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병의 사랑에 대한 감각1 
 
 
 
 
*시작에 앞서 제목에 관해, 본인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를 딱 한번, 표지만 보았음을 미리 밝혀두겠습니다(먼산)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는 만큼, 책마을에도 겨우내에비해 '사랑'에 관련한 글들이 솔찮게 늘어나고, 그 흐름따라 또 내 이야기, 옛날 이야기를 넘어선 직접적인 언급들이 늘어나는데 비해 그러한 진술들 사이에는 어떠한 간극 같은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안타깝게도 꽤 깊은  '감정의 골' 까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주의할것은 우리의 사랑에 대한 논의가 쉽게 '감정'으로 치닫는것은 우리가 (그것이 정의하기 쉽지않은 어떠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강렬했던 -연애나 짝사랑, 헤어짐 등의- 경험, 혹은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처럼 많은 사람들의 한가지 주제에 대한 의견과 서술들 하나하나에 논리적 오류 따위를 찾아볼 수 없으면서도 그 합은 반대진술과 모순, 사이사이에 크레바스 같은 균열을 가진 금언들로 첨철되는 개념은 없을 것이다. 책마을에서도 '사랑은 뇌의 화학작용인가' 하는 다소 거친 물음부터 '남녀사이의 친구관계', '현실조건과 연애(결혼)'에 이르는 주제들의 입장차이만 관찰하더라도 그 첨예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의 분열에 프로이트의 발달과정에 대한 이론은 '왜 하필 사랑인가?'에 대한 답변에 적지않은 실마리를 제공해 주리라 믿는다. 
비록 프로이트의 리비도가 거의 강박적으로 '성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긴 하지만 그 배후에 있는,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개체'로써, 탯줄의 연결로 어머니의 일부이던 태아가 자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분리감에 대한 극복, 합일에 대한 갈망을 읽어내는것이 무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 갈망을 충족하기 위한 활동을 사랑이라고 볼때 리비도의 발달은 사랑의 발달에 다름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리비도가 자신의 부모에게 향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엘렉트라 컴플렉스니 하는 것들이 유발되는 모습은 애초에 우리의 사랑이 '자연'에 대한 합일을 갈망하는 것이니만큼 부모에 대한 사랑, 형제애, 성애니 하는 것들이 선천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방향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다시말해, 부모님에 대한 사랑, 여동생에 대한 사랑,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의 본질은 다르지 않을뿐 아니라 완전히 '같다'. 다만 그 안의 속성(프롬은 이를 형제애, 모성애, 자기애, 성애, 신에 대한 사랑으로 나누었다)이 심리적, 사회적 영향에 따라 역동하고 있는 것이다. (1)

이런 역동성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을 굳이 못박아 버리는 것은 백수십여년전 생면부지 남녀의 매력없는 정략결혼만큼, 하루 15시간 일해서 번 돈을 동거하는 아가씨와의 집세, 생활비, 다른 남자와의 데이트 비용등으로 전부 써버리는 내 친구의 그것, 딱 그것만큼의 (상대방을 향한 것이든, 나를 향한 것이든)폭력을 수반한다. (널 정말 좋아하지만...이라며 거절하던 그녀를 이제 조금은 이해할 때가 되었다. 술마시고 괜히 꼬장부리지 말기.)

거슬러 올라가, 프로이트 이론이 한때 유럽사회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와서는 몇가지의 획기적인 개념의 발견들 및 상적적인 의미를 제외하고는 유의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역시 사랑의 속성에서 강박적으로 성을 억누르던 시대에 대한 반동으로 오히려 성을 강박하는데 지나지 못한 한계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깊이 있는 공부를 한 사람이 보면 씨알도 안먹힐 공력으로 짝퉁스런 요약 압축 블라블라 문제제기를 해보았는데, 이렇게까지 뻔뻔한 글을 게시하는 이유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사랑에 관한 궁극의 오의같은 것을 논하자는게 아니라 그저 위대하고 아름답게, 혹은 쓰리고 뒤틀리게만 보여 도저히 '겪는것' 외에는 어떻게 해볼 도리 없어 보이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작은 몸부림이나마 날릴 수 있는 유효타에 어떤 것이 있나 알아보기 위함인 때문이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나 틀린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두드려 주시면 정신력이 버티는 한에서(....) 성심껏 답변드리려 한다. 부디 불초한 글줄에서 그런 고뇌라도 한 줄 읽어주신다면 내가 만약 텔레비젼에 나오는 것보다 더 기쁠테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어정쩡한 자세에서 맥을 끊게된데 많은 아쉬움을 느끼며 다음 기회가 오면 여건과 지능(...)이 허락하는한, 이번에 부족했던 부분, 그리고 현대와 '올바른'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 싶다.




(1) : 사족 하나. 바로 이 지점에서 진욱님이 게시하셨던 세이노 칼럼은 유효하다. 그의 딸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양상은 다를 지언정 그의 딸이 아닌 다른 사람들 또한 사랑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운전경력이 없기에 자세한 접근은 못하지만...그의 칼럼에 정치적(?)으로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바라는 것만 있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의 의지가 없다는 것 정도일까. 

  
 
 
 
상병 송희석 (2006/04/05 17:11:44)

지금은 대섭님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요청할때가 아니라 생각하며, 현대와 '올바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때 설명을 요청하겠습니다.(웃음)    
 
 
일병 김현동 (2006/04/06 08:44:57)

부모님에 대한 사랑, 여동생에 대한 사랑,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의 본질은 다르지 않을뿐 아니라 완전히 '같다'. 다만 그 안의 속성이 심리적, 사회적 영향에 따라 역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성의 역동이란 것이 결국에는 무시무시한 거군요.    
 
 
상병 조주현 (2006/04/06 09:20:35)

대섭님의 컬럼 오랜만입니다. 즐거운 독해였습니다.    
 
 
상병 엄보운 (2006/04/06 16:25:50)

막 재미있어 지려는데- 이럴수가. 좀 더 써주셔야 겠습니다. (흔들흔들)    
 
 
일병 조형규 (2006/04/06 17:11:46)

우리 시대의 사랑은 그 동일한 본질의 사랑들 중에서도 유독 한 가지 유형만 비대해진.. 
연애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도 퍽 쉽지만은 않습니다..(훌쩍)    
 
 
이병 김동호 (2006/04/07 08:31:27)

형규님... 울지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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