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알랭 바디우 입문  
상병 박원익  [Homepage]  2009-08-08 16:39:07, 조회: 117, 추천:2 

다소 장황한 독서후기이면서도, 동시에 저의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 알랭 바디우에 입문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인용들은 최근 직장 분위기 상 기억에 의존하였고, 가장 주된 참고문헌은 Peter Hallward의 <Alain Badiou: subject faithrul to truth>입니다. 나머지 참고서적은 시중에 번역되어 나온, <사도 바울> <존재의 함성> <조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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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이란 무엇인가?

  알랭 바디우라는 프랑스 철학자를 수식할 수 있는 표현이 무엇이 있을까? 다른 무수한 프랑스 철학자들에게는 나름의 어울리는 광고성 수식어들이 손쉽게 붙여질 수 있다. 가령 들뢰즈에게는 '유목적' 욕망의 아나키즘을 옹호하는 철학자, 푸코에게는 지식과 권력의 공모관계를 예리하게 파해친 생체권력의 철학자, 데리다는 철학을 철학 자신에 대한 아이러니한 문학적 자기논평으로 변모시킨 '해체주의' 철학자, 기타 등등. 그러나, 사실 다른 (프랑스) 철학자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독서시장에서 한참 인지도가 떨어지는 '바디우'(그의 번역된 저서로는, <철학을 위한 선언>, <존재의 함성>, <조건들>, <사도 바울>이 전부이며, 그 자체로 철학적 사건이었던 <존재와 사건>은 아직 번역되지도 못했다)에게는 딱히 어울리는 '섹시한' 수식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알랭 바디우를 소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답변은, 그는 다른 무엇이 아닌 그야말로 진정한 "철학자" 그 자체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물론 이러한 대답은 아직 우리나라 독서대중에게 낯설고 불충분하기만 하다. 그렇다. 이것이 우리의 현 주소이다. "철학"이란, 마치 "느와르"라는 하나의 영화 장르가 다른 기타 영화 장르에 대해 그러했듯, 지금까지 다른 철학 외적인 영역을 얼룩 짓는 일종의 부차적 술어述語/빈사賓辭의 역할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어서, 지금까지 철학 그 자체의 본연에 대한 물음은 일종의 빈사瀕死상태에 이르렀던 것일지도 모른다. 느와르가 자신의 최초의 역사적 기원을 넘어서, 탐정물 뿐만 아니라 SF와 심지어 서부극과 사극의 각 영역에서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서 기능했듯이, 오늘날 정말 몇 안되는 교양 독서층에게도 철학이란 마치 그러한 장르적 빈사賓辭/瀕死의 소임을 다 해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필자는 '미셸 푸코'가 얼마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지에 대해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 일이 있었다. PSAT 모의고사 지문에서도 푸코에 대한 아티클들이 단골 소재로 다뤄지는 것에서부터, <감시와 처벌>이라는 인트라넷 책 소개가 인문학 페이지 맨 상단을 차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평소에 철학이나 인문학 전반에 미심쩍인 시선을 던지고 있었던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지인은 <감시와 처벌> 서평을 보여주며 매우 호의적으로 평가해준 적이 있었다! 푸코는 그야말로 '장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신호일까? 어쩌면 감옥제도나 근대적 감시규율들에 대한 그의 계보학적인 묘사들은, 근대성의 공간 자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불러 일으키기는커녕,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포르노그래픽한 쾌감마저 주는 건 아닌가?

  그리고 비슷한 사정은 오늘날의 잘 알려진 다른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푸코/들뢰즈 열풍 이후 오늘날 널리 교양 독서층에 알려진 사상가/비평가들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더더욱 명확해진다. 오늘날 철학계에서 유명한 상당수의 인사들은, 사실 철학 외부의 어떤 '장'에서 철학을 사고하며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에 연루되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 비평가의 위치에서 철학에 접근해 왔으며, 자크 랑시에르는 '미학'Aesthetics의 감성적 영역에서 철학적 담론의 작용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슬라보예 지젝과 아즈마 히로키는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싶지 않지만) 대중문화와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철학에서 자신의 참조점을 끌어오곤 했다. 그 외에도 페미니즘 이론에서는 쥬디스 버틀러, 정치신학에서는 아감벤... 물론 이들 모두의 원조격은 자신의 분석담화에 철학적 담론을 일종의 '우화'로서 끌어들였던 '라캉' 자신이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철학 자체를 어떤 근본적인 장면으로 인정하길 거부한다는 점이다. 철학 이면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철학적 반성은 언제나 자신의 이면에 있는 어떤 근본적인 역사적 장면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철학은 각자의 공식적인 입장이 무엇이든 간에, 다소간에 '해체주의적'이다. 이러한 해체주의적 '반철학적 제스처'는 고진이 "철학이 수행하는 작업에 요점을 불어넣는 것은 역사적 맥락이다"라고 말하는 데서 정점에 달한다. 가령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은 68혁명이라는 역사적 배경 없이는 제대로 읽혀질 수 없다. 그들이 고안해낸 알쏭달쏭한 개념어들(전쟁기계, 유목적 사유, 클리나멘, 기관 없는 신체, 기타 등등)은, 당대의 프랑스의 젊은이들을 둘러쌌던 지적-정치적인 분위기들이 없다면 이해될 수 없다. 가령 누구라도 연단에 올라설 수 있었던 대학의 바리케이트 내부에서, 한 번도 대중 앞에 나서 본 적 없었던 연설자가 더듬거리거나 당황해하면, "당신의 말할 권리를 옹호한다!"고 청중들이 외치며 환호했던 순간들을 보라. 이게 없다면 그들의 사유는 요점을 상실하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로의 폭력적 이행과정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없었다면,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테제는, 그 자체로 철학적 '사건'이 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철학적 사유'는 진정 '새로운 것'이 발생하는 다른 (정치적, 예술적, 기타 등등) 사건의 영역에 자신의 자율성을 위임해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철학은 단순히 형식적인 말장난에 불과한 게 되고 말 것이다. '사건의 장소'는 다른 데에 있다. 사유는 그것에 복무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바디우의 포지션을 일별할 수 있다. 그의 입장은, 철학적 사유가 그 자체로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바디우에게, 플라톤 이전과 이후는 결코 동일한 역사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점은 데카르트와 칸토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뭉뚱그려' 철학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하나의 명확한 전선으로 나뉘어지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디우라는 철학자는 모든 철학적 입장을 '적과 아군으로' 명확히 나누는 작업을 수행해왔다. 그것은 '철학'(철학적 사유는 그 자체로 하나의 단절적인 사건이다)이냐 '반철학'(철학적 사유는 실제 삶과 세계의 신비를 반성하는 것이다)이냐는 두 진영으로 구분짓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디우는 다른 어떤 게 아니라, 진정한 '철학자' 그 자체인 것이다. 


2. 플라톤주의자 알랭 바디우 

  여기서 바디우라는 철학자의 '예리한 칼날'들을 몇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오늘날 바디우의 가장 불온한 제스처는 '플라톤'에 대한 그의 고집스러운 옹호이다. 가령 칼 포퍼가 거의 다른 모든 현대 철학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듯, '플라톤'은 서구 정신사에 있어서 '전체주의적 전조'의 원조격으로 매도된다. 철학적 진리는 범부의 의견doxa이나 감상이 아닌 '이데아'의 차원에 존재한다는 플라톤의 단언은, 다양한 의견들간의 경쟁을 통해 형성되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장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의견도 다른 의견에 대해 궁극적인 우월성을 차지할 수 없다. 특수한 의견을 진리의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것은 오늘날의 민주적 원칙에 비춰볼 때, '반칙'이라는 것. 아마 바디우에게 이만큼 멍청한 '의견'doxa도 없을 텐데, 바디우에게(플라톤에게) 철학적 진리란 단순히 수많은 의견들 중 하나의 특이한 의견도 아니며, 심지어 의견들 중에서 가장 우월한 의견도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적 진리는 오히려 모든 의견들의 유효성을 중단시키는 '사건'으로서 선언declare되는 것이다. 진리(이데아)는 의견(시뮬라크르)에 대해 단순히, 우위를 차지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해 어떠한 비교도 거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사실은, 그러한 '사건'이 없었더라면 포퍼가 그토록 상찬했던 민주주의 자체도 존립여부가 불투명했으리라는 점이다. 가령 프랑스 혁명기에 선포된 인권선언에서, '모든 인간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러한 '인간'이 누구인지(남자인지 여자인지, 재산가인지 빈민인지), 어떤 '법' 앞에서의 평등인지에 대한 '토론'을 거부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즉각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류 역사상 프랑스 대혁명에 준하는 수 많은 봉기들과 반란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에만 머물지 않고 역사와 인류의 조건들을 초월한 '진리'의 준거가 되었던 것은, 그것이 담지했던 진리(법 앞에서 '왕'조차도 평등하다)에 대한 순수한 공리적Axiomatic인 '선언'이 있었고, 그러한 선언의 결과Consequence를 끝까지 추구하는 주체들(자코뱅파의 공포정치)의 충실성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인권 선언'에 기입된 공리Axiom(거기에서는 '인간'이 뭔지, '권리'란 뭔지, '법'이란 뭔지에 대한 역사주의적 맥락의 참조는 존재하지 않는다)적인 단언을 통해, 프랑스라는 특수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벌어진 각종 이해관계의 충돌로 시작되었던 프랑스 대혁명은 영원불변한 진리-사건으로서 선언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선언'은, 그러한 선언을 토론에 붙이려는 어떤 해석이나 궤변들에게도 자신의 자리를 내놓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원리를 정초했다. 그렇다면 인권헌장을 고안하는 데 기여했던 합리주의적-계몽주의적 프랑스 철학(자코뱅 파는 바로 그러한 '철학자'들이었다!)은 그의 사유 자체만으로 '사건의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처럼, 철학적 테제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역사적 맥락이라는 말은 순전히 '반철학적'인 것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철학이 역사적 맥락과 무관한 의미를 선취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바디우의 요점은, 철학은 어떤 '의미'와도 '단절'하는 지점에서 자신의 힘을 획득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언표는 그 자체로 순수하게 '무의미한' 익명적인 선언인 한에서, 새로운 보편적 세계지평을 열어젖히는 하나의 특이점으로서 기능한다. 이렇듯 사유의 힘이 진정으로 세계를 둘로 쪼갤 수 있다는 신념만이 유일하게 적법한 철학적 신념인 것이다. 실제로 '보통사람'들에 의해 지지되어 왔던 역사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선언'들은 어떤 정치적 음모나 야심가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왔다. 그것은 세계를 둘로 쪼개며,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위한 복무자들과, 그것에 반동적인 역사의 구차한 잔재들로 나누어버렸다. 이것이 '사유의 힘'이다.  

  이 점에 관해서라면 우리 시대의 최후의 형이상학자 들뢰즈는 어떨까? 훌륭한 철학자는 토론을 제의해오는 논적들을 무시해야만 한다고 그가 말하는만큼 그 역시 '플라톤주의자'는 아닐까? 여기에 더해, 들뢰즈 역시 오늘날 만연해 있는 반철학적 '사유'에 맞서, 가장 급진적인 사유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건'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은 어떤 일상적인 사고방식으로도 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만큼 그는 아름다울 정도로 오만했다. 이것은 이데아는 어떠한 의견과도 경쟁하지 않는다는 플라톤의 확신어린 어조를 반향한다. 


3. 사건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

  그렇다면 우리는 바디우를 '사건의 철학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건"은 언제나 그러한 사건의 진리를 단호하게 선언하는 주체의 전투적 사유 속에서 지속한다. 이러한 사유는 언제나 일련의 선언적인, "공리적"axiomatic인 규정prescription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사유란, 내밀하고 성찰적인 사변이나, 해석적인 활동이 아니라, 일종의 수학적 공리와 유사한 원칙들에 대한 단언으로 구성된다. 그러한 원리들을 충실하게 고수하는 주체적 참여가 아니라면, 사건은 단순히 역사교과서에서 단조롭게 서술되는 역사적 맥락들의 직조물에 불과한 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렇듯 주체적 선언에 의해 진리로 정초된 "사건"이라면, 가령 나치즘도 "진리-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순전한 결단만으로 어떠한 사건적 진리가 정초된다는 것은 분명 위험한 발상이며, 따라서 사건적 진리의 조건conditions을 보다 상세하게 해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바디우 철학의 상부구조를 이루는 "사건의 철학"의 기저에 그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또 다른 "존재론"을 언급해야한다. 바디우에게 있어서 진리는 언제나 '사건적'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돌발적인 사건은 어떤 초월적인 기적이나 유아적인 결단주의Decisionism와 조금도 비슷하지 않으며, 언제나 어떠한 구체적인 존재론적 상황 내부에서 발생한다. 가령 우리는 '사건'을 언제나 전혀 예상치 못한 우연한 조우를 통해 마주친다. 하지만 주의해야할 것은, 사건이 오직 우리의 인식을 사전에 조건짓는 어떠한 구조의 관점에서만 "우발적"이고, "주변적"이라는 점이다. 이때 우리가 기필코 사유해내야만 하는 것은, 처음에 체제의 단순히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역기능과 실패들로만 보였덧 것이, 나중에 가서는 체제 전체의 '진리'를 말해주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혁명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진리-사건'으로 정초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흔하디 흔한 식량폭동으로 일어났던 것이, 앙시앙-레짐 자체의 구조적인 부패의 징후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 다른 예로서, 가령 기존의 조성 음악의 관점에서 무조성 선율은 단순히 조잡한 '불협화음'에 불과했다. 그러나 쇤베르크는 후일 그만의 무조 음악atonal music을 통해 (쇤베르크 曰) '무조성' 선율을 부르주아 조성 음악이 지닌 자기만족적인 부도덕성을 폭로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활용하면서, 현대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질서에 대해 예외적인 무질서와 위기 자체에서, 그러한 질서로 번역될 수 없는 예외적 지점을, 기존의 질서를 무無로 돌려 버리는 공허를, 어떠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일관된 사유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것이다. 가령 쇤베르크의 '무조음악', 혹은 칸토르의 '집합론',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각각 조성음악 내부에서, 혹은 기존의 수학적 공간에서, 주류 부르주아 시장경제학에서 항상 부인되는 '존재'를 어떤 사건을 통해 마주쳤다는 것을 "선언"Declare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적 "선언"은 우리 상황 속에서 항상 은폐되어 있는 내재적 예외들을 불변의 보편적 진리로 '공식화'Formalize하는 고된 작업을 요구한다. 여기에 대한 기존의 체제의 반응은 언제나 일관되게, 그러한 '사건'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부인의 제스처이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소음에 불과하다, 그것은 계산의 실패에 불과하다, 그것은 시장이 조정기를 거치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러니 여기에는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으니, 각자 자기 할 일이나 해라! 그러나 사건을 선언하는 주체들이 기존의 인식지평을 파괴하고 나서, 그러한 주체들에게 그러한 사건이 후일 보여주게 될 '진리'는, 그것이 어떤 기적도 혹은 단순한 우연도 아니었다는 궁극적인 진실이다. 


4. 바디우의 수학-존재론

  바디우의 존재론은 그의 사건의 철학을 이루는 공리들만큼이나, 명백히 "수학적이다." 사실 그의 사건의 철학은 현상의 다양을 극단적으로 추상화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수학적 사고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러나 그가 기초하는 수학적 유산들은 분명 근거가 있는 것들이다. 바디우는 칸토르Cantor의 집합론이 형성하는 현대수학의 분기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칸토르 이후에 현대 수학은 경험적 대상들에 대한 직관적 사고(직관주의)도 아니며, 임의적인 공리들로 구성된 추상적인 사고게임(형식주의)도 아니다. 이들 모두가 공유하는 암묵적 전제는 "존재"란 수학적 사고 외부에 자리잡는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수학은 현실의 경험적 대상들을 가지고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실천에 대한 유추에 불과하거나(비트겐슈타인), 아니면 그것은 단순히 무모순적인 일관성만을 지키면 무엇이든 허용되는 논리 게임(힐베르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칸토로 이후의 수학은 "존재"에 대한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수학은 존재론적 질문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그리고 그것이 그것과 관련을 맺는 것은 '무한'the Infinity과 관련을 맺고 나서부터이다. 바디우에게 있어서도 무한은 실로 중요한 문제이다. 그의 무한은 종교적인 무한이나 혹은 무한에 대한 예술적 이념이 아니라, 일련의 선언적인 공리들로 정초된 '수학적' 무한이다. 이러한 세속적이고, 무신론적인 무한(바디우는 무한이 유한자를 한계짓는 초월적인 신의 다른 이름이라는 식의 종교적 사고를 경멸한다)을 '해방'시키는 것이 바디우의 주요한 존재론적 관심사였다.

  칸토르는 무한을 어떻게 '셀 수 있는지'의 문제를 가지고 평생을 씨름했다. 수학적 사고 속에서 "셀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 대해 "존재하는 것"이다. 가령 "민족국가"라는 하나의 집합은 그것의 세어지는 원소elements들로서 "국민"들을 가진다. 하나의 셈의 방식(누가 국민인가?)이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를 질서 지으며(민족국가) 그것을 어떤 상황situation 속에 현시Present한다. 말하자면 '국민'이란 근대국민국가라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현시present된 존재being이다. 다시 말해 국민국가라는 집합 혹은 상황 내부에서 '존재'being는 '국민'이라는 요소들로 세어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셀 수 있는 범위가 아무리 포괄적이라고 해도, 여전히 세어지지 않는 것들이 아득할 정도로 무한히 많다는 것이다. 가령 자연수의 집합은 무한하지만, 여전히 유리수의 집합과, 무리수의 집합과, 그리고 실수의 집합과, 등등 끝 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밀도의 무한한 집합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칸토르는 이러한 무질서한 세속적이고 무정부적인 무한의 영역 너머에서, 무한의 모든 질서들을 궁극적으로 '셀 수 있는' 하나의 질서로 합리적으로 공식화하고 싶어했다. 가령 무한한 자연수의 집합N이 있다면, 그것을 그것의 모든 가능한 부분집합들의 집합으로 분할하고, 그것을 또다시 그것의 멱집합으로 무한하게 재분할하는 연속적 과정 속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근대국가라는 하나의 존재론적 상황situation은 단지 개별 국민들을 자신의 집합 속으로 헤아릴 뿐만 아니라, 그렇게 헤아려진 원소들을 무수한 가능한 부분집합들로 재구성한다. 가령 경찰이나 수사기관이 한 국민에 대한 '신원조회'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가 어떤 부분집합들에 속하는지에 대한 무수한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당신이, 어느 지역에 거주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주민등록증을 소지하고 있는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기타 등등. 이렇듯 일련의 세어진 원소들이 귀속belong되는 집합이 situation이라면, 한 상황 내부의 모든 원소들이 부분집합들로 포함된include 멱집합은 state of the situation(state는 그것의 이중적 의미--국가 또는 상태--를 고려한 바디우의 전략적 용어이다)이다. 그렇다면 초기 칸토르의 야심은, 마치 근대국민국가의 욕망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단순한 집합과 그것의 가능한 부분집합들의 집합 사이의 '편차'를 없애는 것이었다. 혹은 현시Presentation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의 과잉을 없애고, 두 질서를 동일한 차원에 놓는 것. 예컨대, 국가는 언제나 스스로를 일종의 자연스러운 '친족 공동체'의 한 형태로 보여지고자 노력해 왔다. 수사기관들은 단순히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보여지려고 노력한다. 기타 등등.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칸토르가 직면한 단순한 진실은 다름 아닌 그러한 과업이 정의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가령 유한한 집합 {1, 2}만 보더라도, 그것의 멱집합{(공집합), (1), (2), (1,2) }에는 언제나 '세어지지 않는' 것(공집합empty set)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어떠한 집합 속에 잠재적으로 현존하지만(포함되어 있지만), 결코 집합의 규정에 비춰볼 때 일관된 방식으로 세어질 수 없는 요소이다. 그것을 기존의 집합에 일관된 '원소'로서 다시 포함시키려 한다면, 기존의 집합 자체가 비일관성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불가능한 요소'는 엄연히 집합이 구성하는 존재론적 상황의 일부로서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무한을 하나의 일관된 셈의 질서 내부로 편입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사전에 실패해 버린다. 거기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세어지지 않는 것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가능한 요소'는 집합 속의 원소들 가운데 어떠한 자리도 차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집합 자체'의 보편성을 체현하고 있는 실재적인 요소이다. {1,2}의 부분집합인 '공집합'은 다름 아니라 집합 {1,2}의 존재being of beings 그 자체이다. 집합의 일부를 이루는 세어지지 않은 이 '공백(공집합)'이 명백히 가리키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집합 자체를 떠 받치는 '존재론적 기초Foundation'이다.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셈의 특정한 방식들로 한정될 수 없는 무한하게 잡다한 순수 다수성multiple이다. 이러한 순수한 다수성multiple of multiples, 이것이야말로 임의적인 모든 한정된 무한(자연수, 유리수, 무리수 기타 등등)의 셈의 질서들을 정초짓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것이 정작 특정한 수학적 셈 내부에서는, 순전히 텅 비어 있는 공백으로서만, '공집합'으로 표시된 수학적 기호로서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한 기호는 모든 셈의 질서를 기초짓는 순수 존재being of beings의 '이름'nomination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면, 어느 집합이든 그것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애초에 그러한 집합의 규정prescription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5. 진리의 절차들Process of Truth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수학-존재론은 그의 '사건의 철학'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지금까지 소개했던 것들을, 궁극의 정치적 사례로 번역해 보자. 가령 자본주의적 상황situation(집합) 속에서 모든 것들은 '상품'commodity 내지는 생산요소로서 세어진다. 노동력이나 자연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셈의 질서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떠받치는 존재론적 기초는, 가령 노동자들의 단순하지만 다종다양한 삶의 재생산이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정작 자본주의적 상황 내부에서 온전하게 세어지지 못하는 무의미한 '공백'void으로서 자본주의적 상황 안에서 (일종의 불합리한 비용으로) '재현'represent된다. 그러나 그러한 '공백'으로 세어짐으로써만, 자본주의적 질서는 마침내 자신의 외부(노동력의 재생산)를 자신 안에 부정적인 방식으로 포함한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닥쳐오는 '대공황'은 그것의 내부에 포함되어 있떤 '공백'의 파괴력(가혹한 착취에 수반되는 과잉생산)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며, 자본주의적 상황 내부의 셈의 질서를 다시 재편하지 않을 수 없게 강제한다. 자본주의적 상황에 포함include된 부분집합들(독점적 산업 카르텔과 모노폴리)을 다시 일련의 새로운 부분집합들(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 주도형 경제)로 재분할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 안에 온전히 세어지지 않는 실재reel적 요소(착취)가 존재하며, 그것이 존재하는 한 공황은 영원히 되풀이된다. 그때마다 공백은 재출현하며 자본주의 자체의 진리를 보여준다.

  마르크스가 여기서 수행한 결정적인 개입은, 우선 '공황'이라는 사건 속에서 우연히 조우한 상황의 비일관적인 '공백'void을 목격했다고 '선언'한 점이다.(콩사탕 선언)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공백에 '프롤레타리아'라는 하나의 일관된 이름을 명명했다. 그리고 엄격한 수학적 열정을 가지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상황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공리Axiom들(상대적 잉여가치와 절대적 잉여가치, 잉여가치율의 법칙 기타 등등)을 정식화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식들은 후대에 남은 동지들에 의해 세대를 거쳐 끊임 없이 증명되고 재정식화되었다. 이 모든 절차Process가 바디우가 '진리의 절차'라고 부른 하나의 과정을 형성한다. (1)사건을 선언하기. (2)사건을 통해 출현한 상황의 공백을 이름짓기 (3)그러한 공백을 엄밀하게 정식화하기 (4)그러한 공식을 사건 이후에도 충실하게 유지하며 증언하기. 그리고 이 모든 절차들을 추동하는 단 하나의 원동력을, 바디우는 '주체'Subject라고 부른다. 그것은 진리에 충실한 주체a Subject Faithful to Truth이다.

  이 모든 과정의 요점은, 주체의 편에서 상황의 공백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일련의 공리들로 정식화하는 이론적-실천적 '결단'Decision을 수행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단은 언제나 적과 아군을 나눌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디우의 철학이 지닌 가장 전투적인 측면이다. 무엇보다, 사건 속에서 돌연히 발생한 자본주의적 상황의 공백을 하나의 진리로 정초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러한 '상황'에서 금지된 행위를 통해 그러한 공백에 개입Intervene하는 것 외에는 없다. 그의 사유는 무엇보다 상황에 대한 강력한 개입이다. 

  이러한 진리의 절차들은 네 가지 조건들로 혹은 네 가지 영역들에서 구성된다. 정치, 과학, 예술 그리고 사랑. 정치에서 가령 진리는 바디우의 다음과 같은 가설로서 단언된다.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세계에 속한다." 그것은 가령 인간의 존재의 다양성이 어떠한 사법적 체계로도 한정될 수 업음을, 그러한 다양상이 그 자체로 단 하나의 세계(유대적, 유럽적, 프랑스적인 개별적 세계에 속한 게 아니라)에 속한 것임을 단언한다. 그러한 가설을 승인하는 시민들은, 가령 불법이민자들 중 누구의 존재도 '불법적'이지 않음을 선언하고, 그들을 구타하고 내쫓지 말것을 탄원한다. 과학의 진리는, 데카르트와 갈릴레오 그리고 칸토르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공리적 선언으로써 무정부적인 무한의 지평을 '신'으로부터, '해석'으로부터,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에서 그 소임을 다한다. 예술의 영역에서, 가령 말라르메의 <흰 배경의 흰 사각형>에서처럼, 기존 회화의 형상과 배경 사이에 있는 최소거리를 순수하고 단순한 형태로 '추출'해냄으로써, '재현'과 '해석' 그리고 '가장'으로 뒤덮인 회화의 혼란스러운 장에서 새로운 회화적 진리를 분절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에 관해, 바디우는 그것이 낭만주의적 연애관에서 말하는 혼란스러운 압도적 감정으로 가득찬 특별한 경험으로 묘사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한다. 사랑은 다름 아닌 남녀 간의 내재적 '성차'의 진리를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사랑의 과정 속에서 커플은 서로를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개별적인 인격체의 관계로 서로를 마주할 게 아니라, 그들의 인격 이전에 자리잡고 있는 순수한 '성차', 그들이 경험하는 성적 향유의 간의 '격차'(진정 서로 사랑하는 커플이라면 서로가 서로의 '향유'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에 마땅히 고통을 느껴야 한다)를 고통스럽게 세공해야만 한다. 

  문제는 오늘날 이러한 진리과정들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추상적인 화폐적 동질성 속에서 용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정치는 경영에 의해 대체되고, 과학은 기술로 대체되며, 예술은 문화산업을 변모하고, 무엇보다 사랑은 섹슈얼리티로 이해된다. 여기서 철학은 또 한번, 이러한 세속성에 대한, 혹은 화폐적 보편성이라는 거짓 보편성에 대한 저항으로 간주된다. 바디우에게 있어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적인 '거짓 보편성'은, 무엇보다 오늘날 철학의 화두인 '차이와 타자'와 '정체성 정치'라는 주제에 더 없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단 하나의 '보편적' 세계에 속한 무수한 차이들(방금 전의 집합론에서 다수성multiples으로 말했던 차이들)의 현존을, 일련의 부분집합들로 다시 포함시키며 그것을 존재론적으로 한정define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무엇보다 이것이 오늘날 마케팅의 주요한 영역을 형성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가령 게이의 권리, 흑인의 권리, 무슬림의 권리, 여성의 권리로 한정된 인종적-성적-종교적 정체성들은 저마다의 교집합 속에서 새로운 마케팅 대상들을 만들어내며, 더 없이 바람직한 방식으로 시장의 확장에 기여한다. 이러한 정체성 정치의 명제들은 궁극적으로, "게이의 권리는 게이만이 가장 잘 이해한다"는 자살적인 명제로 귀결된다. 이것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인권'이라는 하나의 대의를 단순한 상황적이고 맥락적인 특수한, 기껏해야 '상업적'으로만 보편적인 권리들로 분해시키고 만다. 

  알랭 바디우는 오늘날 철학의 소임을, 앞으로 다가올 사건을 위해, 이러한 철학의 세속주의적-시장주의적 식민화에 단호히 저항하는 다소 수세적인 포지션으로 정식화한다.  


6. 알랭 바디우, 진정한 유럽 철학자

  필자는 피터 홀워드의 입문서<Alain Badiou: subject faithful to truth>를 통해 <존재와 사건>에서 세공된 그의 사유의 많은 부분을 수용했고 다시 정리해서 여러분에게 전달했다. 영미권 학자인 피터 홀워드는 물론 시종일관 바디우라는 프랑스 철학자에게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참으로 미국인답게도 그는 바디우의 '보편주의적인' 철학적 입장이 기껏해야 구체적인 현실적 상황에서, 그것에 대해 파괴적인 상황의 공백을 추출해내는 부정적인 기능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새로운 것을 산출해낼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반문한다. 그런데 필자가 봤을 때 그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반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현실을 하나의 단순한 공리들로 성공적으로 '환원'하는 철학적 사건이야말로, 엄밀한 의미에서 새로운 모든 것들을 창조하는 빅뱅의 시발점이 된다는 논점을 피터 홀워드 본인이 훌륭하게 정리해 놓고서는 나중에 어디에다 내버려 둬 버린 것만 같다. 철학이 구체적이고 풍부한 현실을 일련의 추상적인 선언으로 대체하며 그것의 거짓된 외관을 일소해버리는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 자체의 구체성에 비추어 볼 때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미 철학적인 문제조차도 아니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필자가 봤을 때, 알랭 바디우는 후기 데리다에 견주어질 수 있다. 자크 데리다가 그의 말년에 그토록 강조했던, 해체주의의 중심 모티브는 '보존' '기억' 그리고 '유산' 등등이었다. 데리다는 해체의 이념 자체가 어떤 '유산' 없이는, 혹은 어떤 외상적 경험에 대한 기억 없이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해체가 분명히 작동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또한 그러한 확신이 해체될 수 없는 것은, 오직 어떤 지적 유산 내부에 포획되어 있을 때, 그리고 그러한 유산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을 때 뿐이다. 폴 드만이 말했듯, 무언가를 진지하게 믿어야만 그것을 해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중 문학작품이나 심지어 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와 같은 잡동사니들을 '해체' 해 보겠다고 나선 한 때의 호기 어린 해체주의-비평가들의 어리석음을 늙은 데리다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해체는 어디까지나 후설이나 루소 그리고 플라톤 등등의 텍스트에 한정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몇 년 전에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라는 데리다의 말년작이 번역되었을 때, 마르크스에 대한 풍부한 언급들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은 이 책은, 슬프게도 우리의 '마르크스'나 혹은 '마르크시즘'들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가 말하는 마르크스의 망령은, 마치 햄릿에 등장하는 망령처럼, 특정한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에게만 출몰하는 그러한 것이다. 그가 또 다른 '유령'으로 지칭하는 공산주의는, 유럽 역사의 어떠한 시대사적 종결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 혹은 그러한 종결에 저항하는 제거할 수 없는 간극을 선사(선물)한 사건이었다. 이것은 '유럽'만의 문명사적 '파르마콘'(독/약)이다. 그가 공산주의를 논하면서 하이데거나 하이데거의 소크라테스 이전 형이상학자들에 대한 독해로 되돌아가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게, 이 책은 문자 그대로 결코 오늘날 우리에게 되살려져야할 자본론의 이런 저런 가르침이나 마르크스의 기획들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주는 게 없다. 그런 기획의 부활을 우리네 지평에서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느니 차라리 다른 책을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러한 교훈을 바디우에게도 적용해 볼 때, 우리는 바디우의 철학이야말로 진정 '유럽적'이라는, 혹은 데리다의 노쇠한 유럽보다 더 '유럽적'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그의 철학이 모종의 유럽 중심주의를 은폐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혹은 그의 것과 변별되는 우리만의 독특한 민족사적 과제가 있다는 말도 더더욱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기획은 진정 해체주의보다 더 급진적이고 보편적이다. 그러나 '플라톤' '데카르트' 그리고 '칸토르'의 지적 유산 내부에서만 그것이 진정 '보편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말은, 그의 철학이 어떤 특수한 민족성에 사로잡혔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필자는 '유럽적인 것이야말로 보편적이다'라는 테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싶을 따름이다. 유럽인들은 자신의 문명 속에서 보편성의 새로운 차원을 훌륭하게 발명해 내었다. 그리고 바디우는 그가 그러한 유럽의 정통성 있는 적자라는 것을 매우 잘 보여준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그러한 문명적 유산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없다면 그들의 유산을 철저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발명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프게도 아직까지 '바디우'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유효하지 않다. 필자가 스스로를 '바디우주의자'라고 즐겨 자처하는 것은 사실, 우리와 같은 상황을 공유하지 않는 다다이스트나 아방가르드 혹은 리얼리즘 소설가를 옹호한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때 경험하는 압도적인 감동은 또한, 그 자체로 완결된 형식의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감동과 유사한 것이다. 

  앞서 "사유가 그 자체로 '사건'일 수 있는가?"에 대해 바디우는 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들뢰즈와 더불어 단호하게 "예"라고 대답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공통으로 경험했던 68혁명 이후에 그러한 사건의 차원이 어느 정도 닫힌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68혁명(앞서 보았듯이 이것은 역사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었다)은 그들에게 공통의 강력한 기억으로 영원히 남아 있다. 그것이 바디우가 또 다른 ㅎ명의 시퀀스를 고대하는 하나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불행은, 우리의 역사적 체험은 정작 그 불길(68혁명)을 비껴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68혁명과도 어긋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점에서 사실 바디우와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시차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어 독자들이 바디우를 독서한다는 것은 그러한 기시감 못지 않은 '거리감'과 대결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re] [독서후기]알랭 바디우 입문  

병장 김예찬   2009-08-09 134716, 조회 69, 추천0 

잘 읽었습니다.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기는데 - 이 역시 홀워드의 반문하고 떨어뜨릴 수 없는 부분이겠습니다만 - 나중에 한번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뭐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디우가 거의 서용순 교수의 논문을 통해 배운 바디우이기 때문에(사실 사도 바울을 제외하면 제대로 읽어낸 바디우의 책이 없군요. 허허.) 제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아무래도 바디우의 'ㅎㅁ적 정치'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디우의 '정치'는 먼저 반국가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 것 같구요. 이는 원익님의 친절한 설명대로 바디우의 독특한 존재론에서 이어지는 국가론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바디우의 국가는 부분 집합들을 셈하는 재현 시스템입니다. 이러한 국가의 성격은 아무래도 정치체제로서 대의제 정치와 떼어놓을 수 없겠구요. 그러나 바디우가 ML주의 국가론과 결별하게 되는 지점은 바디우의 국가가 '모든 상황은 동시에 상황 상태(국가)'를 가진다는 것이겠죠. 수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집합은 동시에 부분집합으로 세진다고 해야할까요. 그리고 여기서 부분집합을 세는 시스템이 국가겠죠. ML주의의 ㅎㅁ적 정치가 거칠게 말해서 국가 접수, 접수한 국가를 통한 PT독재, 국가 소멸의 단계를 가진다고 한다면, 바디우에게 있어서 국가는 소멸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바디우의 반국가 정치는 아예 지속적으로 국가라는 존재 자체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ML주의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 국가의 형태가 어떠하든, 바디우의 정치는 영원히 국가라는 존재 자체가 셈할 수 없는 그 어떤 곳(공집합)에서 '사건'의 도래를 선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익님의 말씀처럼 (1)사건을 선언하기. (2)사건을 통해 출현한 상황의 공백을 이름짓기 (3)그러한 공백을 엄밀하게 정식화하기 (4)그러한 공식을 사건 이후에도 충실하게 유지하며 증언하는 '진리에 충실한 주체'야 말로 ㅎㅁ적 정치의 주인공이겠지요. (사도 바울은 그 대표적인 주인공일테구요. 그런데 바디우의 '주체'는 실체, 대상, 인격적 개념은 아닌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봐야겠네요.)

그뿐 아니라 바디우는 스스로 현실 속에서 '당 없는 정치'를 내세우듯, 탈유대의 정치를 이야기합니다. 기존의 ㅎㅁ적 정치(ML)에 있어서 대중, 당, 국가라는 세가지 항은 대중-당의 유대 속에, 또한 당-국가의 유대 속에서 결국 '국가'라는 일자의 기호로 나타났고, 국가는 또 필연적으로 '셈할 수 없는 부분'들을 가지게 되죠. 결국 유대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정치는 악순환 구조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바디우의 정치는 '평등의 정치'입니다. 앞선 반국가와 탈유대가 ㅎㅁ적 정치의 외적 대립물과 상관된다면, 평등은 정치의 내적 동학으로 기능합니다. 여기서도 ML주의와 다른 노선을 가게 되는데, 기존 ML주의가 '객관적 실현으로서의 평등'(이를테면 경제적, 사회적 평등, 분배의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자신들의 대립항인 '부르주아적 평등'과 적대적 공모를 이루게 되었다면 바디우의 평등은 어떠한 객관적 대상과도 연결되지 않는, '그냥 평등'입니다. 어떤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는 평등이 아니라, 가능한 것으로서의 평등, 선언으로서의 평등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부분은 플라톤주의자이면서도, '이데아'(초월적 일자)를 거부하는 바디우의 모습과 합치되는 것입니다. 어떤 '완성점'이 없는 평등이니까요.) 이러한 평등은 '선언'으로 드러나고, 정치는 이 시점에서 '정의'로운 것이 됩니다.

제가 이해한 바디우의 '정치'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오해를 무릅쓰고 바디우가 '순수 정치로서의 레밍'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구요. 따라서 바디우가 아주 단호하게 신ㅈ파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냉소적 뉘앙스들과 대결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탁월한 합리주의자이자 계몽주의자인데, 그의 정치학은 타협없는끝없는 계몽의 연속이라고 보아야하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드네요. 

그러나 역시 '믿음이 없는 신도'인 저로서는 바디우의 단호한 입장이 어떻게 현실 정치 속에서 구성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바디우가 '쌍화차' 문제를 알게 된다면 그는 (애초에 '노조'라는 특정 부분 집합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한계점을 가지겠지만) 고용 보장이라는 목표 제시 자체에 반대하겠죠.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농성이 시작되고, 칠십여일 동안 이어진 '투쟁의 순간들'이지 (그럴리 없겠지만) 만약 농성을 통해 노동자들의 주장이 모두 수용되고 이 것이 기폭제가 되어 전반적인 노동 문제에 있어서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하게 되더라도 바디우에게 그 결과는 무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바디우는 진정한 '투사'겠습니다만.. 저는 이러한 바디우와, 바디우주의자들이(그리고 영원한 투쟁의 길과 다름 없는 바디우적 정치를 생각해 봤을 때 그 외롭고 고독한 길을 걷는 바디우주의자들이 얼마나 있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현실 정치(어쩌면 '현실 정치'라는 것 자체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겠지만)와 맞닿을 수 밖에 없는 제가 바디우로 부터 무엇을 배워서, 그 것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원익님도 이야기 하신 바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지점에서 제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고진에게 더 갈급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디우가 프랑스에서 현실 정치에 어떻게 참여투쟁하고 있는지 제가 알고 있는 바가 적은데, 혹시 마오주의 활동, 베트남의 침공에 대응해 크메르 루즈 정권 지지,정황 시리즈에 이어 어떤 정치적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아신다면 알려주시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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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박원익 
  서용순 씨는, 'de-liaison'을 '탈유대'라고 번역하나보네요. 저는 읽을 때 '탈연루'로 되새기곤 했는데... 그 분 논문은 거의 읽은 바가 없어서. 무엇보다 바디우의 용어들에 대한 번역의 '합의'가 하루 빨리 정착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 서용순 씨 외의 번역자나 전공자가 없을려나요 들뢰지언들이 이쪽으로 하루 빨리 전향했으면 하는 바램인데... 하하. 

말씀하신대로, 바디우는 초기의 Mao주의를 탈피한지 오래입니다. 즉 국가를 완전히 일소하는 상황은 지속될 수 없다는 보다 현실적인 입장으로 돌아선지 오래이지요. 말씀하신대로 모든 상황은 그것에 대한 재현장치를 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는 초기의 불온함을 이미 상실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점에서 그가 과거의 20세기의 극단적인 정치적 실험들이 실재의 열정에 빠짐으로써, 자기 자신의 근거마저 파괴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아비판'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지젝이 말했듯이) 오히려 상황의 '최소-차이'를 추출해내는 조심스러운 과정으로서, '감산subtraction의 정치'를 옹호합니다. 예컨대, 정치, 예술, 사랑, 과학의 혼란스러운 외관과 재현장치에 맞서, 재현되지 않는 순수한 정치-예술-사랑-과학의 진리들을 추출해내는 영원한 계몽의 과정에 몸을 맡겨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진리들이 어느 상황 속에서도 유지되기 힘든 매우 '연약'한 것임을 인식하고, 그러한 진리의 개념을 끝없이 세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바디우가 하는 유의미한 정치적 활동이, 지금에는 고작 '이민자'에 관한 것 뿐이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 외에는 전혀 아는 게 없네요. 그러나 그가 '정당정치'에는 정말로 아무런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포지션은 분명 '수세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령 프랑스 공화국이라는 하나의 정치적 상황에서는, '이민자' 문제라는 게 분명 그 상황에 관해 결정적인 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디우의 정치적 '센스'는 여전히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바디우는 '유럽'의 철학자이고, 그가 정치에 대해 말해주는 게 있다면 어디까지나 '유럽'에 대해서 보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의회정치 바깥의 ㅈ파들이 궤멸상태에 이르렀다 해도, 분명 그러한 정치의 유산은 아직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건, 그런 '바깥'의 정치를 우리의 상황에서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지입니다. 68혁명은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계기를 유럽 문명의 모든 장소에서 표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 하나의 실례는 오직 '빛고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화시켰던 것은 사실은 민주주의적 의회정치였지요. 그 외에는, 민주주의 의회정치 바깥(사실은 진정한 '사건'은 거기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 이게 바디우의 확신이고 저는 이것에 깊이 동감합니다)이란 대체 무엇이고, 거기서 뭘 할 수 있는지는 정말 '감'조차 잡기 힘듭니다. 그리고 지승인님이 말하셨지만, 그건 고작해야 '스펙타클'로 빠져들 위험이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언제나 저는 이 점을 강조하지만), 제가 스스로를 잠정적으로나마 계속 '바디우주의자'라고 자칭하는 것은, 의회정치의 '바깥'(혹은 재현될 수 없는 상황 속의 공백이 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사유 속에서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입니다. 저는 데리다의 견해대로, '콩사탕주의'가 유럽 문명의 궁극적인 발명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말로 재현될 수 없는 '공허'가 무엇인지를 '발명'해 냈습니다. 다만 이건 데리다와 핀트가 살짝 다르지요. 아무튼 우리는 상황 속의 공백을 '생각'조차도 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은 바디우가 들뢰즈보다 훨씬 쉬운 글쓰기를 하는데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바디우하면 엄청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바디우의 mao주의도 사실은 아시아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유럽적'입니다. mao의 금언이 유럽의 비정당 ㅈ파들에게 그토록 강력한 공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유럽문명의 근원적 유산에 호응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진은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말해주는 게 있을까요 저는 그것도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고진의 작업에는 아직 허점들이 있습니다. 제가 고진에게 문명사적인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한편, 그를 능가해야한다는 초조함을 느끼는 건 바로 이 때문이지요. 그는 가령 프로이트를 독해하며 아시의 근대사에 내재하는 '반복강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의회정치'가 어찌할 수 없는, 의회정치 혹은 재현장치의 피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한 '공간'에 어떻게 개입해야할지에 대해서(사실은 이 '반복'을 끝장내는 게 의회정치의 헤게모니를 다투는 것보다 더 시급한 과제이죠)는, 고진은 '초자아'라는 개념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다른 데에서는 '단독자의 어소시에이션'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반지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아직 충분하지 못한 것이지요. 게다가 이 '초자아'와 '어소시에이션'이라는 개념은 각각 그의 사유의 정치적 측면과 이론적 측면 간의 불균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사실 잘 들어맞지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고진이 '자유로운 교환의 체제'로 말하는 '어소시에이션', 혹은 마르크스가 그의 궁극적 목표로 설정했던, '소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어소시에이션', 이건 사실 바디우가 말한 진리-사건의 '결과물'들입니다. 바디우 말대로 그것은 '공리적'axiomatic인 성격이어서, 현실에 대해 말해주는 게 아무 것도 없지요. 그런데 고진은 그것을 아직 충분히 캐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강제하기 위해 '초자아'라는 개념으로 돌아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