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믿음에 관하여 
 병장 이승일 05-15 14:45 | HIT : 257 



 믿음과 앎에 관하여 



 이성과 합리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신뢰 받는 현대 사회에서, "믿는다" 라는 말처럼 부정하게 여겨지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아는 사람들을 따르려고 하지, 무언가를 믿는 사람들을 따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믿음은 단지 근거의 결여를, 그 결여에 대한 자기 위안을 의미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과 앎은 본질적으로는 다른 것이 아니다. "나는 이영기가 괴수라고 믿는다" 라고 말할 때, 그것은 내 심리상태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이러이러한 심정이 존재한다" 는 것이 아니다. 대체 누가 내 마음 따위에 관심을 갖겠는가? 나는 '이영기가 실제로 괴수라는 사실' 을 약간 주저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저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완전히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지는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판단을 내릴만한 여러 이유들이 있으며, "이영기는 괴수인가?" 라는 논술문제에 대해서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근거들이 있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이영기가 괴수라는 것을 안다" 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 말 속에는 '이영기가 괴수라는 것은 어쨌거나 사실이다' 라는 것이 전제되어있다. 그러나 내가 전제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사실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영기가 괴수라는 것을 안다" 라고 쓴다고 해서 더 근사한 논술 답안이 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믿는다' 라는 표현보다는 강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결국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단지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영기 ∈ 괴수' 라는 앎 속에는 여전히 불확실한 부분들이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단지 그 부분이 나에게 의미하는 바가 극히 적을 뿐이다. 사실 우리가 '안다' 라고 생각하는 지식들 속에 얼마나 많은 믿음이 포함되어있는지 생각하면 놀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의 99%는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은 것이다. 우리는 그 지식을 전수해준 사람이나 책의 권위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빛의 속도에 관해 실험을 해보았으며, 광전효과를 경험해보았으며, 피라미드의 내부를 만져보았고, 달의 표면에 도달해보았는가? 역사적으로 축적된 지식이란 전부 '그렇다더라' 라는 소문의 일종인 것이다. 그러나 이 소문들은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들로 인해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모든 믿음은 여하간의 앎을, 모든 앎은 다소간의 믿음을 포함하고 있다. 믿음과 앎은 근본적으로는 다른 것이 아니다. 믿음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불완전하게나마 무언가를 안다는 뜻이다. 앎이 우리를 어떤 판단과 가치관으로 이끌고 행동으로 이끌듯이, 믿음 역시 판단과 행동으로 우리를 충분히 인도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앎도 완전할 수 없음을 생각해본다면 이들의 차이는 말 그대로 정도의 문제에 불과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경우에 한해서는 이 둘의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차이점이 부각된다. 그것은 '최고의 앎' , 즉 진리(the Truth)의 문제와 관련된 경우이다. 만약 인간이 진리를 완전하게 알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나는 ~ 를 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가 실수나 착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 한, 신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면 '나는 ~를 믿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여전히 그것에 도달하지 못한 일개 중생일 것이다. 한편 인간이 결코 진리를 완전한 형태로 소유할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나는 ~ 를 믿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는 절대로 신일 수는 없지만, 그것에 가까운 앎을 소유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 를 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여지 없이 오류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는 알 수 없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변수들의 개입을 배제한다면) 진리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의 우열, 혹은 승패는, 그 진리가 인간의 이성으로 온전히 파악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온전한 파악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고,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믿어야 할 것이다. 


p.s. 한편 나는 '결코 알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경우는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 을 따라야할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상병 박준연 
21 세기 문명은 이제 이성을 넘어 감성이 대접받는 시대로 다시금 가고 있지요. 
 데카르트가 맹목적인 광신적 믿음에서 냉철한 이성을 구해 냈다면, 
 그 이성에 따뜻한 가슴까지 줄 수 있는 철학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05-15   

 병장 이승일 
 준연 / 감성이 대접받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반향이거나 혹은 속임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적 분위기이기도 하구요. 우리의 일상은 무분별한 감성에 더 많이 노출되어있지만, 전체적인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적으로 계획할 것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준연씨 개인의 삶과 그 계획을 생각해보세요. 
( 한편 데카르트의 책을 직접 읽어보신다면 "데카르트가 맹목적인 광신적 믿음에서 냉철한 이성을 구해 냈다" 고 말하진 않으실 것입니다.) 05-15 * 

 상병 박준연 
 승일/ 내공이 약하여 방법서설이나 성찰은 읽어보지 못해 드릴 말씀이 없지만 (..) 승일씨 글을 보고나니 철굴에서 데카르트도 신학의 굴레를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고 나와있었던 것 같네요, 
 데카르트 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신' 중심의 진리판단 기준을 뒤엎어버리면서 시작하는 게 스피노자이니 데카르트보단 스피노자가 더 적합한 선택이었으리라고 생각되네요.. 05-15   

 상병 조진 
 감성이 대접받고 있다는 것이 반향이거나 속임수라..제 짧은 소견으론 자극적인 언어이나마 동의할수 밖에 없네요. 
 이성제일주의였던 과거의 반대급부로 감성을 중심으로 한 포스트모던이 소위 뜨는 것이겠죠. 그 포스트모던도 오로지 감성제일주의 라기 보다는 이성을 품은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05-15   

 병장 이승일 
 조진 / 저는 포스트모던주의에 대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것을 포함하는 현대 사회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포스트 모던니티는 일부분을 이루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전반적 요소들은 전혀 포스트 모던하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계획이 100년 전보다 더 포스트 모던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히려 모든 것이 더 예측 가능성 안에 들어와있고, 계산의 대상이 되어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세상을 너무 각박하게 보는건가요? (웃음) 05-15 * 

 병장 홍연택 
 우리는 믿어야 할 것이다. 05-15   

 상병 조진 
 뭐 사실 모던이니, 포스트모던이니 하는 이야기는 예술이나 건축이나 하는 분야에 국한되는 이야기이겠죠. 근데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철저히 믿으시나봐요?(하하) 05-15   

 상병 김영훈 
 포스트 모던은 뭐죠? 
 새로나온 시리얼인가? 

 그러고 보니 데카르트도 빵 아닌가요!? 05-15   

 병장 이승일 
 조진 / 맙소사, 포스트 모던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씌인 것이 철학인걸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건 안하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신이 있다면,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도 여전히 그의 뜻일테니까요. 

 영훈 / 포스트 모던의 경쟁 제품으로 켈로그 조던이 있습니다. 우겔겔겔 05-15 * 

 상병 조진 
 승일/아 철학을 말하지 않으려 한게 아니라 대략 그 부류(예술,철학,등등)를 뭉뚱그려 한 말입니다. 너무 놀라며 오해마시길(땀) 
 그렇다면 카오스마저도 조물주의 뜻이란 말이 되는거네요. 
 그렇다면 주사위놀이도 신의 몫이라면, 신은 왜 자신이 설명 못할 일을 저지르는 겁니까? 05-15   

 병장 이승일 
 조진 / '카오스' 로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단지 물리적 무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런 것은 원칙적으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질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유 의지가 있다는 면에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05-15 * 

 병장 홍연택 
 조진/[그렇다면 주사위놀이도 신의 몫이라면, 신은 왜 자신이 설명 못할 일을 저지르는 겁니까?] 이 대목이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05-15   

 병장 이승일 
 조진 / 중간에 리플이 바뀌었군요. 어쨌든 동일한 대답일 수도 있는데, 제가 의미한 주사위 놀이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한 것입니다. 만약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자신을 따를 수밖에 없는, 그런 세계를 만들 이유가 있을까요? 신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는데 따른다는 것이 의미있는 것 아닙니까? 핀트가 약간 벗어난 것 같기도 하지만, 제가 의미한 '주사위' 는 자유 의지이기 떄문에 뭐 이렇게 말해야할 것 같습니다. 05-15 * 

 병장 홍연택 
 승일//글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자유의지'란 말을 보니까 참 오묘하네요. 자유의지에 대한 승일씨의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해요! 05-15   

 병장 이승일 
 연택 / 쪽지를 이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