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결핍과 사랑의 한계에 대한 단상 
 병장 김지민 05-25 09:20 | HIT : 400 




 영화 'Babel'을 보았다. DVD 케이스에 그려져있는 총과, 브래드피트의 모습. 틀림없이 액션일 것이라 생각했던 이 영화는, 예상과는 전혀 달리 '눈부신 브래드피트의 활약'도 없었고, '멋진 액션씬'도 없었다. 오로지 안타까움들 뿐이었다. 안타까움. 안타까움. 안타까움.
 왜 안타까움을 세 번이나 썼느냐고? 물으신다면, 그 것은 영화 Babel이 에피소드를 3개나 다루기 때문이라고, 그것도 '안타까운' 에피소드를 3개나 다루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허나 내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영화 전반적인 평이 아니라, 3개 중 하나의 에피소드에 대한 감상이자 '애정결핍'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이다. 그 에피소드는 일본 농아 여고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랑받지 못해 사랑을 갈구하는 '애정결핍'으로 꽁꽁 싸매진 여고생의 이야기. 듣지 못하기 때문에 소외당하고, 때문에 또 항상 상처받는, 여고생의 이야기다.

 미유키(저능아 김지민은 그새 주인공의 이름을 까먹었다. 때문에 편의상 미유키라고 명명하도록 하자)는 농아이다. 농아 스쿨에 다니는 그녀는 학교에서 배구 선수이다. 그녀는 팀원들과 친하게 지내며, 수화로 소통한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그토록 밝지만 그녀에겐 어두운 구석이 있다.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적으로 외롭다는 것. 그녀의 친구들은 농담 삼아 미유키를 '섹스를 한 번도 못해봤기 때문에 욕구불만이 쌓였다'고 놀린다.

 그리고 그녀는 영화 내내, 애정결핍에서 벗어나고자, 많은 시도들을 한다. 노팬티인 상태로 식당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고(일부러 남자들에게 보여준다), 치과에서 치료를 받다가, 자신의 이빨을 보려고 입술에 접근하는 의사를 혀로 핥는다. 그런가 하면, 친구들과 함께 남자애들과 몰려다니며 환각제를 먹기도 하고, 급기야는 형사에게 할말이 있다면서 형사를 집으로 불러들여 벌거벗고 자신의 몸을 허락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시도들은 모두 다 실패한다. 치과의사는 이게 무슨 짓이냐며 꺼지라고 말하고, 함께 놀러간 남자아이들은 자신을 빼놓고 다른 여자애들과 키스한다. 형사에게도 '이러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며 거절당한다. 급기야 그녀는 수치심에 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수치심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에겐 아무리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고, 열렬히 사랑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한 구석이 있다. 순간적으로 채워졌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영구적일 수는 없기에 그 상실감이 더 하다. 우리 인간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외롭다고 느끼는 가. 무엇 때문에 소외받는다고 느끼는가. 아무리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도 살면서 한번씩은 소외감을 경험한다. 착각이든 아니든,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친한 것 같고, 그들이 자신을 몰래 따돌리는 것 만 같은 기분을 경험한다. 그래서 외롭고, 쓸쓸하다.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단순한 접촉? 대화? 그렇다고 해서 풀어지는 외로움은 또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도 외로운 것이 사람이다.


 나는 바벨에서 애정결핍에 신음하는 그 농아인 소녀를 보며, 애정결핍의 모체에 대하여, 사람이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 궁극엔 아마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굳이 무엇을 바라지 않고 간절히 사람 자체를 원하는 것. 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애정결핍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다. 사람과 사람은 떨어진 개체이기에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지 타인을 완전히 자신과 동일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가 없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들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사랑을 대가 없는 사랑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여기에도 최소한의 자식된 도리가 밑받침 되지 않으면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완벽하게 대가 없는 사랑이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애정결핍의 완벽한 해소는 불가능하다.

 이 영화에서 더욱이 이러한 이해 불가능의 면모를 심화시키는 것이 바로 '농아'라는 소재이다. 특히나 미유키가 남자친구들과 함께 클럽에 가는 장면에서, 감독은 이따금 소리를 지워버리고 번쩍번쩍하는 광경만을 연출함으로서 미유키의 시선을 그려내는데, 나는 미유키가 느끼는 그 막연한 단절감에 대하여, 음악이 음소거 된 풍경을 통해 어느 정도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해받지 못하는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마지막에 그녀가 형사에게 쥐어주었던 편지의 내용이 궁금한 것은, 다만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녀를 이해하고 싶은 내 마음이리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대가없이 사랑해 줄 수 있다면, 사랑의 한계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텐데. 애정결핍은 해소 될 텐데.




 상병 박수영 
 저 역시 바벨은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유키(저역시 기억이 안나서) 의 에피소드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신인체 베란다에 나가서 바깥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자신의 육신을 감추던 모든 베일을 던져 완전한 나신이 되었음에도 남과 하나가 될 수 없는 그 절절함이 뼛속깊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흑흑. 그런데 에피소드는 4개가 아니었나요? 장난을 치다가 총을 쏜 소년. 그 총에 맞은 브랫 핏과 그 와이프. 그리고 브랫핏의 아이를 돌봐주던 보모. 마지막으로 미유키 05-25   

 병장 김지민 
 아 그렇네요. 총쏜 소년과 브랫핏을 합쳐버렸네요 (땀) 05-25   

 상병 이지훈 
 그녀를 이해하고 싶은 지민님의 마음은 참으로 친절하고 사람냄새 나는것 같아요. 
 저도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지민님 리뷰를 보니까 더 보고싶어졌어요. 
( 나중에 디비디 나오면 꼭 봐야겠다!) 05-25   

 병장 문윤기 
 바벨이 옴니버스였군요. 05-25   

 병장 김청하 
 헬렌 킬러가 말했죠. 시각을 잃는 것은 세계와 단절되는 일이지만 청각을 잃는 것은 사람들과 단절되는 일이기에 더욱 무서운 일이라구요. 예전엔 늘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게 불편하고 어색하고 귀찮게만 느껴졌었는데, 대화와 소통이라는 축복에 더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바벨은, 오스카용 맞춤 영화라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뭐 사람들은 그 시기에 그런 식의 영화가 나오면 다 그렇게 시비들 한 번씩 걸어보는게 아닐까 싶어요. 한 친구랑 꼭 같이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둘 다 스케쥴이 안 맞아서 못 보게 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나중에라도 꼭 같이 보려고 했었는데 이젠 그 친구가 자기 남자친구 생겼다면서 저랑 영화 안 본대요. 영화에 공감하기에 더 좋은 조건이 된 셈입니다. (침울) 05-25   

 병장 김지민 
 ↑개그라고 하기엔 너무 우울하다 05-25   

 병장 강세희 
 윤기 / 옴니버스 영화는 아닙니다. 배경상의 단절이 있기 때문에 에피소드를 나눌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05-25   

 병장 김청하 
 진지한 리플이었는데... (허망) 05-25   

 병장 우석제 
 역시나 다들 그 농아의 매력에 흠뻑 빠지셨군요... 
 영화 보는 내내 그 농아만 나오길 기다렸었던 기억이... 05-25   

 병장 이승일 
 잘 읽었습니다. 브레드피트가 나오고 일본 여고생? 도저히 상상이.. 

 근데 허망하게도 대가 없는 사랑 많이 있는 것 같은데 (.....) 
 대가가 있느니 없느니 이런거 생각하지 않고 살다보면 대가 없는 사랑 아주 많이 보일텐데.. 
 자의식이 강할 수록 대가 뭐 이런것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힘들죠. 05-25 * 

 병장 김지민 
 예를 들면 어떤게 있죠? 
 설령 눈에 보이는 대가가 아니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을 그나마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램, 그러한 대가가 있지 않나요? 예를 들자면 화분에 물을 주며 자라기를 기대하는 것 처럼이요. 
 아무런 기대없이 행동을 한다는 것이 (그것도 더군다나 사랑이라는 거창한 감정 혹은 행동에서) 가능한가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데 

' 대가'를 너무 좁게 인식하신건 아닌지요. 05-25   

 병장 이승일 
 잠을 자려고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잠자긴 힘들어지죠. 그 노력 자체가 잠을 방해하니까요. 
 하지만 잠 자는 것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 대가 없는 사랑' 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점점 그런 것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부모간에도, 친구간에도, 애인간에도. 
 자기 자신의 관찰자가 되어서는 결코 잠을 잘 수도, 사랑을 할 수도 없겠지요 05-25 * 

 병장 김지민 
 잠깐만요,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것 같은데. 

 먼저 승일씨가 반론을 제기하신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의도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 집니다. '대가 없는 사랑을 의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김지민은 괜한 생각 말고 사랑하라'가 목적인지, 아니면 '대가 없는 사랑은 실제로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김지민의 논리는 틀렸다'인지 정확히 하고 싶습니다. 

 만약 첫번째를 위한 반론이셨다면, 저는 그렇다고 해서 회의적이지 않으며, 불완전한 것이 인간의 완전성이기에 사랑도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할 수 있음을, 그래서 완전한 사랑을 추구할 생각이오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이야기 해드리고 싶고, 
( 말하자면, 괜히 사랑에 대해 '딴지'를 거는 수작이 아니라, 스스로가 겪는 사랑의 한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서 그렇습니다. 사랑을 하다보면 저 스스로도 모르게 계산을 하는 경우가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도 많으니까요. 말하자면 '딴지' 보다는 '반성' 내지 '안타까움'정도입니다) 

 두번째의 목적을 위한 반론이셨다면, 제게 충분히 와닿지 않습니다. 바로 위에 다신 댓글에서 잠자는 비유는 훌륭해 보입니다만. 죄송하게도 제게 원론적인 합치점이 보이지 않는군요. 

 또한, 자기 자신의 관찰자가 되어서는 결코 잠을 자기 힘들겠지만, 자기 자신의 관찰자가 된다고 해서 사랑을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왜 못하죠? 순수하게 감정으로 와닿지 않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오히려 승일씨가 제시한 '자기 자신의 관찰자가 되어서는 사랑을 할 수 없다' 라는 말에 원론적인 사랑의 한계가 내포되어있는 것인가요? 05-25   

 병장 김지민 
 세희 / 제가 이야기하는 '대가'란 심리적 기대감을 아우르는 모든 '피드백'을 말하는 것이기에 화폐니 현 사회구조니 하는 이야기는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바라는 기대심리가 현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세희씨가 승일씨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승일씨가 이야기 하는 바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 한 것' 이 아니고 애초에 가능 하다 아니다를 생각 안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행했을 때에는 '가능하다'는 말도 성립이 안되는 거지요 
 차라리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로 판별하자면 앞서 말씀 드렸듯이 자신을 객관화 해야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가 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05-25   

 병장 이승일 
 지민 / 
 이 글에서 지민씨는 "완벽하게 대가 없는 사랑이란 불가능하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위해 노력할테니 걱정마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납득하기 힘든 논법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절대로 불가능하지만 나는 어쨌건 노력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의미있는 말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멋지기는 하지만) 진심이라고 볼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사람이 노력하는 것은 그것에 최소한의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니까요. 
 정말로 노력할 생각이셨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말은 안하셨을테고, 정말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노력할 것이다' 라는 말은 안하셨을 것 같아요. 때문에 저는 둘 중 하나는 착오 혹은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불가능하다" 라고 주장한 쪽에 더 무게를 두셨다면, 제 리플의 목적은 "가능하니깐 걱정 말아요" 가 될테구요, "그렇게 노력할 것이다" 에 더 무게를 두셨다면 "잘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불가능하다' 라는 말은 틀린 것 같네요" 가 될 것입니다. 

 한편, 왜 자기관찰자가 조건없는 사랑을 할 수 없느냐는 질문에는 간단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관찰하는 행위는 생각하는 행위이지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찰이란 대상과 충분한 거리를 가질 때에만 명료해지는 법입니다. 반면 사랑은 대상과 한 없이 가까워지는 행위이죠. 따라서 이 둘은 상충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론적인 사랑의 한계가 아닙니다. 사랑에 대해 관찰하고 있는 사람은 관찰하고 있는 것이지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사랑 자체에 한계를 긋거나 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세희 / 공감합니다. 분명히 대가적 사고방식의 이면에는 현대사회의 경제환원주의가 존재하고 있지요. 05-25 * 

 병장 김지민 
 그 증거로 승일씨의 이 문장 

[ 대가가 있느니 없느니 이런거 생각하지 않고 살다보면 대가 없는 사랑 아주 많이 보일텐데.. ] 

 에 명백한 오류가 있잖아요 05-25   

 병장 강세희 
 지민 / 제 댓글은 승일씨에게 하는 얘기였으나 글을 쓰는 사이 승일씨의 댓글에 대한 지민님의 댓글이 이미 올라와 있었고 논의를 흐려놓았다고 생각해서 글을 지웠는데 또 거기에 대한 지민님의 댓글이 올라왔네요. 혼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 논지는 승일님의 기본적 입장에 동의하면서 한편으로 대가없는 사랑의 확장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변화와 구조적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전 댓글 / 저는 승일님과 마찬가지로 대가 없는 사랑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찾으려고 하면 오히려 보이지 않을거라는 점에도 동의하구요. '난 밸런타인데이에 10만원짜리 선물을 주긴 했지만 화이트데이에 뭘 받건 신경쓰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대가를 바라지 않는 태도에서 오히려 멀어지는 일이니까요. 다만 모든 것이 화폐로 치환되어야만 그 가치가 표현되는 현 사회구조는 주체가 대가를 바라도록 끌어당기고, 그것을 의식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해야 합니다. 05-25   

 병장 이승일 
 지민 / 그것이 왜 오류이죠? 우리가 '아름다움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 가 불가능한가요? 05-25 * 

 병장 김지민 
 승일 / 사람은 완벽해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완벽해 지려고 노력하죠. 그것도 의미없는 말입니까? 한계점은 명백히 있지만 최대한 그것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람 아닙니까? 05-25   

 병장 이승일 
 지민 / 하지만 정말로 완벽해지길 노력하는 사람은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정말로> 완벽해지려고 노력한다면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 완벽함을 달성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완벽함이 존재하느냐의 여부는 다른 문제입니다. 지민씨는 스스로가 그런 사랑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하셨습니다. 05-25 * 

 병장 김지민 
 저도 승일씨처럼 반박해 보겠습니다. 
' 완벽해 질 수 없다'와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른 말입니다. 
' 저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적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을 뿐이죠. 존재한다 아니다는 멈춰진 명제이고 가능하다 아니다는 움직이는 명제이기 때문에 엄연히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요, 또한 승일씨가 제시하셨던 '도달할 수 있다 없다'와도 겹쳐지는 것이 '가능하다 아니다'로 보이는데요? 

 오히려 대가 없는 사랑이 '있다'고 이야기하신 건 승일씨입니다. 저는 그게 '있냐'고 되 물었을 뿐이구요. 

 말꼬리 붙잡고 늘어지는 건 그만 하고 



 완벽함을 이룰 수는 없다라는 명제하에 하는 노력이란 '완벽' 그 자체가 되고자 함이기 보다는 '단점'들을 최대한 커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대가 없는 사랑은 없다라는 한계를 설정해 놓더라도, 노력할 수 있는 까닭은, 고쳐나갈 단점들이 많기 때문이며, 이런 단점들을 커버할 시에 완벽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완벽 자체를 추구한다고 오해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제 언어의 불찰입니다. 

 사랑의 한계점에 대해서 파악하고 안타까워하며, 이러한 한계점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05-25   

 병장 김지민 
 그리고 아름다움과 '대가 없는 사랑'을 한 선에 놓고 비교할 수 없습니다. 
 승일님은 '객관적으로 파악하면 대가 없는 사랑을 찾기란 힘들다'고 이미 이야기 하셨습니다. 문맥상 힘들다는 '불가능하다'로 고쳐써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승일님은 아름다움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파악하면 아름다움이란 없다'라는 명제를 설정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개의 차이는 

 대가 없는 사랑 : 원래 없음 -> 생각 안하고 있음(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상태) -> 생각해 보니 없음 
 아름다움 : 원래 있음 -> 생각 안하고 있음 -> 생각해 보니 있음 

 의 차이입니다. 05-25   

 병장 이승일 
 지민 / 논의가 쓸데없이 길어진 것 같군요. 저는 지민씨와 '논쟁'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지민씨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그에 대해 또다른 반박을 하실테고 결국 남는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음이 전부입니다. 

 지민씨가 말씀하셨듯이 이 글은 다소간의 분노와 안타까움에 의해 쓰여졌을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저 역시 안타까움을 느끼며,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서 대가를 바라는 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 때문에 괴로워하고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결코 스스로의 현명함이나 지적인 우월함을 드러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 깊이 신뢰한 나머지, '내가 못하면 남도 못한다' 는 발상에 도달한 것에 불과합니다. 사실 지민씨는 대가없는 사랑이 있다고 믿고 싶고, 그것을 발견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저는 단지 그것이 존재한다고, 그러니 걱정말라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치열한 관찰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로 인해 지민씨가 분노와 안타까움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래요. 05-25 * 

 병장 김청하 
 좀 다른 얘기라 죄송스럽습니다만, '무한대'라는 수가 존재하진 않지만 그에 무한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는거 아닐까요. '완벽'이라는 것은 어떤 정적인 상태이기에 이 비유는 옳지 않은 걸까요? 05-25   

 병장 김지민 
 승일 / 원래 논쟁은 어떻게 결론이 나든 허무해지더군요. 설령 얻은 것이 있을지라도, 끝의 기분은 그렇더라구요. 

 만약 이 글을 읽으시면서 '내가 못하면, 남도 못한다'의 논리 때문에 불쾌하셨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스스로의 현명함이나 지적인 우월함을 드러내려는 제 내심의 욕심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저는 이 글을 쓰고 싶었고, 그 안타까운 서정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시로 안타까움을 이야기 하는 것과 비슷하며, 이것은 결코 독자들을 조종하고자 하는 선전과는 성격을 달리한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물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으셨겠지만) 

 한가지 속상한 것은, 승일씨께서 최초 답글을 다실 당시엔 제가 어떤 심정으로 이 글을 썼을 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셨을 거라는 예상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 승일씨의 답글은 저를 안도시키려는 목적 보다는 정작 승일씨께서 말씀하신 '지적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답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한 논리가 공격받자 저는 방어를 했고, 이렇게 논의를 거친 우리가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이해에 다다랐으니 생각보다도 우리는 이번 논의를 통해 남긴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한계성에 대한 생각은 어제 바벨을 보기 전부터, 여자친구와의 교류 속에서 피어난 오래된 감상입니다. 꼭 이번 여자친구 뿐만이 아니라 저번 여자친구까지 포함해서요. 

 오히려 제가 바랬던 위로는 제 논리가 공격당하는 '대가 없는 사랑은 있다' 가 아니라, '대가를 바래도 괜찮다'였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최근 사랑의 이상향이 너무나 높아진데에 대한 분노를 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인간들이 정의해 놓은 사랑은 인간들의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류의. 분노와 안타까움. 05-25   

 병장 이승일 
 지민 / 네, 첫 리플이 제가 보아도 생각없이 툭 뱉어놓은 것 같아 죄송해요. 그것이 '공격' 으로 생각되셨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인간은 참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요. 자기의 상처를 자꾸 자극하고 싶어하죠. "자, 봐라. 나 이만큼 아프다!" 라는 듯이 말이에요. 그 말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면서, 원망하고 분노하죠. 마치 누군가는 동정해 줄 것처럼. 우리는 누구에게 원망하는 것일까요? 05-25 * 

 병장 우석제 
 농아는 매력적이다. 05-26   

 일병 김준호 
 장애에 대한 무지.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