊어서는 강직하고 옳았지만 나이를 먹고는 조금씩 아첨꾼에게 넘어간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마치 동탁과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또한, 서주자사로 있으면서 수시로 헌제에게 공물을 바친 기록도 그의 인물됨을 논하는 데 있어서 주요 정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공물이 사실은 헌제에게 바쳤다기 보다는 동탁에게 바친 것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은, 그가 정말 ‘충성스러운’ 신하였거나 혹은 ‘약삭빠른’, 혹은 두가지 다에 해당되는 인물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두가지 다에 해당되는 인물’ 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4)와 (5)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사실 밖에서는 (4)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이건 뭐 개념도 없고 인정도 없는 놈’이라는 무조건적인 비판이 쏟아지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는 약간 치우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필자는 (5)를 들고는 한다. 적어도 저 시기는 황제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던 시기였고, 실제 충성심은 없더라도 황제라는 인물 자체가 어떠한 일의 명분이 되는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천자를 참칭한 사람, 그리고 그에 동조한 인물’이라면 바로 역적으로 몰려 만인의 공적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게다가 강력한 세력들에 둘러쌓여있던 서주라면 그 상황은 더욱 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에게 ‘편’ 이 있고 ‘구원 올 제후’가 있다는 것은, (4)의 기록 속에 숨겨진 많은 흐름들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 다음의 (7)은 세설신어와 정사 무제기간의 간극을 보여준다. 연의에서 조조가 도겸을 공격한 가장 대표적 이유로 되어있는 조숭 살해사건. 세설신어에서는 조조의 공격에 대한 도겸의 보복행위였다고 서술하고 있고, 무제기에서는 조숭 살해사건에 대한 조조의 보복성 공격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위에 제시된 자료들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진수가 서술한 사료에서는 도겸의 모습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부정적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주석의 형태로 첨부되어있는 (2), (6), (7)의 세설신어 등에서는 도겸에 대해 옹호하거나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은, 도겸에 대한 평가를 너무도 어렵게 한다. 정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대개는 옳아 보이지만, 다른 역사서들이 입을 모아 그 반대의 의견을 내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닌 단순한 사건에 대한 서술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서술과 부정적으로 보는 서술은 극과 극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도겸은 조조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수많은 백성들의 희생을 담보로 겨우 땅을 지켜나갔던 사람이다. 하지만, 연의에 나온 것처럼 연약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이 필자가 내리는 결론이다. 그는 나름 능력도 있었고, 재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조라는 신흥 강호를 맞아 끝까지 맞서 싸우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인 행보는 상식을 초월한 행적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동탁이 제후들에게 다굴을 맞고, 수도를 옮기고, 온 세상이 그에게서 등을 돌릴 때까지도 도겸은 동탁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였고, 조조의 아비를 죽인 이후에는 방관자적인 모습을 취했다.3) 이는 도겸의 정치적인 안목과 시각이 말 그대로 바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난세에서는 군사력만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 없다. 더욱이 이 시대처럼 수많은 군벌들이 난립한 상황에서는, 정치적인 안목의 부족은 외교적 고립과 패배를 가져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도겸의 진정한 한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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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표적인 예로 ‘관장마황조전(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전)’, ‘장악우장서전(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전)’ 등이 있다. 여기서 발전되어 연의에서 꽃핀 개념이 촉의 오호대장군이며, 후의 다섯명을 위의 오대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2) 선주는 ‘유비’이다. 참고로 유선은 ‘후주’라고 칭해진다.
3) 도겸이 앞장서서 조조의 아비를 죽였는지, 아니면 도겸이 모르는 사이에 조조의 아비가 죽었는지는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만일 전자라면 조조의 공격에 대비한 움직임을 보여야 했고, 후자라면 조조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범인을 색출한다던가 하는 움직임이 있었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도겸은 그런 종류의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0:22 

 

상병 김예찬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유기라는 인물에 대해 매우 궁금합니다.. 2009-05-16
17:57:49
  

 

상병 양동훈 
  유기라.. 조금 난해할 지도 모르는 인물이네요.. 
인물탐구 세번째 인물로 찝어둘게요..!(웃음) 2009-05-16
18:20:37
  

 

상병 이석재 
  잘 봤습니다. 도겸이란 인물은 연의와 정사에서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기는 하죠. 결국 유비라는 인물에 가로막혀 빛을 별로 못보긴 했지만. 조조의 천하가 되었던 중원지역에서 여포와 더불어 조조를 상대한 양대 거두(참 말이 미묘하긴 하지만)가 아니였을까요. 하여튼 이 서주라는 땅. 호기심이 동하는 땅이기도 합니다. 2009-05-16
21:34:29
  

 

병장 양동민 
  게임속의 서주는 수도로 침공하기 위한 일종의 샛길 정도였는데. 큭큭. 2009-05-17
13:30:15
  

 

상병 김태완 
  허접한 인물일 뿐이라 생각한 도겸에게도 이런 숨겨진 면목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선하군요. 삼국시대 유명인들에게도 이러한 숨겨진 면모들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전 유비가 멋지기만 했던 인물인지가 궁금하군요. 


 [연재]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3. 두 번째 인물탐구 - 조인  
상병 양동훈   2009-05-17 19:16:18, 조회: 238, 추천:0 

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3. 두 번째 인물탐구 - 조인

삼국지 주절잡설의 두 번째 인물탐구는 위나라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조인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조인은 대개 허접한 장수로 남아있다. 사실 연의에서의 조인은 서서에게 발리고, 관우에게 쪼는 인물로 등장하고1), 하후돈, 하후연, 장료, 장합, 서황, 전위, 허저(....) 등 수많은 장수들에게 밀려서 조조의 장수들을 떠올릴 때 2순위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게다가 조인은 거의 조홍과 세트로 기억되며, 능력은 부족하지만 충성심과 조조와의 인척 관계 덕분에 이름이 남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연의에서 깎아내려진 인물은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반장같은 경우는 이릉전투의 초창기에 ‘관우의 유령’에게 쫓겨 그의 코흘리개 아들인 관흥에게 죽고 마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오에서 손꼽히는 맹장으로 유비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으며, 끝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이다. 그리고 우금같은 인물도 말년에 항복하는 삽질을 하기 전까지는 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맹장이었지만 연의에서는 너무나도 초라하게 그려져 있다(참고로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언젠가 인물탐구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그런데, 개인적으로 필자의 생각은 조인은 그 이상으로 너무 허접하게 표현되어버린 인물이라는 것이다.

조인은 정사에서 대략 30개의 열전에 등장한다. 이 정도 수치면, 다른 어떤 A급 장수들에게도 전혀 꿇리지 않는다. 심지어 흔히 조조의 대표적 장수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인 하후돈보다도 훨씬 많은 분량이다. 비록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비슷한 것들이 다수라서 크게 참고할 만한 내용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정사에서 많은 횟수동안 다뤄졌다는 것은 열전의 분량과 더불어 그 사람의 역사적인 비중을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참고지표로 이용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에 조인이 개입된 경우에는, 다른 모든 인물들이 생략되더라도 조인만은 그 대표로 기록된다. 그것은, 조조군에서 조인의 위상과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쉬이 짐작하게 해준다2).

조인전에 나온 조인의 전투 관련 기록들은 보는 사람을 기겁하게 할 정도로 현란하고 많다. 그리고, 조인전이 아닌 여타 다른 전들에 남아있는 것들까지 합하면 수십 가지에 이른다. 그 내용을 차마 다 옮길 수는 없고, 간략화해서 한번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원술 정벌전 - ‘태조가 원술을 격파할 때 조인은 많은 적군을 참획(斬獲 - 참살하고 포획)했다’
서주 정벌전 - ‘조인은 늘 기병을 지휘하며 군의 전봉이 되었다.’
여포 정벌전 - 구양 공략
장수 정벌전 - ‘조조군이 장수군에게 몰려 사기가 저하되자 조인이 병사들을 독려시키고 사기를 고양시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휴고 공략전 - 휴고군을 무찌르고 휴고를 참수
유비 공격전(관도대전시) - 원소의 병력을 받은 유비가 조조의 여러 현을 빼앗았으나, 모조리 수복함
호관 정벌전 - 조조에게 ‘적군을 사지에 몰아넣고 다 죽이겠다고 하니 적군이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는 것입니다. 적군의 퇴로를 풀어주면 항복시킬 수 있습니다.’ 라고 진언, 호관의 항복을 받아냄.
적벽대전 - 적에게 포위된 우금을 구출. 결국 남군을 포기하기는 했으나 전군이 퇴각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 성공적으로 방어작전을 수행했다고 평가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음.
마초 정벌전 - 위남에서 마초군을 격파
소백?전은, 후음등의 반란 모조리 토벌
번성 방어전 - 번성이 관우에게 포위당하고 물이 차올라 위급한 지경이 되었으나 소수병력으로 침착하게 수성하여 후일 서황에 의해 구출됨.

대강 굵직굵직한 전투들만 살펴봐도 족히 10여 개, 그러나 패배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정사에서 조인의 기록을 모조리 살펴보면, 어쩌다 겨우 어디선가 조그만한 것을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기록을 한번 살펴보자.

“주환은 깃발을 쓰러트리고 북을 울리지 않은 채 외부에 허약함을 나타내 조인을 유인하여 이르도록 했다. …… 이 싸움에서 머리를 베이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는 1천여 명이나 되었다.” - 정사 주환전

정사 장제전을 참고하면, 황초 3년(222년)에 위와 같은 내용을 다룬 기록이 있다. 해전에서 오나라 병력의 대비태세가 뚜렷하여 장제가 공격의 불가를 설파하였으나 조인이 듣지 않고 적을 공격하여 결국 패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전투가 그 많고 많은 정사의 내용 전체에서 조인이 실패한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이다. 이 때의 조인은 이미 50대였던 데다가, 젊은 시절부터 기병대를 다뤄왔던 사람인 만큼 해전에서는 익숙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쉽게 말해서, 이 패배로 조인을 깎아내리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오의 맹장 주환이었다는 것도 조인을 가볍게 보지 못하게 하는 주요한 이유가 된다.

조인의 전투경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성이 없을 듯하다. 이미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충분하다 못해 썩어 넘치므로, 조인에 대한 각종 평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장군은 실로 천인(天人) 이십니다.” - 정사 조인전 中 진교의 평.3)
“조대사마(조인)의 용맹은 맹분, 하육4)도 더하지 못한다. 장료가 그 다음이다.” - 배주에 인용된「부자」
“조인은 어릴 때 행검(行檢 - 품행 또는 행실)을 닦지 않았으나 장성해 장수가 되자 엄정(嚴整 - 엄하고 가지런함)하고 법령을 받들어 늘 과를 좌우에 두고 이를 살펴 사무를 처리했다. 언릉후 조창이 북쪽으로 오환을 정벌할 때 문제는 동궁에 있었는데 서신을 써서 조창을 훈계해 이르길 ‘장수가 되어 법을 받드는 것은 응당 정남(당시 정남장군5)이었던 조인)과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했다.” - 정사 조인전

정말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최고의 평이다. 이 정도의 극찬을 받은 사람은 정사 전체에서 조조를 제외하고는 찾기 힘들 것이다. 말 그대로 범의 용맹과 부족하지 않은 지략, 그리고 성품과 사무능력까지 갖춘 터미네이터가 바로 조인이었던 것이다. 다들 위나라 최고의 무장이라고 여기는 장료도 조인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다는 것은 조인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짐작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저기서 발리고 털리던 건, 실제로는 흔적조차 없는 만들어진 기록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조인이 주환에게 털린 것은 실제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연의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대강대강 간단간단히 서술되어 있다), 유비군에게 발린 일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기억된다. 이런 것이 바로 나관중의 농간이 아닐까...

왠지 땅 속에서 억울해서 매일 울고 있을 것 같은 우리의 ‘조자효6)’옹. 그래도 그나마 덜 억울한 것은 다음의 한 줄이 말해주고 있는 내용이다.

“청룡 원년(233) 봄 5월 12일. 고인이 된 대장군 하후돈, 대사마 조인, 거기장군 정욱을 태조의 종묘 정원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 정사 명제7)기

조인은 말 그대로 국가의 영웅이었다. 하후연도, 장료도 조인이 살아서 받은 평가와 죽어서 받은 대접에 미치지 못했다. 오로지 하후돈만이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이 글이 그의 안타까운 원혼을 달래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Written by
Abandoned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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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조의 졸개야, 오늘은 내가 너를 해하지 않을 것이니 얼른 가거라’ 라는 관우의 일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연의의 기록에 따르면, 유비가 서서를 군사로 삼고 병력을 기르자 조조가 보낸 장수가 조인이었는데 조인은 팔문금쇄진을 쳤다가 서서의 계략에 의해 분쇄당하고, 그 틈을 타 관우가 조인의 진지를 빼앗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때 두려움에 떨던 조인에게 관우가 저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떡하나... 실제로 조인은 유비군과 맞붙은 기록이 거의 없다. 더욱이, 유비가 독립하여 서촉을 차지한 이후로 조인은 동오를 상대하는 역할을 맡았지 촉을 상대한 적이 없다. 쉽게 말해 ‘쌩 구라’라고 보면 될 듯 싶다.

2) 조인은 끊임없이 그 벼슬과 봉지가 추가되었으며, 문제(조비)대에 이르러 대장군을 넘어 대사마에 오른다.

3) 우금이 조인의 명을 따라 수백 기를 이끌고 오군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포위되었다. 병력이 워낙 적었던 데다가 적진 너무 깊숙이 들어갔기 때문에 빠져나올 방법이 요원했고, 성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사색이 되었다. 이 때, 조인이 투구를 쓰고 나가려 하자 진교가 거듭 말렸으나 조인의 의지는 확고했다. 조인은 수십 기의 기병만을 이끌고 적진의 해자 근처로 접근하였다. 적군이 우금군을 도우러 온 줄 알고 우금군을 포위하는 데 더욱 신경을 쓰는 사이, 조인은 적군의 허리를 잽싸게 끊어버리고 우왕좌왕하는 적군의 틈으로 우금을 구해 성으로 돌아갔다. 이 모습을 본 진교가 조인에게 한 말이 바로 저것. 天人이다.

4) 고대의 맹장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다.

5) 저 당시 무장들의 관직체계는 대략 (대사마) - 대장군 - 거기, 표기장군 - 사정장군 - 사진장군 - 사방장군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사진장군과 사방장군 중에 어디가 더 높은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사정장군은 지방군의 총사령관정도로 생각하면 되고, 정남장군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강한친구..에서는 대강 2작사령관(요것도 쓰면 안되려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참고로 사진장군은 진서, 진동, 진남, 진북장군이며 사방장군은 전, 후, 좌, 우장군이다.

6) 조인의 자가 다름아닌 자효이다. 연의에서 예형이 ‘조자효는 성품이 인색하다’라고 놀리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데, 그 조자효가 바로 조인이다.

7) 명제는 조예의 시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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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밑에 붙은 덧.
예찬씨. 미안해요.
아무리 찾아봐도 유기는 글을 쓸 거리가 없어요.
연의에서 예찬씨가 본 것. 그게 전부 다 역사서에 있고, 역사서에 있는 건 연의에 다 있어요.
필요충분조건이에요. 쥐쥐...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0:30 

 

상병 이석재 
  잘 봤습니다. 아무래도 정사와 연의에서 평이 갈라지는 인물들이 좀 많긴 하지요. 흐. 갑자기 코에이의 삼국지가 하고 싶어지는군요. 2009-05-17
20:46:40
  

 

상병 이종보 
  다음 인물로 '서서' 를 꼭 한번 보고 싶어요. 

제가 얼핏 알기로 서서는 제갈량을 추천하고 조조에게로 떠나는게 아니고 

조조의 남방원정때 유비가 강하로 도망가던 도중 조조에게 투항하는거라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잘못된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후 행적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말이죠. 2009-05-17
21:31:34
  

 

병장 이지훈 
  잘 보고 있습니다. 재미있어요. 흐흐 전 그래도 조인은 항상 게임에선 중용했는데 말이죠. (심지어 조조전에서도)뭔가 안정적인 느낌이랄까. 이 글을 읽고 조금 그 안정감이 구체화되는 느낌이군요. 

그나저나 석재님을 비롯해 동훈님도 그렇고....한계는 어디일까요. 마르지 않는 샘이군요. 헐헐 2009-05-17
23:18:09
  

 

상병 김예찬 
  아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유기는 정말 듣보잡이군요...... ) 

가능하시다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직위들이나 장군 명칭에 대한 설명도 한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랑 같은 학교라고 하신다면 혹시 사학 전공이신지? 2009-05-18
08:26:19
  

 

상병 양동훈 
  석재// 흐흐흐... 삼국지 2,3,4,5,6,7,8,9,10,11 영걸전 공명전 조조전... 진삼.. 어디로? 

종보// 서서라! 왠지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한번 헤집어봐야겠다는! 

지훈// 조조전에서는 항상 하후돈과 장료에게 밀려서 묻히던 조인 (으헝헝) 제 한계는 아는게 이거밖에 없다는 데 있는거 같네요 (흐엉) 

예찬// 유기는 정말 듣보잡이군요.222 그래도 뭐 착하고 예의바른 사람이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정도면...(웃음) 
직위나 장군 명칭은 진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네요(울음).. 노템으로 덤빌 엄두가 안나네요..(전 석재씨가 아니라서..으헝) 그래도 언젠가는 (4학년 올라가기 전까지는?!) 도전해보도록 할게요. 
아 그리고 저는 BA 소속이에요(웃음). 사학은 개인적으로 복수전공을 생각하고는 있는데...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겠네요..! 2009-05-18
09:06:57
  

 

상병 김민혁 
  저도 삼국지를 매니아적으로 좋아하는 1人입니다. 

조인, 저도 그만큼 뛰어난 장수가 연의에서 너무깍아져 내렷다고 생각해요.!! 

해박한 지식과 정보 감사드립니다. 아주 재미있게 보고잇어요 

다음 인물탐구에는 제갈량을 뛰어넘는 재능을 가졌지만 요절한 곽가에 대해 

써주시면안될까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라... ! 

다음글 기대하고있겠습니다!! 2009-05-18
09:19:16
  

 

병장 조우신 
  내가 아는 그 양동훈? 2009-05-18
10:17:46
  

 

상병 양동훈 
  혹시 내가 아는 그 조우신?(...) 2009-05-18
10:25:42
  

 

병장 조우신 
  어쭈? 반말? 2009-05-18
13:13:13
  

 

병장 김태원 
  조조전에서 최고의 기병이 누구다? 

D모 사이트 고전게임 게시판에서 유행하는 놀이지요... 
[연재] 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4. 세 번째 인물탐구 - 서서  
상병 양동훈   2009-05-20 15:29:31, 조회: 218, 추천:0 

이번 편은 무척이나 짧네요~
서서는 길게 쓰기가 정말 어려운 인물인거 같아요 (울음)
그럼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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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처럼 등장했다가 조용히 사라져 간 책사 서서. 연의에서는 조인, 하후돈이라는 조조군 최강의 장수 둘을 연이어 불태워버리는 최강의 순간포스를 보여주고 있고1), 정욱의 계략으로 인해 위로 찾아가지만 어머니가 자살하고 마는 비운의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조조의 사신으로 유비에게 와서 ‘제가 지금 조조의 부하로 있는 상황에서 유비님께 돌아가면 세상이 비웃을 것입니다. 조조는 저의 어머니를 죽게 했습니다. 몸은 비록 조조에게 있지만 마음은 유비님께 있습니다. 맹세코 죽을 때까지 조조를 위해서는 단 한 가지의 계책도 내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 눈물나는 군신관계의 주인공이다. 삼국전투기에서는 히무라 켄신으로(...) 나오는데 연의에서의 서서를 나타내기에는 그보다 좋은 인물이 없는 듯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그 컷을 보고 웃으면서도 공감했으니까.

  하지만, 정사에서의 서서는 유기만큼이나(아니지, 그 이상.) 듣보잡에 가까운 인물이다.(......) 결정적으로, 정사에는 서서전, 서복전 등으로 나타날 수 있는 서서의 전이 없다. 게다가, 그가 등장하는 열전은 고작 3개. 선주전, 제갈량전, 동화전이 전부이다. 뭐 연의에서도 유비의 밑에 잠시 있다가 조조에게 가서는 버로우타는 인물로 전해지고 있으니 분량이 적거나 여기저기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가 역사적으로 ‘한 일이 없다’라는 것이 정사를 통해 보여지는 것을 보면 뭔가 참 웃긴 노릇이다. 게다가, 진수의 정사에는 서서에 대한 내용은 싸그리 긁어모아도 5줄을 넘기지 못한다. 배주가 없었다면, 아마 연의에서도 도저히 살리지 못했을 인물이 바로 이 서서인 것이다.2)

  서서에 대한 정사(진수)의 내용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다음 내용을 보자.

  제갈량은 늘 자신을 관중, 악의에 비교했으나 당시 사람들은 이를 수긍하지 않았다. 오직 친한 벗으로 지내던 박릉의 최주평, 영천의 서서 원직만이 참으로 그러하다고 인정했다. - 정사 제갈량전

  서서가 선주를 만나보자 선주는 그를 중히 여겼다. - 정사 선주전

  제갈량이 후에 승상이 되어서 아랫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진실로 원직의 십분의 일과 동유재의 부지런히 힘쓰는 성품을 따를 수만 있다면, 곧 나라에 충성함입니다. 그리하면 나도 가히 잘못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 정사 동화전

  쉽게 말해서, 정사(진수)에서 나온 서서의 내용은 서서가 제갈량의 친구로 서로 존중하고 높이 평가하는 사이였고, 유비도 서서를 좋게 생각하고 아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기록의 전부라는 사실.... 차마 가슴이 아파서 배주의 기록들을 긁어모아 보도록 하자.

  서서(徐庶)의 이름은 복(福)이고 본래 한미한 집안의 자식이다. 어려서 임협(任俠), 격검(擊劍)을 좋아했다. 경업(經業 - 경전)을 들어서 익혀 의리에 정숙하게 되었다. (중략) 황초3) 중 서복의 관직은 우중랑장, 어사중승에까지 이르렀다. 대화3) 중 제갈량이 농우로 출병했을 때 원직과 광원의 벼슬이 이같음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위에는 선비가 너무 많구나. 어찌 저 두 사람이 저렇게 쓰인단 말인가! - 배주에서 인용한 위략

  제갈량전에 있는 서서에 관한 기록인데, 배주속에 있는 작은 서서전이라고 불러도 무리없을 것 같다. 아마 열전이 없는 서서에 대한 배송지의 배려가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여기에도 별 내용은 없다(....) 옛날 사람들의 눈에는, 최주평, 석광원, 맹공위 그리고 서원직4)까지 네 명은 그냥 제갈량의 친구이고 능력이 좀 있었다는 것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연의에서는 워낙 제갈량이 신격화되어 있으니 그와 뜻이 통했던 친구의 능력도 출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고, 덤으로 유비의 신하이기도 했으니 띄워주기에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워낙 그의 공적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끝마무리를 그렇게 해 놓으면 조용히 사라져도 아무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고.... 사실 이 서서와 관련된 부분이야말로 나관중의 천재적 능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정리하면, 서서는 연의에서는 제갈량에 버금가고 조조도 탐내는 천재이지만 사서에서는 그냥 그런 선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연의에서 나왔던 효성스러운 서서의 모습은 정사에서는 그냥 ‘맹건과 서서는 북으로 갔다’라는 한 줄로 정리되어있을 뿐이다. 아마 어떤 종류의 야사에서 서서가 그런 모습으로 등장했을지도 모르지만, 조조라는 사람이 인재를 대하는 태도로 볼 때, 그렇게 탐냈고 그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고 하면 ‘중랑장’으로 놔두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조조의 밑에서 ‘타군에서 온 책사’들이 크게 중용받지 못하는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5), 아무리 그래도 서서의 경우는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아마 실제로는 정사 8에 연의 2 정도의 모습이 서서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적은 정사의 것이 대체로 맞을 듯 하고, 능력은 연의와 정사의 중간정도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갈량이 그렇게 극찬하는 인물은 워낙에 찾기 힘들다.

  등장부터 사라짐까지.. 이래저래 애매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서서만의 매력이 아닐까? 파고들면 들수록 알 수 없는 사람 말이다.

Written by
Abandoned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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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부분은 사실상 각색 수준을 넘어 개그에 가깝다. 서서가 유비에게 간 시기에 조인은 이미 동오쪽을 방비하고 있었고, 하후돈은 눈을 잃은 이후로는 병력을 이끌기보다는 사실상 정치가로 변신했다(정치가로써의 능력도 장수로써의 능력 못지않다. 말 그대로 ‘만능’).

2) 마치 조운과 같다. 조운의 경우도 조운별전이 없었다면 연의에서 도저히 캐릭터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조운의 기록은 서서보다는 몇 배는 되지만..

3) 황초와 대화(태화)는 모두 위의 연호이다.

4) 연의에서도 등장하는 인물들로, 제갈량이 초야에 파묻혀있을 때 사귄 몇 안되는 친구들이라고 한다. 정사에서는 제갈량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을 거의 ‘비슷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5) 형주의 유종(유표의 아들)이 항복했을 때, 조조는 ‘나는 형주를 얻은 것이 아니고 오직 이도(괴월의 자)를 얻은 것이 기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뒤로 조조군에서 괴월이 한 일로 기록에 남아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0:46 

 

상병 김태완 
  얼핏 기억나는 인물들을 구체화시키는 반면 그들을 완전 다른사람으로 각인시켜주시는군요. 
재밌어요. 선명한 지식을 가지게 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다음 인물도, 다다음 인물도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2009-05-20
16:36:40
  

 

상병 양동훈 
  칭찬 감사합니다(웃음)!! 
100편을 쓰는 그날까지 달릴게요 (웃음 X 10000) 2009-05-20
19:01:35
  

 

상병 이종보 
  건의했더니 진짜로 올려 주시는구나............ 

감사합니다. 

근데 기록이 이정도로 빈약할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다음 인물을 열심히 탐구해봐야겠군요. 2009-05-21
08:30:59
  

 

상병 서지곤 
  이 인물전 하나하나 갈무리하는게 앞으로의 낙이 될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정보 많이 알려주시길 발바니다.-/! 2009-05-21
14:12:57
  

 

병장 김정환 
  서서 나름대로 좋아했던 인물인데 말이죠 흠흠 

  [연재] 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5. 네 번째 인물탐구 - 곽가  
상병 양동훈   2009-05-20 16:39:36, 조회: 280, 추천:0 

하루만에 후루룩 글 두개를 올려 버리네요..(웃음)
보얀땡큐가 끝나 너무 빠졌나봐요....하하...
그래도 며칠 쉬었으니까!! 달려줘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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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주절잡설의 네 번째 인물탐구는 요절한 비운의 장수 곽가이다. 곽가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 특유의 낭만적인 호방함, 그리고 요절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삼국지의 수많은 책사들 중에서 꾸준히 인기랭킹 1, 2위를 다투고 있는 인물이다. 흔히 세간에는 ‘계략성공률 100%의 완전무결한 책사’로 알려져 있고, 최후에는 자신의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그야말로 충신이자 뛰어난 모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좇으면서도 군주의 이익을 잊지 않았고,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도 그 굳은 의지만큼은 변함이 없었으니 범속한 이들에게는 마치 태산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곽가는 젊은 시절부터 원대한 계략을 갖고 있었다. 한 말기, 천하가 혼란해졌으므로 약관 무렵부터 행적을 숨기고 은밀히 영준(英俊 - 영재와 준재, 즉 뛰어난 자)들과 교류하였고, 세속의 사귐을 일체 하지 않았다. - 배주가 인용한 「부자」

  사실 삼국지에 나오는 영걸들... 특히 책사들 치고 이러한 기록이 없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젊어서는 몸을 숨기고 인맥을 넓히는 데 힘쓴다. 곽가 역시도 그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행위가 중요한 이유는, 난세에는 자신의 능력과 인맥만이 자신이 출세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난세에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떨쳐보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세력을 키워 거병을 하여 군주로써 이름을 떨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천거’나 ‘소문’이라는 방법을 통해 누군가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스스로 찾아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조금은 싸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군왕과 그 수하간의 관계라고 하더라도, 서로간의 줄다리기는 얼마든지 존재하고 그런 것들을 통해 상호 이익을 노리기 때문이다. 곽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순욱’의 천거를 받아 조조의 밑에 들어간다. 순욱이 누구인가. 조조에게 ‘나의 자방1)이로다.’라는 격찬을 들은 사람이 아닌가.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발을 넓혀 두었는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조조의 밑에 들어간 곽가는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다. 부자를 보면 그 유명한 ‘십승십패론2)’을 조조에게 설파한 것을 비롯하여 ‘철저한 적에 대한 분석을 통한 계책’을 설파한다. 조조의 책사들을 보면 각각 특징이 있는데, 곽가 같은 경우는 ‘사람에 대한 분석’에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곽가가 내는 계책들은 언제나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 움직임에 따라 최선책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보자.

  (1) 원소가 공손찬을 치는 틈을 타서 여포를 칠 것을 건의한다. 결국 여포는 목이 달아났다.
  (2) 유비가 원소의 밑에 들어가 있을 때, 조조는 유비와 원소가 힘을 합쳐 커지는 것을 두려워해 유비를 치려 했으나 원소와의 전면전으로 확전될 까 두려워했다. 곽가는 원소의 소심한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여 원소의 지원은 없을 것이라 단언했고, 과연 유비군은 원소의 지원을 받지 못해 조조와 단독으로 싸워 패했다.
  (3) 손책은 성격이 거칠고 사나우며 주변을 거침없이 공략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을 방비하는 데는 소홀하다는 점을 간파, 필부의 손에 죽을 것이라 예언했고 어김없이 적중했다.3) 이 부분은 물론 약간은 타이밍이 우연히 적절하게 맞아들어간 것도 있기는 하지만, 어찌되었건 섬짓할 만한 분석이다.
  (4) 그의 마지막 헌책이기도 했던 오환정벌 건, 이 정벌전에서도 그는 오환족의 습성과 원소 세력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간파해 책략을 제시한다. 이 정벌전을 통해 원소의 세력은 사실상 완전히 ‘와해’되었다. 물론 덕분에 자신의 목숨을 잃기도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사람의 성격을 파악해서 행동을 예측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일종의 심리학일 수도 있는데, 그 사람의 행동들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 나아가 행동을 읽은 것이다. 물론 다른 책사들에게서도 이런 종류의 분석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곽가의 경우는 유난히 이런 방향이 강하다.

  그리고 곽가가 진정으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삼국시대 최고의 인물로 꼽기에 전혀 무리가 없는, ‘조조’이다. 곽가전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순욱이 곽가를 추천하였으므로, 이를 불러들여 천하의 일을 논의하여 보고 태조가 말했다. "내가 대업을 이루게 할 자는 바로 이 사람이로구나!" 곽가도 물러나서 크게 기뻐하며 “실로 내가 섬길 군주로구나!” 하였다.

  말 그대로 운명적인 만남이다. 군략의 귀재와 책략의 달인. 약간은 자유분방한 성격도 닮았고, 품은 웅비의 크기도 닮았던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에게 빠져들어 곽가가 죽은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기실 곽가가 조조의 신하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빛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곽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조에게 헌책했기에 소심한 군주의 아래에 있었다면 한순간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또한, 방탕한 생활을 했기에 바른생활군주의 아래에 있었다면 분명히 내쳐지고 말았을 것이다.

  진군은 곽가의 품행이 수양되어 있지도 않고 검소하지도 않다고 하면서 비난했고, 몇 차례에 걸쳐 조정에 곽가를 기소했지만 곽가의 뜻은 변함이 없었으므로 태조는 그를 더욱 중시했다. 그러나, 진군의 정도(正道)를 존중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여겼다. - 정사 곽가전

  천재를 알아본 천재의 가장 천재다운 생각이다. 그 조카가 뇌물을 받았다고 숙부를 내쳐버린 그의 라이벌 원소와는 무척이나 대비되는 모습이다4). 그리고, 이런 군주의 비호가 곽가를 낳았으며, 그 군주의 능력이 곽가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곽가의 책략은 대개 무척이나 과감하고 공격적이었으며,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조조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런 곽가의 책략들을 다 실천하지도, 성공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서로를 믿는 그 둘만의 끈끈한 모습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위나라 신하에 견주자면 방통은 순욱의 중숙(仲叔 - 형제)이고, 법정은 정욱, 곽가의 주려(住儷 - 나란히 세울 만한 짝)이다. - 정사 법정전에 딸려 있는 방통과 법정에 대한 진수의 평가.

  법정은 유비에게 직접적으로 지적을 들을 정도로 그 품행은 단정치 못했던 사람이다. 정욱은 남이 읽을 수 없는 음험한 면이 있었으며, 곽가는 자유분방하고 예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방통이 순욱에 비견되고, 법정이 정욱과 곽가에 비견된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닌 그들의 품행에 대한 평가였다. 조조가 순욱을 ‘그대는 나의 자방이오’라고 평가했다고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오히려 조조의 자방은 곽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장량과 곽가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소소한 것 보다는 큰 흐름을 읽었던 그들의 눈이 닮았고,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를 원했던 그들의 행적이 닮았다. 순욱은 장량보다는 차라리 소하에 비견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만, 순욱의 능력이 소하보다 가벼워 보이지 않기에 장량에 빗대었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를 꿈꾼다. 곽가의 행적이 자유라는 말과 딱히 부합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으나, 그는 한 국가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제한된 존재였으면서도 예를 초월한 사람이었다. 너무 극찬으로만 글이 가고 있나 모르겠지만, 과찬은 아닌 듯하다. 과찬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 사람에 대한 필자의 애정 때문이라고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쯤에서 글을 접는다.

Written by
Abandoned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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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방은 유방의 책사 장량을 일컫는다. 장량에 대해서는 대강은 다 아실 것으로 보고 추가설명은 생략한다.

2) 십승십패론이란, 조조가 원소의 세력이 강대함을 두려워하자 곽가가 그를 설득하기 위해 말한 것이다. 조조가 원소보다 우월한 열 가지 부분을 말한 것인데, 비록 과장이 심하기는 하나 실제로 그 근거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3) 연의에서는 그가 우길의 손에 죽은 것으로 아주 상세하고 코믹(?)하게 묘사되어 있으나, 그렇게 보기에는 심각한 무리가 따르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4) 허유의 일화를 말한다. 허유는 조카가 뇌물을 받은 사건으로 인해 원소에게 사실상 내쳐지고 만다. 그리고 이 사건이 원소를 파괴시키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0:55 

 

상병 김태완 
  갑자기 삼국지의 인물묘사에 푹 빠지는군요. 
이거참 너무 재밌어 삼국지를 한번 더 읽든지 해야겠습니다. 
이번글 곽가의 예찬론도 아주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삼국지 주절잡설을 쭉 읽다보니 왠지 동훈님은 위나라에 정말 편향되어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태클 아닙니다. 단지 조인, 곽가를 추대하는 마음으로서 필기하시면서 조조의 다른 장군과 책사들도 애정을 듬뿍담아 언급을 하시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미 전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다에서 풋하고 웃어버렸으니까요. 
다음편을 기대하겠습니다. 후루룩 참 좋네요. 2009-05-20
17:17:28
  

 

병장 강구인 
  예전 국교에서 싸이 라는 닉네임 쓰시던 분이 생각나네요 
삼국지라 전역후라도 다시 읽어야 겠군요 2009-05-20
17:27:43
  

 

병장 김형태 
  동훈씨, 쪽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으셔요. 아랫글과 이글 말머리가 필요할 듯 하네요 2009-05-20
17:34:19
  

 

상병 양동훈 
  태완// 되도록이면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조조, 조인, 곽가, 순유같은 인물은 진짜 도저히 흠잡을만한 곳이 없는 사람이라 힘드네요 (울음) 

구인// 허허 감사합니다(웃음)! 

형태// 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 2009-05-20
19:02:42
  

 

병장 황성근 
  재미있네요, 잘 읽고 있습니다 (웃음) 2009-05-20
21:11:43
  

 

상병 이재익 
  오랜만에 책마을에 접속하니 이런 글도 생겨나는군요.. 
바깥에 있었던 '삼클'이 생각나버렸습니다 2009-05-20
22:39:33
  

 

병장 이지훈 
  상상과 추측입니다만, 
순욱이 곽가를 천거했던 이유는, 야전에서 조조를 보좌하기에 그의 성격과 재능이 자신보다 적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지요. 조조와 잘 맞는 사람인만큼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야전에서 조조를 잘 보필할 수 있었을 것이구요. 계략성공률 100%라 하신 것처럼 재능도 뛰어났구요. 사실 순욱 또한 그 역량이 곽가 못지 않았으나 조조와 잘 맞지 않았죠. 결국 그 때문에 죽기도 합니다만... 
순욱은 조조와 함께 야전에 있는 것보다 주로 허도에 남아 뒤치닥거리를 했죠. 관도전투에서도 그랬고요. 순욱의 능력을 높이 사는 이유가 이 때문이기는 하지만, 순욱은 처음부터 조조와 자신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신 대신 야전에서 활약할 곽가를 천거한 것이 아닌지....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훗날 일이지만 양수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야전에서 조조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가 죽죠. 순욱은 이와 같은 일을 어느 정도 염려했던 것은 아닌지... 

그냥 상상입니다 흐 2009-05-20
22:57:32
  

 

상병 이종보 
  정사 삼국지는 통일을 이룩한 나라가 진나라이고 정통성은 위나라를 이었(다고 주장하고있)기 때문에 사실상 위나라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많아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왜 이런말이 있잖아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태완님 글 보니까 문득 생각나는군요. 2009-05-21
08:39:19
  

 

상병 양동훈 
  성근// 감사합니다! 

재익// 삼클이면.. 분명히 들어는 봤는데(웃음).. 풀네임이 어떻게 되던가요? 

지훈//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곽가를 천거한 시기는 희지재의 죽음과 거의 맞아떨어지는데, 계략에 능한 순유, 보좌에 능한 자신과 더불어 시세를 읽는 데 능한 곽가가 더해지면 금상첨화일거라고 느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요. 

종보// 틀리지 않아요. 뭐 '촉에는 사관이 없었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건 사실 아닌 것 같구요(웃음), 위나라에 대한 기록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맞아요. 분량은 대강 위 : 오 : 촉이 4 : 2 : 1 정도 되는 것 같은데(이건 그냥 감샷), 근데 사실 인구나 영토.. 등으로 비교하면 저 정도 분량인 것이 적절하기도 해요. 

그리고 정사는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는 거지만 뛰어난 사람들의 경우는 좋은 기록 위주로 들어간 경향도 없지않아 있어요. 안 좋은 기록은 약간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냄새가 난다고 해야되나? 특히 하나의 열전만을 보면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죠. 사실 이 글들을 쓰면서 가장 난해한 게 그런 점이에요. 그 사람이 등장하는 열전을 하나하나 다 찾아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분석이 힘드니까..(물론 그렇다고 제 분석이 제대로 되었다는 건 아니고...) 이번에 새로 정사를 여기저기 훑어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네요. 

다만, 진수의 삼국지는 아무리 봐도 사기만큼이나 '객관적'인 사서입니다. 적어도 몇 명에 대한 기록을 제외하고는 상당히요. 그리고 제가 참고하는 배주는 이미 위진시대를 한참 벗어난 시기였고, 민간에서는 이미 촉한숭배가 상당한 수준에 다다랐던 시기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정사와 함께 보면 균형잡기에도 도움이 되구요. 2009-05-21
08:50:04
  

 

병장 박상민 
  재밌네요. 저도 요청 한번 해봐도 되나요? '법정' 과 '강유' 

요 인물들도 상당히 재밌으리라 생각되네요. 특히 '강유'의 의견을 꼭 들어보고 싶네요 2009-05-21
10:57:03
  

 

상병 이석재 
  흐. 저는 정봉이나 서성? 잘 봤습니다. 2009-05-21
11:36:51
  

 

일병 이준범 
  활용하시는 자료들, 다 어디서 나시는지 궁금할 정도네요. 
제가 아는 바로는 야전에서 자기 책략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조조 앞에서 침을 뱉고 나가버릴 정도였다죠. 2009-05-21
21:29:23
  

 

병장 김정환 
  정작 저는 조조라는 인물을 일반적인 유비기준의 삼국지들밖에 보지못해서 

어떤인물이였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저만모르는건가요??(땀땀) 2009-05-22
05:41:58
  

 

상병 김민혁 
  잘읽었습니다. 역시 곽가는, 

애착이 가는 장수가 아닐래야 아닐수가 없군요! 2009-05-27
14:37:14
  

 

상병 황호상 
  역순행 하는데, 곽가편 정말 재미있네요. 
조조의 사람볼 줄 아는 눈과 리더십, 그리고 곽가의 재능과 충성심.. 
곽가는 일찍 죽은게 정말 아쉽지요. 

그나저나 동훈님 곽가 정말 많이 좋아하시는 듯.. (웃음) 

 [연재] 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6. 다섯 번째 인물탐구 - 반장  
상병 양동훈   2009-05-22 00:14:20, 조회: 188, 추천:0 

  와우! 완전 달리고 있는 거 같네요(웃음). 다섯 번째 인물탐구의 대상은 처음으로 등장한 오나라 사람 ‘반장’입니다. 사실 오늘도 두 개 정도, 가능하면 세 개 까지 쓰고 싶었는데 어제 갑작스런 야근(....)으로 인해 한명분밖에 준비를 못했네요..(울음) 차마 이걸 완전 노템으로 쓸 자신은 없고(석재씨는 그래서 짱이에요) 말이죠. 오늘은 게다가 당근인데, 글 쓰는 재미도 없이 어떻게 버틸까 싶습니다. 한번 어떻게 다른 방안을 강구해봐야지요. 뭔가 글을 쓰는 방안을...

  그리고 제 글에 성원을 보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석재씨, 종보씨, 태완씨, 예찬씨, 국한씨, 효섭씨, 동민씨, 지훈씨, 민혁씨, 우신씨(응?), 태원씨, 지곤씨, 구인씨, 형태씨, 성근씨, 재익씨, 지훈씨, 상민씨. 그리고 댓글은 남겨주시지 않았지만 제 글을 읽어 주신 많은 모든 분들께도요!

  이 연재의 청사진을 조금 그려보자면, 지금은 인물탐구 위주로 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인물탐구가 아닌 다른 주제들도 끼어들 수 있을 겁니다. 그것들도 주절잡설의 넘버는 계속 올라갈 겁니다(웃음). 굳이 ‘몇 번째 인물탐구’라고 쓰고 있는 이유가 있지요! 그리고, 중간중간에 끌릴 때는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하거나 조금 독특한 주제를 끌어들여 써 볼 생각입니다(예를 들자면 조조, 유비, 손권, 제갈량같은 초대량의 자료수집과 작성시간이 필요한 인물이나, 아니면 전투탐방같은 것 말이죠). 지금이 6번이니, 조만간에 10번이 되겠죠? 지금 목표하고 있는 주절잡설은 100회째에 마무리하는 것인데, 솔찍히 쉽지 않을 듯 합니다(웃음).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그럼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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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나라의 명장 반장. 반장은 사실 삼국지를 어느 정도 읽어 본 사람이 아니면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연의에서 그의 공적으로 알려진 것은 관우를 잡은 것 이외에는 사실상 없고(사실 이게 가장 큰 공적이기는 하다), 게다가 이릉전투의 초창기에 관흥에게 목이 날아가면서 ‘아 그렇게 죽었구나.’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는 이릉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유비보다도 몇 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솔직히 말해서 장수들은 전투기록 이외에는 볼 만한 기록이 거의 없는 것이 진수의 삼국지인데, 그 속에서 이 사람만큼 공이 크면서도 재미있는 인생을 보여주는 사람도 드물다.

  그의 열전은 대략 이런 문구로 처음이 장식되어 있다.

성정이 호탕하고 술을 좋아하였다. 그는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외상술을 즐겼다. 빚쟁이가 대문까지 쫓아오면 항상 이후에 부귀해지면 다시 오라고 말했다. - 정사 반장전

  참으로 자신감 넘치고 멋진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요즘 같으면 빚쟁이에게 린치를 맞고 장기가 팔리거나 감옥에 갇힐 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자신이 무용도 뛰어나고 신의를 줄 수 있는 인물이기에 별 해를 입지 않은 듯 했다. 물론, 후에 크게 부귀해지긴 했지만 과연 빚을 갚았는지는 의문이다(웃음).

  그의 전공은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남아 있다.

합비 싸움에서 장료가 급습했을 때, 장수들은 무방비상태였고 진무는 분투하다 죽었으며 송겸이나 서성은 모두 후퇴하였다. 반장은 후방에 있었지만 곧바로 급히 달려가서 말을 비켜 송겸과 서성의 병사들 중 달아나는 두 명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모두 돌아와서 싸웠다. - 정사 반장전

손권이 관우를 정벌할 때, 반장은 주연과 함께 관우가 달아나는 것을 차단시켰다. 그는 임저에 도달하여 협석에 주둔했다. 반장의 부하 사마 마충이 관우와 그 아들 관평, 조루 등을 붙잡았다. - 정사 반장전

유비가 이릉으로 출병했을 때, 반장과 육손이 힘을 합쳐 대항했으며, 반장의 부하가 유비의 호군 풍습 등의 목을 베었고, 죽거나 부상당한 자는 매우 많았다. - 정사 반장전

  세 전투를 유심히 살펴 보면, 공통점을 한가지 찾을 수 있다. 세 가지 모두가 오의 명운이 달린 대혈전이라는 것이다. 오의 큰 전투에서 그는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그 공적 역시도 부족함이 없었다. 첫 번째 기록에서는 그의 대담함과 장수로서의 자질을 읽을 수 있고, 두 번째 기록에서는 기회를 포착하는 그의 재능을 읽을 수 있으며, 세 번째 기록에서는 그가 오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정보, 황개, 한당 등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태사자와 감녕이 죽은 때에 오의 중심적인 무장은 두 명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 두명은 바로 주연과 반장이다. 반장만큼이나 주연도 잘 알려져 있지 못한 듯 한데(그나마 반장은 관우를 잡은 것으로 기억되지만 주연은 그런 것도 없으니..), 손권전이나 혹은 다른 오나라 인물들의 열전을 살펴보면 저 둘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때로는 주연과 한당, 때로는 한당과 주연이 항상 적을 맞서 싸우는 사람들 틈에서 가장 앞쪽에 기록되며 그들이 공을 세우지 않은 전투를 찾기란 무척이나 힘들다.

손권이 제위에 오른 후, 반장을 우장군에 제수했다. - 정사 반장전

  우장군이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한 방에 감이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황제가 내리는 벼슬 치고는 약간 낮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정확한 비교대상이 되지는 않겠지만,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후 장비를 우장군으로 삼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황제에 오른 뒤에는 거기장군으로 점프를 시키지만.... 정사에서 손권 밑에 있던 장수들 중에 반장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딱히 많지는 않은데, 그렇다고는 해도 그렇게 느낌이 오는 정도의 높은 자리는 아니다. 다만, 반장은 사령관 스타일이기보다는 앞장서서 싸우는 행동형이었기에 (장료같은 느낌이다. 조인과는 또 다른...) 벼슬 면에서는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반장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기록은 역시 말미에 붙어 있는 진수의 ‘정리’이다.

반장은 사람됨이 난폭하고 사나웠으며, 금령은 매우 숙연했다. 그는 공업 세우기를 좋아하였으며, 통솔하는 군대는 수천 명에 불과했지만 이르는 곳마다 언제나 만 명이나 되는 것 같았다. 정벌이 멈추었을 때는, 즉시 군내에 시장을 세웠으며 다른 군에 없는 것은 모두 반장의 시장에서 충족시켰다. 그러나 그의 성격은 사치스러웠고, 이런 경향은 만년에 더욱 심해져 의복이나 물건은 그의 신분을 넘는 것을 사용했다. 관리들 가운데 부유한 자가 있으면 그를 죽이고 재물을 빼앗을 때도 있었다. 법령을 어기는 일도 잦아 관아에서 그를 제소했지만 손권은 그의 공을 들어 죄를 묻지 않았다. - 정사 반장전

  이 정리에서 우리는 반장의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군기가 엄정하며, 강하고 엄한 지휘관이되 전쟁이 없을 때는 자신의 특이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반장의 돈에 대한 집착은 아무래도 어린 시절 가난해서 빚쟁이에게 시달렸던 기억이 그에게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게다가 워낙에 호탕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고 하니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다. 다만, 그의 절제하지 못하는 성격은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다. 반장의 신분을 생각해 볼 때, 그의 신분을 넘는 의복이나 물건이라 함은 다름아닌 ‘황제’의 복식과 패물이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행해서는 안 되는 가장 위험한 행위이다. 손권이 비록 그의 공을 들어 죄를 묻지 않았다고는 하나, 결코 이런 모습을 좋아했을 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의 아들 일족이 국가에서 ‘추방’당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아비의 방탕한 성격을 배운 것일지도 모르고, 또한 그가 실제로 저지른 잘못이 있었겠지만 웬만하면 공신의 자식(자손도 아닌 친자식!!)을 추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을 생각할 때 반장의 행위는 이미 황실의 미움을 사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진정으로 세상을 즐기고 간 자유인 반장. 비록 흘러온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의 이름은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지만, 그의 행적과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가 누리고 즐겼던 자유는 우리에게 ‘자유와 방종’의 균형을 생각하게 하며, 그의 재능과 자신감은 가진 게 쥐뿔도 없는 우리(라고 써놓고 ‘나’라고 읽으면 정확할 듯....(웃음))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아마도 반장의 부대는 이 시대의 어느 부대보다도 사기가 높았을 것이다. 엄한 군기 속에서도 활기가 넘치는 부대를 오직 그의 능력만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과연 어떤 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고, 어떤 식으로 나를 펼쳐 나가야 할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반장의 이야기이다.

Written by
Abandoned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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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석이 없네요(웃음). 귀찮아서라기보다는, 딱히 달 만한 내용이 없었다는 느낌이네요(웃음). 주석이 없는 대신에! 질문이나 기타 여러 댓글은 진심으로 다른 글보다 훨씬 더 열심히 받을게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1:02 

 

상병 이종보 
  '황제의 복식이나 패물을 탐했던 점' 을 제외하면 한마디로 오나라에 '장비' 같은 인물이군요. 승진하는 시기나, 그가 올랐던 관직을 봤을때도 장비와 흡사한 면이 아주 많네요. 결정적으로 군대를 다스리는 방식 또한 장비와 비슷한 점이 있고 말이죠.(이상 연의에 나오는 장비와 정사에 나오는 반장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쓰고 나니 많이 웃기는 비교군요.) 

한가지 궁금한점이 있는데, 이릉전투 전후 시기에 오의 중심적인 무장은 주연과 반장 정도라고 하셧는데, 그렇다면 서성이나 주환같은 인물들은 '장수' 라기보단 '제독'에 가까운 인물이었나요? 그리고 결정적인 장수로 '주태' 가 누락되어있는거 같아요. 오에서 주태가 빠지는건 위나라에서 허저가 빠지는거와 같다고 보는것은 제 과장된 비유일까요?(웃음) 

동훈님 저랑 당근먹는시기가 많이 비슷하군요.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소사잡담 란에서 보았답니다.)할일없는 이 밤 인물탐구나 열심히 읽어봐야겟네요. 굳이 제안(이라기보단 개인적인 흥미에 따른 건의)를 해보자면 '전투탐방' 보단 '전략탐방'을 해보는 것은 어떠시련지요. 포커스를 '전략'에 맞춰서 '전투'를 조명해 보는 방식 말이죠. 
이를테면 원소의 죽기 전 마지막 전장인 창정에서 정욱이 원소에게 준 마지막 선물인 10면매복술같은거 말이죠. (근데 여기까지 오면 제가 동훈씨의 글 쓸 권리를 너무 침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웃음) 2009-05-22
01:07:34
  

 

상병 양동훈 
  껄껄껄 종보씨 반가워요!! 결정적으로 저녁먹는 시기도 비슷할거 같은데요?(웃음) 

굳이 얘기하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 종보씨의 말대로 주태는 허저, 서성이나 주환은 조인, 주연과 반장은 장요나 우금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능력까지 끌어대서 비교하기에는 약간 무리이지만 말이죠... 주태는 호위무장의 성격이 강했고, 서성이나 주환은 '방어전' 특히 '지역방어'에 주로 나서곤 했죠. 

위의 반장전에서도 아실 수 있겠지만, 주연이나 반장은 대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기 보다는 소(중)부대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사람이었구요. (대강 사령관보다는 사단이나 여단장같은 느낌이랄까요?) 

종보씨의 댓글이 날아가서 뭔가 했더니 내용이 추가가 楹六.. 껄껄 
어차피 삼국지는 쓸 내용이 무궁무진하니까 어떻게 되더라도 권리를 침해하는 건 아닐 거에요(웃음). 언젠가는 쓸 주제가 없어서 실신할 때가 올 텐데, 그 전에 불살라야죠(정확히 말하면 이제 글쓰기도 귀찮아지는 만년이 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얘기겠죠). 

전략에 맞춰서 전투를 조명하려면 진짜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네요. 하지만 그것도 역시 재미있을거 같아요! 언젠가 여유가 나면...(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저를 용서하세요(울음)) 꼭 도전해보도록 할게요. 특별판같은걸로?(하하) 2009-05-22
01:11:07
  

 

병장 김형규 
  사치품과 호사함을 즐기는 장수였다는 점에서는 정사의 '하제'와도 비슷한 인물인 것 같네요. 하제 역시 수하 장졸들의 복색마저 호사스럽게 꾸미고, 타고 다니는 군선에도 각종 데코레이션을 했다는 엽기적인 기록이 있지만, 이제 보니 반장도 만만치는 않았나 봅니다. 
제 짧은 삼국지 관련 지식으로는 하제가 짬번상 우위였는지, 활동한 시기가 얼추 겹쳤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손권 수하에 있던 장수들 역시 성격상 문제있는 장수들이 
꽤나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누구나 알고계실 감녕&반장의 앙숙 관계나 손소, 반장, 하제, 주태 등등...(물론 위-촉에도 이를 능가하는 준패륜급(...)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뭐랄까, 이따금씩 재미로 삼국지를 읽으면서 생각하는 바입니다만. 
저는 중국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많은 명장/준재들이 판을 쳤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위,촉,오 삼국정립기라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그 빼어난 인물들이 두각을 드러내게 만든 요인이 , 한조 이래로 일종의 불가침 영역으로 생각되던 유가적 도의보다 인적 자원으로서의 가치 혹은 의협을 더 중시했던 조조 - 유비 - 손권이라는 독특한 군주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끄적거려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의 균형이 위나라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음에도, 촉 - 오라는 변방의 두 나라가 그렇게 질기도록 버텨온 것이 아닌가....그렇게 생각합니다. 

양동훈 상병님의 삼국지 주절잡설 계속 잘 보고 있겠습니다. 앞으로 계속될 인물탐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기대됩니다 하하...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잘 알려지지 않은 '시대의 문제아'들에 대한 평가를 보고 싶습니다. 2009-05-22
15:05:50
  

 

병장 김범수 
  아는 내용이라도 다시 보는 재미가 있는 글. 요새 잘 읽고 가요. 더욱 조연도 못하게 가려진 좋은 사람들을 올려주세요. 2009-05-22
16:29:00
  

 

상병 김태완 
  조조, 유비, 손권, 제갈량의 인물 탐구는 기대안할래야 안할 수 없군요. 
사실 '몇번째 인물탐구 - 누구누구'가 적혀 있을 때 마다 스팩이 약하다 싶은 인물이 등장하면 약간 실망을 하거든요. 예를들어 소녀시대가 나오면 열광하다가도 쥬얼리S가 나오면 좋긴한데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그래도 글을 읽다보면 금새 열광하지만서도.) 

다음 인물은 누가 나올지 기대되는군요. 
요즘 이맛에 삽니다. 바로 이맛 아닙니까. 2009-05-22
20:51:06
  

 

상병 구진근 
  이상하게 왜 저는 여성장수들이 궁금할까요... 손상향 이라던지 소교라던지.. 하는... 2009-05-27
08:41:02
  

 

일병 김태건 
  //구진근 
게임과 만화의 영향입니다. 
역시 진삼국X쌍 이라는 게임이 여성 캐릭터들을 많이 등장시켜서 동인지로까지 진출을 시켰으니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여성들이 부각 되는 경우가... 
어쨌든 동인지들은 참 좋았...(응?) 2009-05-28
15:31:31
  

 

병장 조우신 
  응? 2009-05-28
16:50:13
  

 

상병 양동훈 
  응. 2009-05-28
18:38:32
  

 

병장 박상민 
  주태도 참 신기한 인물이죠 일개 수적에서 손권을 세번이나 구출하고도 서성을 구하러 갔던 일화. 참 멋졌었죠 
[보론] 민혁씨에게. 연의의 떡밥 관우제거설.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상병 양동훈   2009-05-28 14:52:17, 조회: 122, 추천:0 

민혁씨의 글은 깔끔합니다. 거의 제갈량의 관우제거설을 상당히 잘 설명해 주시고 계시네요. 상당히 잘... 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댓글입니다. 이문열 삼국지는 잘 번역된 글이긴 합니다만, 연의의 내용 중간중간에 정사의 내용을 갖고 와서 설명한다는 좋은 취지 아래 연의와 정사를 뒤섞어버렸고, 이놈이 연의 내용인지 정사 내용인지 아니면 이문열씨가 그냥 만들어낸 내용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글이 혼란스러워 진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모두 ‘정사’에 기반해서 쓴 글입니다. 민혁씨가 쓰신 글이 ‘연의’에 기반하고 있는 글이라면, 저는 딱히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저는 연의에 근거한 모든 토론을 부정합니다. 물론 뭐 ‘연의 최고의 무장은? 책사는?’ 요런 순위매기기 토론이라면 심심풀이 땅콩용으로 써먹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토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매일 하는 말이지만, 연의는 어떤 일이 일어났건 간에 그 선악구도와 이유에 대해 작가의 판단을 뚜렷하게 개입시킵니다. 이미 토론을 할 만한 건덕지를 제거하고 출발하는 것이죠. 뭐 연의가 7할이 진실이고 3할이 구라이니, 반대로 3할이 진실이고 7할이 구라이니 말은 많은데, 어찌되었건 토론의 가치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됩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300년 후의 사람들이 19, 20세기의 역사를 탐구하고 토론을 하고 있는데, 그 토론의 근거가 ‘데##, 명성황후 납치사건’ 같은 책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소름이 끼치지 않을까요? 저는 막 그런 생각을 하면 머리가 울렁거려서요..(울음)

이쯤에서 짧게 정리할게요(웃음). 왠지 댓글로 달기에는 조금 그런거 같아서 답글로 추가합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1:12 

 

상병 김민혁 
  동훈 // 제 별로 대단치 않은 댓글에 이렇게까지 신경써주시니 감사합니다. 
저 또한 연의에 내용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흥미를 위해 첨가되거나 과장 되있는 
부분이 너무많다고 생각해서 연의는 단지 역사소설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 연의의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저 또한 그렇게 까지 삼국지에 대해 박식하다거나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지만, 
어느정도 삼국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편이라, 
각종 삼국지관련 책들을 읽다보니, 관우 제거설이 연의의 떡밥이 아니라, 
기록상으로도 충분히 추측가능한 이유들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B겁니다. 

제갈량이란 인물이 실제로도 뛰어났던 인물이긴 하지만 연의에서 어느정도 
미화되고 뻥튀기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있는 제갈량은 
충분히도 관우를 제거하기위해 계획을 세웠을 정도로 치밀하고도 냉정한, 
그런 인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결국, 뭐 제가 연의의 내용만으로 그런 추측성 댓글을 단건 아니구요, 
그냥 평소에 삼국지에서 흥미로운 내용중에 하나라서 적어봤었네요. 
이렇게 관심 가져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내용은 아니었는데 겸연쩍네요 


[연재]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7-1. 전쟁탐방 No.1 - 이릉대전  
상병 양동훈   2009-05-26 15:37:58, 조회: 212, 추천:0 

  드디어!! 인물탐구가 아닌 주절잡설 첫 번째 판입니다(웃음). 당근을 냠냠냠냠 씹어 먹는 와중에 독서에 매진하다 보니 마침 읽고 있던 ‘삼국지 경영학’에서 머릿속에 주제를 마구마구 던져주는 덕분에요. 사실 원래 삼국지 경영학을 읽은 이유는 주절잡설 #7로 이 글의 독서후기를 써 보려는 생각에서였는데, 안 되겠더라구요. 사실 저는 삼국지에 관련된 2차 서적들1)을 거의 읽지 않는 편입니다. 읽는다고 하더라도 읽는 목적이 ‘그래 무슨 소리를 지껄이나 보자’라는 마인드로 가더라구요. 사실 다른 역사들에 대해서는 2차 서적들을 통해 얻는 정보도 많지만, 적어도 삼국지만은 사서 그 자체와 연의 그 자체만을 읽고 그것들을 가지고 직접 머릿속에서 2차적 정보를 만들어내는 데 너무 익숙해져 버렸거든요. 독서후기를 못 쓰겠다고 한 이유도 사실 이런 부분에 있어요. 차마 삼국지 경영학을 읽고 그 내용을 가지고 후기를 쓰려니 타고난 원서탐독버릇이 나타나버려서 말이죠. 그럼 한번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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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관도전투, 적벽전투, 이릉전투를 통틀어 삼국지 3대 대전이라고 칭한다. 무려 ‘대전’. 사실 삼국지에서 저 3대 대전보다 더 많은 병력들이 투입된 전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연합군 vs 동탁의 전투도 있고, 공손찬과 원소의 난투도 있고, 유비와 조조의 한중 전투도 결코 규모와 스펙에서 밀리는 전투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저 3개의 전투가 3대 대전이라고 불리는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저 3가지의 전투가 삼국의 흐름을 결정지었다.’라는 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규모가 크다고 대전의 칭호를 얻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이순신의 23전 중 가장 규모가 컸고 가장 열세의 상대에서 적을 상대했던 것은 그의 마지막 전투인 명량해전이다. 하지만, 그의 전투 중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대첩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한산도대첩이다. 한산도 대첩이 전쟁 전반에 끼친 영향과 그 전략 덕분에 그 이름을 얻은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의 3대 대전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관도대전은 조조가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원소를 물리치고 중원을 차지한 최강의 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했던 한판이었고, 적벽대전은 위, 촉, 오가 각자의 세력을 가질 수 있게 한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릉대전은 삼국이 제대로 성립된 이후에는 유일한, 국가의 존망을 걸고 벌어진 대승부였다. 삼국정립 이후에도 수많은 전투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전투에서도, 어떤 국가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상대의 목줄을 끊기 위해 덤빈 전투는 없었다(위가 진으로 교체된 이후의 통일전쟁은 당연히 제외한다.). 그렇기에, 이 세 가지의 전투가 3대 대전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관도대전은 사실상 이런저런 논의의 여지가 거의 없다. 세력이 우세한 원소와 불리한 조조가 맞붙었으나 사람을 잘 부리고, 군대를 잘 이끌었던 조조가 이겼다. 이것으로 끝이다. 적벽대전의 경우는 조조군의 병력 숫자나 실제 조조군의 패배 정도를 놓고서 논란이 일 수 있겠으나 그 이상의 논란거리는 특별한 것이 없다. 게다가 사바세계에서는 조조군의 실제 병력은 15만 수준인 것으로 추정되고, 조조군의 패배 정도는 연의 정도가 아니며 정사에서는 오나라 쪽 기록이 좀 더 신빙성 있는 것으로2) 거의 논란이 종결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릉대전은 여전히 논란거리가 많은, 토론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에게는 군침 도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왜 그런지는, 이 글의 뒤쪽에서 줄줄이 설명될 것이다.(웃음) 그리고 또한, 이 이릉대전의 분석에서는 연의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진행할 것이다. 연의가 개입되면, 도무지 논의할 건덕지가 없다.

  이릉대전은 유비와 손권이 대격돌한, 삼국지 최후의 대혈전3)이었다. 이 이릉대전은 그 이전에 있었던 관우의 번성 공략전부터 출발해서 보는 것이 옳다. 단순히 유비의 대군과 육손의 싸움으로 볼 것이 아니고, 그 이전의 관우의 번성 공략 - 여몽의 형주 탈취 - 유비의 형주 탈환전으로 이어지는 ‘형주 쟁탈전’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반쪽짜리 형남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볼 때, 이 이릉대전으로 인해 촉에서는 황제와 No.1, No.2 무장이 죽었고, 오는 야전사령관4)을 잃었으며, 촉은 사실상 위를 정벌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다. 쉽게 말해서, 이 형주 쟁탈전은 촉과 오 그리고 나아가 위의 운명까지 송두리째 바꾼 대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 적은 대로 한번 관우의 번성 공략전부터 출발해서 이릉대전을 살펴보도록 하자. 유비는 익주를 꿀꺽했고, 오는 형주를 하지만 여몽은 형주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관우는 여몽을 견제하느라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이 때 여몽의 필살카드인 육손이 등장해 육구 방어의 지휘관이 되면서, 방심한 관우는 촉은 위를 공략하러 가고, 위군을 박살내면서 번성을 포위하는 상황이 된다. 이 때 번성을 지키던 장수는 다름 아닌 조인인데, 그 조인마저도 성을 버리려 할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 때, 관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났으니 다름 아닌 여몽의 기습이다. 형주는 고스란히 오에게 넘어가게 되고, 관우는 앞뒤에서 적을 맞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로잡혀 목이 달아난다. 이 사건을 겪은 유비는 병력을 모아 형주를 다시 빼앗기 위해 진군한다. 처음에는 적군의 전봉을 격파시키며 성공적인 전투를 치러 나가지만, 모든 장수들을 꾹꾹 눌러가며 잔뜩 웅크리고 있던 육손의 카운터펀치 한방에 유비군은 박살나고 만다. 그리고 유비는 백제성까지 쫓겨 가고 결국 그 곳에서 영원히 눈을 감는다. 이 때 유비의 나이는 63세. 그 당시로는 장수한 편이었으나 마음의 병이 더해져 죽은 것을 감안할 때 아까운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여전히 부족하지 않은 시기였다. 더욱이 후계자가 난세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었던 점은 그 아쉬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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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 서적이라고 말하니 좀 웃긴데, 그렇다고 2차 사서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서 이렇게 적었다. 뭐 간단히 말해서, 삼국지 그 자체가 아닌 그것에 대한 다른 관점이나 재해석을 덧붙인 책들을 뜻한다. 삼국지 해제, 삼국지 경영학, 기타 등등.

2) 무제기에는 역병을 만나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고(아무런 전투 없이), 손권전 등에는 오군이 전투에서 승리한 것으로 나온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수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다. 아마 무제기에 패배의 기록을 싣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이것은 순전히 필자의 추측으로, 근거가 없음을 밝혀둔다.)

3) 이릉대전 이후에는 제갈량의 북벌 정도만이 기억에 남을만한 큰 전쟁인데, 제갈량의 북벌은 서로 목숨을 걸고 덤빈 싸움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릉대전 만큼의 스펙타클함을 주지는 못한다. 

4) 여몽의 죽음. 사실 여몽은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관우의 혼령이 씌어서 죽은 것도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저 시기에 죽은 것은 맞다. 아마도 죽은 원인은 병+과로가 아니었을까... 점령군의 보스는 이래저래 힘든 법이니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1:20 

 

상병 김민혁 
  이건 순전히 제 추측과 상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관우가 죽게 된건 제갈량의 의도였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로는 우선 제갈량이 유비군에 합류하기전 
유비는 공과 사 사소한것 하나 까지도 관우와 상의하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떨때는 군사로써, 어떨때는 의형제로써, 
그 이유로는 우선 제갈량이 등장전까지 우수한 책사를 보유하지 못했었습니다. 
(서서 라고 말씀하신다면, 솔직히 서서가 유비에게 그다지 도움을 주지도 못했고, 
얼마 있지않아 조조의 계략에 걸려 위나라로 가버렸지요.) 
그렇게 관우는 유비군내의 부동의 No.2 였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이 합류하자 상황은 역전 되었습니다. 
유비는 군사라는 직책을 어떻게 보면 듣보잡인, 한낱 서생에게 아무 검증없이 
맡겨 버렸지요, 물론 세간에 제갈량에 대한 소문이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관우입장에선 이건 뭐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돌 빼내는 격도 아니고 
자기 입지가 흔들렸다고 볼수있었습니다. 2009-05-27
14:49:43
  

 

상병 김민혁 
  그렇게 군사적 회의에서 제갈량과 많은 충돌이 일어났지요, 
하지만 제갈량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전투에서 승리를 하게되고 
제갈량을 향한 타 장수들과 유비에 신뢰도도 매우 향상 되었구요, 
하지만 문제는 제갈량 또한 관우를 탐탁치 않게 생각 하였습니다. 
정작 군사는 제갈량이고, 관우는 엄밀히 따져보면 무장일뿐인데, 
관우가 너무 군사가 해야할 일 , 즉 제갈량이 해야할 일에 대해 
예전처럼 관여가 심하여 의견충돌도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로간에 골이 깊어질 무렵 
익주와 형주를 손에 넣게 되구, 익주가 촉의 기반이 되는 영토가 됩니다. 
제갈량은 형주의 중요성을 유비에게 강조하며 관우를 형주로 보내버립니다. 
여기서 관우가 제갈량에 의해 쫓겨 났다는 편으로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여몽에 의해 관우가 죽게 될 상황또한 
제갈량이 관우에 대한 면밀한 관찰력으로 그의 성격문에 여몽에게 패배하고 
죽게 될것이라는 꿰뚫어 보고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물론, 제 상상과 추측 일뿐이지만, 
유비군의 No.2 자리를 갖기위해 제갈량이 관우를 제거 했다고 생각됩니다. 
뭐 더 자세히 적고싶지만, 그렇게 생각이 나지 않네요 이놈의 기억력.. 2009-05-27
15:03:09
  

 

상병 양동훈 
  민혁// 제 글은 연의를 기반으로 쓴 글이 아니라 약간 방향이 틀어지겠지만, 
시간이 나면 '제갈량의 관우 제거론 반박' 이라는 장문을 한번 써 볼 의향도 생기네요.... 
일단은 보류.. 
다만 이 댓글은, 제가 쓴 이번 주절잡설 7-2를 안 읽고 쓰는 댓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 읽어보심이 어떠할지..(웃음) 2009-05-27
15:10:37
  

 

상병 김민혁 
  동훈// 저도 궁에 있어서 자료가 없어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머리로 끄적인거라서 
객관적인 면이 많이 떨어지네요. 아참, 
7-2 안읽고 바로썼었어요 이릉전투 이야기는 연의에서 너무 
뻥튀기를 한 전투라서,,, 동훈씨 글은 너무 재밋게 잘읽고 있어요!!(웃음) 

[연재]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7-2. 전쟁탐방 No.1 - 이릉대전  
상병 양동훈   2009-05-26 15:38:33, 조회: 221, 추천:0 

  자, 그럼 이제 이릉대전의 개관은 봤고, 이릉대전의 최고 논의사항은 다음 몇 가지이다.

1. 과연 이릉에서 촉과 오의 병력은 어느 정도였는가?
2. 이릉에서 유비가 군을 직접 이끌고 나간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는 왜 제갈량을 대동하지 않았는가?
3. 유비가 구상하고 유비가 직접 수행한 이릉대전은 과연 그저 유비의 실수였는가?
4. 이릉대전은 촉과 오 양국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리고 이것이 후일 무슨 영향을 끼쳤는가?

  필자가 개인적으로 내린 해답은 다음과 같다.

1. 연의에서의 75만 vs 5만은 완전히 개그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의 병력이 촉의 병력보다 적은 수치였을 리가 없다. 촉이 형남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고 해도 오의 병력은 촉의 병력보다 많았을 것이다1). 그런데 국가의 1/3을 차지했던 형남을 통째로 빼앗긴 촉군이 오군보다 많다?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0이다. 아마도 3~4만 vs 5만의 싸움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실제 보유병력의 차이는 더 컸겠지만, 지역적 특성상 유비는 거의 ‘올인’이 가능한 반면 손권은 최소한의 방위군은 보유해야 했으니까.

2. 이건 한 마디로, 유비의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얘기다. 적어도 정사에서, 제갈량은 유비가 죽기 전까지는 국가의 전면에 나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유비와 제갈량의 투톱도 아니고 유비와 관우의 투톱도 아니다. 셋의 쓰리톱은 더더욱 아니다. 촉은 처음부터 유비가 죽을 때 까지 계속 유비 원맨쇼의 국가였다.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유비군에 들어온 이후로 수많은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조조군을 격파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전투에 나선 기록은 전혀 없다. 위로 치면 순욱같은 위치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조조의 마지막 대규모 병력 투입이라고 볼 수 있는 한중 전투에서는 유비가 이렇게 말한 대목이 있다. ‘조조가 직접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으니, 결국 한천은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다.’ 이것은 괜한 자신감이 아니다. 그 근거는 유비가 살아온 삶에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나올 ‘X 번째 인물탐구 - 유비’를 참조하시라). 유비는 병력통솔 면에서도, 삼국시대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열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인물이다.

3~4. 이릉대전의 최고 논의 포인트는 이것이다. 이 두 문항이 이릉대전을 가지고 사람들이 수 년 동안을 으르렁대게 만든 것이다. 유비는 왜 이릉으로 진군했나? 수많은 사람들이 말리고 나서는 데도 가야만 했던 그만의 이유가 고작 복수였던 것인가?

  유비는 무척이나 세밀한 인물이다. 결코 관우의 복수를 위해 무모한 전쟁을 꿈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관우의 죽음과 유비의 출정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갭이 있다. 정확한 기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1년 반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유비의 진군이 단순한 관우 복수전이 아닌, 치밀하게 계획된 형주 탈환전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관우가 죽고 유비가 출정할 때까지, 유비는 황제위에 앉으며 자신의 권위를 높였고 정벌군을 구상하고 훈련시키는 시기를 충분히 거친다. 게다가 오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여몽까지 죽은 그 시점은 유비에게는 더없는 호기였다. 형남이 있는 촉과 형남이 없는 촉은 완전히 다른 국가나 다름없다. 제갈량이 왜 힘든 길인지 알면서 끝까지 기산을 통해 장안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착했을까? 그것은 바로 형남이 없기 때문이었다. 형남 하나로, 촉은 북벌의 다양성을 충분히 획득할 수 있었으나 오에게 어처구니없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것은 유비에게는 ‘천하통일’이라는 야망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사실, 정사를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이릉대전에서의 패배는 순전히 ‘육손’이라는 변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 유비의 입장에서는 완전한 변수인 것이, 육손이라는 인물은 분명히 그 때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니까 말이다. 필자의 시각에서는, 유비의 공격은 매우 오랜 시간 준비된 공격이었으며, 또한 절박한 공격이었다. 형주는 유비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곳이었으니까. 뭐 오와 화친을 하고 양면공격을 하면 안 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는 북벌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한 적이 무척이나 적었다. 그런 상황에서, 촉은 오의 도움이 없이는 위를 공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북벌로가 너무도 뻔하면서도 힘든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는 언제나 촉과의 공동작전에서 초를 쳐버렸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선 경우도 드물 뿐만 아니라, 가끔 위의 시선을 분산시켜주나 싶으면 어김없이 패해서 김을 뺐다. 촉이 형남을 가진 상태에서의 북벌이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만한 기회가 분명히 존재했으리라고 필자는 믿는다. 형남 없는 촉은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역사가 보여주고 있으며, 형남을 통한 북진은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바로 위에 말했던 관우의 예가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 경영학에서는, 무려 서너 차례에 거쳐 유비의 형주 탈환전을 “명분도 없고 섣부른 공격”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바로 ‘연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인물 ‘유비’이다. 유비는 연의에서처럼 감상적인 인물이 아니었고, 개인적인 역량이 부족한 인물도 아니었다는 바로 그 사실 말이다. 

  개인적으로 연의는 흥미는 있지만, 오히려 생각을 넓히는 데는 부족한 책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연의는 ‘소설’ 인데다가 나아가서 그 속에서 ‘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의를 따라가면, 연의에 서술되어있는 대로 이릉대전은 유비의 실책이다. 그렇게 기록되어 잇다. 하지만 정사에는 그러한 답이 없다. 그저 담담히 서술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모든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니, 그것이 정사의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정사에 있는 진수의 평은, 참고자료일 뿐이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이릉대전에 대해 흐름과 쟁점에 대해 주욱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이 사건에 대해 저 정도까지 파헤치고 넘어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었다. 이릉대전이라는 사건은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도 큰 사건이고, 나아가 이 글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전환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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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초에 인구 면에서 촉은 오의 상대가 안 된다. 익주가 워낙에 큰 주인지라 면적에서는 비슷할지 몰라도, 인구나 산업면에서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차이이다.

2) 이 말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 다음의 육손전 구절을 붙인다.

육손 수하의 장수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유비를 공격한다면 응당 그가 처음 병사를 내었을 때 했어야만 했습니다. 현재는 그로 하여금 오나라로 5, 6백리를 들어오도록 하여 서로 대치한 지가 7, 8개월이 되었으며, 많은 요충지는 모두 그가 굳게 지키고 있으므로 그를 공격하면 반드시 불리할 것입니다.” 육손이 말했다. “유비는 교활한 적이며, 매우 다양한 일을 겪었고, 그의 군대가 처음 집결했을 때 그의 생각은 조밀하고 전일하였으므로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는 출병한지 매우 오래되어 우리의 전의를 차지하지 못했고, 병사들은 피곤하고 사기는 떨어졌으며, 새로운 계책이 없습니다. 앞과 뒤에서 협공하여 적을 잡을 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그러고 나서 육손은 먼저 유비의 한 진영을 공격했지만, 불리했다. 장수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헛되이 병력을 소모시킬 뿐입니다.” 육손이 말했다. “나는 이미 유비 진열을 격파시킬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곧 병사 각각에게 띠풀을 하나씩 갖고서 화공(火攻)으로 격파시키도록 명했다.(중략) 유비의 배, 병기, 수군, 보병의 물자는 한 번에 거의 손실되었고, 병사들의 시신은 장강을 떠다녔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1:26 

 

병장 황성근 
  제갈량이 전쟁에 나선적이 없는 건가요? 그것만으로도 놀랍네요(땀) 2009-05-27
07:24:19
  

 

상병 서지곤 
  성근님_ 제갈량은 전략가(책사)라기 보다는 정치가에 가까웠다고 하네요. 

조조나 손가의 일원들에 비해 유비는 너무 과소평가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말 그대로 자수성가(?)로 끝까지 내달렸던 인물인데 말이지요. 2009-05-27
09:33:42
  

 

상병 김예찬 
  오,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이글루스 블로그 쓸 때 '나그네'님이라는 블로거가 있었는데, 그 분은 '연의'만을 기준으로 인물론을 펼쳤는데 아무튼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동훈님의 글을 읽을 때 마다 그 때의 추억이 떠오르는군요. 크크. 

유표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 제가 얼핏 듣기로는 형주가 후한 대 이후로 '유교가 뿌리 박았던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농경에도 적합해서 인구도 많고 물산도 풍부한 지역이라는 상식적인 이야기도 있구요. 유표가 형주자사로 있었나요? 정확한 직함 명이 생각이 생각이 안납니다만, 유표(와 그의 가문)가 형주에 뿌리 박았던 것은 어떤 연유인지도 궁금합니다. 2009-05-27
09:55:22
  

 

상병 양동훈 
  성근// 물론 유비가 죽은 뒤에는 상황이 바뀌지만, 유비가 살아있던 동안에는 촉의 '거의' 모든 전쟁은 유비가 주도했죠. 

지곤// 유가의 시대에 아름다움이 강조된 유비의 모습이, 현재의 눈으로 보면 '연약함'으로 비치는 뭔가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죠. 사실 유비는 정말 '잘 늙은 여우'같은 모습이었는데 말이죠... 

예찬// 나그네씨라면 나이 좀 지긋한... 껄껄.. 재미있는 분이신데 말이죠..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재미있게 하시고.. 쾌도난담 삼국지도 꽤나 재미있는 책이구요. 

한때는 삼국지토론의 정답으로 여겨졌는데 요새는... (요샌 뭐 디씨고 뭐고에서 이놈저놈 다까는 상태라 뭐라 할말이 없군요.. 나도 까이고 있을라나?) 

예찬씨의 질문은 지금은 답할 방법이...(그냥 모르겠다고 할게요 껄껄) 한번 이리저리 찾아다니다 보면 실마리가 나올 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울음). 2009-05-27
10:07:34
  

 

상병 이종보 
  예찬/ 

유표가 형주에 '뿌리를 박았다' 라는 것은 조금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유표와 그 일족은 형주에 '뿌리를 박은'게 아니고 형주자사를 '오래 해먹은' 케이스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황건적의 난이 진압된 직후, 한황실의 자손들은 많은 곳의 군주가 되어 있었습니다.(아마도 황건적의 난 때에 총력전을 기울일 때, 많은 황실 일가가 참가해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유언은 익주목이었고, 유우는 유주자사였습니다. 
서량태수 마등은 황제의 사위인가?(어쨋든 황실하고 인연이 있었을겁니다.) 정도 瑛 테구요. 같은 일환에서 유표도 형주를 다스렸고, 그것이 오래되다보니 '뿌리를 박았다' 라고 
할 정도로 보인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니뭐, 그냥 제생각이에요. 2009-05-27
12:38:07
  

 

상병 양동훈 
  종보// 와우.. 종보씨 댓글 덕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여기서 한가지 떠올려볼 만한 것은 한의 지방통치제도가 봉건제 + 군현제 라고 불리는 군국제(명칭이 이게 맞나...)였다는 것이 있겠네요. 황건적의 난이 진압된 이후에 황실의 자손들이 군주가 되었다기보다는, 그 이전부터 황실 세력들이 전국 각지에서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보는게 조금 더 맞지 않을 까 싶네요.(사실 뒷받침할 사료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태.... 그저 머릿속에서 나오는 소리....) 2009-05-27
13:19:51
  

 

책마을 
  저는 황건적의 난 이후 벼슬을 받은게 아니라 유표의 조상 대 부터 계속 형주에서 세력권을 형성했다고 알고 있거든요.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2009-05-27
15:38:20
  

 

상병 김민혁 
  종보// 
흐음, 제가 알기로도 유표일가는 선대로부터 
쭈욱 내려오던 형주지역의 가장 세도가 높은 유지 였던걸로 압니다만,, 
그러던중 황건적의 난 때 공을세워 유씨 가문이 형주지역에 더욱더 
큰 영향을 행사할수 잇는 위치에 올랐던것 아닌가요,,, 2009-05-27
15:52:48
  

 

일병 노지성 
  정말...죄송하지만...삼국지를 읽지 않아서 그런데 이릉대전 어떻게 유비군이 패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2009-05-27
19:18:02
  

 

상병 양동훈 
  지성// 연의에서나 정사에서나 비슷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화공에 패합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니 조금이 아니고 많이 자세해질거 같고..(울음) 2009-05-27
19:21:53
  

 

일병 노지성 
  동훈님//앗 그냥 전역하고 삼국지 하나 잡고 읽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2009-05-27
19:39:42
  

 

상병 황호상 
  "전쟁탐방"에 눈이 번쩍- 띄여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동훈님 글 보니까 다시 삼국지를 펼쳐보고 싶어지는군요.. 

참, 삼국지 '정사'에 대해 여쭤보려고 했는데, 앞에 글 찾아보길 잘했군요 (웃음) 
'돈 먹는 기계'를 잘 쓸 수 없어서 그런데... 진수편 정사와 배송지주는 단행본 구하기 어렵지 않나요?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2009-05-28
08:49:25
  

 

상병 양동훈 
  호상// 진수의 삼국지와 배송지주는 김원중씨가 쓴 책이 나와 있는데 현재로는 절판된 상태입니다. 솔찍히 말해서 오역도 많고, 약간은 번역하다 만 듯한 느낌도 주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는' 번역은 아닙니다. 중간 규모 이상만 되는 도서관이면 거의 100% 있을 겁니다. 

아니면 www.pasung.net에도 거의 모든 분량의 정사 번역물이 있습니다. 다만 여기도 위에 말한 김원중씨의 번역본을 기초로 하고 있고, 인터넷상의 수많은 삼국지 애호가들이 번역한 버전들이 있습니다. 다만 파성넷같은 경우는 일단 내용을 복사할 수가 없고(...) 종이책의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좀 아쉬운 부분이 되겠죠. 

제가 글을 쓰면서 주로 이용하는 곳이 바로 파성넷입니다. 인터넷 상에 있는 곳이라, 수많은 매니아들의 번역 수정 요구가 잇따르고 덕분에 오역이 적은 편이기도 합니다. 2009-05-28
13:30:46
  

 

상병 양동훈 
  그리고 덤으로, 그냥 네이버에서 정사 누구누구전 이라고 치면 거의 100% 열전이 올라와 있을 겁니다. 인터넷의 힘은 워낙 대단해서 말이죠.. 2009-05-28
13:31:20
  

 

상병 황호상 
  하긴... 넷의 힘은 무시무시하지요, 허허.. 
동훈님 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설탕먹을 때라도 파성넷 한번 들러봐야겠군요 (웃음) 

 [연재] 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8. 여섯 번째 인물탐구 - 법정  
상병 양동훈   2009-05-27 15:07:43, 조회: 212, 추천:0 

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8. 여섯 번째 인물탐구 - 법정

  안녕하세요 친절한 동훈씨입니다(웃음). 이번 인물탐구는 법정이에요. 저는 요청을 무시하지 않는 친절한 사람이니까요. 후훗. 아참. 하제와 반장의 활동시기에 관한 댓글이 있던데 시기가 겹치기는 하지만, 세대로는 하제가 조금 앞입니다. 10년정도 차이가 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주 정확한 년도까지는 모르겠네요(웃음). 법정은 촉에서 진짜, 진실로 몇 안되는 능력 있는 책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게다가 일찍 죽은 것까지.. 어찌 비교하면 위의 곽가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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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은 사실 그닥 크게 알려진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갈량과 방통에게 묻혀버렸다고 해야 되나? 연의에서 그 둘을 너무도 상큼하게 띄워주시는 덕분에, 사실 법정은 그 이름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연의에서 법정은 대강 네 가지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첫째로 익주를 통째로 유비에게 넘겨주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이야기, 둘째로 그 이후에 권력을 남용하다가 제갈량의 이야기를 듣고 자제했다는 이야기, 셋째로는 한중 전투에 참가해서 하후연의 목을 베는 데 큰 공을 세운 이야기, 네번째로는 그가 죽은 이후에 형주 공방전에서 패배한 이후 ‘법정이 살아 있었다면 이 전쟁을 막았을 것을’ 이라고 제갈량이 탄식했다는 이야기.

  재미있는 것은, 연의에서의 법정은 정사의 요약본이라는 것이다. 상당수의 주요 촉인들이 연의에서 뻥튀기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법정만큼은 오히려 그 모습이 축소되고 깎여있다는 것이다. 사실, 촉의 책략가들은 제갈량과 강유, 그리고 방통을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축소된 모습을 보이는 데, 이는 저 세 사람을 띄워주기 위한 나관중의 모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뭐 그래도 법정 정도면 연의에서도 이름을 남긴 편이지만...

  법정이 익주를 통째로 유비에게 들어넘기는 데 관련된 일화들은 정사에서도 상당한 구절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 내용 자체가 연의와 큰 차이가 없기에 생략하고 법정 인물탐구는 다음의 한 구절에서부터 출발하려고 한다.

익주가 평정된 후 제갈량, 법정, 관우와 장비에게 각각 금 5백 근, 은 천 근, 전 5천만, 비단 천 필을 하사하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각각 차이를 두어 포상했다. - 정사 선주전

  제갈량, 법정, 관우, 장비. 뭐 금 5백 근이니 은 천 근이니 하는 것이 어떠한 가치인가를 굳이 논하는 것은 넌센스겠지만,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저 네 사람만이 공로로 쳤을 때 ‘S급’의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유비의 입촉 후 높은 벼슬을 받았던 미축, 허정, 손건 등과 일생을 함께 해 온 장수 조운 등은 공에서는 법정보다 낮은 평을 받았다(사실 조운은 저기에 안 끼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긴 한데... 일단 여기서는 패스).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한중 정벌전. 대부분은 뭐 법정이 황충에게 계책을 주고 깃발을 흔들고... 해서 하후연의 목을 베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텐데, 사실 그렇게 상세하지는 않지만 그 구체적인 줄기는 정사와 연의가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의 한 부분만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한중 전투의 시작이 법정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 하나 말이다.

건안 22년, 법정이 선주를 설득하며 말했다.
  “조조가 일거에 장로를 항복시켜 한중을 평정하고도 이 기회를 틈타 파, 촉을 도모하지 않고 하후연, 장합을 남겨 둔수케 하고 자신은 황급히 북쪽으로 돌아갔으니, 이는 그의 지모가 미치지 못하거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필시 내부에 우환이 닥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하후연과 장합의 재략을 헤아려보면 우리의 장수들보다 낫지 못하니 군사를 일으켜 가서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 정사 법정전

  사실 이는 냉철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법정 역시도 하후연과 장합이 무시할 만한 장수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텐데... 아마도 조조의 구원군이 속히 도착할 여력이 없다면, 유비가 친정을 하면 적을 무찌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장수들보다 낫지 못하다’라는 표현은 사기진작용 정도일 것이고... 어찌되었건 이 판단은 유비가 한천 일대를 장악하는 성과를 얻게 한다. 그리고 조조는, 그 뒤로 죽을 때까지 더 이상 촉을 공격하지 않았다. 사실 법정이 역사적으로 족적을 남길 만한 일을 한 것은 크게 많지 않다. 요절한데다가, 유장의 아래에 있었을 때의 행적이 거의 기록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공적은 지금까지 말한 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뭐 사실 있는 것은 다 쏟아부은 것이기도 하지만, 더 있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선주가 조공과 함께 다툴 때 형세가 불리했다. 의당 퇴각해야 했으나 선주가 크게 화를 내며 퇴각하려 하지 않으니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는데 법정이 선주의 앞으로 나아가려 하자 선주가 말했다. “효직은 화살을 피하시오.” 법정이 말했다. “명공께서 친히 시석(矢石 - 화살과 돌)을 당해내시는데 하물며 소인이겠습니까?” 이에 선주가 말했다. “효직, 내가 그대와 함께 물러나겠소.” 그러고는 퇴각했다. - 정사 법정전

  이 부분이야 말로 법정전에서 보여주는 법정이라는 사람에 대한 클라이맥스이다. 뭐 사실, 이 일화가 진실인지 혹은 저 일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실제로 급박한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부분이야말로 법정이라는 인간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법정이 아닌 다른 고지식한 촉신들이라면 이런 비슷한 일화를 남길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른 생활 사나이들로 둘러쌓인 촉의 문신 사이에서의 거의 유일한 파격. 이것이야말로 촉에서 법정이 가지고 있던 최고의 가치였다.

제갈량과 법정은 비록 호상(好尙 -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이 서로 같지 않았으나 공의로 서로 따랐고, 제갈량은 늘 법정의 지술을 높게 여겼다. - 정사 법정전

“주공께서 공안에 계실 때 북쪽으로는 조조의 강성함을 두려워하고 동쪽으로는 손권이 핍박함을 꺼렸으며, 가까이는 손부인이 곁에서 변고를 일으킬 까 겁내시었으니, 그 당시는 진퇴가 낭발(狼跋 - 나아가고 물러남이 어려움에 빠짐)하였소. 그러다 법효직이 주공의 보익이 되어 높이 날게 하고 다시 남의 제약을 받지 않게 했으니, 어찌 법정을 금지해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게 하겠소! - 정사 법정전

  촉은 유비와 제갈량으로 대표되는 국가이다. 국가 전반을 장악한 유비와 내정을 책임진 제갈량. 서서 편에서도 봤겠지만 제갈량과의 사이와 제갈량의 평가가 촉인들의 기록에서는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서서나 방통처럼 정을 나눈 친구는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제갈량도 그를 높이 평가했던 것은 분명하다. 어찌 보면 능력뿐만 아니라 성품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이적은 소문장군으로 승진고, 제갈량, 법정, 유파, 이엄과 함께 《촉과(촉의 법령)》를 만들었다. - 정사 이적전

  이 기록은 정말 재미있는 기록이다. 법정은 만능인이었다(사실 촉인의 다수가 만능인이었을 것이다. 인재가 워낙 부족했으니..). 심지어 법령을 제정하는 데도 참여했으니 말이다. 이 부분은 사실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약간은 색다른 기록이라 한번 넣어 보았다. 사실 정말 이 부분이 색다른 것은, 촉에서 그 누구보다도 초법적인 존재로 기억되는 법정이 그 법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일까?

선주 때는 오직 법정만이 시호를 받았다. - 정사 선주전

법정은 일의 성패를 보는 데 뛰어나고 기이한 꾀, 책산을 지녔으나 평소 덕이 있다 칭송되지는 못했다. - 정사 법정전에 달린 진수의 평

계한보신찬1)의 양회의 평
익후(법정의 시호)는 훌륭한 책략을 사용하고, 세상의 흥함과 쇠함을 예측했다. 주상에게 몸을 던져 의탁하고 의견을 서술하고 자문했다. 잠깐 생각하고도 바른 평가를 내리며, 사태를 보고 연화의 징조를 알았다.

  법정은, 분명히 유비가 입촉한 이후 얻은 신하들 중에는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인물이었다. 공적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대범함과 당당함을 갖추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기도 했고 말이다(물론 예를 중요시하고 바른 것을 추구하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그놈의 요절이 이 사람을 뻥튀기시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되는 지도 모르겠지만,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촉에게는 더욱 큰 역할을 했을 지도 모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제갈량은 ‘법정이 있었으면 이 전쟁을 막았을 것을(이 부분은 연의의 윤색이 아닌 실제 기록에 존재하는 내용임)’ 이라고 했지만, 만일 법정이 살아 있었다면 법정은 형주에서 관우와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비의 사람 쓰는 스타일이 대개 그러하니까... 그렇다면, 삼국의 역사가 어떤 흐름으로 바뀌었을지는 상상만으로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다들, 한번 공상에 잠겨보는 것은 어떨까.

Written by
Abandoned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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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한보신찬은 촉인이었던 양회라는 사람이 지은 글로, ‘한을 이은 나라를 지킨 신하들을 찬양한다.’ 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찬양 일색인 글이라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글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어떤 부분에 뛰어났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도움이 될 만한다. 물론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는 데는 전혀 쓸모없는 책이기도 하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1:36 

 

상병 김민혁 
  법정, 실제 인물의 업적보다 
축소되어 비춰지는 인물이죠 
잘알려진 A급 인물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에 대해 재조명해주셔서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감녕'에 대해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9-05-27
15:15:39
  

 

병장 김범수 
  만총에 대해서 설명 부탁해요. 
연의에서 정말 최악으로 축소된 인물이 만총이거든요. 
위나라 최고의 에이스인 한 명인데, 그냥 듣보잡으로 전락... 2009-05-27
16:11:07
  

 

상병 김예찬 
  와우, 동훈님 정말 바쁘시겠습니다. 크크. 잘 읽었어요. 2009-05-27
16:30:53
  

 

상병 양동훈 
  지금까지 요청받았는데 아직 쓰지 못한 인물이 
강유, 서성, 정봉, 만총, 감녕... 그리고 '여성장수들' 
분발해야겠는데요 껄껄껄 2009-05-27
19:49:01
  

 

병장 황성근 
  재밌게 읽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삼국지 게임을 하고싶은 충동이 막 듭니다(웃음) 2009-05-27
20:57:47
  

 

상병 구진근 
  하핫. 요청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그 시대 성격상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적을 빼앗기거나 축소된 것이 많을듯 싶군요 2009-05-28
12:12:30
  

 

상병 윤영석 
  저는 그냥 삼국지연의만 여러번 읽어보았는 데 상당히 재미있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기대하겠습니다[웃음] 2009-05-28
22:49:49
  

 

상병 김태완 
  관우와 유비의 죽음을 늦춤으로써 촉이 삼국을 통일했으려나. 
늘 잘보고 있습니다. 
거의 새롭게 알게되는 사실들이어서 저에겐 더욱 흥미롭습니다. 2009-05-30
07:18:54
  

 

병장 박상민 
  법정이 법령을 제적하는데 기여했지만 처음엔 반대하면서 한의 고조인 유방을 따라라 
라는 말도 있었답니다. 참 신기한 인물이죠 2009-05-30
10:57:29
  

 

상병 김정민 
  저는 강유가 진짜 좋아요. 듬직한 매력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요? 2009-06-01
08:58:28
  

 

병장 송원호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2009-06-03
09:29:38
  

 

상병 신재호 
  아 정말 재밋습니다~ 

 [연재] Abandonedsoul의 삼국지 주절잡설 #9. 일곱 번째 인물탐구 - 강유  
상병 양동훈   2009-06-01 13:41:54, 조회: 198, 추천:0 

대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네요(웃음). 10회 기념 대작으로 원래 생각한 거였는데... 그렇게 되면 연재가 너무 지연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할지는 이래저래 생각을 해 보아야겠지만, 지금 준비하고 있는 대작은 진짜로 괜찮은 글 나부랭이를 한번 써보려고 하고 있고, 언젠가 여기에 연재가 될 것임은 확실할 거에요. 주제에 대한 힌트를 약간 날리자면, 위연. 그리고 제갈량. 그리고 장안성. 이 세 가지로 연재의 주제를 추측해내실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매니아..(껄껄)

이번 연재는 마침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예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것 중에 하나에요. 강유라는 인물은 그 인물 자체에 대한 탐구가치가 꾸준히 느껴져 오던 인물이고, 연의에서의 ‘문무겸장’ 이미지 이외에도 색다른 모습들을 많이 보이거든요. 그럼 한번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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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 촉의 마지막을 끝까지 끌고 갔던 인물로, 제갈첨과 더불어 ‘촉의 마지막 충신’으로 일컬어진다. 제갈량의 후계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문무를 동시에 겸비한 인물인데다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쓰러져가는 국가를 일으켜세우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인물로 그의 삶 자체는 매력이 철철 흘러넘치는 이야기거리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따르던 국가의 배신과 적국으로의 투항, 그리고 그 적국의 최고 실권자가 되어 모국을 깨부수러 가는 하나의 드라마. 그런 드라마의 주인공을 논하기에는 이 글을 쓰는 사람의 머리와 손이 무척이나 비천하지만, 어찌되었건 글은 어김없이 시작된다.

강유가 촉으로 투항하는 기록은 정사와 연의가 거의 일치한다. 제갈량의 공격에 의해 고군분투했으나 정작 섬기던 관료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제갈량에게 항복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 다만, 제갈량이 ‘강유는 천하의 기재이니 내가 마음으로부터 설복시켜 내 수하로 만들어야겠다.’라고 했다는 따위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이 부분은 제갈량과 강유의 그 특수한 관계, 그리고 강유가 제갈량의 유지를 끝까지 받들려고 했던 그 모습을 통해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한 윤색인 듯하다.

제갈량의 강유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다. 완전한 극찬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말이다.

제갈량이 유부장사 장예 및 참군 장완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강백약은 그 시대의 일을 충성스럽고 근면하게 하고 사려가 정밀하며, 그가 갖고 있는 재능을 살펴보면 영남1) 및 계상2) 등의 사람들도 그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양주에서 최고의 인물입니다. - 정사 강유전

양주3) 최고의 인물. 영남은 크게 이름난 인물은 아니지만 승상부의 실권자였고, 계상은 제갈량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던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말 그대로 ‘최고의 극찬’이다. 그리고 이런 제갈량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는 순식간에 촉한의 군권책임자로 발돋음하게 된다.

건흥 12년(234)에 제갈량이 죽자, 강유는 성도로 돌아와 우감군 및 보한장군이 되어 군사들을 통솔하고, 승진하여 평야후로 봉해졌다. - 정사 강유전

타국에서 항복한 장수가 국가의 전군을 통솔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군대의 일부를 지휘하는 경우는 흔하지만(하후패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적국이 망하지도 않았는데 전군의 통수권자가 되는 것은 보통의 능력과 보통의 신뢰로는 불가능한 얘기다(북한군 장교가 귀순했다가 합참의장이나 국방부장관이 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는 제갈량이 강유를 완전히 신임하여 그의 후계자로 키웠으며, 국가 내에서도 상당한 명성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제갈량의 아이에서 영웅으로 떠오르는 순간이 바로 스승의 죽음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아이러니지만...

하지만, 그의 역량이 100%의 신뢰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혹은, 역량은 신뢰를 받았지만 그의 권한이 생각보다는 작았던 것일 수도 있다. 제갈량이 자신이 죽을 때를 생각해 그의 후계로 생각한 것은 군사에서는 강유, 정치에서는 장완?비위인데 사실 강유는 비위가 죽은 다음에야 대장군에 오를 수 있었다. 대장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비위였던 것이다. 대장군이 그냥 장군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때의 대장군은 장군직이라기보다는 국가 전체를 통솔하는 지위였고 비위의 그늘에 가려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행동을 마음껏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연희 12년(249)에 강유에게 부절을 주어 또 서평으로 출정하도록 했는데,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강유는 스스로 서쪽 지역의 풍속에 익숙하며, 겸하여 자신의 재능과 무력에 자부심을 가졌으므로 강족과 호족을 유인하여 자신의 오른쪽 날개로 삼으려고 하며, 농산 서쪽을 위나라에서 끊어 지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항상 대규모로 출병하려고 하여 비위4)는 늘 그것을 제지하며, 그에게 준 병력은 만 명에 불과했다. - 정사 강유전

연희 16년(253) 봄에 비위가 세상을 떠났다5). 여름, 강유는 수만 명을 이끌고 석영을 나와 동정을 지나 남안을 포위했지만, (후략) - 정사 강유전

만 명의 군사도 사실 촉에게는 적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강대한 위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것이 사실이고 그로 인해 강유의 공격이 난항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위가 죽고 그 상이 끝나자마자 강유는 잽싸게 국가의 전군을 동원해서 나간다. 약간은 기회주의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권력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은 권력이 생기면 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니까...

그 뒤로 강유의 일생은 연의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강유가 곽회를 죽였다는 기록인데, 곽회는 그렇게 전쟁터에서 비명횡사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일개 장수가 아닌 한 주의 자사였고, 그가 일생동안 풍긴 포스는 위나라 중기 이후의 어떤 사람에 비해서도 부족함이 없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뭐 강유를 평생동안 괴롭힌 등애와의 천적관계라던가, 황호와의 반목이나, 막판에 유선에게 간언했지만 유선이 점쟁이의 말을 믿고 그의 간언을 무시했다는 것까지 스토리가 깔끔하게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제, 연의에서 벗어나는 강유의 모습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연의에서는 쉽게 포착할 수 없는 강유에 대한 평가와 색다른 사건들이다.

“백약을 중원의 명사와 비교하면, 공휴(제갈탄), 태초(하후현)가 이길 수 없습니다. - 정사 강유전 중 종회의 평

강유는 문무를 모두 갖추었고 공명을 세우려는 뜻이 있었지만, 병사들을 경시하고 병력을 남용하였으며, 분명하게 결단을 내렸지만 조밀하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노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대국을 다스리는 자는 작은 물고기를 삼는 것과 같다.” 하물며 작은 나라에 대해서야 여러 차례 소란스럽게 할 수 있겠는가? - 정사 강유전 말미에 있는 진수의 평

종회의 평은 연의에서도 비슷하게 기록된 것을 찾아볼 수 있는데, 공휴와 태초는 후일 사마씨 정권을 제거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들이다. 능력 면에서 비교한 것인지 인품 면에서 비교한 것인지는 판단하기 힘들지만, 능력 면에서는 확실히 강유를 위라고 놓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리고 진수의 평은 약간은 냉혹한 느낌을 주는데, 역시나 날카로운 것도 사실이다. 규모가 작은 촉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실수가 성패를 가르게 된다. 쉽게 말해서, 모든 계획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깔끔하게 돌아가야지만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제갈량의 북벌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들은 단 한 번의 패배로 인해 퇴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계치가 너무도 높았고 상대도 만만찮았기에 소규모의 승리가 대국적인 패배가 되는 경우도 흔했던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있는 ‘하물며 작은 나라에 대해서야 여러 차례 소란스럽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표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사 후주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강유의 ‘대규모’ 출정 - 8회 (249, 250, 253, 254, 255, 256, 257, 262)

뭐 다른 출정 기록이 더 있겠지만, 후주전은 국가의 대사를 기록한 전이므로 주요한 출정은 이 곳에 다 있으리라고 판단해서 이 기록을 가져왔다. 강유의 북벌을 7회다 8회다 9회다 말이 많은데, 뭐 그것 한 두번이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249년과 250년의 출정은 비위에 의해 제한받은 출정이므로 뒤의 여섯 번만이 진짜 강유가 마음먹고 나간 출정일 것인데, 딱 보기에도 거의 매년 대규모 출정을 나갔다는 것은 그가 전투에만 관심이 있었지 국가 전반의 흐름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제갈첨, 동궐 등은 강유가 전쟁을 좋아하나 국내가 피폐해졌다 하여 후주에게 표를 올려 그를 소환해 익주자사로 삼고 그 병권을 빼앗으려 했다. 촉 장로는 제갈첨이 표를 올려 염우로 하여금 강유를 대신하고자 했다는 고사가 있다 한다. - 정사 제갈량전 中 동궐 부분의 배주에서 인용된 손성의「이동기」

연희 20년에 대장군 강유를 따라 출정하여 망수까지 갔다. 양희는 평소 마음속으로는 강유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술을 마신 후 담소할 때 늘상 조소하는 말을 했다. 강유는 겉으로는 관대하게 보였지만 내심으로는 견딜 수 없었다. 군대가 돌아온 후 담당 관리는 강유의 마음을 알고 상주하여 양희를 면직시켜 평민이 되도록 했다. - 정사 양희전

연의에서는 황호가 염우의 뇌물을 받고 그를 추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정사의 기록은 약간 다르다. 염우의 역량을 파악할 만한 자료는 사실상 거의 없지만, 연의에서처럼 그저 뇌물로 그 자리까지 오른 인물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강유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 없는 그냥 장수였다는 사실이다. 국가 내에서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치는 남들이 하는 거지 나는 알 바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초인 제갈량과 강유의 가장 큰 차이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으로 인해 강유는 항상 겉돌았고, 자신이 직접 이끌었던 병력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상대적 소국이었던 촉에서 국가의 역량이 한 곳으로 결집되지 못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각개격파를 뜻한다. 이는 강유에게 언제나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강유가 더욱 더 전쟁에만 집착하는 계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래에 붙인 양희전의 예는 강유가 정치관료들과의 사이가 그닥 좋지 않았다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누구보다도 강한 의지를 가졌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한계와 국가의 한계를 결국에는 뛰어넘지 못했던 강유. 제갈량도 뛰어넘지 못했던 벽을 넘기에는 그의 한계가 너무도 컸던 것이겠지만, 그의 끊임없는 도전의식과 국가에 대한 충성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말 그대로 ‘순수한 군인’이었던 강유. 오히려 조금은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다재다능함이 그의 군인으로써의 역량을 까먹는다면 그것도 결국은 한계치가 뚜렷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더 서러운 그의 일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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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소. 후일 촉의 서조연에 오르는 인물이다.

2) 마량. 마속의 형으로, 그 이름도 유명한 백미라는 고사의 바로 그 사람이다. 마씨의 오상이라 하여 다섯 형제가 모두 뛰어났으나 그 중 흰 눈썹이 가장 뛰어났다는 백미. 다섯 형제 중 마량과 마속을 제외한 세명의 경우는 이름도 자도 알려져 있지 않으나 마량이 몇 번째 아들인지, 그리고 나머지 형제의 자가 무엇이었는지는 그의 자로 짐작할 수 있다. 마량은 네 번째 아들이었다. 이 추측근거는 백(伯), 중(仲), 숙(叔), 계(季)의 순서로 알 수 있다. 아마도 막내 마속은 예상치 못한 다섯째라 유(幼)를 쓴 것으로 보인다.

3) 마등의 근거지 서량을 말한다. 흔히 제갈량이 진군해 얻으려고 했던 옹,량 지방의 바로 그 양주이다. 오나라의 근거인 양주는 독음은 같으나 글자가 다르다.

4) 비위, 혹은 비의로 읽는 설이 있으나 아직까지는 비위로 읽는 것이 정설이다. 여기서 정설이라고 함은 그저 ‘지배적인 주장, 혹은 주류의 주장’이라는 이야기일 뿐 그것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5) 비위의 죽음. 비위는 병에 걸려서 죽은 것도 아니고 늙어서 죽은 것도 아니고 살해당했는데, 비위를 죽인 사람은 위에서 항복해 온 곽순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곽순이 위에서 보낸 자객이라느니, 강유가 곽순을 사주해서 비위를 죽이게 했다느니 말이 많은데 이것은 판단할 만한 자료가 너무 없어서 정확한 정황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필자의 시각에서는 비위를 강유가 사주해서 죽였을 가능성도 꽤나 높다고 보고 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1:44 

 

병장 황성근 
  잘 읽었습니다. 
강유가 문무를 겸비한 장수라 들었는데 그냥 순수한 군인이었다는건 놀랍네요 
그리고 10화는 정말 기대됩니다. 예전부터 정말 위연의 그 말이 사실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말에요 2009-06-01
14:17:02
  

 

상병 양동훈 
  과연 10화에 내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울음) 
11화, 12화, 13화에 나올지도 몰라요 항가... 2009-06-01
14:32:57
  

 

상병 이종보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의 한 장면인가요? 
제갈량이 제동을 걸었던 위연의 장안 급습책, 
만약 촉이 장안을 점령했다면 역사는 어느쪽으로 흘러갔을까요? 
제 생각이지만, 촉에는 '만약' 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요. 
그만큼 아쉬운 장면이 많아서 그런거겠죠. 2009-06-01
15:45:48
  

 

병장 함성민 
  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다음 내용 너무 기대되네요..(웃음) 2009-06-01
16:04:38
  

 

병장 김상윤 
  장안성에 대해선 잘 몰랐어서, 
제갈량 사후 위연의 반란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북벌이 더 유력한거 같은 생각이 드네요 흐흐 2009-06-01
16:15:48
  

 

상병 김태완 
  저도 성근님처럼 강유가 제갈량의 제자로써 문을 바탕으로 한 무인인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오히려 무가 바탕이었군요. 강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얼핏 기억나는데 제갈량이 저지하려 했지만 위연이 막가파 정신에 입각해 급습을 목적으로 출격했다가 되려 적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참패를 당한 전투 아닌가요. 위연도 유비가 살아있을 때 황충급으로 참 활약을 많이한 장수였는데 왜그리 끝에가서 안좋았는지. 그 큰 장안성이 촉의 수하에 들어갔다면 삼국의 판세가 또 많이 달라졌겠죠. 2009-06-01
16:28:26
  

 

상병 양동훈 
  종보// 빙고. 다만 글의 흐름은 그쪽이 아닐거같아요 껄껄 
성민// 감사합니다! 
상윤// 껄껄껄 
태완// 위연은 황충급으로 활약을 많이한 장수... 정도라기보단 그 이상인 것 같네요. 스토리는 약간 다른거 같구요 껄껄 

그리고 문을 바탕으로 한 무인이라... 조금 복잡한 듯한 얘기인 듯 싶습니다. 문이 뜻하는 것이 계략적, 책략적 문인지 정치적 문인지를 따질 필요성이 있겠네요. 물론 전자이건 후자이건, 강유는 문보다는 무쪽에 치우친 인물임은 확실해 보입니다.(웃음) 2009-06-01
18:50:00
  

 

일병 박준우 
  ※호는 백사였던걸로 기억합니다. 2009-06-01
19:09:19
  

 

상병 양동훈 
  준우// 호라면 뭘 말씀하시는 거죠? 자를 말씀하시는건가... 2009-06-02
06:57:15
  

 

병장 박상민 
  오오 요청하신거 올려주셨네요. 

다음편이 또 기대되네요 2009-06-03
09:17:01
  

 

병장 송원호 
  오.. 잘 읽고 있습니다~ 2009-06-03
09:31:46
  

 

일병 박준우 
  동훈//아... 자네요... 호라니... 삼국지 읽은지가 오래되서요 2009-06-05
11:46:37
  

 

상병 양동훈 
  강유의 자는 백약입니다. 아마 白約 아니면 白葯 일거에요. 아닌가? 伯約 이던가? 써놓고보니 앞에꺼였던거 같기는 한데, 이건 당근먹고 잠좀 자고 찾아볼게요(웃음) 한자에 너무 약해서 항가항가 2009-06-06
14:20:50
  

 

상병 양동훈 
  아 이제 보니 맨 뒤에꺼 같네요... 항가항가... 

 [연재] 삼국지 주절잡설 #10-1. 사건탐방 No.1 - 자오곡 계책 序  
상병 양동훈   2009-06-03 22:28:12, 조회: 198, 추천:0 

삼국지 주절잡설 #10-1. 사건탐방 No.1 - 자오곡 계책 序

이번 글은 혹시나 밖(사바세계의 인터넷이라는 공간.. 특히 다음..)에서 삼국지 토론을 많이 즐기신 분이라면 혹시나 비슷한 글을 읽으신 기억이 어렴풋이나마 나실 수도 있는 글이 될 겁니다. 예전에 제가 썼던 글을 사료를 약간 보완하고 약간의 수정(사실은 자료 빼고는 다 새로 쓸 거지만)을 가해서 하나의 글로 재편집을 해보려고 합니다. 다만, 제가 보통 책마을에 글을 쓰기 위해 하는 방식인 “돈먹는 기계 - 손으로 옮김 - 타자로 옮김”의 과정을 거치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조금 고생하고 있네요.... 하지만 뭐 차근차근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완성되겠죠?

이건 한꺼번에 모아서 연재하기는 힘들 듯 해서 나눠서 연재합니다 낄낄낄...
다음 편은 조만간에 언젠가는...

아 그리고, 글 제목에서 앞부분을 떼버렸습니다. 솔찍히 너무 길어요. 이대로 가다간 끝부분이 잘려버릴것만 같아서 어쩔수 없이 저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Abandonedsoul을 떼버렸어요. 이 아쉬움은 글 말미에 있는
Written by
Abandonedsoul
로 만족하려고 해요 낄낄
그럼 시작할게요, 기나긴 #10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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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序
  가. 자오곡 계책이란 무엇인가?
  나. 이공위수론에 대한 비판
2. 本
  가. 자오곡 계책의 상세한 내용
  나. 하후무의 인물됨
  다. 장안의 함락가능성
     1) 위연부대의 험지행군
     2) 장안의 방비태세
     3) 양동작전이 성립하는가?
     4) 1)+2)+3)+α
  라. 장안 기습작전의 성공과 실패, 그 예후
     1) 장안 기습작전이 실패한다면
     2) 장안 기습작전이 성공한다면
3. 結
  가. 총론



1. 序
  가. 자오곡 계책이란 무엇인가?

  제갈량의 북벌은 항상 ‘기산’을 향한 우회로를 통한 진군이었는데, 이로 인해 촉군의 경우 대개 진군시간과 거리, 그리고 보급로의 난항으로 인해 항상 괴로움을 겪었고 위의 땅 깊숙이까지 진입한 경우가 사실상 없었다. 그러던 차에 또 다른 북벌을 준비하던 단계에서, 위연은 제갈량에게 단 1만의 군사로 장안을 기습해 함락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워 건의하지만 제갈량에 의해 묵살당하는데, 이것이 바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는 자오곡 계책이며, 자오곡 계책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위연이 진군로로 택한 길이 자오곡이기 때문이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 ‘역사가들은 3대 1 정도로 위연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라는 당최 근거를 알 수 없는 말을 등장시킨 이후로 이 자오곡 계책에 대한 격론은 수 년 동안 이어져 왔으며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삼국지 관련 주요 사이트, 카페, 게시판 등에서 이름난 사람들도 상당수가 이 자오곡 계책에 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본 글을 쓰는 필자 역시도 인터넷상에 자오곡 계책에 대해서 쓴 글만 A4 용지로 100장은 족히 넘을 정도이다. 이 글은 그 수많은 글들을 집약시킨 필자의 생각에 관한 최종적 정리가 될 것이다.

  나. 이공위수론에 대한 비판

  이공위수(以攻爲守)론은 ‘공격으로써 수비를 이룩한다.’ 라는 뜻으로 청대 왕부지라는 철학자 겸 사학자가 자신의 글인 독통감론에 처음 등장시킨 이론이다. 이 이론은 그 뒤로 수많은 사학자들에 의해 마치 ‘법칙’인 양 떠받들어져 왔으나, 지금에 와서는 상당한 비판과 반대논리들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번 그 독통감론의 내용을 살펴보자.

  제갈 공은 천하대세의 흐름을 흉중에서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위나라는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없고 촉한의 한 구석에 있는 후주의 힘으로는 천하를 광복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군사를 일으켜 북벌에 나선 것은 공격을 통해 수비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공위수(以攻爲守)’는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위연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공위수론이 만일 실제로 제갈량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었다면 제갈량이 위연의 계책을 물리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위연의 자오곡 계책은 장안 탈취작전으로, 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거성인 장안 탈취는 곧 위와의 진짜 전쟁이 개시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국지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되어버리는 것으로, 이는 공격으로 수비를 이룩하는 것이 아닌 진짜 공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를 가정하자면 위연이 제갈량에게 한 건의는 ‘제갈량의 진짜 속마음을 파악하지 못한 실수’이거나, 또는 ‘제갈량의 군 통솔에 대한 근본적 사고를 바꿔야 하는 대작업’이 선행되지 못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점이 있다. 전쟁을 통해 소모되는 국력은 상당한데, 대국과 소국이 서로 싸우는 경우에는 소국의 국력소모가 더 큰 것이 상식적으로 당연하다. 단순한 이론이고 국가간의 대립구도에서는 정확하게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소국이 대국을 상대로 소모전을 시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1)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위협을 계속 받을 경우에는 정벌의지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된다. 즉, 이공위수는 그 자체로 비판할 거리가 충분한 것이다.

  또한, 이공위수가 촉의 주된 전략이 아니었음을 비판할 만한 근거는 촉의 남중 정벌2)에 있다. 촉은 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 남중을 정벌했고, 남중 정벌 이후 남중에서 상당히 많은 물자를 징발한다. 만일 촉의 정책이 이공위수였다면, 후방의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기 물자를 뽑아내는 것이 우선일 수 없다. 괜히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그것은 촉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중에서 물자를 징발한 것은 위를 공격하는 데 물자가 부족했다는 뜻이고,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격으로 수비를 이룩한다.’ 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개그에 가깝다.

  지금까지의 추론을 바탕으로, 본 글에서는 이공위수론을 철저히 배제한 채 제갈량이 ‘위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북벌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진행하도록 하겠다.

Written by
Abandoned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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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도대전에서 저수가 왜 지구전을 주장했는지, 순욱이 왜 속전을 주장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이 시기에도 저 경제논리는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2) 남중 정벌은 그 이름도 유명한 맹획을 사로잡은 칠종칠금의 사건이 일어난, 연의에는 남만 정벌로 나와있는 바로 그것이다. 아쉽게도 정사에는 단 한 줄로 나와 있고, 배주에는 그냥 ‘칠종칠금’이라는 이야기만 나와있으며 연의와 같은 극화의 구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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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주절잡설 #10-2. 사건탐방 No.1 - 자오곡 계책 本
혹은
삼국지 주절잡설 #10-2. 사건탐방 No.1 - 자오곡 계책 本-1
에서 계속됩니다 껄껄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1:53 

 

병장 김상윤 
  솔직히 넷에서 제대로 알아본적은 없고, 
60권짜리 만화로된 연의만 접해본 저로선 별로 생각해본적 없던 내용이지만..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꽤나 큰 흐름이 될수 있었던 문제였나보군요. 
책마을의 다른 글들도 마찬가지지만,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2009-06-03
22:51:52
  

 

병장 양동민 
  아 이 내용 더 재밌게 보고 싶은데 
주말에 말년이...() 2009-06-03
23:42:42
  

 

상병 양동훈 
  상윤// 허허허... 결말을 보시면 어떤 반응으로 바뀔지 두려운데요 

동민// 복귀하시기 전엔 끝날걸요?껄껄 2009-06-03
23:46:05
  

 

병장 최경빈 
  애독자입니다. 
다음편이 기대되요. 2009-06-04
01:18:05
  

 

일병 이준범 
  정말로 삼국지 토론을 하는데 있어 자오곡 계책에 관해서만큼 큰 화두도 없죠. 
제가 본 글만 해도 수십 편 되는 것 같은 느낌이구요. 
아직 글의 마무리를 보지 못했지만 자오곡 계책에 관해서 제갈량의 편을 들어주는 
이유는 촉과 위의 국력차이가 결정적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가정전투처럼 단 한번에 전투에서도 맥 없이 후퇴하게된 
모든 전선에서 승리하거나 버텨야되는 촉의 입장에서는 자오곡 계책은 
받아들일수 없었다고 생각되요. 2009-06-04
07:12:50
  

 

상병 양동훈 
  준범// 촉과 위의 국력차이 때문이라면 오히려 위연의 편을 들어주기가 쉽죠. 
아무래도 제갈량의 방법은 정공법이고, 위연의 방법은 기책이니까요. 2009-06-04
07:22:52
  

 

병장 박상민 
  제갈량의 계책은 완벽하지만 시간을 준다 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이문열의 삼국지에서였을겁니다 2009-06-04
13:09:40
  

 

병장 함성민 
  저번 글에 언급해주셨을때 이 얘기 일까나 했었는데 역시 이 얘기군요.. 
정말 한도 끝도 없는 논란거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웃음) 

뒷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합니다. 2009-06-04
13:33:25
  

 

상병 김태완 
  패스티스트하게 올려주세요 큭 2009-06-04
15:06:04
  

 

상병 신재호 
  아아아아 정말 너무너무 기다리고 있는 글입니다!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2009-06-05
01:28:25
  

 

일병 이준범 
  동훈 // 

제갈량의 입장에서는 성공의 유무를 가늠할 수 없는 계책에 촉의 중추적인 장수와 1만의 병사를 활용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을 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기습작전에서 장수와 병사들이 자신의 통제권을 이탈하는 경우에 대해서 고심했겠죠. 
전선 확대 측면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불리한 병력의 촉군이 무모하게 전선 확대시 생길 수 있는 허점에 대한 걱정도 있지 않았을까요. 일점돌파같은 일이 생길 수도 있구요. 

이후 계속해서 생겨난 촉군의 중원진출에서 제갈량의 통제권이 상실된 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패배들에 견주어봐서 말이죠. 2009-06-05
06:22:48
  

 

병장 황성근 
  어느 누구의 편을 들기도 뭐하다 싶은 계책이었군요.. 2009-06-05
07:18:34
  

 

병장 이철우 
  병력이 위나라에 비해 현저히 적은 촉나라로서는 1만이라는 병력을 따로 빼기엔 제갈량으로서는 쉽게 선택할 수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그 당시 지휘관이 하우무였으므로, 한번 걸어볼만한 도박이었기도 하겠지만.... 2009-06-05
23:11:42
  

 

상병 이석재 
  에피미논다스의 사선전술, 한니발의 망치와 모루 전술은 모두 같은 방향을 지향합니다. 한군대에 병력 집중을 꾀하여 한쪽이 적을 지연하는 동안 집중된 한쪽이 적을 격파하여 궁극적으로는 적을 포위하는 정책이지요. 에피미논다스나 한니발은 하나의 전투에서만 이런 망치와 모루전술을 꾀하였지만 나폴레옹은 중부유럽을 전역으로 이런 전술을 계획하였습니다. 충분히 확장적으로 전술상 승리를 전략적 승리로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이였지요. 뭐 고대시대에 나폴레옹때의 기동력을 바라는건 무리지만, 한중 전역을 모루로, 자오곡 전역을 망치로 둔 상황에서 옹-양지역을 포위공격할 수 있었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2009-06-05
23:59:42
  

 

상병 김태완 
  위연이 망치로 장안성을 내리쳐 위나라 군사들을 모루인 제갈량과 함께 포위하여 찌부러뜨리려는 생각은 참 괜찮은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제갈량은 군사력의 차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실한 모루가 압도적 군사력에 바탕을 둔 위나라의 드릴에 뚫리는 것이 자명할 것이라 판단했던 것 같아요. 2009-06-06
03:03:10
  

 

상병 양동훈 
  껄껄 석재씨와 태완씨의 글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본론에서 차분히 다뤄보도록 하지요 껄껄껄 2009-06-06
09:54:31
  

 

상병 양동훈 
  다만, 제 생각에는 자오곡으로 진군하는 병력이 오히려 모루인 듯 싶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가볍게 본론에서 껄껄 2009-06-06
14:38:04
  

 

상병 양동훈 
  덧. 목차를 약간 수정했습니다. 

 [연재] 삼국지 주절잡설 #10-2. 사건탐방 No.1 - 자오곡 계책 本-1  
상병 양동훈   2009-06-06 10:43:32, 조회: 73, 추천:0 

껄껄. 서론에서 이어집니다. 잡설 줄이고 바로 스타트 끊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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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本
  가. 자오곡 계책의 상세한 내용

  자오곡 계책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바로 아래의 두 가지 기록이다.

위연은 항상 제갈량을 수행하여 출정하였다. 병사 1만 명을 요청하여 제갈량과는 다른 길로 진출하여 동관에서 만나 한신의 선례에 따르려고 했지만, 제갈량이 제지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 정사 위연전

하후무가 안서장군으로 임명되어 장안 수비를 맡았다. 제갈량이 남정에서 부하들과 전략을 논의할 때, 위연은 이렇게 말했다. “듣건대 하후무는 젊고, 조조의 사위이며 겁장이이고 지모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 저에게 정예 5천명과 식량을 나를 5천명3)을 주신다면 곧장 한중을 뚫고 나가 진령산을 따라 동쪽으로 가서 자오곡에 당도하여 북쪽으로 간다면, 열흘이 지나지 않아 장안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후무는 저 위연이 갑자기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틀림없이 배를 타고 도주할 것입니다. 장안성 안에는 단지 어사와 경조태수만이 있을 뿐이므로 횡문에 있는 식량 저장 창고와 흩어지는 백성들의 곡물로 군사의 식량은 충분할 것입니다. 동쪽(위)이 병력을 모으는 데는 20일은 걸릴 것이므로 공이 사곡을 뚫고 나오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한 번의 행동으로 함양 서쪽 지역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제갈량은 이것을 위험한 계책이라고 판단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 정사 위연전에 달린 배주

  어찌 보면 지극히 간단하다. 하후무는 허접한 장수이니, 위연이 지름길로 내달아서 예상치 못한 때에 위연이 도착하면 하후무는 그걸 보고 도망을 갈 것이고 장안을 점령할 경우에는 한 방에 함양 서쪽 지역을 평정할 수 있다(함양 서쪽이라고 하면 간단하게 서량이라고 생각하면 딱히 틀리지는 않는다). 위연은 자오곡으로 내달리고, 제갈량은 예전 같은 경로로 이동해서 장안을 점령한 위연과 합류한다는 계획인데, 이 계책을 제갈량은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기록은 저렇게 되어 있지만, 위연 역시도 하후무가 그냥 도망갈 것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말한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계책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는 그 계책에 대한 자신감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지휘관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위연이 제시한 전략은 제갈량이 지금까지 구사해왔던 전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제갈량이 소규모 전투에서는 기책을 자주 사용했는지 정공법을 위주로 구사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거국적인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점진적인 진군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지금까지 제갈량의 전술이 서서히 접근하면서 잽을 날리며 들어가는 것이었다면 위연의 기책은 냅다 뛰어가서 큼지막한 훅을 날리는 거라고나 할까? 사실 촉의 주요 무장은 모조리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위연은 명실상부한 촉의 No.1이었고, 위군에 대항해서 밀리지 않을 만한 장수로는 사실상 유일했다. 제갈량도 그러한 위연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고, 위연은 ‘나에게 군대만 주면 내가 가서 알아서 이기고 오겠소이다.’라고 호언장담했던 것이다. 괜히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자신의 재량권만 침해당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간에, 제갈량은 이 계책의 위험성을 들어 위연의 청을 거절했다. 위험하다는 것은 대략 세 가지의 요소로 판단할 수 있다. 이 계책이 성공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만 실패했을 때의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심지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제갈량이 위험성을 과대평가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꼼꼼하게 살펴보아야만 한다. 이 글에서 판단할 것은 ‘이 위연의 계책은 어떠하게 진행될 것인가, 과연 타당한 계책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 본문은, 이 판단을 위해 앞으로 달려간다. 숨막히게 이어나가기 보다는 중간중간 끊어 가며 호흡을 조절하면서, 포인트를 하나하나 체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단 하나의 포인트도 놓치지 않을 테세로 흐름부터 변수까지 모조리 훑고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처음이 바로 다음 장이다.

  나. 하후무의 인물됨

  이번 장의 이름은 하후무의 인물됨이지만, 비단 하후무가 아니라 다른 인물도 역시 논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정작 하후무를 파헤쳐놨더니 다른 인물이 있었다고 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시킬 만한 인물은 위나라의 거물인 옹주자사 곽회이다. 곽회라고 하면 옹주자사인데다 애초부터 그 곳에 거의 근거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세력도 강했고 명성도 높았다. 덤으로 능력까지도 분명히 뛰어난 인물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옹주자사라는 직책 자체가 장안이 그 관할구역에 들어가기 때문에 곽회를 배제하고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황상 곽회는 장안에 있지 않았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 근거로는 첫 번째로 위연의 계책에서 곽회의 이름이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후무가 안서진동장군을 역임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촉의 입장에서는 곽회는 하후무의 몇 배나 되는 거물이다. 그런데도 곽회의 이름이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은 애초에 곽회가 없었다는 근거로 볼 만 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음의 자료이다.

  천수 태수 마준은 강유 및 여러 관리들을 이끌고 옹주자사 곽회를 수행하여 서쪽으로부터 낙문까지 순찰하였다. 그 때 제갈량이 이미 기산에 도착했다는 정보를 얻었다. - 정사 강유전

  제갈량이 북벌을 시작했을 때라고 볼 수는 없고 아마 조금 지난 시기이겠지만, 이 때 곽회의 위치는 확실히 장안이 아니었다. 아마도 관할지역 순방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옹주의 넓이를 감안할 때 이미 몇 달 전부터 장안에는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실제 북벌 때의 위군의 행보이다. 촉의 1차 북벌 시기에 하후무는 수도로 소환되고, 그 자리를 대체해서 상황을 수습한 것은 조진이었다. 이는 솔직히 말해서, 곽회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혼란스럽게 하는 수준이다. 위의 중앙군이 올 때 까지 함양 서쪽 지방에서는 이렇다 할 군사적 대응을 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이는 곽회가 장안같은 거성에 있었을 가능성이 사실상 없었음을 암시한다. 서북쪽 전방에 박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이제 이 세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해서, 장안성의 총책임자가 하후무라고 판단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자.

하후무의 자는 자림이며, 하후돈의 둘째 아들로서 문제 조비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밀했다. 즉위하자 안서장군 지절로 임명하고 하후연을 승계하여 관중도독에 임명했다. 하후무는 성정이 무략이 없고 치생(治生 - 경제활동)을 좋아했다. - 정사 하후돈전 하후무 부분4)의 배주에 인용된 위략.

  어찌 보면 사실 위연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저렇게 열전에 대놓고 ‘무략이 없다’라고 기록된 사람은 사실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안서장군이라는 직 자체도 능력과는 관계없이 친분으로 줬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다름아닌 저 지절이다. 한번 다음 구절을 더 살펴보자.

태조의 딸을 하후무에게 시집보냈었는데 이가 곧 청하공주이다. 하후무는 시중 상서, 안서진동장군 가절을 역임했다. - 정사 하후돈전

  흔히 사지절, 지절, 가절을 묶어 부절이라고 하는 데 이 부절은 군사 혹은 관리들을 지휘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뜻한다. 사지절은 2천석 이하의 벼슬아치와 자사, 군수 이하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고 지절은 군령을 어긴 자를 참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리고 가절은 내외의 제군을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쉽게 말해서, 부절을 가진 자는 상급자나 나아가 황제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남을 죽일 수 있으며,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다. 가절은 조조의 대에 받은 것이고 지절은 조비가 즉위하자마자 받은 것인데, 이 부분이 상당이 조금 거슬린다.

  안서지방의 진동장군. 진동장군은 지방의 군권 총책임자이다.(장군직에 대한 설명은 주절잡설 #3의 조인편 주석 5)를 참고할 것.) 정확한 수치를 잡을 수는 없겠지만 대략 3∼4만 이상의 병력을 통솔할 수 있는 위치이다. 거기에 가절이나 지절이 추가된다는 말은, 최악의 경우 저 병사들을 한방에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비라면 모를까, 조조가 무능력자에게 저러한 권한을 부여했으리라고 보이는 것은 조금 과장되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확한 역량을 잴 수는 없겠지만(뭐 한 일이 있어야...) 완전한 무능력자로 보는 것은 과한 평이라는 뜻이다. 물론 사생활이 지저분했던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쉽게 말해서, 하후무가 뛰어난 장수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게까지 허접한 병신이라고 볼 수도 없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냥 고만고만한 능력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뛰어나지도 않고 조금은 부족해 보일수도 있는 수준. 그 정도의 그릇이었을 것이다.

Written by
Abandoned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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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원중씨의 번역본에는 5천 석으로 되어 있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5천 석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현재 대부분의 번역 제공 사이트에서도 위의 번역으로 수정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병력 표기는 수송병력을 빼고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일단은 1만을 옳은 것으로 보고 진행하겠으나, 5천일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4) 정사에는 모든 장수들의 열전이 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형제 장수나 부자 장수의 경우에는 보통 형의 밑에 동생의 열전이 달려 있거나 아비의 밑에 아들의 열전이 달려 있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반대인 경우도 있다. 가끔 부자 장수나 형제 장수의 전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한 가지일 것이다. ‘둘 다 뛰어난 인물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진군과 진태 부자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2:00 

 

상병 노훈민 
  삼국지 연의의 애독자로써, 정말 자오고계책은 아까운 작전이 아닐수 없습니다. 
성공했다면 지금의 우리가 읽고있는 삼국지는 완전 다른 삼국지가 될지 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깝습니다. 하지만 촉의 제갈량이 촉의 열세를 알면서도 굳이 정공법을 
주장한것에 대해, 제갈량이 타고난 전략가는 아니였던걸로 보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9-06-06
13:59:16
  

 

상병 조성열 
  태클이라기보다는 질문이요! 

제갈량 1차 북벌 당시 촉의 주요무장은.. 
조운, 위연, 마대, 왕평, 이엄, 마속, 관흥, 장포, 강유... 
등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마초가 없는게 아쉽네요 촉으로썬) 

짬(!?)으로 보나 삼국지 능력치(!?!?)로 보나 
조운을 제외한다면 위연이 제일 나아보이긴 하지만... 
조운과 강유를 제외한 
각 장수들에 대한 평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2009-06-06
22:32:28
  

 

상병 양동훈 
  흠? 저의 개인적 평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정사에서나 다른 사서에서의 평인가요? 2009-06-06
22:33:16
  

 

상병 조성열 
  개인적 평도 좋고 
(가능하다면) 정사나 다른 사서의 평도 알고 싶어요. 

물론 제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삼국지 능력치"........................ 

위연이 무력 90이 조금 넘었던것 같고 
마대 이엄 장포 관흥은 대충 80대였고.. 
왕평 요화는 70대였던가요. (큰웃음) 
위연이 확실히 에이스인듯. 아하하하하하..... 2009-06-06
22:41:18
  

 

상병 양동훈 
  흠... 조운, 위연, 이엄, 마속, 강유 정도는 개인적 평을 적을 수 있기는 하겠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약간 두렵네요(웃음) 

사서를 읽은 지가 너무 오래 되서 메인급이 아니면 가물가물한지라...껄껄껄 

굳이 게임상 능력치로는 단순히 무력만 보자면 

조운은 90대 중후반 
위연정도는 90대 초반 
장포정도라면 90 이쪽저쪽 
관흥은 80대 후반 
마대 이엄은 80대 초반 
왕평 요화는 70대 중반 

요정도가 정석이죠 낄낄낄낄 
아 적고나니 왠지 쪽팔리는 이 기분은 뭐지 2009-06-06
22:49:04
  

 

상병 조성열 
  조운, 관우97. 마초, 장비 98 황충 96 
여포 99. 
정석이죠 껄껄껄 

제가 사람 하나 망가뜨리네요. 아이고 죄송해라... 2009-06-06
22:59:51
  

 

상병 양동훈 
  그쵸 껄껄껄 
삼국지 7이랑 8에서는 전반적인 능력치의 하향이 있었지만.. 그때 관우는 92 장비는 93 여포는 96.... 

아.. 이걸 왜 아직도 외우고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간에 

조운 - 조운별전이 없었다면 어디엔가 조용히 묻혀있을 우리의 자룡사마. 무용과 충성에서는 연의를 따라갈 만 하나 공적에서는 한참 못미친다. 누가 뭐래도 그는 유비의 충직한 경호원일 뿐 그 이상이었다고 보기가 힘들다. 

위연 - 관장에게는 못 미치겠지만 마황과는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A급 무장이었다. 말년이 안 좋아 좋은 평을 못 받고 있지만 확실히 능력만은 인정해 줘야 할 사람. 

이엄 - 서촉의 세력가에서 유비의 고명대신까지, 확실한 엘리트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지만 제갈량과의 권력다툼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 케이스. 능력 자체도 결코 부족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뭐 알만한 자료가 있어야지... 

마속 - 유비의 평이 너무도 잘 들어맞는 케이스. 제갈량의 아이들 중 가장 허무하게 저세상으로 가버린... 

강유 - 삼국지 주절잡설 #9를 참조하세용(웃음) 2009-06-06
23:04:25
  

 

상병 조성열 
  이엄같은 경우는 
북벌때 계속 보급 임무를 맡았다가 
언제 한번 근무태만 비슷한걸로 
관직 박탈 비슷한거 당했다는 기억이 나네요. 
그게 제갈량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린건가요? 

사실 제일 궁금한사람은 요화 관흥 장포.. 요런 분들인데. 
그래도 말씀 감사합니다! 2009-06-06
23:14:30
  

 

상병 양동훈 
  요화는 상당히 오래 살았던 인물이에요. 유선보다 늦게 죽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큰 공적을 세운 기록은 없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꾸준했던 인물이에요. 촉에서는 충분히 인정할만한 인물이고... 

관우와 장비의 아이들은 한번 자료조사를 조금 해볼게요(낄낄) 2009-06-06
23:20:00
  

 

상병 조성열 
  요화는 왕평정도로 생각하면 되려나요.. 
왕평은 나름대로 말년에 
위연을 잡는, 나름 한건 올려서 
좀 높은 관직에도 올라갔던 기억이 나는데.. 

근데 왜 삼국지 능력치는 낮은건지!!쳇 

자료조사까지 해주실필요가...... 
써주시는 글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2009-06-06
23:23:05
  

 

상병 양동훈 
  관우와 장비의 아이들은 기록이 거의 '전무' 하군요. 

장비의 아들은 '장비에게는 아들이 있었고 이름은 장포인데 일찍 죽었다' 

관우의 아들은 '관우의 큰아들은 요절했고 둘째 아들 관흥이 뒤를 이었는데 제갈량은 그의 능력을 기이하게 여겼다. 후장군(맞나)에 제수되고 몇년 뒤 죽었다.' 

결론 

둘다 일찍 죽었다 끝 

 [연재] 삼국지 주절잡설 #10-3. 사건탐방 No.1 - 자오곡 계책 本-2  
상병 양동훈   2009-06-06 19:38:35, 조회: 58, 추천:0 

항가항가... 역시 당근은 좋아요... 오늘 안에 이거 완성시킬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한번 제대로 버닝해서 결론까지 달려봐야지 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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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장안의 함락가능성.
   1) 위연부대의 험지행군

  진서지리지에 따르면 자오도의 길이는 660리. 현재의 도량형에 따르면 약 264Km(10리에 4Km 기준)가 되며 저 당시의 도량형이 지금보다 20~30% 짧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200Km를 조금 상회하는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진령산(맥)은 대략 2~3000m 정도의 높이로 이루어져 있으며 확실히, 험지행군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자오곡 계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완전군장을 하고 산악행군을 해봐야 정신 차린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는데, 솔직히 이런 식으로 다룰 얘기는 아닌 것 같고...(웃음)

  자오도가 사실 무슨 절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깊은 산 속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다. 훨씬 예전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길로, 분명히 군사가 진군할 만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숨겨진 미지의 비밀통로가 아니라 위와 촉 모두가 인식하고 있을 만한 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길을 위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는 증거도 찾을 수 있다. 이 1차 북벌 후 다음해인가 다다음해에 조진이 자오곡을 통해 촉을 공격하러 왔다는 기록이 조진전에 남아있다(자료를 찾아올 걸.. 하는 후회가 드는데, 이제와서 돌이킬 수 없다).

  물론 감안해야 할 것은, 매일 25Km에 달하는 거리를, 그것도 산악지형을 행군해야 하는 상황의 체력적 부담감이다. 현대전에서, 보병의 1일 진군거리의 상한선으로 잡는 것이 25Km이다.5)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과거라고 해도 별반 다를 점이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치중부대를 데리고 가면 그 기동력에 손실을 입는다는 점(혹은 치중부대가 아닌 그 짐을 병사들이 다 지고 간다고 가정한다면 입는 기동력의 손실)6)은 이들의 행군이 더 힘들 것임을 암시한다. 쉽게 말해서, 이들은 아마도 위연이 직접 기른 정예병력 이겠지만, 전투력의 손실 없이 행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기습전에서 병력의 기동성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감안할 때 이 행군이 입히는 손실은 상당히 크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행군이 자오곡 계책의 성패를 판단할 만한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서나 전쟁에서는 체력적인 부분을 넘어서는 정신적인 요소가 분명히 작용한다. 그리고 이 때 위연이 데리고 갈 병력들은 우리처럼 잠시 비정규직으로 2년씩 있는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병사들이기 때문이다. 낙오병도 있을 수 있고 탈진하는 병사도 나오겠지만, 그것이 전체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면 위연이 애초에 이런 계책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럴 정도였다면, 위연이라는 장수의 근본적인 능력을 모조리 의심해봐야 할 정도가 될 것이다.

  굳이 정리하자면,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타격은 있을 정도의 험지행군이다. 라는 한 문장으로 귀결될 듯 하다.

  2) 장안의 방비태세

  사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기습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병력의 양도 있고 지형도 있고 기타 여러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방어하는 측이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가이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있는 기습은 기습이 아니고, 예측할 수 없어야만 기습이기 문에 이 부분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당초 위나라는 촉한의 소열(소열제-유비)이 이미 죽은데다 몇 년 동안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자 촉한에 대해 거의 아무 방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연 제갈량이 출병한다는 소리에 조야가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에 천수군과 남안군, 안정군 등지가 모두 반기를 들어 제갈량에 호응함으로써 관중이 크게 진동하자 조정대신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만 황제가 먼저 나서서 대신들을 독려했다. - 자치통감

  장안의 방비태세는 기본적으로 거의 최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서, 뭐 성을 지키는 기본적인 준비야 되어 있었겠지만 적이 등장하리라는 것에 대한 상상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조예의 영웅성이 약간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쉽게 말해서, 이 상황은 촉에게는 이 기회가 단순한 호기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음을 뜻한다. 실제로 제갈량의 북벌 중에 가장 성과가 컸고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 바로 이 1차 북벌이었던 것을 볼 때 위연의 계책은 타이밍이 참으로 절묘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장안성은 상당히 큰 성이다. 단순히 상당히 크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의 거성으로, 위의 서쪽 지방을 통째로 아우를 만한 초대형 성이었다. 성이 크다는 말은 지켜야 할 곳이 많다는 뜻이고, 성의 사방에 흩어져있는 병력들의 경우는 예상치 못한 기습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3) 양동작전이 성립하는가?

  가끔 자오곡 계책을 논하는 데서 나오는 가장 큰 오류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자오곡 계책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제갈량의 부대가 위의 관심을 돌린 사이에 위연군이 예상치 못한 부분을 쳐서 장안을 빼앗는 작전이라고 자오곡 계책을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그 어떤 부분보다도 심각한 오판이다. 다른 부분에서는 해석상의 차이, 판단상의 차이라고 이해할 만한 견해차이가 존재하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정말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결코 양동작전은 성립될 수 없다.

  위에서 논했듯이, 장안성 기습의 가장 큰 포인트는 다름 아닌 장안의 방비태세이다. 그리고, 위에서 논했듯이 장안은 위연의 공격에 대비할 만한 준비가 별로 되어있지 않았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하나 빼먹고 있는 사실은 바로 장안성의 대비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위국 전체의 대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장안만 허술하고 다른 곳은 방어준비가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장안을 포함한 국가 전체가 방비가 없었다는 얘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갈량군이 진군하면 위군은 방어태세에 돌입하고 병력을 제갈량을 막기 위해 보낸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구심점이 될 만한 부분은 다름 아닌 장안이다. 장안성에 직접 촉군이 들이닥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해도 상관없고, 심지어 장안성의 병력을 빼내서 보내도 상관없다. 어찌되었건 간에 장안성은 전시태세로 바뀌고 경계가 강화된다. 전방에서 적군이 쳐들어오는데 중심도시는 해이해진다는 것은 상식을 초월한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대체 어떤 방식의 추론을 통해 양동작전을 주장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위연의 계책은 양동작전이 아니고, 위연의 단독 공격이었다. 두 군대는 장안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단독적으로 군대를 움직여야 했다. 제갈량은 그냥 다른 길로 진군하는 것일 뿐이었다.

  4) 1)+2)+3)+α

  그럼 이제 지금까지의 자료들에 추가적인 내용을 더해서 장안 함락의 가능성에 대해 논해보도록 하자. 위연의 공격은 위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뜻밖의 공격이 될 것이다. 자오곡에 매복병 내지는 세작이 있다고 하면 위연군에게는 그저 지옥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정황상 그랬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분명히 장안성에 빈틈은 존재하게 마련이고, 위연이 이 빈틈을 얼마나 잘 노려서 공격하느냐가 포인트가 될 것이다.

  장안성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상당히 큰 성이고, 거성일수록 빈틈은 많다. 생각할 수 있는 방법도 상당히 많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공성전은 상당히 제한된다. 우선 제대로 된 공성무기를 조달할 방법이 없고, 적은 병력에다가 군량도 부족하고 지친 상태에서 많은 병력이 지키는 성에 덤비는 것은 말 그대로 자살행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방법은 많다. 야습이라던가, 세작을 이용하는 방법, 수로를 이용하는 방법, 상대편으로 위장하는 방법, 아니면 벌건 대낮에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틈을 타 기습하는 방법 등 정말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정도의 문제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로 위연군에게는 기회가 단 한 번 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 번의 공격이 실패하면 장안의 방비태세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화될 것이다. 계속 언급하는 것이지만, 그의 적은 병력으로는 오로지 ‘예상치 못한 기습’ 일 경우에만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날린 첫 번째 펀치가 빗나가게 되면 상대방은 벗어놨던 투구를 쓰고 버려놨던 방패를 들고 기다리게 될 것이다. 뚫을 방법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위연군에게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험지행군을 통해 무척이나 먼 길을 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보급로는 끊어진다. 험지라 장안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수천 명을 먹일 식량을 구할 방법이 전혀 없다. 공격다운 공격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굶어죽을 가능성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또한, 위연군에게 시간이 부족한 또 한 가지의 이유는 제갈량의 존재이다. 위연이 장안을 함락시킨다고 하더라도 제갈량이 제 때 합류하지 못하면 위연군은 도저히 버틸 방법이 없다. 위연이 제갈량에게 ‘동쪽이 병력을 모으는 데는 20일은 걸릴 것이므로’라고 한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조예가 1차 북벌 때 정규군을 모아 장안까지 오는 데 대략 20일 정도가 걸렸다. 쉽게 말해서, 장안성을 무너뜨리고 나서 20일이면 조예의 대규모 중앙군이 장안을 탈환하기 위해 올 것이다. 위연군은 5천에 불과하고, 전투를 통해 병력의 손실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가정할 때, 10만에 달하는 위의 중앙군을 상대로 오래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제갈량군은 위연이 출발하고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짧아도 안 된다. 위의 양동작전 부분에서도 얘기했듯이, 제갈량의 출발 사실이 장안에 알려지기 전에 위연은 장안성을 빼앗아야 한다. 무척이나 난해하면서도 난감한 타이밍이 된다.

  위연의 계책은 무척이나 상세하고 정확하기까지 하다. 그런 면에서, 많은 정보를 수집한 것은 확실하며 그 정확성이 뛰어난 것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귀로 듣고 그림으로 본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무리 정확한 지도를 보고 계획을 수립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 곳에 도달해 보면 지도와는 다른 지형을 분명히 느낄 수 있으며, 세부적인 계획은 그 이후에야 수립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위연군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단점이다.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조급해지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무너져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장안성 함락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어떻다는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실패 쪽에 조금의 무게를 실어주고 싶다. 예전에는 장안성 함락도 지극히 힘들다는 판단을 갖고 있었지만 수많은 토론과 자료들을 접하며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성공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 성공을 위해서는 극복해야 될 제약조건이 상당히 많다. 다만, 위연이라는 맹장과 그가 직접 기른 정예병력이기에 그의 말 한 마디에 목숨을 바치고 나아갈 각오가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상당히 많은 준비를 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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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거리는 6.25 초기 북한군이 3일간 진군한 거리와 비슷하다. 쉽게 말해서, 초반 3일간 국군은 ‘교전’이라는 것을 사실상 해본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건 그냥 재미삼아 쓴 각주임.

6) 이 부분은 삼국지 주절잡설 #10-2 에서의 각주 3)에 의거해서 괄호를 추가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다룬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위연의 계획이 ‘병력 5천+치중부대 5천인 설’과 ‘병력 5천+군량 5천섬인 설’을 말한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연재] 삼국지 주절잡설 #10-4. 사건탐방 No.1 - 자오곡 계책 本-3, 結  
상병 양동훈   2009-06-06 23:11:45, 조회: 57, 추천:0 

와우 한방에 마무리!!!!
본-3과 결론까지~!!
댓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낄낄
간만에 써보는 장문인데다 역시 퇴고는 생략한 겁없는 글이니까,
비판도 많이 해주시구요... 껄껄껄
어쨌든, A4 11페이지나 되는 글을 그래도 쉬지않고 달릴 수 있게 해준 분들께 다시한번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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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장안 기습작전의 성공과 실패, 그 예후
   1) 장안 기습작전이 실패한다면

  굳이 이 부분을 논할 필요가 있나 싶다. 위연과 그의 부하들은 모조리 굶어죽을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다. 굶어죽지 않는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다 죽는 정도일 텐데, 별다른 성과를 낼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촉으로 돌아오려고 할 수도 있지만, 과연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까? 제갈량이 잘 추슬러 놓았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정예병력의 손실은 촉에게 무척이나 큰 부담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위연의 죽음은 촉에게 더더욱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위연을 대체할 만한 장수가 사실상 촉에는 없기 때문이다.

  2) 장안 기습작전이 성공한다면

  정말 복잡해지는 것은 이 부분이다. 장안 기습작전이 성공한다면 촉의 입장에서도, 위의 입장에서도 따져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아진다. 우선 첫 번째로, 위연의 경우 장안성에 위치한 위군을 정리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에는, 전 병력 내지는 대부분의 병력을 이끌고 동관을 점령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위연도 예상했듯이 위군이 달려오는 데는 20일 가량이 소요되고7), 이 20일 안에 동관을 점령하지 못하면 촉군은 100% 위의 중앙군에게 장안이 포위되는 사태를 불러오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제갈량군이 이 20일 안에 장안에 입성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심각한 난제라고 할 수 있다. 제갈량군은 위연군보다 빨리 출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늦게 출발해서도 곤란하다. 늦게 출발하였다가 위의 주력군이 도달하게 될 경우, 아무리 요지인 동관을 틀어막고 있다고 하더라도 위연의 병력으로는 지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거의 비어있다시피 할 장안에서 난동이라도 일어나게 될 경우 위연군은 백이면 백 난감한 사태에 빠지고 만다. 물론 장안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옹, 양 일대는 패닉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 그 상황에서라면 손쉽게 진군할 수 있겠지만 20일이라는 시간은 상당한 난제로 다가온다. 솔직히 말해서, 이 두 가지 문제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단 며칠만이라도 어긋나게 된다면 이 전략은 통째로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어찌되었건 이 두 가지 난제를 극복해서 제갈량군이 장안에 입성한다고 치면, 이제 위연과 제갈량군은 위의 중앙군과 맞서 싸우게 될 공산이 크다. 거의 100% 명제는 동관을 돌파하려고 들 것인데, 이 부분에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 싶다. 촉의 주력이 동관을 지키고 잔여병력이 장안을 정비한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한 싸움이 된다. 다만, 촉의 입장에서는 보급선이 너무 길어지는 것이 부담이다. 촉에서 장안에 도달하는 길이 워낙에 멀기도 한 데다가, 급하게 점령하면서 온 길이고, 거기에다 덤으로 험하기까지 하다. 사실 촉의 경우는 항상 식량이 부족해서 퇴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건흥 9년(231), 제갈량은 다시 기산으로 출격하였다. 목우8)를 이용하여 운송했는데, 군량이 다 떨어져 퇴각하다 위의 장수 장합과 교전해 활을 쏘아 장합을 죽였다. - 정사 제갈량전

건흥 12년(234) 봄, 제갈량이 대군을 모두 이끌고 야곡을 거쳐 출병했다. 유마8)로 운송하며 무공 오장원을 점거하고, 사마선왕(사마의)과 위남에서 대치하였다. 제갈량은 늘 군량이 이어지지 않아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함을 근심하였으므로 이에 군사를 나눠 둔전하고 오래도록 주둔할 기초를 만들었다. - 정사 제갈량전

  촉의 경우는, 항상 식량난에 시달렸다. 보급선이 길고 이어지기 힘들었던 난점도 있고, 게다가 애시당초에 먹을 식량이 항상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얼마간은 장안에 비축된 식량으로 충당할 수 있겠지만, 아주 장기간을 버티려고 작정하기는 무리이다. 결국에는 이 보급선을 잇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어찌되었건 위연과 제갈량이 힘을 합쳐서 동관과 장안을 장악한 뒤, 그 뒤에 따르는 스토리를 생각해보면 간단히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제갈량군이 그대로 동쪽으로 진군하여 낙양을 노리는 것이 첫 번째이고, 동관을 틀어막고 사수하면서 함양 서쪽을 평정해 후일 위군과 싸울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의 경우는 물론 위에게 가장 큰 위협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장안이 물론 무척이나 큰 도시이지만, 고도 낙양과는 비교할 수 없다. 만일 낙양을 빼앗긴다면 위는 그 뿌리가 흔들리는 상황이나 다름없으므로, 이 경우에는 말 그대로 양국의 목숨을 건 전면전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아쉬운 얘기이지만, 이런 상황이 오면 촉군에게 얼마나 큰 승률이 있는지 보장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촉군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제갈량의 북벌에서는 비록 지더라도 퇴각하고 전열을 수습했지만, 이 상황에서는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꼴이 되 버리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완전히 로또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의 경우는, 동관을 사수하는 데에 일단은 전력을 집중해야 한다. 조예가 직접 이끈 10만 대군이 조만간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힘든 싸움이 될 수 있지만, 동관을 지킬 수만 있으면 그 뒤로 차근차근히 함양 서쪽을 먹어갈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된다. 다만 부담이 되는 것은 함양 서쪽에서 오랜 세월동안 세력권을 형성해 온 곽회나 서막의 저항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곽회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동관과 장안에 집중하는 사이에 곽회나 서막이 세력을 모아 저항할 준비를 한다면, 그것 역시도 만만한 전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위연의 말처럼 함양 서쪽을 일거에 평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3. 結
  가. 총론

  장안 점령에 성공할 경우 촉은 운신의 폭이 늘어나게 되며 위의 경우는 상당한 부담이 작용하게 된다. 장안이 점령당하면 낙양 - 허창도 순식간에 압박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함양 서쪽의 땅은 사실상 고립된다. 하지만, 위의 온 힘을 다한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 촉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제갈량의 경우와 위연의 경우는 그 판단의 기준 자체가 틀렸다고 볼 수 있다. 위연의 판단은 ‘우리는 작고 불리하다. 그러므로 적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나아가 적을 무찌르고 한 방에 적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이고, 제갈량의 경우는 ‘우리는 작고 불리하다. 그러므로 적과의 전면전을 유도하기 보다는 차근차근히 적의 땅을 잠식시켜 상대방과의 격차를 줄여 나가야 한다. 우리는 작기 때문에 모험을 시도했다가는 한 번에 무너져내릴 수 있다.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한다.’ 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우선, 제갈량의 입장에서 볼 때, 자오곡 계책을 거절한 이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어차피 시간을 끌게 되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이므로 기책을 써야 하며, 그것을 통해 승리를 노려야 한다는 주장은 물론 일리가 있다. 위연의 주장도 가벼운 주장이 아닌 깊이 심사숙고한 끝에 나온 주장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제갈량의 입장에서는 그 이후의 일도 생각해야 했다. 위연은 장수로써의 삶을 살았지만, 제갈량은 한 국가의 군 통수권자이자 재상이었고 그의 어깨에는 국가 전체의 안위가 걸려 있었다. 그는 천하통일을 생각했지만, 동시에 국가의 지속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자오곡 계책이 성공하고 장안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고 치더라도, 그 뒤에 이어질 위와의 급한 전면적인 대치는 제갈량에게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이 부분만큼은 그가 자신이 없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위에 비해 국력이 많이 뒤지는 촉의 입장에서 솔직히 확전을 두려워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아마 제갈량도 위연의 계책을 거절하는 데 있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제갈량이 했던 북벌은 이공위수가 아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제갈량은 수 차례의 북벌을 통해 자신의 군권과 정치적 권력을 모조리 다질 수 있었고, 이것을 통해 이엄같은 고명대신들을 밀어내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물론 자료도 부족하거니와, 제갈량이 그런 소인배나 시정잡배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판단은 그저 나에게는 너무 슬픈 일이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삼국지를 한 번이라도 읽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굳이 제갈량의 입장이 아닌 그냥 필자의 입장에서도, 역시 자오곡 계책에 대한 답은 No 이다. 그 이유는, 성공했을 때의 메리트에 비해 실패했을 때의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또한, 성공했을 때의 부담감도 만만치 않게 큰 요소로 작용한다. 제갈량식의 북벌이 성공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낮았다는 사실에는 필자도 공감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급부로 위연의 계책을 띄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A가 아니니까 B가 맞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참으로 쉬운 주장인데다가, 거기에 넘어가기도 쉬운 주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언제나 일단 멈춰 서서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Written by.
Abandoned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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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지만 그렇다고 20일을 예상하고 여유 있게 움직이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제갈량군이 기산으로 진군하는 것과 장안이 떨어진 것은 애초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 짧은 시간내에 진군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8) 목우와 유마는 제갈량이 발명했다고 하는 운반용 수레이다. 연의에서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며 저절로 움직인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솔직히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아마 그 동안 쓰이던 수레를 개량해서 산악지형이나 특수한 경우에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보인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8:52:12 

 

상병 조성열 
  저라도 No에 무게를 두었을것 같네요 
설령먹어도 지키기 힘든 땅이면 
안먹는게 나은듯. 2009-06-06
23:27:36
  

 

병장 최상민 
  갑자기 떠오른 것인데요.. 
만약, 만약에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지 않고 
계속 북벌을 진행했다면 
성공했을지 하는 의문이 .. 2009-06-06
23:30:36
  

 

상병 양동훈 
  성열// 낄낄 

상민// 제가 떠오르는 그대로 답변을 드리자면, 제갈량이 20년을 더 살았어도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촉의 멸망을 아주 조금 지연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다가도, 결국 그것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서버리는군요.(웃음) 2009-06-06
23:37:07
  

 

병장 최상민 
  동훈// 왠지 그럴꺼 같다는.. 
하지만 요즘 이문열삼국지를 근무때마다 읽고 있는 독자로써 
약자(?)가 강자를 쓰러뜨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매번 든다는.. 
항상 연의만 읽다가 정사쪽에서 이런 내용 보니깐 
재밌네요~ 얼른 다음편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2009-06-07
00:13:05
  

 

상병 이종보 
  촉의 비극은, 인재가 없었다는 겁니다. 특히 유비, 제갈량의 부재 이후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격의 존재 혹은 나라를 등의 짊어질 명재상같은 존재가 없었다는게 너무 뼈아픈것 같아요. 유비의 입촉 직후 촉나라의 장수진은 다른 세력에 비해 크게 부족할 것이 없어보이지만, 그것은 표면상 봤을 때 이야기고, 유비를 비롯한 주력장수들은 전부 나이의 압박이 있었죠. 게다가 방통의 전사와 법정, 마초의 요절까지 겹쳐 결국 촉은 중국의 중심에서의 거리만큼이나 다른 세력과의 인재격차가 벌어졌구요. 방통이든 법정이든, 한명만이라도 살아있었으면 촉의 역사는 어디까지 바뀌어 있을까요. 2009-06-08
01:32:18
  

 

상병 양동훈 
  입촉 직후에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그렇고 촉의 인재부족은 지극히 심각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원맨쇼의 국가였죠. 유비의 원맨쇼. 그 이후에는 제갈량의 원맨쇼.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만, 제갈량이 죽은 이후에도 촉을 지탱했던건 거의 절대 다수가 '제갈량의 아이들' 이었죠. 기실 연의에서는 제갈량에 맞서 싸울만한 사람으로 사마의 하나만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제갈량의 초기 북벌을 제지한 사람은 조진이었고 그 이외에도 그냥저냥 국가를 끌고 갈 만한 인물이 많았죠. 재상급의 인물도, 사령관급의 인물도 모자랐고 덤으로 도지사급의 인물도 후달렸으며 군단장이나 사단장급 인물도 모조리 후달렸다는게 진짜 안쓰러운 일이죠. 

 

상병 신재호 
22.17.2.34   정말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연의 밖에 보지 못한 저로써는 이런 내용 하나하나들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새롭게 다가오는 군요. 앞으로도 계속 연재 부탁드립니다. 2009-06-08
10:51:23
 

 

상병 김태완 
16.48.6.22   상민 / 후. 이모티콘 발견. 

동훈 / 10번째 주절잡설에 걸맞는 내용이었습니다. 대박이었어요. 특히 위연의 남자다움이 여실히 드러났군요. 여태까지 끝이 안좋은 장수로만 생각했는데. 전 오히려 그에게 1만의 군사를 주어 뜻대로 하게 했으면 계속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촉에 뭔가 반전이 일어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고로 장수는 책사가 시키는 대로 하여 전투를 하는 것보다 충만한 충심아래 자기가 생각한 방식으로써 전투를 하여 승리를 얻고자 할 때 더 큰 호기를 뿜을 수 있거든요. 만약 위연이 자기 뜻대로 싸웠다면 연개소문이나 강감찬, 을지문덕처럼 불과같은 열의로써 1:100의 싸움에서 승리했을 줄 누가 알겠어요. 2009-06-08
16:58:54
 

 

상병 양동훈 
18.1.17.21   태완// 어려운 일이에요 어려운 일..낄낄 

자오곡 계책은,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리고 1만 그까짓거 죽는 도박도 해볼 수 있지 않나 싶지만, 촉에게는 올인이었거든요(낄낄낄) 

저 역시도 No라고 생각은 하지만 확정적인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아요 사실... 기책과 정공법의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이 있었겠죠 아마 낄낄 

장안성을 함락시키고 함양 서쪽을 안정시키는 상황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면 그 뒤로 삼국지의 진행이 참으로 재미있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데, 실패했다면 촉은 아마 당분간은 짱박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공산이 크지요. 

뭐 사실 결론은 이릉에서 이겼어야 된다는거(우엥)? 항가항가.... 
인구, 물자, 인재, 지형.... 무엇 하나 앞설 수 없는 팀에게 무엇이 필요했나에 대해서는 진실로 고민이 많네요... 쩝. 

사실 이 글에서는 '혹시나 오가 타이밍맞춰 함께 진군해주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은 빼고 출발했는데, 그랬다면 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기는 하구요. 하지만 뭐 오는 그냥 남북전쟁에서는 버로우타고 있었으니까... 항가.. 2009-06-08
19:51:11
 

 

상병 양동훈 
18.1.17.21   이 글이 장문이 되면서 제가 No라고 말한 포인트가 조금 퇴색되긴 했는데, 문제는 이거에요. 

위연만 싸워서 이긴다고 성공하는 전략이 아니라는 거죠. 위연이 싸워서 이기고, 제갈량도 절대타이밍 내로 싸워서 이겨서 장안에 들어오고, 절대적 근성으로 동관을 사수하고 장안을 안정화시키고, 함양 서쪽의 적들도 무찔러야 한다는거, 

요것들 중에 하나라도 삐끗하면 전략이 통째로 실패라는 게 문제죠. 

세 번 이기고 한 번 지면 이기는 게 아니고, 세 번 이기고 한 번 지면 져버리는 전쟁... 

뭐 촉의 북벌전 치고 그렇지 않았던 것이 몇 개 있었겠냐만은,,... 2009-06-08
19:55:26
 

 

상병 김태완 
16.48.6.22   동훈 / 고구려의 연개소문의 연개소문을 비롯한 몇몇 장수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었지요. 성을 수복했으나 그것도 잠시. 이를 응징하려 몰려오는 30만 대군. 하지만 의지의 우리 훌륭한 조상들은 버텨냈습니다. 인간이 죽음을 버리고 뛰어들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어차피 슬슬 힘이 약해지고 망할 것이 예상되던 촉에게 필요했던 것 그런 계산적인 것이 아니라 꺼질 가능성이 다분함을 알면서도 뛰어드는 발화정신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갈량이 머리가 좋으니 타이밍 맞추는 계산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위연과 그의 병사들의 의지로 봐서는 실질적으로 함양에서 적들이 올 수 있다는 예상은 하지 못했어도 그런 모든 일들에 맞설 수 있는 근성 하나는 어떤 군대보다 충만했을거라 봅니다. 성만 수복하면 어떻게든 또 변수가 나올 수도 있고요. 여러 가능성을 다 생각하며 위연의 출정을 제지한 제갈량의 판단에 불만을 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활개를 칠 수 있었던 한 장수의 의기 꺾인듯한 모습이 상상되어 그저 안타까웠을 뿐입니다. 2009-06-09
08:33:33
 

 

상병 양동훈 
18.1.17.7   태완// 촉이 슬슬 힘이 약해지고 망할 것이 예상되던 시기는 아닙니다.(웃음) 저 시기는 제갈량의 1차 북벌이에요.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지금 안 나는데, 꽤나 싱싱하던 시기입니다. 
방어전과 공격전은 애초에 그런 근성을 발휘하기에 차이가 있고, 지형적인 정보나 기타 부수적인 지식조차도 촉군은 위군보다 부족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난점이 있다고밖에 할 수 없어요. 방어전에서는 군민이 똘똘 뭉쳐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전쟁에서는 백성들은 위에서 수년 내지는 수십년 묵은 사람들이라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구요. 
그리고, 제가 말하는 타이밍은 '타이밍을 노려서' 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목숨 걸고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타이밍입니다. 눈치를 보면서 샤삭 때를 노리는 게 아니고, 미친듯이 싸우고 또 싸우고 돌파해서 획득해야하는 타이밍이기에 난점이 있는 거지요. 
위연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아쉬웠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전략의 성공을 통해 죽백에 이름을 남기고 촉의 위상을 드높이고 싶었을 테고, 자신감도 있었을 게지요. 하지만, 태완씨가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웃음) 2009-06-09
10:10:32
 

 

상병 김태완 
16.48.6.22   동훈 / 흠. 아무리 제갈량이라 그래도 요술을 부리지 않는 이상 위의 주력군을 쉽사리 격파하여 알맞게 장안성에 합류하긴 힘들겠죠. 민심도 민심이고요. 뭐 알지만서도 아쉬운건 어쩔 수 없군요. 제갈량이라면 요술을 부릴 수도. 촉 정도라면 민심을 잡을수도 있었을거라 생각이 있어서 말이죠. 그래도 위연의 계책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에는 저도 동감이므로 더 이상 언급 안하고 깨갱할게요. 

여튼 이번 화 덕에 참 재밌었습니다. 이 1人 다음 화를 기대하고 고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